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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독소 쇼크
박명규.김아름 지음 / 클라우드나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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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염증 에 시달려 왔기에 책표지를 보고는, 뜨악해서 펼쳤다.


"당독소가 당신의 몸을 더 빨리 병들고 늙고 죽게 한다!" 라지 않는가!

#당독소 라는 말은 다이어트와 연결지어 듣기는 한 것 같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누구나에게 해당하는 줄은 몰랐다.​


당독소란 말 그대로 과다한 포도당 과당을 의미한다. 

몸에서 필요로 하는 양 이상으로 먹었을 경우 남아도는 포도당이 단백질이나 지방과 붙어서 당독소를 만든다는 거다.


당독소는 ①음식을 가공하거나 요리하는 과정에서, ②몸속에서 포도당·아미노산·지방이 대사하는 과정에서

③장내 유해세균에 의해서, ④미세먼지·매연·담배연기 등 유해환경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 당독소가 어디에 붙느냐에 따라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증상이 달라진다고 하니,

내가 뭘 먹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식으로 먹는지 체크하게 됐다.







내가 아파보니 관심 갖고 읽게 되었고 

평소 식습관으로 인해 나 스스로가 내 몸을 갉아 먹고 있었다는 생각에 

반성과 변화를 꾀하는 실천을 각인하는 효과가 되었으니 

이 한 권의 책이 내 삶의 피로도를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알고도 실천 못하는 이가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오늘, 하게 된다.


더 자세한 글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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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공존의 먹거리 - 음식, 풍요로움과 다양함 너머의 식탁 드레의 창
정한진 지음 / 드레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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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년 전만 해도 난, 먹기 위해서 산다 주의였다.

후즐근해도 편하기만 하면 옷은 충분히 제 역할 하는 거였고, 손에 들고 다니는 걸 싫어해 가방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으며

화장하거나 펌 하는 등의 꾸미는 건 귀찮은 존재였다. 자유롭게 다니며 즐기고 맛있게 먹는 것, 그게 내 삶을 이루는 초석였다.

그래서 맛있다더라 귀동냥 한 곳은 어디에 있건 가서 맛봐야 했고

맛집 찾아 여행 계획 세우며 토속음식도 더불어 끼우면서 설레는 등, 이왕 먹는 것 비싸더라도 맛있는 곳에 가서 제대로 먹자가 내 신념였다.

그런데 요몇년 사이,

세월은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나이 들수록 느껴지는 육신의 노화는 살기 위해 마지못해 먹는다로 바뀌기 시작했다.

호볼호가 명확했던 탓에 회식자리 가서도 내 밥그릇은 제대로 챙겼는데 요즘은

설령 내가 먹을게 없다해도(편식이 심한 탓에) 몇 젓가락 끄적거리다 말지 뭐~ 시큰둥해진 것이다.



그래설까, #생명과공존의먹거리 가 눈에 띈 이유가?

생일때 찰밥에 미역국 차린 밥상 대신 치킨이나 피자 기프트콘으로 생일밥상을 대신해도

좋아하는 걸로 잘만 먹었다면 그건 제 역할 다한 거라 생각하는 편이다.

카카오톡으로 축하 및 조의카드가 도착하고 직접 가는 대신 축의 및 조의금을 클릭 한번으로 이체해도

의미만 전달 됐다면 된 거라 생각한다. 키오스 주문결재 후 가져가 먹는게 얼굴 맞대고 주문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편한 것처럼

모든 건 시대에 따라 삶의 방식에 따라 선호도에 맞춰 달라져 가고, 음식 또한 다를게 없다 여기는 것이다.

군대 간 큰 아들래미 왔다고 좋아하는 갈매기살 구워 먹이는 아빠의 맘이나,

작은 아들래미 논산 훈련소 보낸 뒤 쓸쓸한 마음에 닭도리탕 시켜놓고 소주잔 기울이는 마음이나...

우리 삶의 희노애락이 음식과 함께 녹아든다는 느낌이 크다. 그게 바로 음식 안에 담긴 삶, 아닐까?



