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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평점 :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정보라 연작소설집
출간 기념 무크지
해양 생물을 테마로 하는 외계인 이야기!
‘저주 토끼’를 읽고 정보라 작가님이 많이 궁금했다. 신비스럽고 기괴하면서 환상적이지만 현실보다 더한 현실감각을 관통하는 이야기들에 홀리듯 빠져들었는데 이번 무크지를 읽고 그 궁금증이 해소됐다.
부조리한 현실에 맞대응하며 날을 세우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작가님의 삶이 소설 속에 녹아 들었음을...
무크지라 연작 중 ‘문어’라는 단편만 접하게 됐는데, 이번 연작도 자전적 이야기를 녹여 쓰셨다고 한다.
‘문어’는 강사법 제정 후 노동 환경 악화와 대량 해고 사태에 맞서는 시간강사들의 농성 현장이 배경이다. 주인공 ‘나’는 아침마다 술 냄새 가득한 농성 천막에 가서 술병을 치우고 위원장님을 깨우고 여러 잡다한 일을 하며 농성에 참여한다. 그러다 비린내 가득 풍기며 출몰한 문어 외계인!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라고 말하는데..
그런 문어를 위원장님은 전화기로 때려잡아 먹는다. 위원장님은 문어를 잡아먹은 죄, ‘나’는 그 현장에 같이 있었다는 죄로 ‘나’와 ‘위원장님’은 국가정보원 사람들로 보이는 검은 정장 입은 사람들에게 수시로 불려 가 심문을 받는다.
외계인이 문어라는 설정도 웃긴데, 그렇게 쉽게 죽는 게 더 웃기다. 지구인들보고 항복하라 말하면서 힘 한번 제대로 못 써 보고 죽다니, 실소가 절로 나오는 장면이다.
수차례 심문이 끝나고 ‘나’는 ‘위원장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꺄오~~갑자기 로맨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 전개가 쏠쏠하다.
위원장님은 왜 문어를 잡아먹었을까? 강사들의 존폐 위기를 막기 위해 맞서는 상황에 문어까지 항복하라니...항복하기 싫어 버티고 있는데 이제 문어라는 놈도 항복하라니.. 위원장님은 소위 빡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농성장에서 늘 술에 취해 있는 모습도 보이지만, 그런 문어를 잡아먹어 버리는 대범함은 물론 국가정보원 사람들에게도 굴하지 않는 위원장님의 단단한 태도를 지켜보며 ‘나’가 어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항복하지 않는다. 나와 위원장님은 데모하다 만났고 나는 데모하면서 위원장님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도 함께 데모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교육 공공성 확보와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 해방과 지구의 평화를 위해 계속 함께 싸울 것이다. 투쟁’
마지막 이 대목은 작가님이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은 아니었을지...노년에도 계속 데모하러 다니고 싶어 관절을 소중히 해야겠다는 작가님! 앞으로도 지구 평화를 위해 핍진한 현실을 가슴 아프게 목도하며 폭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밖에 ‘대게, 상어, 개복치, 해파리, 고래’ 연작이 수록되어 있으니 또 어떤 폭로가 기발하게 펼쳐질지 기대된다. 특히 ‘대게’ 소설부터 빨리 읽어 보고 싶다. 수족관 안에서 구조 요청을 하는 러시아 노동자 출신 대게가 주인공이라니~~ 정식 출간 너무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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