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맨 마지막 순간에 그 여자가 나타나서 그의 운명 전부를 마치 삭아버린 실오라기처럼 끊어놓을 거라고 늘 생각해왔을까? 지금 비록거의 반섬망 상태이긴 했으나, 그는 자신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왔다는 사실을 맹세라도 할 수 있었다. 최근 들어 그가 그 여자를 잊으려고 애썼다면, 그건 오로지 그 여자가 두려워서였다. 대체 어찌된 것일까, 그는 그 여자를 사랑한 것일까, 증오한 것일까? 그는 오늘 이 질문을 자신에게 한 번도 던지지 않았다. 이 문제에서 그의 마음은 깨끗했다. 그는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두 여인의 만남 자체도, 그 만남의 기이함도, 자기로서는알 수 없는 그 만남의 이유도, 어떤 식으로든 거기서 내려지게 될 결정도 아니었다 그는 무엇보다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신열과 우울감에 몇 시간 시달리고 나서 그의 기억에 남은 것은 별로 없었지만, 열병에 걸린 것 같던 이 몇 시간 동안 거의 쉴새없이 자신의 눈앞에 그녀의 눈과 시선이 어른거리고, 그녀의 말이어떤 이상한 말이 귓가에 울리던 것을 그는 며칠이 지난 뒤에야 떠올렸다. 하지만 그 밖의 것은 기억이 거의 없어서, 이를테면 베라가 식사를 내온 것도, 자신이 식사한 것도 거의 기억하지 못했고, 식사하고•나서 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이날 저녁자기가 모든 것을 분명히 식별하기 시작한 건, 아글라야가 느닷없이 테라스로 들어와서 그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맞으러 방 한가운데로 걸어나갔던 순간부터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때가 일곱시 십오분이었다. 아글라야는 혼자였고, 급히 서둘러 나온 듯 간편한 옷차림에두건이 달린 가벼운 외투를 걸쳤다. 얼굴은 아까처럼 창백했지만, 눈에 - P442

선 선명하고 날카로운 빛이 번쩍였다. 그녀가 이런 눈빛을 한 것을는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주의깊게 그를 훑어보았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시군요." 침착한 듯이 들리는 목소리로 그가 나직이 말했다. "옷도 다 입었고 모자를 손에 들고 계신 걸 보니, 누가미리 알려준 모양인데, 누군지 알아요. 입폴리트죠?"
렸다.
"네. 그 사람이 말해주더군요......" 공작은 반쯤 사색이 돼서 중얼거
"그럼 가요.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는 걸 아실 테니까. 외출할 만한기력은 있겠죠?"
"기력은 있지만...... 정말 이래도 될까요?"
그는 한순간에 말문을 닫고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한마•디가 이성을 잃은 이 아가씨를 저지해보려는 유일한 시도였고, 그런 다음엔 그저 노예처럼 그녀의 뒤를 따라나섰다. 머릿속이 온통 흐릿했지만, 자기가 없어도 그녀는 그곳에 갈 테니까 어차피 그녀 뒤를 따라갈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의 결심이 얼마나 단호한지 짐작했던 것이다. 이 맹렬한 충동을 저지할 힘이 그에겐 없었다. 그들은 묵묵히 걸었고, 길을 가는 내내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그녀가 길을 잘 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뿐이었다. 여기는길이 더 황량하니 조금 멀지만 어떤 골목길로 돌아가자고 그가 제안하자, 그녀는 주의를 기울이는 척하며 끝까지 다 듣고 나서, 매한가지예요‘라고 자르듯이 대답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미 다리야 알렉세예브나의 집(크고 오래된 목조건물이었다) 바로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 화려하게 차려입은 어느 귀부인이 젊은 처녀를 데리고 현관 앞 바깥계단 - P443

