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 - 일의 무게를 덜어 주는 아들러의 조언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중요한 것은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다

-플라톤의 크리톤중에서

 

토요일 새벽에 전화기가 울린다. 625, 그 시간에 전화를 하는 분은 가족을 빼놓고는 한 분뿐이다.

홍성에서 학교 밖 아이들을 30년간 키운 삼촌이다. 내가 삼촌이라고 부르면 다들 친척인 줄 안다. 그러나 홍성삼춘은 만인의 삼촌이다. 30년간 결혼도 마다하고 홀로 언덕 위 쪽방에서 아이들을 키운 삼촌. 지금은 12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간이 화장실에, 좁디 좁은 방에서 아이들을 마음으로 키운 삼촌에게 일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책 속에 나오는 공헌감이 계속 신경쓰여서 일 것이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한다. 의식주를 해결하고 자신의 욕망을 무엇인가 채우려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먹고 살기 위해서의 의미는 생존을 위해서만 일하려고 하지 말고 잘 살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사는 것이다.

아들러는 인생에 세 가지 과제가 있다고 한다. 일의 과제, 교유의 과제, 사랑의 과제가 그것이다. 이 세가지 인생과제는 하나에 치우치지 말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일 때문에 일에만 치우친다면 그건 진정한 일의 개념이 아니다. 일이라는 벽을 치고 다른 것들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과 결단의 문제이다.

삼촌은 학교 밖 아이들을 키우시기도 하지만 봉사활동 단체도 운영하신다.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활동하는 단체의 리더로서 늘 솔선수범을 보인다. 술과 담배 그리고 부도덕한 행동을 늘 멀리 두신다. 학교 밖 아이들에게는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하고 봉사단체 아이들에게는 리더로서의 양 극단의 중심을 잘 잡으신다. 늘 아이들의 안전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 궂은 일을 도맡아 하신다. 삼촌에게 일은 사랑 그 자체이다.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도 흐뭇함으로 채워진다.

토요일 새벽에 울린 전화는 삼촌의 안부전화도 아니고 당장 대전으로 온다는 연락이었다. 한 시간 뒤 나는 삼촌과 함께 보문산 보리밥집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홍성으로 가기 전에 삼촌이 마지막으로 들른 곳에서 아들러가 말한 세 가지 과제의 조화를 삼촌 얼굴에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20년 전에 자신의 봉사단체에서 활동하던 소녀가 여자가 되어 삼촌의 머리를 깎는 두 사람의 표정에 공헌감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흐뭇하게 그 소녀를 바라보던 눈동자의 떨림과 삼촌의 머리카락을 다듬는 손의 떨림이 마주친 그 순간.

그 순간은 영원처럼 빛이 났다.

일은 삶을 영위하는 행위 중 하나이다. 그 행위는 힘들거나 아프거나 괴로우면 안 된다. 즐거움과 자기만족과 기쁨으로 가득차야 공헌감을 느낄 수 있다. 나를 위한 채움은 흘러 넘쳐서 다른 이들을 위한 채움으로 나눔이 된다. 일 그 자체가 경제적인 저울질이 아닌 마음의 양식인 것이다.

우리는 사는 것 그 자체에서 삶의 가치를 더 나아가 나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가치 있는 삶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찾고 내 안에서 그 리듬감을 가져야 한다.

공자가 말한 인의 마지막 경지인 음악이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인의 마지막은 살신성인이다. 다른 이들을 위해 나를 놓아버리는 것 혹은 다른 이들을 두루 살피는 것이다. 여기서 나를 놓는다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인의 처음은 나와 나의 주변을 살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는 단기간이 아닌 인생 전반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나를 살피고 부모님을 살피고 주변을 살피는 단계를 같이 밟으면서 말이다. 그 공부가 물이 오르면 절로 음악이 생긴다. 삶의 리듬감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결국 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자신이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 나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한다.

삼촌의 어깨가 늘 가벼워 보이는 것은 이러한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 모든 일이 나를 위해 일하는 것 즉, 나의 마음을 채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삼촌의 공헌감은 그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늘 따뜻한 가슴으로 남을 보살피고 관심을 줄 수 있는 에너지의 근원이 샘물처럼 솟아난다. 그 공헌감에 감사를 드리며 나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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