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미스터리 2021.겨울호 - 72호
계간 미스터리 편집부 지음 / 나비클럽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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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호의 특집은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워온 여성 작가들과 캐릭터에 바치는 아주 작은 격려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계간 <미스터리> 2021년 겨울호는 아주 흥미로운 주제로 시작한다.너무나 익숙해서 질문할 생각도 하지못했던 미스터리의 가장 익숙한 공식에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추리문학 역사상 최초의 살인 사건 피해자는 여자였다. 왜 여자였을까?' 지금까지 미스터리 소설과 영화 등에서 다뤄온 여성 캐릭터를 살핀 듀나의 글은 기존에 읽고 보아온 미스터리 장르에서 종종 느껴지던 불편함의 이유를 깨닫게 했다.  
"영화에서 성폭행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이런 남자들에게 먹잇감을 던져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아무리 폭력 장면이 스토리의 내적 논리에 충실하다고 해도 저런 자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순간 영화는 포르노가 된다."
또한 추리소설의 여성 캐릭터에 대해 단순히 성이나 인종을 바꾸는 것을 넘어선 그 이상의 캐릭터를 창조할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한 한이 작가의 글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여성이 많이 나와서 남자를 다 죽인다고 그것을 '사이다 여성 서사'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느꼈던 의문에 대한 답이었달까.

이러한 진지한 논의 외에도 단편들을 읽는 즐거움도 크다. 여러 작가의 결이 다른 미스터리들은 저마다 다른 재미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자라지 않는 아이(홍성주)'와 '인간을 해부하다(류성희)'가 인상적이었는데 나의 취향이란 이런 것인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계간지이기에 다룰 수 있는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세부적인 분석과 작품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해석, 미스터리 커뮤니티 탐방(정말 흥미진진했다!)과 '한국 근대추리소설 특별전'탐방기까지. 미스터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흥미롭게 읽으며 장르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었다.
<계간 미스터리>는 미스터리를 읽는 기준을 제시하는 동시에 가이드 역할까지 톡톡하게 하는 책이었다. 짧게 실린 미스터리들은 휘리릭 읽고 끝내기가 아쉬울 정도였는데, 독자로서는 이런 아쉬운 마음이 한국 미스터리 작품들을 찾아서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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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 - 시인 장의사가 마주한 열두 가지 죽음과 삶
토마스 린치 지음, 정영목 옮김 / 테오리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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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장의사가 마주한 열두 가지 죽음과 삶 <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
시인이고 장의사인 저자를 떠올리며 '묻다'라는 말의 의미를 고민하게 되는 제목부터 첫인상을 강하게 남긴다.

"이곳에서는 24시간 내내 아무 때나 죽으며, 어느 요일, 어느 달을 선호하는 것 같지 않다.계절 쪽으로도 분명하게 좋아하는 때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장의사다. 죽음은 필연적이고 늘 있는 일이며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일로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장의사에게 삶은 어떤 것일까?

죽음과 시와 가족과 사랑이 모두 들어 있는 이 책은 무척 독특하다. 그는 그가 치르는 장례의식은 죽은 자보다는 남은 산 자를 위한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으며,죽음은 끝이고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훨씬 어렵기 때문에 죽음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삶에 더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모든 것에서 위험을 보았기에, 늘 재난이 눈앞에 있었다."
장례지도사로서 숱한 죽음을 보아온 아버지의 두려움을 이해한 순간, 그 역시 두려움을 배우게 된다. 그는 모든 죽음에서 자식들을 보게 되고 두려워하고 분노한다. 그리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민한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살았다고, 우리가 죽었다고, 우리로 인해 이런 것이 달라졌다고 말해 줄 증인과 기록 보관자가 필요하다. 죽음이 의미가 없는 곳에서 삶은 의미가 없다."
결코 죽음에 어떤 효용이 있어서는 안되지만, 우리에게는 기억해야할 죽음이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슬퍼해야 합니까? 라고 물었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나는 그들에게 이 글을 읽게 하고 싶다. 죽은 사람들을 삶으로 데려오기 위해, 죽음을 우리 가까이 두기 위해, 죽음을 잊지 않고 항시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어쨌든 살아남아서 무엇인가를 남겨야 한다고.

그에게 죽음은 비지니스면서 삶이면서 시다. 죽음을 일로 대하지만 결코 그 일을 가볍게 대하지 않는다. 그 죽음들은 곧 그의 삶이며 또한 모두 그의 죽음이다.
죽음에 관한 책을 읽으면 대체로 '이렇게저렇게 살아야겠다.'는 감상이 남지만 이 책은 달랐다.
"어찌되든 살아야겠다."
기쁨도 고통도 어찌됐던 살아있기에 느끼는 것이니까. 죽음 이후의 슬픔도 산 자의 몫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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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는
재영 책수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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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수선가라는 생소한 직업과 작업의 소개 외에도 책 한 권 한 권의 수선에 담긴 이야기들이 너무 좋아요. 작가님 작업실에서 대기 중이라는 다른 책들의 이야기도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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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는
재영 책수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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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수선이 과연 돈이 될까?'
책수선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제일 처음 들었던 생각이었다. 특히나 한국에서 어떤 기관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의 사업으로 '책 수선'이 가능한가, 수요는 있을까? 나의 첫 궁금증은 이렇게 지극히 세속적이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작가님이 올려주시는 작업 사진을 보며 '오오, 일이 들어오긴 하나보다'하는 안도감과 함께 그렇다면 책 수선가에게 책을 맡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졌다. 낯설기만한 '책 수선가'라는 단어를 듣고 반가운 마음부터 들었을 사람들, 오래 간직해온 책들을 이제야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다며 설레었을 그 마음.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엔 그렇게 여러 가지 애정으로 책을  간직해 온 사람들과 그 마음을 건네받아 책을 수선하는 책 수선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 수선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부분들은 전부 파손이자 훼손이다...하지만..이건 분명 책을 향한 사랑의 흔적들이다."
책 한 권을 수선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과 시간의 묘사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도 책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책 수선은 단지 눈에 보이는 상태를 고치는 것이 아니었다. 책과의 첫 만남을 다시 떠올리고, 글자가 아닌 흔적으로 남은 이야기를 읽어내고, 책의 주인과 함께 책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논의하며 책수선의 방향을 정한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책의 구부정한 등을 펴주고 더러워진 얼굴을 꼼꼼하게 닦아주고, 책이 잃어버렸던 부분을 회복시켜 주고, 간직하고 싶은 기억은 남긴 채로 책의 새로운 시간을 약속한다.끊임없이 책에게 이야기를 건네며 진행되는 작업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책의 기억을 깨우며 새로 태어나게 하는 듯 했다.
누군가를 위한 선물로, 사랑했던 사람의 유품으로, 소중한 순간의 기억으로, 계속 함께 하고 싶은 마음으로 맡겨진 책들. 낡은 책을 버리지 못하고 운명처럼 누군가(책 수선가)를 만날 날을 기다리며 소중하게 품어왔을 의뢰인들도, 책 수선가도 모두 시간과 기억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소중한 마음을 담아 세상에 단 한 권의 책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아름다웠다.책 수선가의 일은 소중함을 다루는 일 그 자체구나.

