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잠재력을 깨우는 엄마의 질문 수업 - 지혜롭게 묻고 답하는 스팟 코칭
주아영 지음 / 을유문화사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의 질문수업을 읽고

생각을 질문으로 깨우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아마도 안돼가 아닐까 한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끊임없이 호기심을 표출한다. 그러나 엄마는 그런 아이들에게 적당한 대답이 아닌, 가르치려고만 한다. 물론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기본적인 생활 지식을 부모로부터 배우고 익힌다. 그러나 생각까지 부모의 뜻대로 하려고 하는 요즘의 엄마들이 많다. 마마보이를 넘어서 자신의 적성까지 부모의 손에 쥐어진 현실인 것이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갔어도 시간표부터 하루 일과를 엄마의 선택에 의해 맡겨진 아이들이 많다.

코치는 본인이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속성이 있다. 원래의 자신의 자리에서 다른 방향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며 호기심을 채우고 본래의 자신의 모습에 하나씩 색을 입혀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누군가의 강요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말이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유아기의 질문은 주변에 대한 관심이다. ‘꽃은 왜 피지?’부터 나는 손가락이 다섯 개가 있지?’ 등의 주변과 자신에 대한 관심을 질문으로 묻고 호기심을 채운다. 주변에 대한 관찰이 하나씩 녹아내려 주변을 보고 자신을 이해하는 시기인 것이다. 학령기의 아이들에게는 질문은 가정과 학교의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된다. 또래친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가정에서의 일상을 넘어 학교에서의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시기이다. 그리고 청소년기의 질문은 스스로에 대한 탐구이다. ‘나는 누구인가에서부터 나는 무엇이 될까?’의 자기안의 물음을 끊임없이 묻고 답한다. 그 질문을 통해 어른으로 가는 자기를 정립하게 된다. 이러한 스스로에 대한 내면의 질문은 아이들의 성장 단계를 넘어 어른이 되어서까지 꾸준하게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정작 엄마는 아이들의 질문 앞에서 어떻게 행동 하는가. 질문을 귀찮아 하거나 그 질문을 답을 건성으로 해주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아이에게 그런걸 알아서 뭐하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반복적인 엄마의 행동은 아이들에게 호기심은 나쁜 것이거나 엄마를 귀찮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하게 된다. 그러면 아이들은 질문에 대항 공포 혹은 무의미함만 남는다.

질문은 단순히 호기심이 아닌 나를 찾아가고 너를 들여다보는 징검다리인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인 나는 왜 태어났지?’의 반추 없이는 스스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그저 삶에 이끌려가는 사람으로 살게 된다. 소설 개인적인 체험에서 주인공 버드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묻는다. ‘나는 태어나기 백년 전에 어디 있었어? 죽고 나서 백년 후엔 어디 있는 거야? 죽은 다음에는 나는 어떻게 돼?“라고 말이다. 버드의 아버지는 아들의 질문을 들은 다음 날 자살을 한다. 아버지의 극단적인 선택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살면서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생각이 없이는 스스로를 죽인 삶과 같다고.

우리는 지혜롭게 묻고 답하면서 서로를 성장시키고 서로를 채워나간다. 질문의 답은 없다. 그 답은 스스로가 찾아가는 것이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자기를 알게 된다. 결국, 덧대진 질문들 사이에서 세상에 온전하기 보다는 행복한 세상속의 나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질문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내게 물어보자.

나는 잘 살고 있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