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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읽는 당신이 옳다 - 공감과 경계로 짓는 필사의 시간
정혜신 지음 / 해냄 / 2025년 5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필사는 글만을 베껴 쓰는 것이 아니다. 필사를 통해 우리는 저자의 사상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고, 자신의 생각과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한다. 필사한 글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 당시의 감정과 생각을 되짚을 수 있다. 이는 현대인의 정신적 피로를 풀어주는 동시에, 일상에서의 작은 발견과 깨달음을 얻는 중요한 경험이 될 수 있다. 필사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인내심을 기르고, 집중하는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명상과도 같으며, 현대인들에게 필수적인 정신적인 휴식이 된다. 매일 한 장씩 글을 필사하면서, 우리는 느리지만 꾸준하게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나무가 천천히 자라듯이, 필사의 과정이 우리에게 내적 성장을 가져다준다. 이번에 필사와 함께 위안과 삶의 가이드를 해 줄 수 있게 꾸며진 필사책을 사용해 보았다. 정혜신님의 <손으로 읽는 당신이 옳다>였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이 책상 위 하얀 종이를 비춘다. 펜을 든 손이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문장을 따라 쓴다. 한 글자 한 글자, 마치 길 잃은 아이가 엄마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2024년 12월3일, 우리는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으로 또 다른 사회적 트라우마를 겪었다. 저자는 말한다, "심리적 재난은 이제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일상으로의 복귀가 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고.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어제의 상식이 오늘의 무용지물이 되고, 오늘의 확신이 내일의 착각이 되는 시대다. SNS 타임라인을 스크롤하다 보면 끝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진다. 누군가는 성공했다고, 누군가는 행복하다고, 누군가는 완벽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묻는다. 그럼 나는? 이 불안하고 초라한 나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하지만 펜이 종이 위를 미끄러지는 순간, 그 모든 소음이 잠잠해진다. 타인의 시선으로 재단된 나가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필사는 단순한 베껴 쓰기가 아니다. 그것은 내 안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정혜신이 그토록 강조했던 '집밥 같은 심리학'이 바로 여기 있다. 마음이 허기질 때마다 밥 먹듯이 펼쳐보는, 그런 일상적 치유의 시간 말이다.
현대인의 마음은 늘 상처투성이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갑옷을 입고 살아간다. 강해 보이려 애쓰고, 괜찮은 척하며, 아픈 것도 모른 척한다. 그렇게 쌓인 상처들이 어느 날 갑자기 터져 나온다. 혼자 있을 때, 깊은 밤에,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필사를 하다 보면 그런 상처들과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 써놓은 "괜찮다"는 말을 따라 쓰면서 정작 괜찮지 않은 내 마음을 발견한다. "사랑한다"는 문장을 옮기면서 사랑받고 싶었던 내 마음의 목마름을 느낀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문장들은 마치 상처받은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 같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나의 아픔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의 슬픔을 그 문장들이 대신 말해준다. "네가 아픈 게 당연해. 네가 슬픈 게 이상하지 않아. 너도 충분히 소중한 사람이야."
디지털 시대는 우리에게 속도를 강요한다. 빨리 읽고, 빨리 이해하고, 빨리 반응해야 한다. 하지만 필사는 정반대다. 천천히, 한 글자씩, 온전히 그 순간에 머물러야 한다. 느낌을 통해 사람은 진솔한 자기 존재를 만날 수 있고, 느낌을 통해 사람은 자기 존재에 더 밀착할 수 있다. 필사는 바로 그 느낌의 문으로 들어가는 열쇠다. 처음에는 답답했다. 이렇게 느릿느릿 쓸 시간에 책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는데, 왜 굳이 남의 글을 베껴 써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았다. 빠름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멈춤이야말로 가장 큰 용기라는 것을. 필사를 하는 동안 나는 완전히 현재에 머문다. 과거의 후회도, 미래의 불안도 잠시 내려놓고 오직 지금 이 순간, 펜끝에서 피어나는 문장들에만 집중한다. 그 짧은 순간이지만 온전히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시간이다.
역설적이게도 남의 글을 베껴 쓰면서 나만의 목소리를 찾게 된다. 다양한 작가들의 문체를 따라 쓰다 보면, 어떤 문장에서는 마음이 뛰고, 어떤 표현에서는 눈물이 나고, 어떤 단어에서는 희망을 느낀다. 그런 반응들이 바로 나의 정체성이다. "우는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우는 어른들을 열렬히 응원한다"는 정혜신님의 말을 따라 쓰다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자신을 돌아보며 흘리는 눈물이든, 오래전 상처를 마주하며 쏟아진 눈물이든, 그 어떤 눈물이든 다 괜찮다는 말에 내 마음의 문이 열린다. 어떤 날은 시인의 서정적인 문장을 따라 쓰며 내 안의 감성을 발견한다. 또 어떤 날은 소설가의 날카로운 통찰을 옮기며 내 안의 이성을 깨운다. 철학자의 사유를 따라가며 삶의 의미를 묻기도 하고, 에세이스트의 일상적 성찰을 통해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타인의 언어를 빌려 쓰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과정에서 나만의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다. 수많은 문장들이 내 안에서 발효되고 숙성되어 언젠가는 나만의 이야기로 피어날 것이다.
필사는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하루 30분, 한 페이지, 때로는 한 문장만 써도 된다.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매일 조금씩, 천천히, 내 마음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 작은 시간들이 모여 내 삶을 조금씩 바꾼다. 급하게 살던 나에게 여유를 주고, 무감각해진 나에게 감수성을 선물한다. 타인의 시선에만 매달려 살던 나에게 내 목소리를 찾아준다. 필사는 일상 속 작은 혁명이다. 소비하기만 하던 나에게 창조의 기쁨을 알려주고, 받기만 하던 나에게 나누는 마음을 깨워준다. 혼자인 것 같던 나에게 연결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다. 필사는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일과 같다. 매일 조금씩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햇볕을 쬐어주는 것처럼, 필사도 매일 조금씩 내 마음을 돌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