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처럼 그녀 앞에 말없이 서 있던 공작은 갑자기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런 말을 들을 가치가 있는 사람은 여기에 아무도 없어요!" 아글라야가 폭풍처럼 퍼부어댔다. "여기 있는 사람은 죄다, 죄다, 당신의 새끼손가락만도 못하단 말예요, 당신의 지혜, 당신의 마음씨에 죄다 미치지 못한다고요! 당신은 누구보다 정직하고, 누구보다 고결하고, 누구보다 훌륭하고, 누구보다 선량하고 누구보다 현명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당신이 방금 떨어뜨린 손수건을 몸을 굽혀 주워들 자격조차 없어요...... 대체 무엇 때문에 당신은 자신을 비하하고, 누구보다 낮은 위치에 자신을 세우는 거죠? 어째서 당신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왜곡하는 거예요. 어째서 당신에겐 자부심이란 게 없냐고요?"
"맙소사, 재가 미친 거 아냐?" 리자베타 프로코피예브나는 손뼉을 탁쳤다.
"가난한 기사! 만세!" 콜랴가 열광해서 외쳤다.
"잠자코 계세요!.. 다들 어떻게 감히 나를 여기서, 어머니 집에서모욕하냐고요!" 아글라야는 느닷없이 리자베타 프로코피예브나에게대들었는데, 이미 그 무엇도 신경쓰지 않고 앞을 막는 건 전부 뛰어넘으려는 히스테리 상태에 빠져 있었다. "왜 다들, 다들 하나같이 나를 괴롭히냔 말예요! 공작, 왜 저 사람들은 이 사흘 내내 당신 때문에 나를귀찮게 하는 거죠? 나는 절대로 당신한테 시집 안 가요! 똑똑히 알아둬요, 절대 안 간다고요! 그걸 알란 말예요! 당신 같은 우스꽝스러운 사•람한테 과연 시집갈 수 있겠어요? 지금 거울이라도 한번 보시죠, 당신・어쩨서, 어째서 그 사람들은 내가 당신한이 어떤 꼴로 서 있는지! - P42

데 시집갈 거라며 나를 놀려대는 거죠? 당신은 분명 그 이유를 알겠죠!
당신도 그 사람들과 작당해서 음모를 꾸미고 있을 테니!"
"아무도 널 놀린 적 없어!" 아젤라이다가 깜짝 놀라서 중얼거렸다.
"그런 생각을 한 사람도 없고, 그런 말이 나온 적도 없어!" 알렉산드라 이바노브나가 소리쳤다.
"누가 얘를 놀렸지? 언제 애를 놀렸어? 누가 감히 얘한테 그런 소릴했느냐 말야? 아니면 얘가 헛소리라도 하는 거냐?" 리자베타 프로코피예브나는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모두를 향해 물었다.
"다들 그랬잖아요. 모두 하나같이 그랬잖아요, 이 사흘 내내 그랬잖아요! 나는 절대로 절대로 저 사람한테 시집가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외치더니 아글라야는 비통한 눈물을 쏟으며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저 사람은 아직 너한테 청혼을……………
"나는 당신께 청혼한 일이 없습니다. 아글라야 이바노브나." 공작의입에서 얼떨결에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뭐어?" 리자베타 프로코피예브나는 경악과 분노와 공포에 휩싸여한 음절 한 음절 띄엄띄엄 말했다. "뭐어요?"
그녀는 자기 귀를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공작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나는 다만 아글라야 이바노브나에게 분명히 밝혀두고 싶었고...... 삼가 해명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럴 생각은.. 아글라야 이바노브나에게 청혼할 영광을 얻을 의도는 전혀 없었을뿐더러・・・・・・ 앞으로 언젠가 같은 생각조차 전혀 없었다고 말입니다...... 이 - P43

은 대답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무슨소리를 입속으로 우물거린 모양인데, 그러자 장교는 그를 아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예브게니 파블로비치에게 시선을 돌렸다. 순간, 장교는 자기 친구가 왜 공작에게 자기를소개할 생각을 했는지 퍼뜩 알아채고는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짓더니,
다시 아글라야에게 말을 건넸다. 이때 아글라야가 얼굴을 확 붉힌 것을알아챈 사람은 예브게니 파블로비치뿐이었다.
