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잠시 멈추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도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 일이 생기고, 애써 외면했던 상처가 문득 떠오르기도 합니다. 정형남 작가의 장편소설 『새벽으로 가는 길』은 그런 삶의 고단함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주인공 우인은 세상에서 겪은 상처를 뒤로하고 외딴섬의 암자로 들어갑니다. 한겨울 눈보라 속에서 신해라는 여인을 만나면서 고요했던 그의 생활에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여기에 바다를 닮은 삶의 지혜를 간직한 어부 도옹과 도시에서의 실패를 딛고 살아가는 유종이 더해집니다.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인물들이 만나 서로의 삶을 나누는 과정이 소설의 중심을 이룹니다.이야기에서 눈길이 갔던 부분은 인물들이 상처를 극복하는 방식입니다. 지나온 시간을 없던 일로 만들거나 아픔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 속에서 하루를 살아가고, 함께 밥을 먹고, 말없이 곁을 지키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마음을 추스릅니다. 누군가의 거창한 위로보다 무심한 듯 건네는 말 한마디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큰 힘이 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작품은 개인의 아픔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군사독재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사회의 부조리도 이야기 속에 녹아 있습니다. 우인이 세상에서 겪은 고통을 이해하려면 개인의 사연뿐 아니라 그가 살아온 시대까지 살펴봐야 합니다. 역사의 흔적이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오래 남을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자연을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 역시 기억에 남습니다. 물고기를 잡고 약초를 캐며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생활은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일상과 사뭇 다릅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마음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 살아가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편안하게 다가왔습니다.30대가 되니 삶에서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고, 시간이 지남으로써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모든 것을 당장 바로잡으려 하기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과 하루의 평온함을 살피는 일이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새벽으로 가는 길』은 어둠이 끝나면 곧바로 모든 것이 좋아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상처는 남아 있고 삶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은 다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새벽이라는 말이 희망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지나온 시간을 부정하지 않은 채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 소설이 전하는 삶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새벽으로가는길[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