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모두 미치광이 짓을 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하지만 공작 그에게는 이 여자를 정욕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거의 생각도 할 수 없는일인데다, 거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일로까지 여겨졌다. 아무렴, 그럴 리가 있나! 그렇지 않아, 로고진은 자기 자신을 중상하고 있는 거다.
그는 고뇌할 수도 있고, 연민을 느낄 줄도 아는 커다란 가슴을 지닌 사람이다. 그가 모든 진실을 알게 되고, 이 상처투성이의 반미치광이 여자가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가를 확실히 알게 되면 그때는 전에 그녀때문에 받았던 모든 고통을 과연 용서해주지 않겠는가? 그녀의 하인이되고, 형제가 되고, 친구가 되고, 길잡이가 돼주지 않겠는가? 연민은고진 자신을 깨우쳐주고 가르쳐줄 것이다. 연민이야말로 모든 인류의가장 중요하고, 어쩌면 유일한 생존법칙이니까. 오, 그는 로고진 앞에•얼마나 용서받지 못할 죄를, 얼마나 비열한 죄를 지었는가! 아니시아인의 영혼이 어둠 속‘이 아니라, 그 자신의 영혼이 어둠 속이다. 그래서 아까 그처럼 끔찍한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냐. - P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