공작은 다른 사람들이 아글라야와 얘기를 나누면서 그녀의 환심을사려 애쓰고 있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고 자기가 그녀 옆에 앉아있다는 사실마저 때로는 거의 잊다시피 했다. 이따금 그는 어디론가 훌훌 떠나서 여기서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는데, 그저 혼자서 상념에 잠길 수 있고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이라면, 음울하고 황량한 곳이라도 마음에 들 것 같았다. 아니면 하다못해 자기 집 테라스에라도 가 있었으면, 다만 거기에 아무도, 레베제프도 그의 아이들도 찾아오지 말았으면 싶었다. 거기서 자기 소파에몸을 던지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하루 낮이 가고 밤이 가고 다음날 낮이 다 지나갈 때까지 마냥 그렇게 누워 있고만 싶었다. 순간순간산들이, 그 산속에 있는 친숙한 어느 한곳이 꿈결처럼 생각나기도 했는데, 그가 언제나 즐겨 떠올리고, 아직 거기서 살고 있을 때 즐겨 올라갔던 장소였다. 그곳에서 발아래로 내려다보곤 했던 마을, 아득히 내려다보이던, 하얀 실줄기처럼 어렴풋이 빛나던 폭포, 흰 구름, 버려진 옛성채. 오, 지금 그곳에 가서 한 가지만을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오! 평생토록 그것만을 천년을 두고 그것만을 생각해도 족하만! 그리고 이곳 사람들이 자기를 완전히 잊는다 해도 상관없다. 그래 - P49

가를 불현듯 깨달았다. 거기엔 공포를 표현할 어휘가 빠져 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공포였다! 그는 지금 바로 이 순간에 그 공포를 완전히 느꼈다. 그는 이제 나름의 독특한 이유에서 믿고 있었고, 완전히 확신하고 있었다. 이 여자는 미쳐버린 것이다. 만약 어떤 여자를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하거나 그런 사랑의 가능성을 예감하는 자가 갑자기 그 여자가 사슬에 묶여 철창 속에 갇힌 채 감시인의 몽둥이 아래 위협당하는 모습을 목격한다면 어떨까 그런 느낌이야말로 지금 공작이 느끼는 바와 어느 정도 비슷할 것이다.
"왜 그러세요?" 아글라야가 공작을 돌아보면서 천진스럽게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빠르게 속삭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순간 이상하리만큼번쩍이는 그녀의 새까만 두 눈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지어 보이려 했으나, 순식간에 그녀를 까맣게 잊은 듯 갑자기 다시 눈을 오른쪽으로 돌려 또다시 자신의 가공할 환영을 쫓기 시작했다.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는 이 순간 아가씨들이 앉아 있는 의자 바로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예브게니 파블로비치는 알렉산드라 이바노브나에게 뭔가 분명 아주우습고 재미난 얘기를 빠른 소리로 신이 나서 계속하는 중이었다. 공작은 아글라야가 갑자기 반쯤 속삭이는 소리로 "아니, 저 여자가......" 하고 말한 것을 기억했다.
이것은 불분명하고 입 밖으로 내다 만 말이었다. 아글라야는 곧바로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으나,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니는 딱히 아무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는 양지나가다가 문득 그들 쪽으로 몸을 홱 돌렸는데, 마치 그제야 예브게니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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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모두 미치광이 짓을 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하지만 공작 그에게는 이 여자를 정욕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거의 생각도 할 수 없는일인데다, 거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일로까지 여겨졌다. 아무렴, 그럴 리가 있나! 그렇지 않아, 로고진은 자기 자신을 중상하고 있는 거다.
