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구멍이 뚫릴 때 - 바람 빠진 마음에 빵빵하게 채워 넣는 위로 한 움큼
고코로야 진노스케 지음, 전경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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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구멍이 뚫릴 때를 읽고

내 인생의 꼬리표

 

며칠 전에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꼭 가겠다는 문자를 남겨놓고는 나는 끝내 가보지 못했다. 나는 태어나서 장례식장을 단 세 번 가보았다. 한 번은 부모님의 허락도 없이 갔으니, 공식적으로는 두 번 가본 셈이다. 부모님이 붙인 꼬리표가 아직까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내 나름의 기준도 없이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도 모르게 작용한 것이다.

내 마음의 구멍은 많다.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들은 하나씩, 하나씩 쌓여서 그 틈을 메울 사이도 없이 상처가 상처 그대로 아물어버렸다. 마음에 구멍이 뚫릴 때의 저자는 계속 말한다. ‘자신감을 가지세요’, ‘하기 싫은 것은 하지 마세요’, ‘아니라고 말하세요’, ‘내 감정에 솔직해 지세요’, ‘잠시 쉬어도 괜찮아요’, ‘남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나를 위해 살라고 말이다.

마음은 공과 같아서 탄력을 잃으면 공기를 불어 넣어주어야 한다. 쓰다듬고 소중히 여기며 잘 보살펴야 한다. 이것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하는 것이다. 남의 시선과 남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나의 거울을 닦고 깨지지 않게 지켜야 하는 것이다.

남을 바라보는 태도는 그럴 수도 있지’, ‘당신 덕분이야’, ‘둘 다 옳아’, ‘아냐아냐’, ‘어 그런가의 자세로 대하다 보면은 나도 상대방도 서로 상처받을 일은 최소한이 될 것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길 바라기보다는 내가 그 능력이 없음을 한탄해라’, 논어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내가 빛나기 위해서는 나를 얼만큼 닦고 가꾸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꼬리표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내 목소리로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말해본들 그 누가 믿을 것인가. 나의 능력과 재능을 끌어올려 나만의 꼬리표를 빛나게 만드는 것이 삶의 목표가 아닌가 한다.

마음에 구멍이 아무리 많이 뚫려도 나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놓으면 그 구멍은 그저 슬픔, 아픔, 괴로움 등이 숭숭 빠지는 구멍이 아니다. 그 구멍들이 모여서 또 다른 나를 만드는 것이다. 구멍이 하나씩 채워질수록 나는 더 단단해지고 나는 더 빛나는 사람이 된다.

얼마 전, 텔레비전 프로그램 동상이몽을 본 적이 있다. 한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는 몸이 아파 일을 하지 못했고 오빠가 외지에 나가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갔다. 엄마의 빈자리는 오래전에 가족들에게 큰 구멍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동생들을 챙기는 둘째에게 욕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심한 경우에는 딸을 때리기도 했다.

우리 주변에 마음이 구멍이 뚫릴 때마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아픔이나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남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상처를 받는다. 이런 상대가 아마 가족이 아닌가 한다. 가장 편하면서 가까이에 있는 나의 편, 가족.

가족은,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상처가 되는 말을 골라하지 않아도 툭, 내 뱉는 말이 상처 그 자체인 것이다. 서로가 자신만의 꼬리표가 없이 가족 안에서의 공동 꼬리표가 붙어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마음을 어떻게 치유하는지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다.

나만의 꼬리표를 만드는 일 내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일은 결국, 내 감정에 솔직하고 내 감정을 잘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처럼 여기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럴 수도 있지의 자세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일 안에서 내 감정을 대면하는 일, 그것은 나의 꼬리표를 빛나게 하기 위한 준비운동과 같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누구인지, 나는 어떤 색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지금 행복한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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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사랑 그대로의 사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는 많이 보고 들었던 이야기이다. 두 주인공의 비극으로 끝나는 사랑이야기. 원수 집안의 싸움은 사랑 앞에서 화해가 이루어지고 비통함으로 마무리된다. 왜 비통함인가. 이 화해의 다리가 되는 것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탄생과 소멸의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두 주인공의 생의 소멸과 두 집안의 화해의 탄생의 순간처럼 말이다.