"내가 그럴 이유가 뭐 있죠?" 나스타스야 필립포브나가 보일락 말락하게 웃었다.
"당신은 내 상황을 이용하려는 거예요∙∙∙∙∙∙ 내가 당신 집에 와 있으니까." 아글라야는 우스꽝스러울 만큼 서투르게 말을 이어갔다.
이 상황은 당신 탓이지, 내 탓이 아녜요!"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니가갑자기 발끈했다. "내가 당신을 부른 게 아니라, 당신이 나를 부른거니까요 게다가 왜 부른 건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고요."
아글라야는 오만하게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말조심해요. 나는 당신의 그 무기를 가지고 당신과 싸우러 온 게 아니니까....."
"아하! 그러니까 어쨌든 ‘싸우러 온 거로군요? 저런, 나는 그래도 당신이 좀더 똑똑한 분인 줄 알았는데…………"
두 여인은 이제 증오를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이들 중 한 여인은 바로 며칠 전까지도 다른 한 여인에게 그와 같은 편•지를 써 보낸 장본인이었다. 그런데 첫 만남에서, 그것도 첫마디와 함께 그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대체 어찌된 영문일까? 지금 이 순간 이 방에 있는 네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눈치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공작도 지금은 마치 이 모든 것을 벌써 오래전부터예감해온 듯이, 그저 멍하니 선 채 바라보며 듣고 있었다. 너무나도 환상적인 꿈이 갑자기 더없이 선명하고 날카로운 형태를 띠고서 현실로탈바꿈한 것이다. 이 순간 이 여인 중 한 명은 다른 한 명을 이미 극도로 경멸할뿐더러 그것을 상대방에게 모조리 말해주려고 잔뜩 바르고 - P446

있었기 때문에(이튿날 로고진이 말했듯이, 어쩌면 오직 이 목적을 위해온 건지도 몰랐다). 그 다른 여인이 제아무리 기발한 상상력을 지녔다곤 하나 머릿속이 헝클어지고 마음이 병든 상태에서는 설사 모든 것을 미리 각오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자기 경쟁자의 독기 품은, 순전히여성적인 그 모멸을 결코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공작은 나스타시야필립포브나 쪽에서 먼저 그 편지 얘기를 꺼내진 않으리라 확신하고 있있다. 그녀의 번쩍이는 눈빛만 봐도, 이제 그 편지가 그녀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족히 짐작이 갔다. 하지만 그는 지금아글라야 쪽에서도 그 얘길 꺼내지 않는다면, 자기 삶의 절반이라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글라야는 갑자기 정신을 가다듬고 한순간에 자신을 통제하는 듯했다.
"그건 당신이 잘못 생각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당신과....
싸우러 온 게 아녜요, 그렇다고 뭐 당신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요 내가..... 내가 당신에게 온 건………… 인간적인 얘길 하고 싶어서예요. 당신에게 만나자고 했을 때, 나는 이미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할지 결심한상태였고, 설사 당신이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 결심에서•물러설 생각은 전혀 없어요. 나를 이해하지 못해서 더 불리해지는 건내가 아니라 당신이니까요. 나는 당신이 보낸 편지에 대답하고 싶었어& 그것도 구두로 직접, 왜냐하면 그러는 편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럼 당신의 편지에 대한 내 대답을 잘 들어주세요 나는 레프니●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나중에 알게 된 그때부터, 공작을 가엾게 여기콜라예비치 공작과 처음 인사를 나눈 바로 그날, 그리고 당신의 야회 - P447

서 나는 기다리기 시작했어요. 당신이 틀림없이 이곳으로 올 거라 생각했던 거죠, 당신은 페테르부르크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니까요 당신은 시골에 파묻혀 있기엔 아직 너무나 젊고 아름답거든요..…………하지만 이것 역시 내 말이 아녜요." 그녀는 이렇게 덧붙이면서 얼굴을몹시 붉혔는데, 이 순간부터 마지막 말이 끝날 때까지 그녀의 얼굴에선붉은빛이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내가 다시 공작을 만나봤을 때는, 공작을 위해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났어요. 웃지 마세요. 만일 당신이웃는다면, 그건 당신이 이런 심정을 이해할 자격이 없다는 증거예
"보시다시피 나는 웃고 있지 않아요."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가 서글프고도 엄격한 어조로 말했다.
"하긴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죠, 웃고 싶으면 웃으세요. 여하튼 내가•저분한테 직접 물어보자, 그러시더군요,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당신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괴롭다. 하지만 당신이 가없고, 당신을 떠올리면 심장이 ‘영원히 꿰뚫리는 듯한 기분이다. 라고요. 당신에게 한마디 더 해둬야겠군요. 나는 공작만큼 고결하고 순박한마음과 타인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지닌 사람을 평생 한 번도 본 적이없어요. 공작의 말을 듣고 나는 깨달았어요,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저분을 속일 수 있고, 저분을 속인 자가 누구든 간에 저분은 나중에 모두용서해줄 거라고 말이죠.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저분을 사랑하게 된 거예요......"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나아글라야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잠시 말을 멈췄는데, 자기가 이런 - P449