그는 고뇌할 수도 있고, 연민을 느낄 줄도 아는 커다란 가슴을 지닌 사람이다. 그가 모든 진실을 알게 되고, 이 상처투성이의 반미치광이 여자가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가를 확실히 알게 되면 그때는 전에 그녀때문에 받았던 모든 고통을 과연 용서해주지 않겠는가? 그녀의 하인이되고, 형제가 되고, 친구가 되고, 길잡이가 돼주지 않겠는가? 연민은고진 자신을 깨우쳐주고 가르쳐줄 것이다. 연민이야말로 모든 인류의가장 중요하고, 어쩌면 유일한 생존법칙이니까. 오, 그는 로고진 앞에•얼마나 용서받지 못할 죄를, 얼마나 비열한 죄를 지었는가! 아니시아인의 영혼이 어둠 속‘이 아니라, 그 자신의 영혼이 어둠 속이다. 그래서 아까 그처럼 끔찍한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냐.  -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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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를 버려둔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쪽 구석으로 물러나더니,
삐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서서 띄엄띄엄 끊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 당신은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게 될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가냐는 완전히 파멸한 사람처럼 서 있었다. 콜라는공작에게 달려가 그를 포옹하고 입을 맞추었다. 뒤이어 로고진, 바랴,
프치츠인, 니나 알렉산드로브나, 심지어 노인 아르달리온 알렉산드로비치까지 모두 앞다투어 몰려왔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공작은 여전히 그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띠고 사방을 향해 중얼거렸다.
"암 후회하고말고!" 로고진이 외쳤다. "부끄러워하게 될 거야, 간카,
이런………… 양(그에게는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같은 사람을 모욕하다니! 공작, 나는 자네가 아주 좋아, 저치들은 그냥 내버려둬, 침이나뱉어주고, 나하고 함께 가세! 이 로고진이 자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알게 될 걸세!"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 역시 가냐의 행동과 공작의 대답에 무척 충격을 받았다. 조금 전까지의 가장된 웃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느 때처럼 창백하고 사색적인 얼굴은 지금 새로운 감정으로 동요하고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 조소의 빛을 얼굴에 그냥 남겨두려고 애쓰는 것 같아 보였다.
"맞아, 저 사람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 그녀는 아까 품었던 의문이 문득 다시 떠올라 갑자기 진지한 어조로 되었다.
"그래 당신은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당신은 정말 지금 보여주신그런 사람인가요? 아니,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갑자기 공작이 진제1부 211 - P210

가나를 버려둔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쪽 구석으로 물러나더니,
벽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서서 띄엄띄엄 끊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 당신은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게 될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가냐는 완전히 파멸한 사람처럼 서 있었다. 콜라는공작에게 달려가 그를 포옹하고 입을 맞추었다. 뒤이어 로고진, 바라프치츠인, 니나 알렉산드로브나, 심지어 노인 아르달리온 알렉산드로비치까지 모두 앞다투어 몰려왔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공작은 여전히 그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띠고 사방을 향해 중얼거렸다.
"암, 후회하고말고!" 로고진이 외쳤다. "부끄러워하게 될 거야, 간카이런…………… 양(그에게는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같은 사람을 모욕하다니! 공작, 나는 자네가 아주 좋아, 저치들은 그냥 내버려둬, 침이나뱉어주고, 나하고 함께 가세! 이 로고진이 자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알게 될 걸세!"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 역시 가냐의 행동과 공작의 대답에 무척 충격을 받았다. 조금 전까지의 가장된 웃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느 때처럼 창백하고 사색적인 얼굴은 지금 새로운 감정으로 동요하고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 조소의 빛을 얼굴에 그냥 남겨두려고 애쓰는 것 같아 보였다.
"맞아, 저 사람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 그녀는 아까 품었던 의문이 문득 다시 떠올라 갑자기 진지한 어조로 되뇌었다.
"그래 당신은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당신은 정말 지금 보여주신그런 사람인가요? 아니,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갑자기 공작이 진제1부 211 - P211

"나는 생각 없어요, 페르드이셴코, 그리고 제발 그렇게 흥분해서 나서지 말아요." 그녀가 쌀쌀맞게 쏘아붙였다.
"아아! 그 사람이 특별보호하에 있다면, 나도 조금 부드러워져야겠군요......"
그러나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니는 그 말엔 귀도 기울이지 않고 일이서서 직접 공작을 맞으러 나갔다.