식혜만 해도 엿질금 우려낸 물에 찹쌀고들밥 짓어 붓고서 삭혀 집에서 품 들여 만든 것이 제일이라 여겼는데

캔으로 간편하게 나오더니 요즘은 덜 달고 건강을 생각했다는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양이다.

설날이 다가온다고 박스 채 선물 배달 된 식혜를 나눠 마시면서 내가 산 찰나의 삶에서조차 이렇게 식문화가 바뀌는데

역사의 큰 테두리에서 본다면 얼마나 굴곡진 변화를 겪으며 소용돌이쳐 왔을까 싶어 새삼스러웠다.

비가 오면 괜스레 기름 냄새 폴폴 풍기는 해물파전이 생각난다.

비오면 부침개, 마치 날씨에 맞춘 루틴처럼 우리네 발길은 붙들어 매는데

아무 생각없이 식재료 사다가 넓적한 후라이팬에 두툼하게 전 부쳐 찢어 먹는 나를 발견할때면 괜스레 우습다.

마치 정수기에 물컵 갖다대면 알아서 물이 나오는 것처럼 비라는 매개가 자연스레 전 부쳐 먹고 앉게 했으니 말이다.

이렇듯 한꼭지씩 읽을때면 '맞넹~' 격한 공감에 박수 치다가

'정말?' 다양하고 풍족한 먹거리 소비가 풍요로운 삶의 여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말에선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며칠전 논산훈련소 갔을적에 주변 맛집들을 검색하다가 #우렁쌈밥 에 솔깃해서는...

시골이니 쌈채소가 싱싱하지 않겠느냐, 집된장으로 만든 우렁쌈장이 제맛이지 않겠느냐... 했다가 핀잔만 들었다.

되려 시골이 도시만 못할 수도 있다면서.

그래도 넉넉한 쌈밥 한상 받으면서 훈련소 오는 아들들에게 정성스레 만들어 대접하고 부족하면 채워주는 그 손길에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맛이란 생각해보면 몸 안으로 들어오는 먹이를 구별하는 문지기다

출처 : '생명과 공존의 먹거리' 99p

쓴맛이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이유라던가

급한 성질머리대로 먹는 즉시 에너지원이 되고 쾌락을 일깨우는 단맛에의 유혹이라던가...

꽤 흥미롭고 재미난 자극을 주는 글또한 심심찮게 등장해 읽는 재미가 소소했다.



크게 결핍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와선지(내게 주어진 여건에 맞춰 살자는 주의라 그런거지 풍족하게 살아 그리 느낀 건 아니다)

다른 건 부족하게 쓰더라도 먹는 것만큼은 먹고 싶을때 가급적 빨리 그 욕구를 해소하자는 신념이 강해선지

굶주리고 있는 이들에 대한 기사는 내것인냥 느껴지지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한 노력 없이 베풀어 주길 기대하는 심리를 너무 많이 봐와선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네가 해주는 게 당연하다'면서 당당하게 손 내밀며 요구하는 이들을 볼때면 기가 막힌다.

'호의를 권리' 인냥 여기는 이들이 많아짐에 따라 측은지심이 배덕한 마음인냥 생각되는 것이다.

'내 돈은 내 돈이고, 네 돈도 내 돈이다' 라고들 생각하는지 애 타고 동정심 자극해 돈 빌려 놓고는 돈 없다 배 째~ 돌변하는 이들도 적지 않고

다른 이들이 어떻게 피해 보든 내 안일만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모습을 볼때면 사회 구조의 변화가 모든 걸 뒤바꾸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연재해로 생겨난 경제적 기아와 빈곤으로 생겨난 구조적 기아에 대한 예시를 읽으며

괜한 생각의 확장까지 하게 됐다.



코로나 시국을 겪어오면서 식당 가서 먹는 것보단 배달팁 낼지언정 집에서 편하게 앉아 먹는게 당연해지고

찌개며 전골에 다른 사람 숟가락질이 거북해져 1인 밥상을 선호하게 됐으며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사랑 받는 등

다양한 음식 선택의 카테고리에서 편향된 식습관을 가짐으로써 지방을 좀더 몸속에 축적하게 됐다.