"만약 이 책을 읽고 계신 분들이 나에게 책 수선을 의뢰한다면 어떤 책을 맡기실지 궁금하다."

나 역시 궁금하다. 지금 당장은 없지만 언젠가 책 수선을 의뢰한다면 그 책은 어떤 책이 될까? 꼭 한 권 쯤은 만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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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아 - 교사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임송이.강진영 지음 / 에듀니티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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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와 특수교사, 두 분 선생님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완성한 한 권의 책.
취미도 라이프스타일도 성향도 거의 정반대에 가깝지만,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보수적인 조직과 사회적 편견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며 노력하시는 모습은 똑 닮아있는 두 선생님.얼핏 보기에 너무나도 달라보이는 두 선생님의 편지가 오가면서 점점 차이점 속에 일맥상통하는 공통점을 발견해내는 재미가 있었다.
"왜 어른들은 내게 '초등교사는 여자에게 가장 좋은 직업'이라 말하며 거부감이 들게 했을까.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사실을 왜 말해주지 않았을까.-진영"
이 문장을 보고  '여자 초등 교사'를 바라볼 때 사람들이 갖는 이미지 자체가 엄청난 편견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교사에게는 교사 이외의 삶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 선생님들은 sns는 고사하고 카톡 프로필 설정조차 자유롭지 않다.
"튀면 안 돼.너무 튀는 행동이나 생각을 하게 되면 자칫 민원이 들어올 수 있으니까 말이야.항상 보통의 존재로 단정하고 착실히 학생들만 가르치길 원해.조신하게,마치 양갓집 규수같이 말이지.-송이"
그래서 두 분 선생님의 솔직한 편지가 담긴 이 책과 일상을 공유한 SNS의 존재는 오히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남들은 쉽게 떠들어대는 직장에 대한 불만과 공개된 SNS계정이  '교사'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로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 역시.
"반대로 나는더 공개하고 싶었어.교사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이후에는 시와 에세이를 쓰는 작가로서 팟캐스트 방송도 하고 파도가 있는 날에는 파도를 타는 서퍼로 또 다르 삶을 사는 타자라는 것을.-진영"
기존의 결혼제도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비혼을 선택하고, 또 역시 기존의 결혼제도를 답습하지 않기 위한 결혼생활을 선택한 부분 역시 어찌나 정반대이면서도 닮아있는지. 남들이 보기엔 '조금 이상한 선생님'의 길을 꿋꿋하게 나아가는 두 선생님의 모습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또한 특수아동의 부모가 아닌 이상, 존재를 알기도 힘든 학교 내의 특수교사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특수교사에게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은 꽤 외로운 직장이야.~좀더 신랄하게 말하자면 '혼외 자식'같아.-송이"
일반교사에 비해 절대 소수일 수 밖에 없는 특수교사와 부모의 협조가 없을 경우 겪게 되는 어려움, 연락이 없는 제자들...특수교사이기에 겪는 특수한 상황들이 굉장히 마음에 와닿았다.

코로나 이후 학교에서 학부모로 봉사활동을 하며 바라본 학교 현장은 하루하루가 전쟁터였다. 하지만 학교 밖의 사람들은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으면 교사는 편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곤 했다. 교사들이 학교를 직장으로 생각할 뿐,  사명감이 없어서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다.그런 분들은 꼭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원하는 것은 선생님들임을 책을 통해 확인하시면 좋겠다. 직업적 사명감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환경과 조직의 변화이고, 학교 밖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낸다면 그 방향은 교사가 아니라 그 밖의 것을 향해야 할 것이다.
"도약을 하게 되면 더 좋겠지. 개인의 경험이 확장되어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다면 더더욱 좋겠지.-진영"
이 책은 교사라는 직업인으로서의 현장에 관한 솔직한 고백이고, 교사라는 타이틀 밖의 '개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교사를 꿈꾸는 누군가를 쉽게 환영하지는 못하겠다고 송이 선생님은 말씀하셨지만. 이런 '이상한 선생님'들이 학교에 더 많아진다면 정말 순수하게 교사를 꿈꾸는 누군가가 더 많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선생님들을 만나고 싶다. 두 분 선생님의 솔직한 이야기는 많은 선생님들께 그리고 선생님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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