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새로운 도시의 이야기를 탐독하고 낯선 골목의 풍경을 상상하는 일을 즐기는 여행 애호가로서, 이번 호에 담긴 벨기에의 소식들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지적인 즐거움을 한가득 안겨주었습니다. 흔히 초콜릿이나 맥주, 와플 같은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소비되던 국가의 이면을 다각도로 조명해 준 덕분에 벨기에라는 나라를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벨기에의 지리적 특성과 역사적 배경을 시작으로 유럽의 십자가라고 불릴 만큼 강대국들 사이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겪어야 했던 수많은 갈등과 화합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북부 플라망 지역과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남부 왈롱 지역의 문화적 격차, 그리고 수도 브뤼셀이 지닌 독특한 이중 언어 체계에 대한 설명은 매우 정교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분열과 공존의 역사가 어떻게 오늘날 벨기에만의 독특한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했는지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정보들은 주로 여행과 관련된 서적이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접하는 경우가 많아서 보통은 관광지 중심으로 소개가 되는데, 이번 잡지는 그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깊이 있게 다루어서 벨기에에 관해 알아가는 행복이 컸어요.특히 문화와 예술을 다룬 장에서는 숨은 보석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회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벨기에 특유의 우울하면서도 몽환적인 기후, 틴틴(TinTin)이나 스머프 같은 세계적인 만화 캐릭터들을 탄생시킨 만화 강국으로서의 면모가 상세한 데이터와 함께 서술되어 있습니다. 브뤼셀의 골목길 벽면을 채운 만화 벽화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당장이라도 카메라를 들고 그 거리를 걷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오르기도 했습니다. 예술이 미술관이라는 닫힌 공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과 주거 환경 속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안트베르펜을 중심으로 발전한 패션 산업과 브뤼헤의 중세 건축 보존 방식에 대한 기록도 기억에 남습니다. 전통을 무조건 허물거나 반대로 박제해 두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감각과 결합하여 도시의 새로운 생명력으로 재창조해 내는 그들의 가치관이 돋보였습니다.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의 본부가 위치한 국제 정치의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빼놓지 않고 다룹니다. 작은 영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무대에서 강력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책 전반을 통해 서서히 드러납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타협을 도모하는 벨기에인들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이 국제기구 유치와 운영에 커다란 밑바탕이 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먼 이국의 도시가 지닌 숨은 매력과 그들이 축적해 온 삶의 지혜를 온전히 흡수한 것 같아 마음이 풍성해지는 기분입니다. 도시의 과거를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다가올 시간에 대한 혜안을 전해주는 밀도 높은 텍스트를 경험할 수 있게 되어 즐거웠습니다.[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