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강, 꽃, 달, 밤 - 당시 낭송, 천 년의 시를 읊다
지영재 편역 / 을유문화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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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강, , , 을 읽고

 

장안의 봄 저물려 하는데,

왁자지껄 거마들 지나간다.

모란이 필 때라고 말하면서,

서로서로 따라가 꽃을 산다.

 

백거이 꽃을 산다중 일부

 

모란꽃은 꽃의 색이 붉기 때문에 란이라 하였고 종자를 생산하지만 굵은 뿌리 위에서 새싹이 돋아나므로 수컷의 형상이라고 모자를 붙였다. 당나라에서는 모란을 아주 귀중하게 여겼다. 그것도 당나라 초기, 개원 천보 연간에는 다만 진귀한 존재였을 뿐이지만 후기 정원 원화 연간에 와서는 크게 유행하여 도하에 이르는 곳마다 재배하였다.

모란은 예로부터 부귀를 상징으로 여겨왔다. 설총의 화왕계에서도 모란은 꽃들의 왕으로 등장하고 있다. 강희안은 그의 저서 양화소록에서 화목 9등품론이라 하여 꽃을 9품으로 나누고 그 품성을 논할 때, 모란은 부귀를 취하여 2품에 두었다.

신부의 예복인 원삼이나 활옷에는 모란꽃이 수놓아졌고 선비들의 소박한 소망을 담은 책거리 그림에도 부귀와 공명을 염원하는 모란꽃이 그려졌다. 왕비나 공주 같은 귀한 신분의 여인들의 옷에는 모란무늬가 들어갔으며 가정집의 수병풍에도 모란은 빠질 수가 없었다. , 미인을 평함에 있어서도 복스럽고 덕 잇는 미인을 모란꽃과 같다고 평하였다.

위의 시구를 읽으면, 봄날의 풍경화가 한 폭 그려진다. 봄이 무르익을 무렵, 서로 서로 모란꽃을 사려고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화려하고 귀품 있는 모란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가볍게 나풀댄다. 그들의 얼굴에 내려앉은 미소가 꽃보다 더 붉게 저녁놀을 따라 번져간다.

그네들의 삶에 모란은 귀한 봄 그 자체였을 것이다. 구하기 어려운 꽃, 크고 아름다운 생김새, 한 눈에 들어오는 꽃송이 등등 여러 가지 의미가 그들의 손 안에 품어져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선덕여왕이 생각이 났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선덕여왕 공주시절 일화로 당나라에서 보내온 모란꽃 그림을 보고 선덕여왕이 꽃은 고우나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씨앗을 심어 본즉 과연 향기가 없었다. 이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은 선덕여왕이 배우자가 없음을 당 태종이 조롱한 것이라 하여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모란꽃에는 분명 향기가 있고 벌과 나비도 날아든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부터 모란꽃에 나비를 같이 그리지 않는 법식이 있었다. 그것은 모란 그림에 나비를 그려 넣게 되면 모란꽃은 부귀를 뜻하고 나비는 질수(80)를 뜻하기 때문에 부귀질수가 된다. 이는 80세가 되도록 부귀를 누리기를 기원하는 의미인데, 부귀를 누리는 나이를 제한을 두어 함께 그리지 못하게 한 것이다.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한 모란꽃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살아 있는 그 객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특히, 말과 그림으로 보여진 객체는 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만큼 다르게 해석 될 수도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편의 시구절도 마찬가지이다. 말로 전해지다가 글로 남게 된 시 구절은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읽혔을 수도 있다. 혹은 장난삼아 쓴 언어유희도 있을 수도 있다. 시대나 사람에 따라서도 그 해석이 다른 시도 많다. 한용운의 시에 나오는 이라는 시어처럼 말이다.

이는 글과 그림 분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을 온전하게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험이 쌓이고 나의 노력이 더해지고 나의 배려가 삼박자를 이루어야지만 상대방을 조금은 올바르게 보지 않을까 한다.

