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 - 최강 형제가 들려주는 최소한의 정치 교양
최강욱.최강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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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는 단순한 정치적 성향을 넘어, 인간관계의 단절까지 야기하는 정체성의 벽처럼 작용한다. 진영에 따라 뉴스와 현실의 해석이 달라지고, 대화는 감정 싸움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이러한 시대에 『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는 "서로를 비판하더라도, 최소한 정확히 알고 비판하자"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매우 소중한 시도다.

이 책은 정치인 출신 최강욱과 정치학 전공자인 그의 동생 최강혁이 함께 쓴 정치 교양서로,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진영 갈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형은 정치 실무의 최전선을 경험한 인물이고, 동생은 이론과 분석을 바탕으로 정치 담론을 구성하는 인물이다. 이 둘의 협업은 단순히 견해를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 정치적 현실과 사상적 맥락을 촘촘히 연결한다. 이는 책 전반에 흐르는 균형감과 현실감의 원천이다.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독자를 진영 논리에서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프랑스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개념을 천착하며, 그것이 단순히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과 태도의 차이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이를 통해 보수는 변화에 신중하고 전통을 존중하는 태도, 진보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미래를 지향하는 태도라는 본래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봉수 씨’와 ‘진봉 씨’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통해 이념의 차이를 구체적인 생활양식과 대화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것이다. 이는 이념이 추상적인 담론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 언어와 행동에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보여 주며, 독자의 몰입을 돕는다. 또한 〈배트맨〉, 〈기생충〉, 〈설국열차〉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를 해석의 도구로 활용한 것도 효과적이다. 정치를 잘 모르는 독자들도 쉽게 이입할 수 있도록 배려한 구성이다.

책의 중후반부로 갈수록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더해지면서 깊이감이 커진다. 저자들은 혐오와 증오를 무기 삼는 정치, 가짜뉴스와 확증편향에 매몰된 사회 분위기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이해’와 ‘연결’이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되찾자고 제안한다. 앙겔라 메르켈과 버락 오바마를 각각 보수와 진보의 이상적 리더로 제시하는 대목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혐오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부족한 점을 메워 주는 상호 보완적 관계가 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물론 이 책이 모든 정치 성향을 포괄할 수 있는 완벽한 답을 제시한다고는 할 수 없다. 특정 시각이 드러나는 순간도 있고, 진보적 성향이 보다 우세하게 느껴지는 대목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책의 목표는 '완벽한 균형'이 아니라 '상호 이해의 출발점'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균형의 엄밀성을 따지기보다는 독자 스스로 자기 신념을 되돌아보게 하고, 반대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무엇보다 이 책은 청소년과 청년 세대에게 큰 가치를 지닌다. 정체성과 이념이 굳어지기 전, 다양한 시각과 논리를 경험하고 균형 잡힌 세계관을 갖출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동시에 중장년층에게는 지금까지의 신념을 돌아보며 보다 유연하고 너른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는 단순한 정치 교양서를 넘어, 지금 우리가 처한 공동체적 갈등을 완화하고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안내서다. “왜 보수인가, 왜 진보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이 책은 그 물음 자체를 다시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진영 논리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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