덕분에 체중이 1 kg씩 증가할때마다 무릎에 가해지는 압력이 3~5배가량 팍팍 늘면서 무릎통증으로 애늙은이 된 기분이다.

물리치료나 연골주사도 그때뿐이니 결국 근육량을 늘릴 수 있는 식단과 운동을 주기적으로 하면서 체중감량을 해야하는데

풍족한 먹거리와 식탐 많은 내겐 생고문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선지 음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흘러 넘쳐 우리를 괴롭힌다, 그야 말로 속이 텅 빈 풍요다... 절절이 와닿았다.

돈만 있으면 기꺼이 먹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내 몸을 건강을 이롭게 하며 충만감을 준다고 확답할 수는 없다.

정신적 박탈감이나 빈곤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을 볼때면 차라리 적당한 결핍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뭐... 밥이 아닌 과자를 주식으로 먹는 내가 할 소린 아니겠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종이책 질감을 느끼면서, 내가 소비하는 음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방향성을 가늠해 본 유익한 시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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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365 인문학 달력 (스프링) - 매일 한 뼘씩 아이 마음이 자라는
김종원 지음, 소소하이 그림 / 청림Life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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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 잦고 온도차도 심하다 보니 마음 기복이 요동 쳐, 나를 포함한 주변 온도까지 들썩이게 만드는 거다.

나를 다스릴 뭔가가 없을까... 검색하다 발견한 책이 하루 한장 365 인문학 달력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 호흡으로 읽을 필요가 없어 부담 되지 않았고,

다른 일 하다가도 고개 돌려 그 날의 글귀를 몇번이고 읽으니 짧아도 반복적으로 생각하며 정리할 수 있었다.

 


 

매일 한뼘씩 아이의 마음이 자라도록

아이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이 사랑으로 충만하도록

매일 한장씩 내면의 힘을 단단하게 키워 줄 인생문장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아 낸 책이란다.



 

열두달의 주제어를 구분지어 그에 맞춰 구성했던데

욕심 부리지 않고 하루 한장, 그날치 글을 책상 앞에 달력마냥 놔두고 슬쩍슬쩍 보고 있다.

 

날짜만 있을뿐여서 해 바뀌는 것에 연연하지 않으며

한해치를 다 읽어도 새롭게 다시 펼칠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양면 출력 돼 부피감이 그닥 크진 않는 것또한 좋다.

 

글에 맞춰 그려진 그림이 아이를 위한 것마냥 부드러워서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게 된다.

 


 

처음 배송 받았을때 아이 책상에 올려두며 쓰윽~ 무신경하게라도 읽어보라 했었다.

그런데 아이들 반응은? 남자아이여선지 자리 차지하는게 싫다며 보지도 않을 거 치워 달라 그러지 뭔가. ~

 

 


한 문장 읽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자거나 게임하는데 쓸 시간은 있어도 글자 읽는데 쓸 시간은 없단 뜻? 아주 괘씸한거다!

그래서 사무실 갖다 놨다,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곳에다. 자꾸 읽게 돼 반복효과 꽤 좋다.

 


 

오전엔 비가 오더니 지금은 개였다, 날씨 참~

 

 

입으로 아름다운 언어를 내보내고

귀로는 그 귀한 언어를 듣고 살아가는 삶,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인문학이다.

-하루한장 365 인문학 달력 중에서, 22일의 인생문장-”

 

문득 앞면을 보려고 펼쳤는데 헉~ 인문학에 대한 글귀가 있어 아 그렇구나... 생각하게 됐다.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방대하고(역사,문학,종교,철학,언어 등) 지루해 쉽게 접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저자인 김종원은 독특한 주제와 방식으로 인문학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구성한게 느껴져 쉽게 다가 갈 수 있었다.

 

하루에 한장씩, 가볍게 읽으면서 나를 다스리고 깊고 넓게 생각 할 계기 및 기회를 갖고 싶어 365 인문학 달력을 고른 이유를 찾은 듯 하다.

더불어 아이들도 함께하면 좋겠지만, 성향을 아니 가족톡방에 매일매일 공유하는 것으로 대체한다. 대충이라도 보겠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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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아이 중 한 사람은 어른이어야 한다
임영주 지음 / 앤페이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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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의 갈등은 서로간의 문제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로부터 비롯됐음을 인지하게 만든 책이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 희망은 있어도 자녀 계획은 없거나 보류 했다.