시간 무르익는 봄 밤, 밤공기를 타고 나의 목소리에서 계절이 녹아든다. 한 구절.. 한 구절.. 계절에서 사람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건너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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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 - 일의 무게를 덜어 주는 아들러의 조언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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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다

-플라톤의 크리톤중에서

 

토요일 새벽에 전화기가 울린다. 625, 그 시간에 전화를 하는 분은 가족을 빼놓고는 한 분뿐이다.

홍성에서 학교 밖 아이들을 30년간 키운 삼촌이다. 내가 삼촌이라고 부르면 다들 친척인 줄 안다. 그러나 홍성삼춘은 만인의 삼촌이다. 30년간 결혼도 마다하고 홀로 언덕 위 쪽방에서 아이들을 키운 삼촌. 지금은 12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간이 화장실에, 좁디 좁은 방에서 아이들을 마음으로 키운 삼촌에게 일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책 속에 나오는 공헌감이 계속 신경쓰여서 일 것이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한다. 의식주를 해결하고 자신의 욕망을 무엇인가 채우려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먹고 살기 위해서의 의미는 생존을 위해서만 일하려고 하지 말고 잘 살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사는 것이다.

아들러는 인생에 세 가지 과제가 있다고 한다. 일의 과제, 교유의 과제, 사랑의 과제가 그것이다. 이 세가지 인생과제는 하나에 치우치지 말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일 때문에 일에만 치우친다면 그건 진정한 일의 개념이 아니다. 일이라는 벽을 치고 다른 것들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과 결단의 문제이다.

삼촌은 학교 밖 아이들을 키우시기도 하지만 봉사활동 단체도 운영하신다.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활동하는 단체의 리더로서 늘 솔선수범을 보인다. 술과 담배 그리고 부도덕한 행동을 늘 멀리 두신다. 학교 밖 아이들에게는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하고 봉사단체 아이들에게는 리더로서의 양 극단의 중심을 잘 잡으신다. 늘 아이들의 안전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 궂은 일을 도맡아 하신다. 삼촌에게 일은 사랑 그 자체이다.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도 흐뭇함으로 채워진다.

토요일 새벽에 울린 전화는 삼촌의 안부전화도 아니고 당장 대전으로 온다는 연락이었다. 한 시간 뒤 나는 삼촌과 함께 보문산 보리밥집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홍성으로 가기 전에 삼촌이 마지막으로 들른 곳에서 아들러가 말한 세 가지 과제의 조화를 삼촌 얼굴에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20년 전에 자신의 봉사단체에서 활동하던 소녀가 여자가 되어 삼촌의 머리를 깎는 두 사람의 표정에 공헌감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흐뭇하게 그 소녀를 바라보던 눈동자의 떨림과 삼촌의 머리카락을 다듬는 손의 떨림이 마주친 그 순간.

그 순간은 영원처럼 빛이 났다.

일은 삶을 영위하는 행위 중 하나이다. 그 행위는 힘들거나 아프거나 괴로우면 안 된다. 즐거움과 자기만족과 기쁨으로 가득차야 공헌감을 느낄 수 있다. 나를 위한 채움은 흘러 넘쳐서 다른 이들을 위한 채움으로 나눔이 된다. 일 그 자체가 경제적인 저울질이 아닌 마음의 양식인 것이다.

우리는 사는 것 그 자체에서 삶의 가치를 더 나아가 나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가치 있는 삶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찾고 내 안에서 그 리듬감을 가져야 한다.

공자가 말한 인의 마지막 경지인 음악이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인의 마지막은 살신성인이다. 다른 이들을 위해 나를 놓아버리는 것 혹은 다른 이들을 두루 살피는 것이다. 여기서 나를 놓는다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인의 처음은 나와 나의 주변을 살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는 단기간이 아닌 인생 전반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나를 살피고 부모님을 살피고 주변을 살피는 단계를 같이 밟으면서 말이다. 그 공부가 물이 오르면 절로 음악이 생긴다. 삶의 리듬감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결국 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자신이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 나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한다.