지 했다. 그녀가 예브게니 파블로비치의 추측대로 시를 많이 읽은 여자이든, 아니면 공작이 믿는 대로 그저 머리가 돈 여자이든 간에 어쨌거나 그녀는 이따금 아주 냉소적이고 뻔뻔한 태도를 보이긴 해도-실제로는 남들이 판단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수줍음이 많고 상냥하고 사람을 잘 믿는 여자였다. 물론 그녀에겐 문학적이고 몽상적이고 자폐적이고 공상적인 면이 많았지만, 그 대신 굳세고 깊이 있는 면도 적지 않았다… 공작은 이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고통의 빛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아글라야는 그것을 알아채고, 증오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당신이 어떻게 감히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죠?" 그녀는 말할 수 없이 거만한 태도로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에게 반문하며 소리쳤다.
"내 말을 잘못 들은 모양이군요."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가 놀라서말했다. "내가 당신한테 어떻게 얘기했기에요?"
"당신이 떳떳한 여자가 되고 싶었다면, 왜 그때 자신의 유혹자인 토츠키를 깨끗이..………… 그따위 연극 흉내 같은 짓을 하지 않고, 깨끗이 버리지 못했죠?" 갑자기 아글라야는 뜬금없이 이렇게 쏘아붙였다.
"당신이 내 처지를 얼마나 안다고 감히 나를 심판하는 거죠?"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당신이 일하러 갈 생각은 않고, 타락한 천사 흉내를 내겠다고 돈 많은 로고진과 함께 달아났다는 걸 나는 알아요. 그 타락한 천사 때문에•토츠키가 권총 자살을 하려 했다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죠!"
"그만둬요!"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는 혐오감에 차서 가까스로 고통을 억누르며 말했다. "당신은 마치....
요전에 약혼자와 함께 치안 - P452

워한다는 증거예요. 자기가 두려워하는 사람을 경멸할 순 없죠. 정말,
내가 당신을 존경하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심지어 바로 지금까지도! 그런데 당신이 왜 나를 두려워하는지, 지금 당신의 주된 목적이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요? 당신은, 저분이 당신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지 어떤지, 그걸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거예요, 당신은 지독히도 질투심이 강한 여자니까....."
"저분은 나한테 이미 말했어요, 당신을 증오한다고......" 아글라야는간신히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럴지도 몰라요, 그럴지도, 나는 저분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여자니까, 다만...... 다만 당신이 한 말은 거짓말이에요. 그럼요! 저분은 나를 증오할 수 없어요. 저분이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어요! 하지만나는 당신을 용서해줄 용의가 있어요.... 당신 입장을 고려해서.....
다만 나는 그래도 당신을 더 좋게 생각해왔어요. 당신이 좀더 현명하고좀더 아름답기까지 한 아가씨인 줄 알았죠, 맹세코!..
자, 어서 당신의 보물을 가져가요... 저기 저분, 당신을 바라보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군요, 어서 당신이 가져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당장 여기서 나요! 지금 당장!......"
그녀는 의자에 털썩 쓰러져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러나 갑자기뭔가 새로운 것이 그녀의 눈에서 번쩍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글라야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뚫어져라 쏘아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네가 정 원한다면, 지금 당장..
명-령-하-겠-어,
알아들어? 내가 저이에게 명령 - 하기만 하면, 저이는 너 따윈 당장 걷어차버리고 영원히 내 곁에 남을 거야, 그리고 나와 혼인할 거라고, 그 - P454

