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
김달님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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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사이 미간이 잔뜩 찌푸려지는 날들이 있다. 손가락으로 그 사이를 다리미질하듯 펴봐도 머리 근육이 잔뜩 굳어 미간을 좁힌다.

그런 날에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가 근육이 풀어지듯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는 글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날 김달님 작가의 글이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은 인류애가 박살 나고 마음의 독소가 쌓이다 못해 몸을 뚫고 나오려 할때. 나를 따뜻하게 데워줄 걸로 그냥 믿게 되는 책이다.

매일 아침, 하루의 시작을 앞두고 읽으면 좋을 이 책안에 실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꾸밈없는 이야기가 나를 일으켜 준다. 그 힘으로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을 잘 해낼 수도, 내킨다면 하루를 잘 살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는 사람”을 만든 내 안의 소중한 것들을 알아차리게 해주기 때문일지도. 결국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나라는 사실도 마음속에 둥실 떠오른다.

어제 하루는 사실 나에게 쉽지 않은 날이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면 이 책이, 이 글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나의 마음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책이라면 응차! 하고 금방 회복해낼 단단함이 마음에 생긴다.​

- 사람들이 하는 말은 일부러 하는 말, 근사해 보이려고 하는 말, 큰 소리로 하는 말이 아니었으므로 운 좋게 그들의 말을 듣게 되면 잊지 않으려고 더 노력해야 했다.(10쪽)

- P10

-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어도 다가올 시간은 믿을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함께 살아갈 수 있다.(141쪽)

- P141

- 할머니 삶에서 내가 모르는 비밀스러운 기쁨이 더 많이 존재했기를. 내가 아는 기쁨이 전부가 아니기를. 그 기쁨이 무엇인지 상상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167쪽)

- P167

- 시간이 지나도 내 안에서 어떤 부분이 끝내 변하지 않을지, 그런 것들을 차분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런 것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이 된다.(251쪽)

- P251

- "할아버지. 그럼 저는 어떤 계절 같아요?"
"너는 가을이다."
"제가 왜 가을 같나요?"
"너는 조용하면서도 …… 꼭 끌어안고 있으니까."
"무엇을요?" "살아 있는 것들을."(271쪽)​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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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트리플 8
최진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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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친구가 제일 중요하냐.” 엄마가 나를 원망하듯 말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가족들을 피해 친구들 속으로 숨어들었을 때였다. 엄마의 말이 너무 정확해서 놀라웠다. 엄마는 나를 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구나. 하고 안도한 것 같기도.

한편으로는 엄마가 나를 질책하며 말하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말에 묻어있는 원망이 나를 향해 있는 것이 너무 새삼스러웠다. 내가 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게 언제부터 엄마에게 궁금한 일이었을까.

엄마가 원하는 거라면 내장이라도 꺼내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던 때를 외롭게 지나온 나에게. 엄마의 질문은 너무 늦게 도착했다. 우리 둘의 마음이 가진 시간차가 너무 멀어 슬펐다. 엄마가 온몸으로 통과하며 지나와야 했던 노동의 무거움과 가정 내에서 부침이 많았던 엄마의 사정을 모르지 않았는데도.

그 질문을 받던 20대 초반의 나도, 바라보는 거라곤 엄마뿐이었던 어린 시절의 나도 세상에 가장 탓하기 쉬운 건 엄마뿐이었으니까. 엄마 말고 다른 사람에게 내 슬픔을 탓하고 원망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내 인생을 잡고 흔들 수 있는 사람은 엄마뿐이었으니까. 나는 지구에 생겨나는 모든 문제에도 엄마를 탓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여전히 큰 우주와도 같기 때문이다.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우주와도 같을 어른들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수많은 말을 내뱉는다. 그 말들은 그들을 다치게 하기도 돌아서게 하기도 죽게 하기도 한다.