완벽한 사랑은 없다. 온전한 사랑도 없다. 그저 사랑 그대로의 사랑만이 존재한다. 어떤 이에게는 사랑이 쉬울 수도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사랑이 어려울 수도 있다. 혹은 사랑 그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다양한 사랑이 나온다. 연인과의 사랑, 가족애, 부부애,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종교적인 사랑, 관계의 사랑 등등이 말이다. 이 사랑의 공통분모는 주고받음이다. 사로가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주고받는다. 설사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서로에게 애틋하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마음을 담아 끄적끄적여 본다.

 

매일 바라보는 하늘에

너를 덧대 바른다.

 

보고프다 말할까,

그립다고 말할까,

좋아한다고 말할까.

 

감정의 실타래를 풀어

너를 감고

나를 묶는다.

 

매일 보는 하늘이지만

너는 매번 다른 색으로

내 안에 녹아든다.

 

아직 서툰

우리 사이,

아직 동그랗게 말리기만 한

우리 사이,

아직 천천히 걸어가야 할

우리 사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로지 너.

 

밤하늘을 보며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던 두 사람에게 사랑은 사랑 그대로의 사랑이었다. 집안을 버리고 그 사람을 선택할 만큼. 죽음을 가장해 그 사람을 선택할 만큼 말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사랑을 모르지는 않다.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이 없지는 않다. 오히려 그 순수함에서 묻어나오는 사랑이 동그랗게 말려서 어른들의 생각의 틀을 단숨에 바꿔버린 것일 수도 있다.

연극 대본으로 쓰여서 다소 과장되고 억측스럽고 시간이동이 많은 이야기이지만 결국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어떻게 보면, 현실에서 이러나지 않을 법한 일들이 연극이라는 틀을 통해 우스꽝스러워도 진진하게 삶을 대면하게 한다.

완벽한 사랑, 완전한 사랑이 아니라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함이 주는 사랑에 감사하며 오늘도 하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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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잠재력을 깨우는 엄마의 질문 수업 - 지혜롭게 묻고 답하는 스팟 코칭
주아영 지음 / 을유문화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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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질문수업을 읽고

생각을 질문으로 깨우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아마도 안돼가 아닐까 한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끊임없이 호기심을 표출한다. 그러나 엄마는 그런 아이들에게 적당한 대답이 아닌, 가르치려고만 한다. 물론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기본적인 생활 지식을 부모로부터 배우고 익힌다. 그러나 생각까지 부모의 뜻대로 하려고 하는 요즘의 엄마들이 많다. 마마보이를 넘어서 자신의 적성까지 부모의 손에 쥐어진 현실인 것이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갔어도 시간표부터 하루 일과를 엄마의 선택에 의해 맡겨진 아이들이 많다.

코치는 본인이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속성이 있다. 원래의 자신의 자리에서 다른 방향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며 호기심을 채우고 본래의 자신의 모습에 하나씩 색을 입혀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누군가의 강요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말이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유아기의 질문은 주변에 대한 관심이다. ‘꽃은 왜 피지?’부터 나는 손가락이 다섯 개가 있지?’ 등의 주변과 자신에 대한 관심을 질문으로 묻고 호기심을 채운다. 주변에 대한 관찰이 하나씩 녹아내려 주변을 보고 자신을 이해하는 시기인 것이다. 학령기의 아이들에게는 질문은 가정과 학교의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된다. 또래친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가정에서의 일상을 넘어 학교에서의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시기이다. 그리고 청소년기의 질문은 스스로에 대한 탐구이다. ‘나는 누구인가에서부터 나는 무엇이 될까?’의 자기안의 물음을 끊임없이 묻고 답한다. 그 질문을 통해 어른으로 가는 자기를 정립하게 된다. 이러한 스스로에 대한 내면의 질문은 아이들의 성장 단계를 넘어 어른이 되어서까지 꾸준하게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정작 엄마는 아이들의 질문 앞에서 어떻게 행동 하는가. 질문을 귀찮아 하거나 그 질문을 답을 건성으로 해주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아이에게 그런걸 알아서 뭐하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반복적인 엄마의 행동은 아이들에게 호기심은 나쁜 것이거나 엄마를 귀찮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하게 된다. 그러면 아이들은 질문에 대항 공포 혹은 무의미함만 남는다.