그랬기에 다태임신인 걸 알았을때 신경이 날카로워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해 조산과 사산 위험을 달고 지냈고

극소저체중아로 태어난 쌍둥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 발 동동 눈물 펑펑 쏟아낸 하루하루였다.

 


 

프롤로그에 적힌 글들이 어찌나 와닿던지...

 

여느 아이보다 작게 태어난 아이들였기에, 혼자서 둘을 감당해야 했기에, 잘하든 못하든 버텨내야했기에

나는 부서지기 일보직전였다. 나처럼 애들아빠 또한 어떻게 하는지를 몰라 제때 제대로 된 도움을 적절이 주지 못했고

아이의 감정을 공감하기는 커녕 내 마음을 왜 몰라주나 서로에게 닦달하기 바빴다.

그런 감정적인 대응은 부메랑처럼 돌아왔고, 상처 받고 쓰러진 마음은 분노와 죄책감으로 엉켰다.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다들 부딪히며 부셔가며 배워'

이런 위로가 됐던 글였다.

 

상처 받은 나의 어린시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마음대로 되어주지 않던 육아에 널부러진 몸과 마음은 방관자가 되기에 이르렀다.

이젠 손이 많이 갈 시절이 지났으니 아이들 스스로 알아서 할 것을 나는 요구했고

아이들은 기본적인 의식(衣食)마저 모르쇠로 대응하는 건 부모로써 무책임하다 질책했다. 그렇게 아이들과 나의 관계는 켜켜이 벽을 쌓아갔다.

 


 

훈육은,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에게 규칙과 규범을 가르치며 대안을 제시하고

각 가정의 상황과 부모의 성향에 맞춰 일관되게 이뤄지며

어른으로써의 품위와 권위를 지켜내는 걸 말한단다.

 

그러나 나는 화풀이를 했던 듯 하다. 아이의 말에 귀를 닫고

아이를 협박성 명령 등을 통해 통제했으며

원칙과 기준없이 그때그때 상황과 기분에 따랐고

부모를 아이로 만들어 버렸다. 내 풀에 지쳐 화를 내고 소리치며 투정 부렸으니까.

 

느리고 서툴고 모든 것이 어색한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인정하고

세상의 속도가 아닌 자신의 속도로 성장 할 시간을 아이들에게 주는 것,

그게 필요한 일임을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론 무시했던 나를 반성한 시간였다.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공격성 세가지, 이 부분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무시 당하는 것보다 혼나는게 낫다 싶어 하는 반항,

내가 나 자신을 행동이나 언어 등으로 공격하는 자기불구화,

티나지 않게 부모를 좌절시키는 수동공격성!

 

큰애는 물건이나 자신에게 화풀이하듯 공격적인 행동을 보였고, 작은앤 말 한마디도 지지 않고 반항 해 댔으니까!

 

양육의 최종목적은 미성숙한 아이를 제대로 성장시켜 독립시키는 거라는데

내가 미성숙해서 아이를 성숙하게 성장시키지 못해놓고 아이더러 폭력적이네, 제멋대로네, 통제가 안되네

비난의 화살만 마구 쏘아댄 것 같다. 나부터 먼저 성숙해야 함을 느낀 순간였다.

 

 

4개의 챕터 제목 중 가장 뜨끔했던 부분이 '아이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과연 나를 부모로 선택했을까'였다.

내가 아이를 선택 할 수 없었듯이 아이 또한 나를 선택 할 수 없었고

내가 다시는 고슴도치 같은 아이들과 만나지 않으리라 했던것 처럼 아이들 또한 지뢰밭 같던 나를 만나려 들지 않을 것 같았기에!

 

부모는 화날때 이를 억누르고 이성적·논리적으로 이야기 한다고 생각하지만

직설적으로 쏘아붙이는 공격적인 말보다 추임새처럼 곁들인 무언의 말,

즉 말투나 제스처가 더 큰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앵그리드버드처럼 끝이 올라간 눈썹, 쏘아보는 눈길, 습관적인 한숨 등이 바로 그렇다.”