책 속 인물을 통해 인생을 다시 살아보는 일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꼭 해야 할 일이다. 아이들의 삶이 순탄해 보이고 쉬워 보이며 좋을 때라고 생각해버리는 어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도우에게 공부는 노동이었다. 정말 그렇게 보였다. 도우는 매일 특근과 야근을 했다. 도우는 필사적으로 자존심을 지켰지만 부모님은 도우의 자존심을 알지도 못했다.(20쪽)
- P20


- 당신은 그랬어? 나라 경제 생각해서 힘든 일만 골라 했어? 나라 사정 안 좋은 것까지 어째서 애들 탓을 해. 이제 막 시작하는 애들이 뭔 죄가 있다고.(25쪽)

- P25


- 세상은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누구는 웅덩이에 있고 누구는 언덕에 있다. 각자 다른 세상에서 어쨌든 노력하며 아무튼 불공평하게 살고 있다. 그러니 제발 세상이 좋아졌다느니 젊은 애들이 문제라느니 그런 말은 하지 않으면 좋겠어.(26쪽)
- P26

우리는 뿔뿔이 흩어질 예정이었다. 도우는 외국어고, 민주는 일반계고, 나는 특성화고를 지원했다.(29쪽)

- P29

어릴 때 우리는 일요일마다 비밀을 만들었다. 우리는 비슷한 이유로 웃고 겁내고 거짓말햇다.(29쪽)

- P29

- 우리의 일요일이 끝나가고 있었다.(30쪽)





- P30

- 선생님들은 실습 나갔다가 학교로 되돌아오는 학생을 싫어했다. 취업률도 떨어지고 협력 업체랑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으니까.(36쪽)


- P36


- 우리는 부당한 지시가 무엇인지 배우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을 해내는 방법과 예의를 지키는 법만 배웠다. 실습 현장에서 힘들다고, 위험해 보인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하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우리를 어떤 인간으로 규정할지 잘 안다. 낙오자. 쉬운 일만 하려는 젊은 것들.(37쪽) - P37

이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휩쓸리듯 살아가겠지. 나는 그런 희망적인 삶을 예방하고 싶다.(107쪽)


- P107


- 이대로 내가 뭘 원하는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어른이 될까 봐 두려웠다.(127쪽)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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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 여성 홈리스 이야기 우리시대의 논리 30
김진희 외 지음,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기획 / 후마니타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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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아니 대부분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뤄내고 지켜온 것들이 나로 인해 쌓인 것들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를 깨부수기 위해 직장 동료, 친구, 가족을 차례차례 헐어내야 하는데. 모든 것을 나 혼자 했다고 믿기에 내가 입고 먹고 있는 것 어느 하나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부모에 기대어 살던 미성년을 지나 경제 활동을 하면서부터는 부모에 기대어 얻어진 것들이 기반이 되었다. 나는 이것들 없이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나.

홈리스 언니들을 인터뷰한 이 책을 읽으면서 최현숙 작가가 그의 산문에서 했던 말을 자주 떠올렸다.

빈곤을 바라보는 빈곤하지 않은/덜 빈곤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과 느낌과 해석들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빈곤을 밑천으로 전략하며 몸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말을 얻어듣는 일은 개인적으론 ‘더 추락해도 살아지겠구나’ 하는 안심을 얻고, 사회 속 저력(밑바닥 힘)을 확인하는 탐문이기도 하다.

최현숙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334쪽

IMF로 많은 이들이 안전장치 없이 추락하던 그때. 사회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거나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이들을 일으키고 먹인 사람들이 홈리스들이었다.

나는 추락하면 어디로 가야 하나. 그대로 죽어버려야 하나. 생각이 들면 막막하고 두렵고 끔찍해서 살며 행동하고 나아가는 것이 겁날 때가 많았다. 그래도 추락해도 살아지겠구나 그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구나 생각하면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지금 이곳에서 “일곱 명이 말하고, 일곱 명이 듣고 옮겨 적”은 책이 있다.

