아주 편안한 죽음 (리커버) 을유세계문학전집 여성과 문학 리커버 에디션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러니한 일이다. 죽음이 찾아오기 직전에야 서로를 이해하게 된 가족이라니.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 속, 어머니와의 소원한 사이와 가부장제 아래 살아야 했던 두 사람의 모습은, 지금의 내가 직면한 상황과 유사해서 자연스레 저자의 감정에 이입했다. 평생 부모라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지막 순간에는 그 생각이 과연 달라질까. 


어머니가 겪은 사고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가혹할 정도로 철저하게 묘사된다. 이러한 묘사는 어머니의 몸, 그를 넘어선 영혼을 마주하며 비로소 동일선상에서 어머니의 삶을 진정으로 헤아리게 되는 보부아르의 내면을 독자에게 납득시킨다.


어머니의 이름이 불린 장례식, 그리고 이후의 애도는 어머니가 진정한 주체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가 됐다.


한편으로는 운이 좋았단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상대를 이해하려 들지 않고 이해할 수조차 없는 사람이라면, 죽음 이후에도 고통스러울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닫기를. 죽음이 아프지 않길 바라는 건 모두에게 해당되니까.


-


p. 152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태어났기 때문도, 살 만큼 살았기 때문도, 또 늙었기 때문도 아니다. 사람은 무언가로 인해 죽는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엄마가 돌아가실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성 종양이 엄마에게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끔찍한 경악스러움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암, 혈전, 폐울혈과 같은 것들은 공중에서 비행기 엔진이 멈추는 것만큼이나 급작스럽고 예상하기 힘든 사건이다. 


꼼짝 못 하는 상태로 죽어 가면서 매 순간이 지닌 무한한 가치를 확인한 그때, 어머니는 희망을 품고 기운을 냈다. 하지만 동시에 어머니의 헛된 노력은 일상의 평범함이 만들어 낸, 불안을 달래 주는 장막을 찢어 버리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

.

.


#을유서포터즈4기 #을유문화사 #고전문학

#여성과문학 #아주편안한죽음 #시몬드보부아르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패스트 라이브즈 각본
셀린 송 지음, 황석희.조은정.임지윤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성과 나영이 함께한 시간은 12살의 기억에 멈춰있다. 나영이 더 이상 나영으로 불리지 않고 '노라'로 살아가듯, 나영의 시간은 고여있지 않고 흘러간다. 


추억을 붙잡는 건 해성이다. 12년 후 노라를 애타게 찾은 것도, 또다시 12년의 시간이 흐른 뒤 노라에게 달려온 사람도 그다.


두 사람이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영화의 극히 일부분을 차지할 뿐이지만, 인연이라는 건 찰나의 순간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이란 감정은 그 순간을 더없이 소중하게 만들어준다. 


어린 시절의 첫사랑이라는, 닳고 닳은 익숙한 소재이지만, 영화의 키워드인 '인연'과 연출 속 적당한 여백이 만나 특별함을 부여한다. 화면에서는 주인공들의 시선으로, 각본에서는 [사이.] 의 표현으로 구현된다.



-



📍109p. 


가끔은 그게 좀 겁나. 

내가 이해 못하는 말로 꿈꾸는 거.

마음속에 내가 못 가는 장소가 있는 거잖아.


좋았던 부분은, 노라의 남편 아서가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노라 곁의 존재라는 것. 두 사람의 만남 또한 노라와 아서 사이의 두터운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



📍132p.


이번 생에서는, 아서랑 너랑 그런 인연인 거지. 

팔천겁의 인연이 모인 사람인 거야. 아서에게 너는,

곁에 남는 사람인 거야.


해성은 노라를 직접 만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24년 전 툭 내뱉었던 잘 가란 인사가 자신을 이곳으로까지 이끌었고, 끝맺지 못한 작별을 이제는 제대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한국에서만 존재했던 인연의 의미가 아서를 포함한 세 사람, 영화를 보는 모든 이에게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


📍141p.