부모와 아이 중 한 사람은 어른이어야 한다 중에서 p82

 

애들아빠와 이야기할때 말 끝에 내쉬는 한숨이 비난처럼 들려 되려 화가 났던 적이 많다.

차라리 언짢다, 불쾌하다, 고쳐라 말로 할 것이지 괜찮아~라고 말하는데 한숨은 왜 내쉰단 말인가!

부정적인 감정이되 말해봤자 해결 될 일도 아니고... 이런 미묘한 차이에 울컥 한다. 그래서 더 아~ 이해가 갔다.

 


 

거짓으로 가려진 평화엔 '괜찮아~' 축소전환하거나 '하지마!' 억압하거나 '네 문제잖아?' 방임하는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가장 이상적인 부모형은 아이의 감정을 모두 받아들이되 부적절한 행동은 제한하고 아이의 감정조절 방법과 적절한 분출구를 찾도록,

문제해결방법을 부모가 답을 알려주는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대안을 생각하도록 가이드를 제시하는 형태라 한다.

 

해결되지 못한 감정은 평소 앙금처럼 마음 깊숙이 가라앉아 있다가

어떤 계기로 감정이 요동치면 나도 모르게 자기파괴(패배)적인 행동으로 드러난다.

그렇게 때문에 내 감정의 발화점을 찾고 선택적 지각(보고 싶은데로 보고 듣는 것)을 벗어나려 노력하면서

아이가 뇌 성장통을 겪고 있다는 헤아림이 필요한 것 같다.

 

-

 

내가 가진 근원적인 문제는? 나부터 해결해야 할 부분은? 생각을 더듬어 정리하게 해 준 책였다.

그리고 감정공감이 결여 돼 내가 우선시 됐던 부분에 대한 이해를 하면서

아이와의 마찰 상황에선 책을 읽기 전이나 읽은 후나 다를 바 없었지만 그 후 감정정리를 하는 과정에선 '니 마음을 몰라줘 미안해.

내가 책을 마저 읽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앞섰어' 극에 달했던 아이의 감정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잘못 된 길에서 표지판을 만난 기분였다 할까?

 

맞벌이라 부모의 보살핌이 적었던 나는 '나부터~' 챙겨줄 것을 요구했고 동생은 '안되면 별 수 없지!' 희생하는 편였다.

보살핌을 받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했던 상황이 준 결핍은 타인의 감정은 그들의 몫일뿐, 냉정하게 돌아섰고

내 아이라 할지라도 그건 다를 바 없었다. 그런 내 행동을 콕~ 집어주며, 어른이 돼라 다독여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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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신경썼더니 지친다 - 섬세하고 세심한 사람들을 위한 실전 안내서
다케다 유키 지음, 전경아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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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씨(Highly Sensitive Person : 매우 예민한 사람), 솔직히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애들 아빠가 날 더러 고슴도치 같다 했을때, 사람들이 날 더러 너무 각을 세우는 것 같다 했을때, 완벽주의인 척 한다 했을때...

난 그저 나대로 반응 했을뿐인데, 나의 습성이자 성향인 부분을 그들은 왜 부정적인 방향으로 몰아가나 억울하고 서운해 분해 했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억누르고 맞춰줬을때라야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그 당연함 속에 죽어가는 나는 누가 달래주고 챙겨주나 자존감이 무너지는 느낌였다.

 


 

', 이런 거였어?' 왠지 위로 받고 이해 당하는 느낌였다.

 

이제껏 나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까탈스러운 사람이구나, 억지스레 수긍 했었다.

사람들과의 부대낌 속에 극도로 예민해져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어 갔고,

이러다가 내가 사달이 날 것 같아 나를 덜 볶으려 나만의 선을 긋고 단절시켰다.

 

"내가 먹는 것조차 남 눈치 봐야 해? 내가 먹고 싶은데로 먹을거야, 내 입맛이야!"

"나도 옷취향이란 게 있어, 내가 마네킹이야 시키는데로 입고 다니게? 상식 선에서 내가 편하되 깔끔하게만 입고 다니면 돼잖아!"

