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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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 내내 흰 것을 떠올리고 그 속에서 다가오는 의미들을 느껴보았다

해방, 자유, 시작, 부담, 한적함, 외로움, 순결, 부활. .

작가의 세계에서 '흰' 것은 무엇일까. .
아마도 약함이 아니었을까. .이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삶의 고통을 이겨낼 수 없는 약함. .

막 태어난 생명이 그렇듯, 젖은 땅에 떨어지는 눈송이가 그렇듯, 모래에 부서지는 하얀 파도가 그렇듯, 햇빛에 사라질 아침 안개가 그렇듯. .

작가는 그 약함을 사랑했고, 그 생명의 순간들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자신의 삶으로 위로를 보내는 것 같다.

"얼굴로, 몸으로 세차게 휘몰아치는 눈송이들을 거슬러 그녀는 계속 걸었다.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
《흰》, 눈보라 中

✅ 한강작가의 글은 살아있는 꽃 같은 느낌이다.
향이 아주 오래 기억되는 그런 꽃.
《채식주의자》에서도 느꼈지만, 아마 이 글도 오래도록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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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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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영하 작가님의 산문 『여행의 이유』 를 읽으며 ❛내공이 남다른 작가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 마치 매우 믿음직한 뱃사공에게 몸을 맡기고 (멍때리며) 바다를 누비는 느낌이랄까….그러나 전혀 지루하지 않고, 아주 편안한 그런 느낌이 좋다.글이 요란하지 않아 술술 익히면서도, 묵직한 메시지가 가슴을 툭툭 치고 들어오는, 책장은 얇지만, 절대 쉬이 넘겨지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 이었다.

<오직 두 사람> 모국어 같은 존재?

🏷아빠하고는 달라요. 저에게는 아빠가 모국어예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운명 같은 거예요 p.38

이 글귀를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모국어 같은 존재란 어떤 느낌일까? 부모의 언어로 정해져 버리는 ‘모국어’라는 운명적 요소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곱씹고, 또 곱씹으니 흐릿하던 이미지가 조금 뚜렷해진다.

모국어 같은 관계는 사실 역설적이게도 언어적 소통이 필요 없는 관계, 아니, 언어적 한계를 뛰어넘는 관계, 중독이나 익숙함과는 조금 결이 다른, 부재로써 온전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런 관계가 아닐까.. “군중 속의 고독” 이란 말이 너무 잘 이해된다. 같은 모국어를 쓰는 군중 속에 단 한 명, 모국어 같은 존재가 함께 있다면 외롭지 않겠지만, 그 단 한 명이 사라지면 모든 모국어는 소음이 될 뿐이다.

<아이를 찾습니다>, <신의 장난> 고난, 그 후는?
이 두 단편 소설의 결은 다르지만, 모두 고난 그 후에 기대했던 희망을 상실한다. <아이를 찾습니다>에서 유괴된 아들을 찾은 부부는 온전히 회복될 것이라 생각했던 행복이 어긋났고, <신의 장난>에서 4명의 신입사원들은 베이커가 221번지 B호의 방을 탈출했다는 기대와 달리 훨씬 더 어둡고 음산한 방에 갇힌다.

두 단편 읽은 후 삶에서 고난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고난은 삶의 이벤트가 아니다. 탈출해야 하는 지하감옥도 아니고 견뎌내야 하는 지옥 사막도 아니다. 고난 또한 그저 살아내야 하는 삶의 일부이다. 고난의 시간을 삶에서 떼어내어서는 행복의 조각을 맞출 수는 없다.

온전한 인생이란 고난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것 아닐까. .

고난이 없던 어제는 어차피 내일이 될 수 없다. 오늘을 받아드려야 내일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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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출간 20주년 기념 초판본 헤리티지 커버)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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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멕시코로 갈 필요도 없다. 오늘날 대만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 '자신의 역사'로 김영하 작가가 십여 년 전 불러낸 이민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다❞

(대만 독자, 장야니, <언제부터 개인이 나라를 선택했지? 미안하지만 국가가 우리를 선택하는 거야"> 김영하 『검은 꽃 』을 읽고」)중
https://okapi.books.com.tw/article/13088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이 대만에서 '2020년 openbook 좋은 책'으로 선정되었다. 👏🏻👏🏻그 소식을 듣고 대만에 거주하는 한국인으로서 읽어야겠다는 의무감과 ❛왜 이 책이 대만 사람들에게 환영받았을까?❜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저자의 『검은 꽃』은 1905년 꿈과 희망을 품고 멕시코 떠난 1032명 조선인의 애니깽 이민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은 조선을 떠나 '일포드호'에 승선하지만 멕시코에 도착해서야 노예로 팔려왔다는 사실에 꿈과 희망은 사라지고, 심지어 돌아갈 국가조차도 사라져 버린다. 즉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검은 꽃'처럼 세상에서 증발되어 버린다. 저자는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그들의 삶과 역사의 한 흐름을 빌려 국가의 존재가치와 속성에 대해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그들에게 '국가'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 질문은 곧 나의 호기심의 답이 되었다. 대만 사람들에게 '국가'는 어떤 의미일까?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치 슬로건 아래 대만은 세계에서 고립되고 있으며 중국이 성장할수록 그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특히 2019년부터 시작된 홍콩 시위는 대만 사람들의 '국가 존속' 문제의 불안감을 극도로 몰아갔다. 대만 독자 장야니(님)의 서평에서 '대만 사람들은 자신의 삶으로 애니깽 이민자들의 삶을 공감한다'는 글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그들의 불안감을 체감하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일으켰다. 이 책은 대만 사람들에게 국가의 의미를 되새기고, 또 본성인들은 이방인으로의 삶에서 많은 공감을 받는 것 같다

💬아이러니호(號)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민자들의 인생의 배에 승선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배를 아이러니호(號)라고 부르고 싶다. 저자는 그들의 삶 곳곳에 아이러니를 심어두었고 나는 그 아이러니들을 만날 때마다 심하게 울렁거림을 느꼈다.

