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 어느 30대 캥거루족의 가족과 나 사이 길 찾기
구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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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이 물음은 더 이상 청년기의 통과의례만이 아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자취방 하나 얻기도 벅찬 현실 속에서, ‘독립’은 경제력이나 책임감 이전에 일종의 심리적 압박이자 사회적 미션처럼 느껴진다. 구희 작가의 그림 에세이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바로 이 미묘하고도 보편적인 질문을 따뜻하고 유쾌한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이 책은 작가가 30대가 된 지금도 부모님과 함께 사는 ‘캥거루족’으로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낸 독립 분투기다. 치솟는 물가와 끝없는 경쟁, 기후위기의 현실 속에서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말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닌 생활의 진심이 된다.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은 안락한 네버랜드처럼 느껴지지만, 동시에 스스로에게 자꾸만 질문을 던지게 한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내 삶의 방향은 이대로 맞는 걸까?"

책은 이러한 질문을 ‘반드시 독립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독립이란 나만의 규칙과 가치관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비건 식사를 위해 밥상만이라도 독립하고, 예쁜 그릇을 보고 나만의 공간을 상상하는 사소한 순간들이 저자에게 ‘나답게 산다’는 감각을 일깨운다. 물리적으로 부모 집을 벗어나지 않더라도, 나를 위한 선택을 해나가는 것이 곧 독립이라는 새로운 관점은 많은 독자에게 위로가 된다.

특히 이 책이 빛나는 부분은, 가족과의 관계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진솔함이다. 부모님의 잔소리와 기대, 생활 패턴의 충돌, 그리고 프리랜서로서의 애매한 일터-집 경계까지. 사소한 일상의 디테일 속에서 우리는 자꾸만 ‘어른다움’의 정의를 묻게 된다. 부모의 선택지를 살아오던 아이에서, 이제는 자신만의 선택지를 상상하는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이 여정은 결코 미화되지 않지만, 그 안에 있는 유쾌한 투덜거림과 솔직한 감정 덕분에 오히려 더 큰 공감과 응원을 이끈다.

결혼, 출산, 독립 같은 삶의 ‘미션’들은 마치 어릴 적 게임처럼 주어지지만, 작가는 그 미션들이 ‘삶의 목적’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게임의 본질은 결국 ‘나의 행복’이라는 메시지는, 남들과 다른 경로를 걷고 있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커다란 용기를 준다.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문장은, 결국 “지금의 나도 괜찮다”는 말로 이어진다.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당장 어딘가로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바심 대신 숨을 고르며 내 삶을 돌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이다. 독립을 꿈꾸며, 동시에 누군가의 사랑 안에 머무는 우리 모두의 복잡한 마음에 기꺼이 머물러주는 이 따뜻한 그림 에세이는,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힘이 된다. 마치 좋은 친구와 먹는 마라탕 한 그릇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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