"여럿 몰려다녀야만 친한가? 곁에 사람이 없으면 어때, 차라리 속 편하고 자유롭게 혼자 먹고 보고 여행하며 즐길거야!"

"? 하다보니 나한테만 몰린 이 상황 뭐지? 나도 적당히 일하고 돈 벌래, 너네 일은 니네가 지지고 볶더라도 알아서 해결해!"

......

 

그러다보니 어디서나 튀는 사람였다. 타협 할 줄도 모르고 제 하고 싶은 것만 하려 드는 깍쟁이가 되어 버린 거다.

 

이른 아침부터 발발 거리며 다니다보니 밤이면 녹초가 돼 세상 모르고 잔다.

애들아빤 일찍부터 자는 내가 부럽다지만 난 파김치 돼 쓰러진 상태였다. 좋게 말해 밤잠 많은거지 실제론 초죽음 상태로 엎어진 셈였던 거다.

 


 

'섬세한 사람은 뇌 신경 시스템이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섬세한 사람과 완벽주의자는 다르다....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눈에 띄었으니까 대응하는 것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 미리 방지하는 것뿐이지 완벽주의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섬세한 사람 진단리스트를 체크 해 보면서, 하나씩 느는 갯수에 표정이 사라지고 굳어져 갔다. 아닐거야 나는 ~ 맞구나...로 변해가는 순간였다.

그래서 내가 어떤 부분에 예민한지 적어봤다.

 

냄새에 예민해서 향이 나는 화장품이나 향수 등은 질색이다. 그래서 애들아빠가 스킨로션을 발랐을땐 닦아내든 어떻게든 냄새 빼고 와야 한다.

음식에서 나는 냄새에도 예민해서 특히 육류는 거의 손대지 않는다. 생선도 바싹 구워 막 나왔을때를 제외하곤 먹질 않는다.

그렇다보니 편식이 심하네, 까탈스럽네... 하지만 내가 못 먹겠는걸 억지로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목청 높은 소리, 음량 빵빵하게 키운 음악소리... 뇌가 흔들리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우리집 남자들, 목청들이 너무 큰데다 조잘조잘... 내가 안방문을 걸어 잠그고 '휴식중, 방해금지' 하게끔 만든다.

조용조용 이야기를 하면 묵묵부답... 얼굴 들이밀며 말하다 보니 내 말이 귀에 들리지도 않았던 건데 나만 방방 뜨며 패악(?)을 부린 거였다. ~

바지통이 넓으면 걸을때마다 스치면서 쓰쓱 나는 소리가 그렇게 신경 쓰일 수가 없다, 그래서 몸에 붙는 바지를 선호하는데

애들아빤 그게 보기 싫다며 자꾸 지적하는거다. "나 편한데로 좀, 입으면 안돼?' 그랬더니 이젠 스키니로 사다준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젊은 애도 아니고 원~" 혀를 끌끌 차며 눈살 찌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대한 정중하게 입으려 노력하니 봐넘겼으면 좋겠다.

 

그냥 내 느낌·생각을 적었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개성이야' '나의 취향까지 지적질 하지 마' 울부짖듯 목청 높였던 일들에

 

', 그래서였어!' 납득이 되면서 내가 이해 됐다. 나조차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기에 방어 본능을 앞세우기 급급했던 순간들였는데 말이다.

 


 

너무 신경 썼더니 지친다는 크게

섬세한 사람이란?

매일 받는 스트레스를 막고 인간관계가 편안해지는 방법은?

섬세함의 힘든 면을 보완하고 좋은 면을 부각시킬 방법은? ...으로 나눌 수 있다.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데다

'그런거였어?' '어머어머~' '아 이렇게 해보라고?' 하다 보니 오랜만에 공통된 취향을 가진 사람과 맞장구 치며 수다 떠는 느낌였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치료되고 위로 받는 느낌은 처음 든 것 같다.

 


 

게다가 한 챕터가 끝날땐 상담 사례를 칼럼으로 적어놔

이렇게 자신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구나, 상당히 많은 이들이 섬세하거나 둔하거나 그러네...

나만, 나뿐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 좋았다.

 

그림으로 표현한 부분이 상당히 많아 머리속에 쏙쏙 들어왔다.