질문은 단순히 호기심이 아닌 나를 찾아가고 너를 들여다보는 징검다리인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인 나는 왜 태어났지?’의 반추 없이는 스스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그저 삶에 이끌려가는 사람으로 살게 된다. 소설 개인적인 체험에서 주인공 버드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묻는다. ‘나는 태어나기 백년 전에 어디 있었어? 죽고 나서 백년 후엔 어디 있는 거야? 죽은 다음에는 나는 어떻게 돼?“라고 말이다. 버드의 아버지는 아들의 질문을 들은 다음 날 자살을 한다. 아버지의 극단적인 선택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살면서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생각이 없이는 스스로를 죽인 삶과 같다고.

우리는 지혜롭게 묻고 답하면서 서로를 성장시키고 서로를 채워나간다. 질문의 답은 없다. 그 답은 스스로가 찾아가는 것이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자기를 알게 된다. 결국, 덧대진 질문들 사이에서 세상에 온전하기 보다는 행복한 세상속의 나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질문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내게 물어보자.

나는 잘 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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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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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요코의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를 읽고

 

시시콜콜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꾸밈없이 써져 있다. 열심히 하지 않고도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만 더 다르게 보면 된다.

가까운 지인들과의 이야기, 아들과의 솔직함, 다른 이들을 대하는 태도, 세상을 보는 시각이 무심한 듯 보여도 사실은 애정이 담뿍 담겨있다. 우리는 제 각지 다른 모양으로 살고 있지만 그 모양들이 어울러져서 더 빛나고 더 가치 있는 사람으로 자리하는 것이다.

그녀의 일상을 자리하고 있는 이야기 중,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뭉클하게 다가왔다.

 

인쇄된 글로 된 것을 의심하라

가난해졌다고 갑자기 친절하게 대해야 할 이유는 없어. 인간은 언제나 한결같아야 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밖에 보이지 않을 거다

전쟁에 아이 넷을 낳고 생계를 꾸려가던 아버지. 가장이라는 옷은 그에게 너무 무거운 것인지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나 그가 늘 하던 말은 사노요코의 일상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그녀 자신이 되었다. 사람은 언제나 한결 같아야 한다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은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하다.

우리는 누구나 아버지에 대한 그림자를 안고 산다.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의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한 인물이었다. 시인이 되고자 했던 윤동주의 마음보다 집안에 괜찮은 자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공부를 해야지 사람이 되었던 그 시절에 운동주는 부단히 노력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닦았다. 그러나 늘 아버지 눈에는 부족한 아들로 비춰졌다. 운동주와 그의 아버지, 두 사람의 마음은 그 어떤 것도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나의, 여시”, 아버지가 나를 부르던 애칭이었다. 여시는 여우라는 방언이다. 아버지가 여시라고 부를 때는 나도 모르게 기분이 하늘까지 닿았다. 나의 아버지는 늘 딸인 나를 많이 아껴주셨다. 하고 싶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주시려고 노력하셨다. 나의 아버지는 인테리이셨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나를 예뻐하시고 귀여워 하셨지만 사실 가정에는 충실한 분은 아니었다. 자신의 꿈과 이상을 찾아서 가정보다는 더 나은 자신을 찾아 다니셨다.