삼촌의 어깨가 늘 가벼워 보이는 것은 이러한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 모든 일이 나를 위해 일하는 것 즉, 나의 마음을 채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삼촌의 공헌감은 그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늘 따뜻한 가슴으로 남을 보살피고 관심을 줄 수 있는 에너지의 근원이 샘물처럼 솟아난다. 그 공헌감에 감사를 드리며 나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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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 처음 만나는 에티카의 감정 수업
심강현 지음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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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자신이 사랑하는 것의 가치를 믿으십시오,

 

리는 어떤 일을 할 때, 누군가의 눈치를 본다. 나의 가치관이 아닌 사회의 기준에, 사람들의 시선에 나를 맞춘다.

ECD 국가 중 한국의 자살률은 3년 내내 1위다. 청소년의 자살의 이유는 당연 입시제도 때문이다. 공부 위주의 교육방식이 아이들에게 주는 압박은 삶의 꽃을 피우기도 전에 죽음의 문에 그들을 데려다 놓는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극찬을 하던 우리의 교육방식. 그 밑바닥에는 뿌리 없는 무성한 가지뿐인 나무인 것이다. 교육의 본질도 의미도 없는 밑바탕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외면 받고 그들 스스로를 외톨이로 만든다.

현재의 교육 입시제도는 산업화의 산물이다. 공장에서 필요한 인력 구성을 위한 획일화된 사람의 교육. 단순노동에 최적화된 교육이 지금의 교육방식이다.

자유의지가 아닌 주입식 교육방식은 우리의 삶에 부모의 삶을 고스란히 얹어 놓는다. 이러한 삶의 굴레를 벗어버리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를 우리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인 체험속의 버드의 아버지가 삶에 대한 궁극적인 아들이 던진 질문에 자살을 택한다. 그의 죽음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필요하다. 우리의 존재에 대한 필연성과 목적성을 가지고 말이다.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에서 우리는 그 답을 조금은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저자의 입맛대로 혹은 우리의 입맛대로 해석해 놓았다. 우리가 늘 생각하던 욕망이 아닌 최선의 선택, 어쩔 수 없는 유일한 선택이 욕망 그 자체이다. 이 욕망의 지렛대 역할을 하는 것이 역량이다. 역량은 그 사람의 그릇, 이성에 의한 의식이자 할 수 있음 그 자체이다.

우리가 갖는 미련과 후회는 정신을 아프게 하는 소화불량이자 구토이다. 누군가 혹은 무엇에 대한 죄책감은 정신의 죽음 이다. 결국 나의 욕망의 그릇은 나의 이성적 그릇에 의해 행동으로 나타나고 그것에 대한 결과는 나의 부족함이 낳은 것이다.

스피노자에게 신은 대우주 그 자체이고 대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생산되어진 자연과 생산하는 자연 속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 나의 그릇을 가늠해 봐야 한다. 이 대자연 앞에서의 삶에 대한 욕망은 원초적인 욕망이며 근원적인 욕망이다. 스피노자는 이것을 코나투스라고 명명한다. 이는 자기보존의 욕망이자 삶의 관성이다.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나답게 만드는 힘, 나만의 관성으로 자리한다.

당신은 선악설과 성선설 중 무엇을 기본으로 생각하는가. 우리의 기본적인 성향은 정해진 방향대로 나아갈까. 스피노자는 이것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상황과 관계에 따라서 드러난다고 한다. 어떤 이가 내게는 아주 좋은 사람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주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 영화 너덜런스에 나오는 아버지가 그러하다. 그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으로 무기력감에 빠진다. 삶 자체를 놓아버리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자신에게는 하나뿐인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살인자이다. 학교총기살인자가 바로 자신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남긴 음악을 가지고 밴드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아들의 음악은 다른 이들에게 삶의 활력이지만 아들의 행동은 다른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나쁜 사람이다. 이처럼 상황과 관계 속에서 오는 선과 악은 결합이냐 해체냐에 따라 코나투스를 증감시킨다.