마치 이 아이들이 바로 이 장소에서 24년을 기다렸고, 이제서야 진정으로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사랑을 말하는 듯한 두 주인공의 대사, 어떠한 접촉 없이 주고받는 미묘한 시선은 로맨스를 기대하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마지막 인사가 아쉽고도 후련하게 느껴진다. 이제 해성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됐고, 노라 역시 일말의 감정을 비로소 내려놓았으니.


영화의 첫 장면과 더불어 마지막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

.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라본 후에 다스리는 마음
수아지크 미슐로 지음, 이현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라본 후에 다스리는 마음』 :: 명상이란 바다에 주저없이 뛰어들기

하루종일 누워 지칠 때까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책상 앞에 앉을 일 없이 뒹굴거리는 시간이 사실은 쉬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명상'이 진짜 휴식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바라본 후에 다스리는 마음'이라는 제목 자체가 명상의 간결한 정의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을 때, 과거의 기억이나 감정이 갑작스레 머릿속을 채웠을 때, 순간 떠오르는 상념을 지나치지 않고 응시하는 것. 정의내리지 못했던 그 시간을 명상이라 부를 수 있음을 깨달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명상은 오로지 마음을 지그시 응시한다. 자책이나 후회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필요치 않다. 그저 모든 마음을 포용하기 위해 속을 파고든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빤히 들여다보는 게 불편할 수 있지만, 동요하더라도 결국 본질에 다다르게 되는 순간이 바로 명상의 시작이며 나라는 사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방법이 된다.

목적 없음을 지향하는 책이기에 순서와 상관없이 읽어도 무관하지만, 명상을 생소한 개념으로 여겨왔다면 목차를 따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명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클리셰부터 시작해 집착과의 차이점부터 명상 이후의 과정까지, 한 칸씩 계단을 오르듯 찬찬히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명상이란 진흙 속을 묘사하는 수많은 단어들은, 매 장마다 동반된 예술 작품을 통한 비유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익숙했던 화가의 작품도 명상의 관점에서 보니 색다른 해석으로 다가와 신기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작품들을 감상하기만 해도 책의 목적은 충실히 이행될 테지만, 작품을 보면 자연스레 글이 궁금해져 나도 모르게 읽게 된다. 책이 만들어내는 세계에 어울리는 음악과 영화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존재의 위태로움과 찬란함을 비눗방울로 묘사한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책 전체를 통틀어 중요시되는 것은 '수용'. 도움닫기 없이 곧바로 명상에 뛰어드는 것은 어렵다. 책에서 그림을 활용했듯 내가 나를 수용할 매개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명상은 시선이 닿는 방향을 뒤집어서 매일매일 자기 얼굴을 그려 보도록 유도한다. - P33

동기야말로 명상의 토대를 이룬다. 껍데기에만 머물 것인가, 아니면 저 깊은 심연까지 내려가 탐험을 계속할 것인가. ‘나‘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생각을 더욱 단단히 굳힐 것인가, 아니면 거기서 더 나아가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인가. 자기 정체성에 더욱 간절히 매달릴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과감하게 뚫고 나올 것인가. - P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마거릿 렌클 지음, 최정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문판 제목과 비교했을 때 조금의 괴리감이 있었다. 표지만 보았을 때는 단순히 자연에서 보고 경험한 것들에 대한 에세이일 줄 알았는데, 이토록 낭만적인 제목이라니. 우리의 삶과 그들의 삶은 엄연히 다르고 서로를 신경쓰지 않는, 각자가 살기에 급급한 여정이 아닌가. 서로를 향한 '작별인사'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된 읽기는 점차 느리지만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삶과 죽음을 겪는다는 점에서 그들과 같다.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아침의 새소리와 푸르른 풍경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의 매정하고 잔인한 면을 눈앞에서 목도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는 가족들과 오래도록 가깝고도 먼 죽음을 매일 지켜봐왔다. 초록빛 세계의 동식물을 거리낌없이 본인의 삶에 들이기도 하고, 그저 관조하기도 하며, 곁에 머무르길 바란다. 무수한 시간에 존재하는 이 고요한 물결이 스쳐지나가도록 두는 것이 바로 저자가 모두의 삶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동요없는 글과 삽화는 우리 또한 흐름에 실재하게끔 만든다.

