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물방울 모양
데라치 하루나 지음, 김지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데라치 하루나의 『기억은 물방울 모양』은 예쁜 제목에 이끌려 기대감이 컸던 도서입니다. ‘기억은 물방울 모양’이라는 문장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읽고 나니 제목이 단순히 아름다운 표현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모양을 바꾸고, 어느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다시 떠오른다는 사실과 잘 어울렸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된 것은 오래전의 기억을 지금의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였습니다. 같은 장면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바라보는 모습은 다를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말 한마디가 시간이 지난 뒤에는 다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상대의 마음을 나중에서야 조금 알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락하지 않는 친구가 생기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어도 함께했던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사람을 우연히 떠올렸을 때 그 시절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처럼, 기억은 현재의 삶 속에도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저 역시 지나간 관계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왜 그렇게 서운했는지, 왜 그때는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뒤늦게 알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반대로 당시에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기억으로 남기도 합니다. 기억이라는 것이 당시의 감정을 그대로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에 따라 다시 해석되는 것 같아요.

책 속에서 보석을 새로운 형태로 다시 만드는 이야기도 이런 생각과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오래된 물건을 버리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다시 사용하는 것처럼, 지나간 시간 역시 꼭 과거의 모습으로만 남아 있을 필요는 없다고 느꼈습니다. 관계가 달라지고 사람의 마음이 변해도 그 안에 있었던 시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살다 보면 과거를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나간 시간을 지금의 기준으로만 판단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의 나는 그때 나름의 이유와 감정으로 선택했고, 그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았던 것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나는 잊었다고 생각한 순간을 누군가는 오래 기억할 수 있고, 반대로 나에게 중요했던 일이 상대에게는 작은 장면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의 기억이 완전히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물방울’이라는 말도 읽고 나니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물방울은 손에 오래 붙잡아둘 수 없고 흘러내리면서 형태를 바꿉니다. 기억도 그런 것 같습니다. 붙잡으려고 할수록 조금씩 달라지고, 시간이 지나면 처음과는 다른 모습이 됩니다. 그렇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기억을 상기시켜보는 시간이 많았어요. 지나간 사람과 시간을 굳이 한 가지 의미로 정리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좋았던 기억은 좋은 대로, 아쉬웠던 기억은 아쉬웠던 대로 남겨두어도 괜찮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자연스럽게 달라질 테니까요.

『기억은 물방울 모양』은 과거를 돌아보게 하면서도 그 안에 계속 머물게 하지는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기억은 흘러가고 사람도 변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순간은 희미해지고 어떤 장면은 오히려 선명해집니다. 결국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바라보는 방식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기억은물방울모양 #문예춘추사 #데라치하루나 #북유럽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