나열된 글보단 압축 표현된 그림에 반응 정도가 강한 모양이다.

 

평일을 열심히 일한 후에 갖는 주말,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에 시달렸었다.

그래서 열심히 아이들과 체험여행을 다니거나 나들이 일정을 잡았다. 그러다보니 어느순간,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거다.

직접 만들어 먹이던 애들 간식도, 매끼 식사준비도 하기 싫어졌다. 간식은 가게에서, 식사는 반조리식품이나 포장주문으로 때웠다.

못하는 요릴 어떻게든 해보려던 노력도, '잘하는 사람이 해 놓은 걸 먹고 그 시간에 나는 쉬면 효율적이지!'로 바뀐 건 정말 찰나였다.

 

주말엔 침대에서 딩굴거리며 나오지 않는 날도 수두룩해졌다. '꼼짝도 하기 싫으니까 배고프면 라면 끓여먹어, 엄마 휴업중이야~'

그런데 즐거운 스케쥴을 마친 후엔, 아무 예정도 없는 휴일을 스케쥴에 꼭 넣어서 푸욱~~ 쉬라지 뭔가!

 

내 몸이 알아서 한 반응들였나? 혼자 들뜬 부분였다.

 


 

못하는 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자신을 채찍질하는 노력(적성에 맞지 않는 것)이고,

잘하는 것을 살리려는 노력은 자연스러운 노력(선천적으로 타고남)입니다.

너무 신경썼더니 지친다, 177~178p

 

주변 사람들에게 잘 맞추는 사촌동생과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던 나는 늘 비교 대상였다.

그 사촌동생은 착해서 그런 것이고, 난 저 밖에 몰라 나쁘다라는 쪽으로 몰아 가

내가 그렇게 문제가 많은 사람인가... 착하다고 칭찬 받으려면 내 마음을 죽이고 그들에게 맞추며 살면 되나... 심각하게 고민에 빠져

심리학에 몰입한 적도 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지지고 볶더라도 가족의 테두리 내에 있는 나와 튕겨나간 사촌동생을 보면 상식이나 주관적인 잣대가 아니라

그 사람의 기질과 놓인 환경에 대한 이해가 먼저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안되는 걸 되게 하려고 자신을 몰아 붙이는 건 최악의 선택으로 이끄는 것과도 같겠구나 싶다.

솔직히 우리 쌍둥이 아들들이, 학교 공부가 아닌 게임에 올인하는 모습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평상시 공부하는 게 싫다면 최소한

시험기간동안만이라도 게임을 멈추고 학교 책이라도 보면서 공부했으면 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교과서가 방치된 물건였다.

처음엔 참 많이도 싸웠다. 나와는 생각의 방향, 우선순위, 마음의 깊이 등이 다른 아이들이 벽에 막힌 것마냥 이물감 들었으니까.

그러다 해도해도 티 안나고 성취율도 낮은 공부보단

즉각적인 피드백이 오는 게임에서 아이들이 성취감과 만족감을 더 느끼겠구나 이해 되면서 부터는 놔둔다.

공부가 고문 같아 싫다면 다른 데서 적성을 찾고 삶의 방향을 수정하면서 나아가 보라고.

 


 

많은 시행착오와 부딪힘 끝에 느낀 것들과 책속의 내용이 맞물리면서 더 큰 시너지를 낳은 것 같다.

부딪히고 까이며 울부짖다 똬리 속에서 찾아낸 탈출구들은 이기적으로 비칠 수 있으나 나를 진정시키려는 노력들였음을,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나를 조율하며 예민함을 이완시킬 방법을 찾을 필요성은 느낀다.

또한 자신의 장기를 살리면서 행복을 찾기 위해 바람과 강점, 환경의 접점을 찾는 건 어쩌면 죽을때까지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그 시기, 그 순간에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걸 찾기 위해

말을 단서로, 섬세한 감각으로 느끼면서, 나와의 대화를 통해 알아차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헷갈릴땐 상상 속의 어린 나에게 물어 봄으로써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 소소히 이루며

내 삶의 활력을 찾아간다면 살아 있는 매 순간이 감사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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