"죄송해요." 그녀가 갑자기 공작 앞에 나타나며 말했다. "아까는 너무•경황이 없어서 당신을 초대하는 걸 깜박 잊고 말았어요. 그리고 지금이렇게 당신의 결단성을 칭송하고 아울러 감사드릴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정말 기뻐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공작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자기를찾아온 까닭을 조금이라도 알아내려고 애썼다.
공작은 아마 그녀의 상냥한 말에 뭐라고 대답을 하려 했겠지만, 너무 눈이 부시고 정신이 아찔해서 한마디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는 그것을 알아채고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이날 저녁 그녀는 완벽한 몸단장 덕분에 더욱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손님들에게로 안내했다. 응접실 입구 바로 앞에서 공작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몹시 흥분하여 황급히 속삭였다.
"당신에게 있는 것은 모두가 완벽합니다.……… 여위고 창백한 것까지・・・・・・ 당신을 달리 상상하고 싶지 않으리만큼..... 나는 당신에게 너무도 오고 싶어서. 나는・・・・・・ 용서하십시오......"
"용서를 구하실 건 없어요."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시면 기이함과 독특함이 다 사라져버리잖아요. 하지만 당신252 - P252

이 기이한 사람이라는 말은 사실인가보군요. 그러니까 당신은 나를 완벽하다 여기신단 말이죠, 네?"
"네."
"당신이 알아맞히기 명수이긴 하지만, 이번엔 잘못 보셨어요. 오늘안으로 그걸 알게 해드리죠......"
그녀는 공작을 손님들에게 소개했지만, 그들 중 절반 이상은 이미공작을 알고 있었다. 토츠키는 즉시 상냥하게 뭐라고 말을 건넸다. 다들 어느 정도 활기를 띠는 듯했고, 다들 한꺼번에 웃으며 떠들기 시작했다.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는 공작을 자기 옆에 앉혔다.
"하지만 공작이 나타난 게 대체 뭐가 놀랍나요?" 페르드이셴코가 누구보다 커다란 소리로 외쳤다. "이 일은 아주 분명해요. 이 일 자체가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습니까!"
"이 일은 너무나 명백하고 너무나 자명합니다." 여태껏 잠자코 있던가냐가 갑자기 말을 받았다. "나는 오늘, 공작이 아까 이반 표도로비치의 책상 위에 있던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의 사진을 처음으로 본 그순간부터 거의 쉼없이 공작을 관찰해왔습니다. 지금도 아주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데, 이미 그때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고 이자리에서 그것을 완전히 확신하게 됐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공작이 자기 입으로 내게 고백한 일입니다."
가나는 굉장히 심각한 얼굴을 하고 이렇게 말했는데, 시종일관 농담같은 구석은 조금도 없이 오히려 침울한 어조로 말했기 때문에 약간이상한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나는 당신한테 고백한 적이 없습니다." 공작은 얼굴이 빨개져서 대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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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를 버려둔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쪽 구석으로 물러나더니,
벽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서서 띄엄띄엄 끊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 당신은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게 될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가나는 완전히 파멸한 사람처럼 서 있었다. 콜라는공작에게 달려가 그를 포옹하고 입을 맞추었다. 뒤이어 로고진, 바라프치츠인, 니나 알렉산드로브나, 심지어 노인 아르달리온 알렉산드로비치까지 모두 앞다투어 몰려왔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공작은 여전히 그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띠고 사방을 향해 중얼거렸다.
"암, 후회하고말고!" 로고진이 외쳤다. "부끄러워하게 될 거야, 간카,
이런 양(그에게는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같은 사람을 모욕하다니! 공작, 나는 자네가 아주 좋아, 저치들은 그냥 내버려둬, 침이나뱉어주고, 나하고 함께 가세! 이 로고진이 자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알게 될 걸세!"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 역시 가나의 행동과 공작의 대답에 무척 충격을 받았다. 조금 전까지의 가장된 웃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느 때처럼 창백하고 사색적인 얼굴은 지금 새로운 감정으로 동요하고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 조소의 빛을 얼굴에 그냥 남겨두려고 애쓰는 것 같아 보였다.
"맞아, 저 사람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 그녀는 아까 품었던 의문이 문득 다시 떠올라 갑자기 진지한 어조로 되뇌었다.