스피노자를 감정의 철학자라고 부르는데 그가 가장 중요시한 감정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모든 감정의 어머니이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상대의 몸, 마음, 단점, 장점, 배려, 노력 등이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모든 감정의 빛은 진정한 사랑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야 한다.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이 허락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뉴스에 등장하는 데이트 폭력이 그러하다. 내 마음의 소유욕은 상대방에 대한 집착으로 바껴 사랑을 하는 중이나 그 이후에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폭력으로 이어진다. 사랑은 소유나 자기만족이 아니다. 사랑의 정념으로부터의 자유, 사랑의 역량으로부터의 자유가 이루어져야 진정한 사랑이 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정서적 거리감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리고는 나의 심리적 거리의 파토스를 들여다본다.

내가 추구하는 나의 삶의 자유는 나답게 살아가는가에 대답에 나는 큰소리로 YES라고 답할 수 있다. 내 감정에 솔직하고 내 생각에 자유롭다. 나의 이성의 저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매일의 관성에 충실하다. 우리, 우리의 삶에 정념을 버리고 우리 욕망에 맞는 역량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좀 더 이성적인 자유의 영혼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당신 자신을 따르십시오

스피노자의 말처럼, 일단 나를 믿고 직진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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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사회 - 인간 사회보다 합리적인 유전자들의 세상
이타이 야나이 & 마틴 럴처 지음, 이유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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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친구가 죽었다. 병명은 폐암이었다. 담배도 피우지 않던 그녀의 병은 유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폐암이 어떻게 유전으로 걸릴까 한참동안 생각했었다.

그 궁금증은 유전자 사회를 보면서 풀렸다. 유전자는 참 신비로운 존재다.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면서 협동하고 무엇인가를 만들고 조합한다. 하나의 객체가 아닌 서로의 연결망을 구성해 진화를 거듭한다.

유전자 형질마다 하나의 유전자가 있다. 그래서 유전될 수 있는 병마다 하나의 병인이 될 수 있는 돌연변이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유전자가 하나의 대립형질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병과 돌연변이는 일대일 관계가 아닌 것이다. 우유를 분해하는 락테이스의 진화를 놓고 봐도 세 가지의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이 반응이 부적합하거나 이루어지지 않으면 심각한 경우에는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우유를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 아무에게나 우유를 권할 수가 없다. 예전에는 우유선물을 하기도 했는데 유전자 사회를 읽으면서 내가 좋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것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우리가 먹는 것이 모두 우리 몸에 이롭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약은 불완전한 처방이라고 한다. 약은 효과가 좋은 것을 써서 안정시켜주는 역할을 하지 유전자의 전적인 치료에 관여하지는 않는다. 또한 약이 그 병에 완벽하지 않듯이 그 사람에게 완전하게 적용되지도 않는다. 그 약이 어떤 작용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유전자의 결합과 협동 사이에서 약은 다른 화학반응을 일으켜서 병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병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개별화 된 약의 개발이 긍정적인 영향력을 가져오길 바란다. 끊임없이 유전자를 연구하고 분석한다. 그러나 우리 몸을 온전히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다.

미래의 사회에는 우리 몸의 유전자를 스캔해주는 기계가 나왔으면 한다. 그러나 모든 유전자 형질을 분석하고 돌연변이 유전자를 찾아내는 일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과연 그 많은 유전자를 다 알아낼 수 있을까. 이는 우리 사람과 같다. 한 개인은 포유류라는 동물과에 속하지만 그 사람의 마음과 행동 지적 수준 등등은 개별적이다. 이 개인이 한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존재이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존재하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커넥트 한다. 관계 속에서 인간 연결 그물망을 만들고 그 관계에서 희노애락을 느낀다. 사회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하는 존재가 우리 인간이다. 사회 안에서의 우리는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돌연변이들이 통제되지 않은 세포 성장을 막는 신체의 방어를 무효화하는 방법은 이러하다. 스스로 성장 신호를 제공하는 것, 세포 분열을 막는 신호를 무시하는 것, 영원히 사는 세포가 되는 것, 세포 사멸을 피하는 것, 면역에 의한 파괴를 피하는 것,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게 만드는 것, 새로운 혈관을 끌어들이는 것, 멀리 있는 부위에 침입하는 것, 이다. 이러한 유전자는 암으로 발전해 암말기에는 이 모든 특징을 가지게 된다. 우리 사회에도 암 같은 존재의 사람이 있다.