<아이러니1_국가>
조선이라는 국가를 버리듯 떠난 사람들은 국가의 부재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들의 국가를 꿈꾸며, 신분제도에 눌렸던 그들이 국가를 세워 지배 계급의 욕망을 드러낸다.

<아이러니2_종교>
천주교가 대세인 환경에서 샤머니즘의 예언 실현, 신부의 신내림. . 광신도의 십자가 처형. . 역설의 끝판왕

<아이러니3_개인의 삶>
어느 인터뷰에서 저자는 '검은 꽃'을 다양한 색의 꽃들의 합이라고 했다. 즉 멕시코로 떠나는 배안에서 신분과 유교 정서가 무너져 서로 엉키듯 개인의 정체성을 잃고 새로운 군중으로 태어나는 그들의 삶을 뜻한다.

그러나 저자의 펜 끝에서 검은 꽃으로 잠들어 있었던 그들의 삶은 개개인의 꽃으로 다시 피어난다. 연수의 생명력 강한 붉은빛, 이정의 외로우나 강한 파란빛, 박수무당의 알록달록한 빛, 박서방의 흰빛, 혁명가 이발사의 따뜻한 빛. .

나는 이 책을 '검은 꽃'이 아닌, 개개인의 빛을 가진 꽃으로 기억함으로써 나라를 잃어 슬펐을 그들의 삶에 위로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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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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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고 평범한 개인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복잡한 그물망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이 물음에서 장류진의 첫번째 소설집이 시작된다.❞

나는 현실을 벗어나 허구의 세계로 도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리얼리즘 소설이라 그랬을까? 나는 꼼짝없이 내 세계에서 동창회에 (강제로) 참석당한 기분이다.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없는 수다의 즐거움이란. . )

너 사는 세계나, 나 사는 세계나 '도찐 개찐', 모든 주인공들의 이야기에서 나를 본다. 너무 노골적인 자본 논리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고, 기브 앤 테이크가 어려운 시절에 나도 누군가에게 민폐는 아니었는지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4대 보험, 상여금, 실비보험 등이 주는 따뜻함을 얻기 위해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낭만? 꿈? 철학? 종교? 신념? 이런 가치들과 균형을 이루며 살아간다는 게 가능하긴 한가? 내 속에서 들려오는 자못 냉소적인 소리에 나 스스로도 놀랐다.

유학 생활 중 결혼이 자본주의 논리에 맞지 않다는 것은 알고 시작했지만, 외국에서 학생 신분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느끼는 불안감은 늘 나의 생존능력을 의심하게 한다. 세상이 너무 멀쩡히 잘 돌아가니 결국 나의 문제인가? 라는 생각에 가닿으면 내 삶의 근력이 되어주던 꿈과 노력들은 허무하게도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버린다.

그래서 나는 이 짧은 이야기들을 만나 다행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모두 하나같이 (심지어 야무지게) 자본주의 시스템에 잘 적응해 나갔다면 나는 패배감으로 이 소설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행히도 저자는 탁월한 생존 감각으로 잘 적응해 나가는 누군가에게는 '박수'를, 아직 꿈과 현실 언저리에서 고민하는 나에게는 '격려와 응원'을, 꿈은 잠시 서랍에 넣어두고 현실이 주는 안락함에서 만족하는 누군가에게는 괜찮다고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잘 살 수 있을까. 부디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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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에게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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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팬데믹 시대에 그것은 모든 이들이 두 팔로 들어볼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생존하고 싶다고. 전염병으로부터, 불행으로부터, 가난이나 상실이나 실패로부터❞

💬저는 '생존자'입니다
영초롱이가 복자에게 박수를 보내듯 모두에게, 그리고 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넘치도록, 넘쳐서 머리에 고이도록....👏🏻👏🏻영초롱이가 고고리섬에서 맞았던 양 뺨을 갈기는 듯 한 칼바람 같은 실패들에 항복하지 않고 잘 견디고, 용인하여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생존자다.

영초롱이의 삶 속의 실패들을 따라 걸으며, 내 인생의 실패의 순간에 다시 서본다. 원하던 고등학교, 대학교 진학의 실패, 부끄러움에 연락을 끊었던 친구들과의 인연, 꿈과 현실 사이에서 포기와 실패를 반복하던 순간들을.. 훗날, 누군가의 실패는 미화되어 성공담의 꽃이 되기도 하지만, 사실 나에게는 매 순간의 크고 작은 실패들 모두 삶 전체의 패배로 다가왔고, 매섭고 무거웠다. '용인' 이라는 허세는 부릴 힘도 없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여기 생존해있다. 성취와 성장 안에 실패와 포기라는 빛도 적절히 섞여서 영초롱이가 보았던 나무에 걸린 방패연처럼 찢어졌지만, 바람이 불면 여전히 오색의 아름다움을 뽐내면서...생존하고 있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생존해 나갈 것이다.

❝언젠가 나뭇가지에 걸린 방패연을 한참 동안 올려다본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다 찢기고 나서도 여전히 바람이 불면 그것을 타고 하늘하늘거리면서 오색의 아름다움을 뽐내던 장면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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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떠올리면 나는 제주4.3 학살의 구덩이가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나에게 제주는 유채꽃의 화려함을 뒤집어쓴 슬픔과 억울함이었다. 그래서인지. . 영초롱이의 외롭고, 어두운 제주가 낯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반가웠다. 사람들이 많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제주의 화려함 뒤의 아픔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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