"그래 당신은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당신은 정말 지금 보여주신그런 사람인가요? 아니,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갑자기 공작이 진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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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은 거의 겁을 먹은 모습으로 옆에 서 있었고, 장군은 그야말로얼이 빠진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놀란 얼굴이었다. 좀 멀찌감치 서 있던 몇 사람은 몰래 킥킥대며 소곤거리고 있었다. 레베제프의얼굴은 감격의 절정에 이른 표정이었다.
"난장판과 추태는 말이죠, 마님,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레베제프의 조카가 의미심장하게 말했으나, 역시 좀 당황한 듯했다.
"그래도 이런 정도는 아니지! 이런 정도는 아니라고, 이봐, 지금 네놈들이 보여준 것 같은 그런 난장판은 아니란 말이다!" 리자베타 프로코피예브나는 히스테리라도 일으킨 듯 표독스럽게 말을 받았다. "나를좀 내버려두라니까." 그녀는 자기를 말리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아니, 예브게니 파블르이치, 당신 자신이 방금 말한 대로, 심지어 변호인이 법정에서, 가난 때문에 여섯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은 없다고 제 입으로 선언했다면, 이제 정말 말세가 됐군요. 나는 여태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어요. 하지만 이제 나도 모든걸 깨달았어요! 그래, 이 말더듬이 녀석이 과연 사람을 죽이지 못할 것같아요? (그녀는 그저 어리둥절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부르돕스키를 가리켰다.) 내기를 해도 좋지만, 이 녀석은 사람을 죽이고도 남아요! 이 녀석은 아마 당신의 돈 만 루블을 받지 않을 거예요, 양심의 명령에 따라 받지 않는다는 거겠죠. 하지만 한밤중에 와서 당신을 죽이고 귀중품함에서 그 돈을 꺼내갈걸요. 양심의 명령에 따라 꺼내는거라고요! 이 녀석에겐 그게 비양심적인 일이 아니니까! 이것은 ‘고결한 절망의 폭발‘이라느니, ‘부정‘이라느니, 하고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릴 지껄이겠죠... 쳇! 모든 게 정반대로 뒤집혔고, 모두가 거꾸로 서512 - P514

서 건기 시작했어요. 집안에서 고이 자라던 처녀가 느닷없이 길 한복판에서 마차에 뛰어올라, ‘엄마, 나 며칠 전에 카를르이치인가 이바느이치인가 하는 사람하고 혼인했어요, 안녕히 계세요!‘라고 하는 게, 그래 당신들 생각엔 잘하는 짓인가요? 존경할 만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인가요? 여성 문제라는 소리인가요? 여기 이 꼬마(그녀는 콜라를 가리켰다), 요 녀석까지도 며칠 전에 바로 그게 ‘여성 문제‘라며 대들더군요.
아니, 아무리 바보 같은 어미일망정, 그래도 사람대접은 해줘야지!
네놈들, 아까 들어올 때 고개를 뒤로 딱 젖힌 그 꼴은 대체 뭐냐? ‘감히가까이 다가오지 마라‘, 우리가 납신다. 이거겠지. ‘우리에게 모든 권리를 내놔라, 감히 우리 앞에서 입을 놀릴 생각도 마라. 우리한테 모든 존경을 표하라,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존경까지도 표하라, 하지만 우리는 너를 가상 비천한 하인보다 더 못하게 대할 것이다!‘ 이런 태도였단말이다. 진리를 추구하고 권리를 주장한다면서, 정작 그 기사에선 이사람에 대해 이슬람교도처럼 온갖 중상모략을 했잖느냐 말야. 뭐가 어째? ‘우리는 구걸하는 게 아니라, 요구하는 겁니다. 당신은 우리한테서어떤 감사의 말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건 당신이 당신 자신의 양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는 일이니까요!‘라고? 흥, 무슨 그따위도덕이 다 있어! 하지만 만약 너한테서 어떤 감사의 말도 들을 수 없다면, 공작도 너한테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는 걸 알아둬. 자기는 파블리셰프를 전혀 고맙게 여기지 않는다. 파블리셰프 역시 자신의 양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선행을 한 것뿐이니까, 라고 말이야. 하지만 네놈은 오직 공작이 파블리셰프에게 품은 감사의 정만을 믿고 있었을 뿐이야. 공작은 너한테 돈을 꾼 적도 없고, 너한테 빚을 진 것도 없으니, 공작의 - P515

그럼 아마 이런 말을 더 할 수 있겠죠." 예브게니 파블로비치는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체렌치예프 씨, 당신의 동료들로부터 내가 들+모든 것, 그리고 방금 당신이 그토록 의심할 바 없는 재능을 동원해명해준 모든 것은, 내가 보기엔, 권리의 대승리 이론으로 귀결되는같군요, 모든 것을 뒤로 물리치며, 모든 것에 관계없이, 심지어 다른모든 것을 배제하고, 심지어 그 권리라는 것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조#연구해보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안 그런가요? 혹시 내가 착각하고나요?"
