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82년생 김지영으로 페미 작가가 되어버린 조남주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우리가 쓴 것>이라는 제목을 곰곰이 보며, 우리란 누구를 지칭하며 무엇을 썼다는 걸까 궁금했다.
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인데 모두 여성이 주인공이다.
10대부터 80대까지. 등장인물의 연령은 다양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딱 그 나이 때의 고민과 일상, 그리고 삶을 그렸고.
김지영이 여자로서 받은 차별과 사회적 요구, 그로 인한 정체성 혼란을 그린 작품이라면
이번의 소설은 더 나은 나로, 여자로 살아가기 위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다.
8개의 소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는 <오로라의 밤>이다.
남편이자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단둘이 살아가는 60대 며느리와 80대 시어머니의 이야기.
워킹맘으로 살아보았기 때문에 아이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며 회사를 다니는 딸의 심정은 잘 알지만 도저히 손주를 보며
황혼을 보내고 싶지 않은 엄마와 자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끝가지 아이를 봐주지 않는 엄마에게 섭섭한 딸의 이야기.
시어머니와 며느리, 엄마 그리고 딸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보며 우리가 쓴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앞으로 써야 할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했다.
"현민이(손주) 보기 싫어요! 진짜 싫어. 방학 때도 안 볼 거야!!!"
"오래 살게 해 주세요! 인공호흡기니 뭐니 다 달아 줘요. 죽을 때 고와 뭐해? 곱지 않더라도 오래 살 거야!!"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나란히 손을 잡고 캐나다에 오로라를 보러 가선 오로라를 향해 소원이라며 소리치는 장면은
웃음과 슬픔과 통쾌함 같은 것들이 섞여 내 안에서 퍼졌다.
당연하지 않은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서로 모른 척 넘겼던 것들을 콕 집어주니 속이 시원했달까.
그리고 캐나다로 떠나는 엄마에게 자신의 소원도 같이 빌어달라는 딸의 말을 들어주기 위해 소리친다.
"회사 생활 잘 하고 싶어요!"
아이 때문에 결국 회사를 그만두려 했던 딸은 엄마와 오로라를 보러 가서 소원을 빌기로 했고, 소원을 미리 생각하면서
자신의 소원이 회사 생활을 잘 하는 것이라는 걸 상기한다. 결국 다시 회사를 다니기로, 아이는 시터 이모에게 맡기기로, 자신보다
더 아이 케어를 잘 하는 남편에게 자신의 일이었던 것들을 넘기기로 한다.
그 덕에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함께 오로라를 보러 가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를 인간 대 인간으로 더욱 애틋하게 여기게 되었고.
남편이 살아있을 때에도 크게 마찰이 없었던 어머니였지만 유독 아들의 일엔 며느리를 타박했던 어머니는
"준철이가 없어서 그래. 이제 내가 준철 어미가 아니고 너도 준철이 집사람이 아니잖아"라고 말하며 둘이 사는 요즘이 편하다고 말하는
며느리의 말에 대답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있다.
나 때는 더 했지!라며 자신이 겪은 온갖 가지 부당함을 당연히 떠넘겨준다.
사회적 분위기와 인식으로 인한 남녀 차별에 우리는 분개하면서도 은근히, 은연중에 서로를 차별하고 있다.
그래서 소설 오로라의 밤이 좋았다.
연대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인 것 같아서.
똘똘 뭉쳐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가는 것 같아서.
이제껏 우리가 쓴 이야기보다는 앞으로 우리가 쓰게 될 이야기가 기대되어서.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여성 우월주의가 페미니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성 혐오로 가는 페미니즘은 찬성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을 혐오한다니. 분명 어딘가 잘못된 것 같다.
다만 여자이기 때문에 라는 말이 올가미가 되어 여성들의 발목을 잡는 일은 분명 바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니깐!이라는 무기에 대해 스스로 고민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전에 없던 용기를 내어보는 일도.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여성들의 연대인 것 같다.
서로가 서로를 먼저 인정하고
바르지 않은 것에 함께 분노하고
더 나은 것을 추구하며 연대하는 것.
사회적 인식을 그렇게 바꾸어나가는 것.
앞으로 우리가 쓸 이야기는 우리가 여태 쓴 이야기 보다
분명 공정하고 정의롭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