스스로 문제를 일으키고 다른 사람의 소통을 막고 영원히 자신이 대단한 줄 알고 머리 숙여 낮아짐을 모르고 누군가의 위로와 충고를 받아들일 줄 모르며 다른 사람의 공으로 살고 새로운 관계만을 중시하고 남이 보지 못하는 곳을 갈취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유전자도 공동체를 형성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생명이 다하면 과감히 놓아버릴 줄 아는데 우리 인간은 욕심의 허상에 둘러 싸여 자신이 가진 것이 최고인줄 알고 남을 업신여기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사람들. 우린 아직 유전자 사회를 더 공부하고 배워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어울러져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리처드도킨슨, 유전자, 암, 우유, 돌연변이, 멘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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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85
볼레스와프 프루스 지음, 정병권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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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의 인형인가.

 

국정농단.

우리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지 의문이다. TV를 틀면 뉴스의 초점은 대통령과 문고리 3인방 그리고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이다. 누구의 잘못인가부터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까지, 우리의 삶의 고단함이 더 짙어진다. 소설 인형은 폴란드 국민소설이다. 귀족에서 빈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삶의 계층이 나온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보쿨스키는 상인이다. 미망인과 결혼했고 미망인이 죽으면서 많은 재산을 물려 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책을 좋아하고 학문에 열중하고 싶은 사람이다. 공부만 하고 싶던 그에게 이자벨라라는 여자는 그를 전쟁터의 군수납품자로 뛰어들게 한다. 그게 사랑이든, 연민이든, 짝사랑이든지간에 그는 부자가 되고 그녀의 마음을 흔들고 싶어 한다.

소설의 시작 부분에 그 상점에 대해서 그리고 보쿨스키에 대해서 너도 나도 한마디씩 덧붙이기를 한다. 상점이 망했다거나 그의 미망인에 대해서 그리고 재산이며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술집에서 펼쳐진다. 그 이야기의 진실은 주인공을 배제한 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우리는 남의 이야기 하기를 좋아한다. 특히 나쁜 이야기를 눈덩이 굴리듯이 그 크기가 점점 커져서 당사자 앞에 툭 던져 놓기 일쑤이다.

사람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진심은 있을 것일까. 계급과 권위를 뺀 인간관계의 한계는 무엇인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돈이나 권력은 무너지는 순간이 한순간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인간답다는 것은 무너지지 않는다. 반대로 그 사람이 인간답지 못하다는 것 역시 무너지지 않는다.

폴란드, 발트해의 작은 나라이다. 2차 세계 대전으로 나라가 분할되었고 전쟁을 온 몸으로 느낀 나라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1945년 해방되었다. 작가 볼레스와프 프루스는 애국 계몽운동에 앞장 선 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으로 싸우다가 후에 글로 싸웠다. 온전하지 못한 나라에 대한 설움은 온전한 정신을 가진 이들에게 더 큰 시련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우리가 한 생애를 온전하게 살다간다는 것은 내 개인의 행복과 내 주변의 행복에서 어느 쪽에 더 무게를 주는 일일까. 보쿨스키는 빈민가를 걸으면 생각한다. 자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나눠줘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 역사를 되짚어보면 온 집안의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친 사람이 많다. 그 중에 이회영 집안은 600억원의 가량의 전재산을 오로지 나라를 위해 헌납한다. 도산 안창호도 가장의 아버지가 아닌 나라의 아들로 오렌지 농장에서 일한 돈을 독립운동에 쓴다. 자신의 아이들을 위한 나라를 위해 나 자신의 행복을 독립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암살에 나오는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전지현과 하정우가 병우너에서 마주보며 하는 말.

그치만 계속 알려줘야죠,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그래.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싸워야 한다. 그 누군가는 늘 하던 일이니까. 행복이란 달콤한 초콧릿을 입에 머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의 나눔이니까 말이다. 지금은 아프고 힘든 일이더라도 우린 계속 싸워야 한다. 그 누군가의 인형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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