그렇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전부 비정상이다,

우리의 일상은 균형을 이루는 듯이 보여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긋나 있고 조금은 바르지 않고 조금은 엇박자인 것이다, 모두가 완벽할 수 없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처럼 솔직하게 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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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기억한다 -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김현수 감수 / 을유문화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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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기억한다를 읽고

상처는 기억에 잠재되었다가 되살아난다

 지난 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하면은 세월호 사건이 아닌가 한다. 2014416일 인천을 출발해 제주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인근 바다에서 침몰한 사건이다. 수학여행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해 탑승객 476명 가운데 295명이 사망했다.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배가 침몰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구도, 배 안에서 생존의 싸움을 하던 그들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었다.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안전불감증이 아닌가 한다. 어떠한 사고에도 대처 할 줄 모르고 수동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교육 아래 아이들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의지를 해 가만히 배 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어려서부터 재난 대피 훈련을 몸에 익힌다. 책상 아래 몸을 숙이고 질서를 지켜서 대피훈련을 하거나 건물의 설계부터 안전을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인적 재난 상황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삼풍백화점 사고부터 대구 지하철 사고 그리고 세월호까지 우리의 의식 체계와 재난 시스템의 변화 없이는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될 뿐이다. 지금은 일본이 있어서 지진의 영향이 크게 없지만 앞으로 지진의 피해도 예상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인적 재난 상황은 항상 예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러한 연속적인 사건은 인간 외적인 트라우마로 자리한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놓고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가는 경계가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정신질환은 마음의 질병인지 뇌의 질병인지도 모호하다. 의료학적으로는 정상과 이상행동으로 구분한다. 이상행동은 상식적인 기준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비정산적인 행동패턴 또는 부적응적인 행동패턴을 의미한다. 이상행동은 비정상적인 마음과 정신으로부터 생긴다.

마음의 이치가 잘못되어 비정상적이고 부적응적인 행동으로 나타내면 이상행동이 된다. 문자 그대로 마음에 이상이 초래되면 마음장애, 심리에 이상이 초래되면 심리장애, 정신에 이상이 초래되면 정신장애로 표기할 수 있다.

특별한 사람이 정신이상을 겪는 건 아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누구나 방어기제를 발휘하며 상황을 모면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타이르기도 한다. 매일 사건의 연속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일상은 내적·외적 자극들에 대처하고 적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스트레스는 너무 강력하고 충격적이어서 우리의 마음에 극심한 고통과 혼란을 초래하고 심리적 상처를 깊이 남기기도 한다. 이렇게 어떤 충격적인 스트레스 사건에 의해서 입은 심리적 상처가 외상 즉, 트라우마이다.

최근의 사건 중에서 초등학생 아이를 처참하게 죽이고 치킨을 시켜먹은 부모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트라우마의 단편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또한 작년의 세월호 사건은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마음을 멍울지게 한다. 간접적인 경험을 통한 충격 역시 트라우마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트라우마를 직접 겪은 당사자들에게는 충격과 후유증 때문에 부적응적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몸은 기억한다에 나오는 다양한 사례의 사람들은 트라우마로 인해 삶의 뿌리까지 흔들린다. 사례마다 가슴 아프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내가 겪지 않은 일 그리고 그들도 겪지 말아야 할 일들이 사실 그대로 여과 없이 보여준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그러한 사건을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트라우마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일상 기능이 무너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다. 저자가 말한 그들 그대로의 삶으로 돌려보는 것’, 그것이 치료의 근본적인 목적이다.

누구나 그 사람의 트라우마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우는 없다, 그 누구도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운 존재도 없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과 듣는 다는 것은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 자연스럽게 대화하듯이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받아들이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뇌는 힘들었던 기억을 세분화해 쪼개서 기억을 한다. 그래서 힘든 일은 더디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트라우마 치료 중 안구운동치료는 치료자의 손짓이나 기계를 보면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것이다. 끔찍한 경험은 뇌의 정보처리 기능을 마비시키는데, 안구운동 신호는 뇌 기억을 재처리해주어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이 치료법은 이상심리학에만 적용되는 치료기법이다.

트라우마에 대한 다양한 치료기법이 적용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이다. 리질리언스, 마음의 회복탄력성을 단단하게 지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겪는 사건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바로 보며 객관적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상처, 우리의 가슴과 기억에 남아서 살면서 반복적으로 되살아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상처를 아프다고 생각 말고 나를 더 단단하게 여며주는 기억의 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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