물론 착각이죠, 나는 무슨 얘기인지도 모르겠군요. 그래서요?"
저쪽 구석에서도 투덜거리는 소리가 일었다. 레베제프의 조카는 낮온소리로 뭐라고 중얼댔다.
"아니, 더 할 말은 별로 없습니다." 예브게니 파블로비치가 말을 계다. "내가 지적하고 싶었던 건 다만, 이러한 이론은 곧바로 힘의 권즉 개개의 주먹과 개인적 욕구의 권리로 단번에 비약할 수 있다는니다. 하긴 세상에서 웬만한 일은 대개 그런 식으로 결말이 나곤 했개요 프루동도 힘의 권리에서 멈췄으니까요. 미국전쟁 때에도 가장・보적이라는 많은 자유주의자가 자기들은 농장주의 편이라고 선언했흑인은 어디까지나 흑인의나는 백인의 것이라는 관점에서
"그런데요?"
‘내 말은, 그러니까 당신도 힘의 권리1종보다 열등하며, 따라서 힘의 권프랑스 사회주의자 피에르조제프 프루동 최초로 스이며, 사유재산을 배격하고 정의를 가치의 척도로 삼하진 않겠지요?"
아나키스트라고 칭한 사상고 주장했다.
- P529

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아하, 바로 이럴까봐 염려했다고요! 당신 생각에 ‘분명히 이렇게 될줄 알았다고요? 그럼 잘 알아두시지요, 내가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누군가를 증오한다면, 그는 입에서 거품을 튀기면서 쉰 목으로 쇳소리를 내지르며 울부짖었다. "(나는 당신들 모두를, 모두를 증오해요!)-하지만 당신, 바로 당신, 예수회원의 영혼을 가진 자, 당밀 영혼을 가진자, 백치에, 백만장자에, 자선가인 당신을 이 세상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가장 증오해요! 나는 오래전에 당신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당신이한사람을 꿰뚫어보고 증오했어요. 내 마음속의 증오를 전부 동원해 당신을 증오해왔단 말예요………… 방금 있었던 일도 죄다 당신이 꾸민 수작이에요! 나를 발작 상태로 몰고 간 것도 당신이라고요! 당신은 죽어가는 사람을 망신시켰어요. 내가 아까 비열하게 소심해졌던 것도 당신,
당신, 당신 때문이라고요! 내가 계속 살게 된다면, 나는 당신을 죽일 거예요! 당신의 선행 따윈 필요 없어요. 나는 누구한테든, 당신 듣고 있나요 누구한테든 아무것도 받지 않겠단 말예요! 아까는 열에 들떠 헛소리를 한 것뿐이니까, 감히 우쭐대지 말라고요!..... 나는 당신네 모두를 증오해요. 영원히!"
그러면서 그는 아예 숨을 쉬지 못하고 헐떡였다.
"아까 눈물을 보인 게 창피해진 거예요!" 레베제프가 리자베타 프로코피예브나에게 소곤댔다. "분명히 이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라뇨 야아, 정말, 공작님도 대단해요! 마음을 꿰뚫어본 겁니다요......"
하지만 리자베타 프로코피예브나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는 거만하게 허리를 쭉 펴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서서, 경멸과 호 - P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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