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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홀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4년 9월
평점 :

17세기 갈릴레오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꽤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했다. 지금이야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이지만 우리의 직관은 지구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달과 태양이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이 자연스러운 직관을 꺾고, 직관에 반하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설명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지금도 여전히 지구는 움직이지 않고, 세상의 끝은 낭떠러지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직관에 반하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뉴턴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을 생각했다는 것은 곧바로 이해가 된다. 하지만 중력이 시간과 공간을 휘어지게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느끼고 이해하는 이 공간과 시간이 대체 어떻게 휘어진다는 것인가?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은 여전히 지구는 움직이지 않고, 세상의 끝은 낭떠러지라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어려운 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당연해 보이는 오래된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진짜 어려움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배움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신간 '화이트홀'은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공간 화이트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물리학 지식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바꿔들려주는 이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최신작이다.
화이트홀은 블랙홀의 반전이자, 순환하는 모습이다. 그 존재는 이론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아직 그 존재를 확인조차 못한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블랙홀조차도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다 최근에서야 그 존재를 관측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있다면 다시 뱉어내는 화이트홀이 있다고 유추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유추는 아니다. 다만 화이트홀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계산 혹은 상상해 보면 우리가 알던 공간과 시간에 대한 관념은 정말 좁은 세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간은 사실, 어쩌면 흐르지 않는다.
세상의 시작인 빅뱅은 어쩌면 커다란 하나의 화이트홀일 수도 있다. 하나의 작은 점에서 우주를 뿜어내는 것은 화이트홀이랑 똑닮아 있다. 과거와 미래는 불균형과 균형의 차이다. 하지만 불균형과 균형은 사람의 입장에서 느끼는 것일뿐 우주의 입장에서는 똑같은 균형일 수도 있다.
책은 최신 이론 물리학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들려준다. 저자의 이전 책들도 참 좋았는데 이번 작품은 그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느껴졌다. 이 작고 예쁜 책에서 신비하고 장엄한 우주가 느껴지는 것이 경이롭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하여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