여성홈리스들의 “가방 속에서, 봉다리 속에서, 자신들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분투하고 때론 타협하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아직 듣지 않았을 뿐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닌, 그녀들의 말에 함께 귀 기울여보길 권한다.” “싸우는 그녀들을 응원하며 애틋한 마음으로 주문을 왼다. 그 여 자 가 방 에 들 어 가 신 다 … …”(에필로그 인용)

아까 노숙하면서 어려운 게 뭐냐 물어봤죠. 잠자는 것, 먹는 것, 그 두 가지가 최고 힘들어요. 근데 남자들을 자려면 어디서나 잘 수 있어요. 그치만 여자분들은 힘들겠죠.(21쪽)



- P21

- 그녀들이 들려주는 말이 내게 차곡차곡 쌓이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이 보고 느낀 삶에 대한 어떤 은유처럼 느껴져 때론 오히려 진실보다 진실 같았다. 가혜가 들려주는 말 또한 그랬다.(24쪽)

- P24

- 자신을 쫓아내려는 사람들이 24시간 감시하는 공간에서 먹고 자고 생활해야 하는 긴장감이 전해졌다.(38쪽)



- P38



- 나는 길바닥에서 먹고 자는 사람이니까 한마디로 무시하는 거야.(40쪽) - P40

"맨날 싸우는" "고집 센 할머니"가 아닌, 내가 알고 있는 경숙의 모습이다. 이토록 입체적인 강경숙을, 자신에게 높임말을 쓴는 강경숙을, 소중한 살림살이를 쓰레기 취급하는 이들에게 "너희 집문서부터 쓰레기통에 던지라" 외치는 대단한 기세의 강경숙을 함께 기억하면 좋겠다.(60쪽)


- P60


- 근데 이 짐이 많으면 표식이 되는 거야. ‘저 사람은 짐이 많은 거 보니까 노숙인이다’ 그러면서 "비켜 주세요" "이동해 주세요" "좀 옮겨 주세요" "나중에 나갔다 좀 이따 들어오세요" 하지.(78쪽)
- P78


옛날에는 노숙자들도 있건 없건 의리가 있어서 서로 감싸주는 맛이 있었어요. 사람이 꾀죄죄하고 배고파하면 수건 주면서 씻으라 하고 뭐라도 멧였어요.(116쪽) - P116

- "안경도 집이 있는데 집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 홈리스들" "코로나 시기 홈리스는 배가 너무 고파서 코로나라도 먹을 지경"이라는, 그녀의 집회 발언들은 바로 이 봉다리 속에서 피어난 말들이다.(243쪽)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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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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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품 하나 내 모습이 담기지 않은 곳이 없었다. “고통은 사라지고, 나는 살아진다”(108쪽 문장 변용) 라는 문장이 자주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인물들은 우직하거나 충동적이거나 변덕스럽거나 겁이 많다. 아직 부족한 내 말로 지어 보이기 어려운 그들의 모습이 모두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최은영 작가의 문장들 덕분이다.

그를 통과한 문장들은 “아직도 그곳에 사람이 사니까요”라고 나에게 말한다. 내가 놓치거나 외면해오던 일들을 겨우 실눈을 뜨고 마주하는 지금 작가의 문장들이 내 곁을 고요하게 지켜준다.

또 다시 명치가 툭 꺼지는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고. 다만 나는 괜찮을 것이다.

그들, 당신, 나의 고통은 사라지고, 나는 살아진다.(108쪽 변용)

나는 불안하지 않았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도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 다만 그녀는 자신을 타인처럼 여기고 있었다.




살아진다. 그러다보면 사라진다. 고통이, 견디는 시간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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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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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내가 마음 놓아도 되는 사람이 있을까. 고민하던 저의 마음에 안도감을 주었던 책입니다. 사랑을 믿어보고 싶을 때, 마음껏 슬퍼지고 싶을 때 읽어볼 책입니다.

너를 보지 못하고 너를 생각하다 나는 죽었다. 너는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다. 내가 본 마지막 세상은 너여야 했다.(16쪽)


- P16


- 괴로움 없는 사랑은 없다.(25쪽)

- P25



- 나는 여기 있고 너도 여기 있는데, 나는 여기 없고 너도 여기 없다.(35쪽)

- P35

몸은 고되고 앞날은 곤죽 같아도, 마음 한구석에 영영 변질되지 않을 따뜻한 밥 한 덩이를 품은 느낌이었다.(77쪽)





- P77

- 나만 살아 있다.

나만 이 몸에 갇혀 있다는 말이다.(131쪽)



- P131

희망 없는 세상에선 살 수 있었지만 너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가 않아서. 죽음은 너 없는 세상이고 그래서 나는 정말 죽고 싶지 않았어.(177쪽)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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