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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두운 밤, 세상은 잠잠해지고 우리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누군가의 아픔을 잠시나마 잊는다. 하지만 이 시간, 대다수의 가게들이 문을 닫고 어두운 골목이 침묵 속에 잠길 때, 한 곳에서는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바로 호랑골동품점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다. 평범한 골동품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곳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모은 공간이다. 그 이야기들은 단지 물건에 묻어 있지 않다. 물건 하나하나가 겪어온 고통과 외로움, 원한과 아픔을 담고 있으며, 그것들이 서로 이어져 한 세상,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 간다.
이곳의 물건들은 그저 오래되고 낡은 것들에 지나지 않지만, 그 속에 묻어 있는 사연들은 현실을 넘어선 감정과 연결된다. 이 소설은 호러나 미스터리의 장르 같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깊이를 지닌다. 겉으로는 으스스하고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그 속에는 이 세상에서 잊힌 존재들, 고통과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품고 있는 갈망과 위로의 메시지가 숨어 있다.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것들이 전하는 고요한 위로의 손길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위로의 손길은 결국 우리가 삶에서 찾고자 하는 가장 인간적인 감정, 사랑과 연대의 형태로 다가온다.
<호랑골동품점>은 물건만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잊힌 영혼들이 쉴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다. 여기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결국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깊은 교훈을 품고 있다. 고통과 상처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어루만지며 치유할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호랑골동품점은 그야말로 우리가 잊고 있던, 혹은 외면해왔던 인간의 본능적인 교감의 공간이다. 이 소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가 겪은 고통은 그저 지나가는 한 부분일 뿐,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만날 수 있다." 작은 메시지들이 결국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발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되는 것 같다.
호랑골동품점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물건을 매개로 전개된다. 그 물건들은 일게 골동품만이 아니라, 과거의 슬픔과 고통, 사랑의 단편들이다. 성냥갑에서 들려오는 영국의 어린 노동자들의 비극적인 죽음의 이야기, 그리고 그로 인해 그녀들의 영혼이 무엇인가를 외치고 있는 장면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이 성냥갑을 훔치고 난 후, 그 억울하게 죽은 소녀들의 목소리에 시달리게 되며, 자신이 외면했던 고통을 다시 직면하게 된다.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무심함과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되돌아보게 된다. 성냥갑이 주는 메시지는 너무도 강렬하다. "너의 고통은 소리 없이 지나가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외치고 있다."
이처럼, 호랑골동품점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와 깨달음을 선사한다. 각기 다른 시대의 인물들이 물건과 마주하며 삶의 위기를 맞이하고, 그 물건이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조금씩 변화를 경험한다. 한 공중전화기의 신비로운 능력에 의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게 된다. 그리고 그 전화기 속에서 친구의 목소리를 듣고, 그는 다시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가 느낀 변화가 초자연적인 사건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친구의 목소리라는 인간적인 교감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소설은 초자연적인 사건들 속에서 인간의 진정성과 연결될 수 있는 순간들을 그려낸다.
물건들은 저마다 고유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물건들과 마주하는 인물들은 결국 각자의 상처와 마주하며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경험한다. 어떤 이는 사회적 시선에 찢겨 나가는 직장인으로서 자아를 잃어버리고, 어떤 이는 악의의 희생양이 되어 자신을 끊임없이 책망하고 있다. 그들은 마침내 호랑골동품점에서 만난 물건들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이 그토록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다시 찾아가게 된다. 그 물건들이 가진 이야기는 과거의 고통만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작은 불씨가 된다. 그 불씨는 다시 인간 관계와 연결되어, 비로소 치유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점은 물건들이 결코 능동적으로 사람을 조종하거나 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오래 묵혀두었던 감정을 끄집어내고, 그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마주하지 못했던 감정을 드러내게 하고, 그것을 치유하는 것은 결국 물건이 아닌, 그 물건을 통해 다시 찾아낸 인간적인 연대이다. 이 연대의 힘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게 강력한 변화의 원동력이 된다. 물건이 전하는 이야기는 그저 과거의 한 부분일 뿐, 그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하며 삶을 새롭게 이어간다.
책은 감정을 치유하는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가 매일 겪는 고통과 아픔 속에서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준다.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주 간단하다. 바로 사랑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사랑을 주면, 그거 하나로도 세상은 달라진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찾아야 할 진리다.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의 아픔을 나누며, 또 다른 이의 아픔을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소설을 읽고 나면서, 나는 내가 또 다른 누군가의 호미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호미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해주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존재이다. 우리는 모두 그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기적들이 모여, 세상은 점차 따뜻해진다. 나 또한 언젠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이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우리가 세상에서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겪은 상처는 결코 단지 우리만의 것이 아니며, 누군가와 나누어야만 진정으로 치유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