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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나에게 독이 되는 사람들 - 내 삶을 은밀히 착취하고 파괴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리사 이라니.안나 에케르트 지음, 서유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5년 10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Lisa Irani와 Anna Eckert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임상심리학자로, 2020년 함께 심리학 팟캐스트 'Cute aber Psycho'를 시작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팟캐스트는 45만 회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독일어권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TikTok에서도 9만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두 심리학자는 실제 임상 현장에서의 경험과 학문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복잡한 심리학적 개념들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능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에 그들의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서서히 나에게 독이되는 사람들>이었다. 책은 현대 사회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독성 관계의 문제를 다루며, 문제를 진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책의 가장 독창적인 부분은 '심리적 면역 체계(psychologisches Immunsystem)'라는 개념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우리 몸이 바이러스와 세균에 대항하기 위해 면역 체계를 갖추고 있듯이, 심리적으로도 독성 있는 관계와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면역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독성 관계를 피하거나 벗어나는 것을 넘어서, 근본적으로 그러한 관계에 휘말리지 않도록 예방하고, 설령 그러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건강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수동적 피해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자신의 정신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을 이야기 한다. 저자들은 심리적 면역 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도구들과 전략들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독자들이 장기적으로 독성 관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돕는다.
책의 상당 부분은 나르시시즘적 성격 구조를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들은 나르시시즘이 독성 관계의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성격 구조들 역시 독성 관계의 역학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포괄적 접근은 독성 관계를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로만 한정하지 않고, 더 넓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독성 관계의 특징은 명확하다. 협박, 평가절하, 거짓말, 그리고 조종이 일상을 지배하는 관계가 바로 독성 관계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역학이 연인 관계뿐만 아니라 친구, 부모, 동료, 상사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각각의 관계 맥락에서 독성 역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방법이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독성 관계의 패턴을 인식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독성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들은 독성 관계의 초기 신호들을 식별하는 방법과, 이러한 관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악화되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이론적 설명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심리학적 도구들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임상 경험과 팟캐스트를 통해 수집한 실제 사례들을 바탕으로, 독자들이 일상생활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들을 제시한다. 책에서 제시하는 도구들은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독성 관계를 인식하고 이해하기 위한 도구들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관계 패턴을 점검하는 체크리스트, 감정 일지 작성법, 그리고 관계의 건강성을 평가하는 기준들이다. 둘째, 독성 관계에 대응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경계 설정 기술이다. 저자들은 특히 나르시시스트나 조종적인 사람들과 대화할 때 유용한 구체적인 문장들과 대응 방식을 제공한다. 셋째, 독성 관계로부터 회복하고 심리적 면역 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자기돌봄 전략들이다. 이러한 도구들은 심리학적 이론에 근거한 검증된 방법들이라는 점에서 신뢰성이 높다. 또한 저자들은 각 도구를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여, 독자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적절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책은 전문적인 심리학 지식을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 쉬운 형태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뛰어난 대중 심리학서다. 저자들은 복잡한 심리학적 개념들을 쉬운 언어로 설명하면서도, 학문적 엄밀성을 잃지 않는다. 이는 두 저자가 학계와 대중 매체 양쪽에서 활동하며 쌓은 경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친근하고 대화적이면서도 전문적이다. 저자들은 독자를 존중하며 대하면서도, 때로는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이는 독성 관계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특히 중요한 요소다. 많은 독성 관계의 피해자들은 자신이 문제라고 느끼거나,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린다. 저자들은 이러한 감정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동시에 변화와 회복이 가능하다는 희망의 메시지다. 또한 다양한 사례 연구와 예시들을 포함하고 있어, 우리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볼 수 있는 거울을 제공한다. 사례들은 익명화된 실제 상담 사례나 커뮤니티에서 수집한 경험담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현실감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를 통해 자신만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 배울 수 있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심리적 면역 체계' 구축 방법은 단기적인 대처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자기인식 향상, 경계 설정 능력 강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기술 등은 독성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술들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연습 문제들과 자기점검 도구들은 실제로 활용 가치가 높다. 이를 통해 자신의 관계 패턴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변화가 필요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단계적으로 제시된 실천 방법들은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이 될 것 같다.
책은 현대 사회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주제를 다룬 시의적절하게 다루고 있다.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간관계가 더욱 복잡해지고, 직장과 사회에서의 스트레스가 증가하는 오늘날, 독성 관계는 많은 사람들이 직면하는 현실적인 문제다. 이 책은 그러한 문제에 대한 실질적이고 근거 있는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저자들은 독성 관계의 문제를 개인의 약점이나 실패가 아닌,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로 정상화 한다. 동시에 피해자들에게 무력감을 주는 대신,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자기효능감을 심어준다. '심리적 면역 체계'라는 개념은 독자들이 수동적 피해자에서 능동적 행위자로 전환하게 할 것이다. 물론 책이 모든 독성 관계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능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심각한 학대 상황이나 복잡한 심리적 트라우마를 다루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저자들도 이 점을 인정하며, 필요한 경우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것을 권장한다. 그러나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관계를 재평가하고, 필요한 변화를 시작하는 데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