#을유문화사 #을유서포터즈4기 #에세이추천 #도서추천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세상은 여기서 살아가기 위해 내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매일 가르쳐주고 있다.
너무 많은 움직임의 소용돌이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게 있기.
조용히 하기.
귀 기울이기. - P181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을 발견했다. 그것이 그 대가로 가져간 것은 반짝이는 철망 울타리에 들끓는 개미, 햇빛 속에서 은처럼 반짝이는 수천 개의 새로운 날개였다. 동물원에서 탈출한 매가 주 의사당 계단에서 줄을 끌면서 비둘기들을 즐겁게 죽이고 있었다. 콩가리 늪 속 어느 나무 안에 똬리를 튼 갈색 물뱀의 모습은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내 창문 밖 충충나무의 유황 냄새가 번개에 의해 반으로 분열되었다. 어둠 속 가면올빼미의 울음소리. 신선한 무화과의 맛. - P189

가족 안에서 살면서 내가 뭔가 배웠다면,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속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밖으로, 밖으로, 밖으로, 양쪽 방향에서 확장되는 잔물결을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속한다. 그리고 초록색의 이 근사한 세계에도. - P3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교 넘어 도망친 21살 대학생 - 울면서 떠난 세계여행, 2년의 방황 끝에 꿈을 찾다, 2024년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홍시은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 학번으로 2년을 보내며 학교도 제대로 다녀보지 못한 시간 동안, 나는 그저 집과 알바만을 반복하는 쳇바퀴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휴학을 생각해보긴 했지만 정작 휴학을 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해외여행을 가자니 타지에 홀로 발을 들여놓기가 두려웠다. 전공은 기대와는 많이 달랐으며 답안지는 대부분이 백지나 다름없었다. 게으름의 이유를 대변해줄 핑계일수도 있겠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학교든, 회사든 어디론가 향해 가는 게 나만 제자리에 멈춰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쟤는 벌써 저기까지 도착해있는데, 무엇 하나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내가 잠시 학업을 내려놓을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내 생각은 틀렸다. 같은 상황에 처했음에도 '도망'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난 사람이 여기 있으므로.

2년간 굴려왔던 쳇바퀴는 곧 이 책에서의 피라미드와 같다. 저자는 오랫동안 모든 이들이 당연시 여겨왔던 피라미드의 순리를 역행했다. 무모하고 담대하며 그동안의 시간을 절대 헛되이 쓰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의 답. 삶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근원적인 방향을 찾기 위해 어디론가 자꾸만 나아간다. 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두려워하던 수영을 도전하기 위해 다합에서 다이빙을 배우고, 기타를 연주하며 히말라야를 등반했다.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한 세상은 현실을 살아갈 나에게 버팀목이 된다.
도전을 통한 경험은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
.
.


나는 여전히 백지나 다름없는 답안지를 제출하고, 뒤늦게 관심이 생긴 다른 수업을 더 열심히 듣는다. 지난 2년과 달라진 점은 내가 좋아하는 걸 아낌없이 해보려 했다는 것. 또다른 후회는 할지라도 나를 찾기 위한 발버둥이 결국 여행이 아닐까. 


#세계여행 #해외여행 #여행 #오지여행 #여행에세이 #에세이추천 #여행책 #도서출판푸른향기 




나는 내가 걸어온 발자국, 딱 그만큼씩 넓어지고 있었다. - P54

어설픈 춤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일은 부족한 나를 꺼내 보이는 것과 같았다. 춤을 춘다는 것은 완전하지 않은 나를 남들에게 고백하는 것이었다. - P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