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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 여성 홈리스 이야기 ㅣ 우리시대의 논리 30
김진희 외 지음,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기획 / 후마니타스 / 2023년 8월
평점 :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아니 대부분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뤄내고 지켜온 것들이 나로 인해 쌓인 것들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를 깨부수기 위해 직장 동료, 친구, 가족을 차례차례 헐어내야 하는데. 모든 것을 나 혼자 했다고 믿기에 내가 입고 먹고 있는 것 어느 하나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부모에 기대어 살던 미성년을 지나 경제 활동을 하면서부터는 부모에 기대어 얻어진 것들이 기반이 되었다. 나는 이것들 없이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나.
홈리스 언니들을 인터뷰한 이 책을 읽으면서 최현숙 작가가 그의 산문에서 했던 말을 자주 떠올렸다.
빈곤을 바라보는 빈곤하지 않은/덜 빈곤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과 느낌과 해석들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빈곤을 밑천으로 전략하며 몸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말을 얻어듣는 일은 개인적으론 ‘더 추락해도 살아지겠구나’ 하는 안심을 얻고, 사회 속 저력(밑바닥 힘)을 확인하는 탐문이기도 하다.
최현숙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334쪽
IMF로 많은 이들이 안전장치 없이 추락하던 그때. 사회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거나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이들을 일으키고 먹인 사람들이 홈리스들이었다.
나는 추락하면 어디로 가야 하나. 그대로 죽어버려야 하나. 생각이 들면 막막하고 두렵고 끔찍해서 살며 행동하고 나아가는 것이 겁날 때가 많았다. 그래도 추락해도 살아지겠구나 그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구나 생각하면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지금 이곳에서 “일곱 명이 말하고, 일곱 명이 듣고 옮겨 적”은 책이 있다.
여성홈리스들의 “가방 속에서, 봉다리 속에서, 자신들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분투하고 때론 타협하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아직 듣지 않았을 뿐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닌, 그녀들의 말에 함께 귀 기울여보길 권한다.” “싸우는 그녀들을 응원하며 애틋한 마음으로 주문을 왼다. 그 여 자 가 방 에 들 어 가 신 다 … …”(에필로그 인용)
아까 노숙하면서 어려운 게 뭐냐 물어봤죠. 잠자는 것, 먹는 것, 그 두 가지가 최고 힘들어요. 근데 남자들을 자려면 어디서나 잘 수 있어요. 그치만 여자분들은 힘들겠죠.(21쪽)
- P21
- 그녀들이 들려주는 말이 내게 차곡차곡 쌓이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이 보고 느낀 삶에 대한 어떤 은유처럼 느껴져 때론 오히려 진실보다 진실 같았다. 가혜가 들려주는 말 또한 그랬다.(24쪽)
- P24
- 자신을 쫓아내려는 사람들이 24시간 감시하는 공간에서 먹고 자고 생활해야 하는 긴장감이 전해졌다.(38쪽)
- P38
- 나는 길바닥에서 먹고 자는 사람이니까 한마디로 무시하는 거야.(40쪽) - P40
"맨날 싸우는" "고집 센 할머니"가 아닌, 내가 알고 있는 경숙의 모습이다. 이토록 입체적인 강경숙을, 자신에게 높임말을 쓴는 강경숙을, 소중한 살림살이를 쓰레기 취급하는 이들에게 "너희 집문서부터 쓰레기통에 던지라" 외치는 대단한 기세의 강경숙을 함께 기억하면 좋겠다.(60쪽)
- P60
- 근데 이 짐이 많으면 표식이 되는 거야. ‘저 사람은 짐이 많은 거 보니까 노숙인이다’ 그러면서 "비켜 주세요" "이동해 주세요" "좀 옮겨 주세요" "나중에 나갔다 좀 이따 들어오세요" 하지.(78쪽) - P78
옛날에는 노숙자들도 있건 없건 의리가 있어서 서로 감싸주는 맛이 있었어요. 사람이 꾀죄죄하고 배고파하면 수건 주면서 씻으라 하고 뭐라도 멧였어요.(116쪽) - P116
- "안경도 집이 있는데 집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 홈리스들" "코로나 시기 홈리스는 배가 너무 고파서 코로나라도 먹을 지경"이라는, 그녀의 집회 발언들은 바로 이 봉다리 속에서 피어난 말들이다.(243쪽)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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