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울때 먹는 음식 혹은 눈올때 먹는 음식 - 을밀대 평양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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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방영된 <역사스페셜> 가운데 을지문덕이 승리했다는 내용의 ‘살수대첩’ 편을 보고 있는데, ‘을밀대’라는 정자가 눈에 들어 왔다. 그렇다. 을밀대는 평양직할시 중구역 경산동에 있는 고구려시대의 누정(樓亭)이자 서울의 평양냉면 전문점 이름이기도 하다. 중국에 있는 그 광활한 자금성이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집 이름으로 쓰이고 있듯이. 을밀대라는 이름은 먼 옛날 을밀 선녀가 그곳의 기막힌 경치에 반해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다. 을지문덕 장군의 아들인 을밀 장군이 그곳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내가 진정한 ‘평양냉면’을 맛본 것은 <을밀대>가 처음이었다. 조금씩 공간을 늘려 나간 흔적이 다분히 보이는 이곳은, 도대체 어디까지가 경계선인지 궁금할 정도로 영역을 넓혀 가고 있었다. 식당의 외양은 낡은 티를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는데, 그런 분위기가 오랜 역사를 잘 보여 주는 듯해서오히려 정겨웠다(사실 1950~1960년대는 내가 태어나지도 않은 시절이지만……).

어떤 사람은 <을밀대> 냉면의 특징인 은은함과 담백함을 두고 아무 맛도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지만, 내 의견은 다르다. 매운맛을 포함하여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곳의 냉면은 은근 중독성이 있었다. 첫 맛은 “괜찮은데?” 정도였지만, 그 후로 2~3일 정도 지나자 그 맛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또 가서 먹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중고나라 소심녀는 약 2주일이 지난 뒤에 또 먹고 싶다는 고백을 했다. 사람에 따라 후폭풍도 시간을 달리해서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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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방영된 <30분 다큐>의‘ 평양냉면의 진실’ 편에서도 실제 평양냉면의 맛이 그다지 자극적이진 않았다는 내용이 등장했다. 오히려 새터민과 실향민이 서로 엇갈리게 증언하고 있었는데,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를 두고 실향민이 이야기하는‘ 아지노모토’라는 화학 조미료를 언급하면서 평양냉면이 남한으로 넘어오면서 맛이 변질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내놓았다.
아지노모토는 1908년에 일본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조미료로, 감칠맛이 중요한 한국 음식, 특히 그중에서도 냉면에 잘 어울렸다고 한다. 그 실향민도 아지노모토를 조금 넣으면 맛이 더 좋아졌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본래 평양냉면은 꿩고기를 푹 삶아 만든 육수에 동치미를 적당히 섞어 메밀 면을 말아 먹는 형태였다고 한다. 그래서 자극적인 맛보다는 은은함이 더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북한에 가 볼 수는 없으니, 확실한 건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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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보다 뒤늦게 태어난 나로서는 원조 평양냉면과 <을밀대>에서 파는 평양냉면의 차이를 비교할 길이 없다. 다만 자극적인 맛이 없다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되는 것으로 볼 때, ‘비교적 본래의 맛에 가깝게 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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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대 녹두전>

 

<을밀대>의 육수는 정말이지 담백하고 은은했다. 내 입맛에는 괜찮았는데, 대중적이지 않다는 말에 조금 놀랐다.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 맛을 이어가는 것이 좋았다. 그만큼 <을밀대> 특유의 냉면에 반한 단골들이 많다는 점에서, 마니아나 장인정신을 가진 사람도 훌륭히 경제활동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생각에 살짝 흥분되기도 했다.
물론 옛날에도 폐인이나 마니아 같은 단어가 통용되지 않았을 뿐이지, 그런 문화는 분명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요즘 같이 SNS가 성행하지 않았으니, 정보가 더디게 알려져서 그 수는 적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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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대 영업시간 : 11:00 ~ 22:00

전화 : 02-717-1922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147-6번지, 주차시설 있음

˙물냉면 9,000원
˙사리 3,000원
˙비빔냉면 9,000원
˙회냉면 12,000원
˙녹두전 8,000원

 

찾아가는길 : 6호선 대흥역 2번 출구로 나와 염리동 주민센터 골목으로 들어가면 오른편에 위치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마케팅 구루인 세스 고딘은 자신의 저서 《이상한 놈들이 온다》라는 책에서, 별종의 세상이 오고 있다며 이제 대중을 잊으라고 말했다. 여기서 별종이란 대중적인 것을 포기하고 자신이 선택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을밀대> 역시 대중을 포기한 별종의 식당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이런 식당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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