워한다는 증거예요. 자기가 두려워하는 사람을 경멸할 순 없죠. 정말,
내가 당신을 존경하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심지어 바로 지금까지도! 그런데 당신이 왜 나를 두려워하는지, 지금 당신의 주된 목적이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요? 당신은, 저분이 당신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지 어떤지, 그걸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거예요, 당신은 지독히도 질투심이 강한 여자니까....."
"저분은 나한테 이미 말했어요. 당신을 증오한다고……………" 아글라야는간신히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럴지도 몰라요, 그럴지도, 나는 저분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여자니까, 다만...... 다만 당신이 한 말은 거짓말이에요, 그럼요! 저분은 나를 증오할 수 없어요. 저분이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어요! 하지만나는 당신을 용서해줄 용의가 있어요...... 당신 입장을 고려해서…………다만 나는 그래도 당신을 더 좋게 생각해왔어요. 당신이 좀더 현명하고좀더 아름답기까지 한 아가씨인 줄 알았죠. 맹세코!...... 자, 어서 당신의 보물을 가져가요..... 저기 저분, 당신을 바라보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군요, 어서 당신이 가져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당장 여기서 나가줘요! 지금 당장!......"
그녀는 의자에 털썩 쓰러져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러나 갑자기뭔가 새로운 것이 그녀의 눈에서 번쩍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글라야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뚫어져라 쏘아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네가 정 원한다면, 지금 당장...... 명령 - 하 -겠-어, 알아들어? 내가 저이에게 명령 - 하기만 하면, 저이는 너 따윈 당장 걷어차버리고 영원히 내 곁에 남을 거야, 그리고 나와 혼인할 거라고 그 - P454

고함을 질러댔는데, 분명 자신의 이런 호언장담을 털끝만큼도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한편으로는 단일 초라도 이 순간을 늘이면서 자기 자신을 속이고 싶어하는 게 분명했다. 그녀의 흥분이 너무나도 격렬해서•저러다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될 지경이었다. 적어도 공작에겐 그렇게 여겨졌다. "저기에 그이가 서 있어, 잘 봐!" 마침내 그녀는 손으로공작을 가리키며 아글라야에게 소리쳤다. "저이가 지금 너를 버리고 내게 다가와 나를 잡아주지 않는다면, 그땐 네가 저이를 갖는 거야, 내가양보하겠어, 그런 사람은 필요 없으니까!......"
그녀도 아글라야도 무언가를 기다리는 표정으로 제자리에 멈춰 서서, 둘 다 미친 사람처럼 공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 도전적인말이 갖는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니, 분명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는 다만 자기 눈앞에서, 미치광이와도 같은 절망적인 얼굴을 볼 뿐이었다. 그것은 언젠가 그가 아글라야에게 말한 것처럼 그의 ‘심장을 영원히 꿰뚫어버린 얼굴이었다. 그는 더이상 견딜수가 없어서,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를 가리키며 애원과 책망이 뒤섞인 어조로 아글라야에게 말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이 여자는...... 너무나 불행한 사람 아닙니까!"
하지만 그는 겨우 이렇게 말했을 뿐, 아글라야의 무서운 시선을 받고는 그대로 벙어리가 돼버렸다. 그녀의 시선 속에는 너무나도 극심한고통과 동시에 한없는 증오가 서려 있어서, 그는 두 손바닥을 탁 치고소리를 지르며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이미 때늦은 일이었다! 그•녀는 그가 한순간이나마 동요하는 모습을 참을 수 없던 나머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아아, 하느님!" 하고 외치고는 그대로 방에서 뛰쳐 - P456

나갔다. 로고진이 집 현관문의 빗장을 열어주려고 그 뒤를 쫓아나갔다.
공작도 쫓아나갔으나, 문지방에서 누군가의 두 팔이 그를 부둥켜안았다. 절망에 일그러진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의 얼굴이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새파래진 입술이 달싹거리며 이렇게 물었다.
그 여자를 쫓아갈 건가요? 그 여자를?......"
그녀는 의식을 잃고 그의 팔 안에 쓰러졌다. 그는 그녀를 안고 방으로 데려가 안락의자에 앉히고는 희미한 기대를 품은 채 그녀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탁자 위에는 물이 든 컵이 놓여 있었다. 방에 돌아온로고진이 그것을 집더니, 그녀의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그녀는 눈을떴으나, 일 분가량은 뭐가 뭔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주위를 둘러보고 몸을 부르르 떨더니 소리를 내지르며 공작에게 몸을 던졌다.
"당신은 내 거야! 내 거!" 그녀가 외쳤다. "그거만한 아가씨는 가버
"렸나? 하-하-하!" 그녀는 발작적으로 웃어댔다. "하-하-하! 하마터면이 사람을 그 아가씨한테 내줄 뻔했어! 하지만 왜? 뭐 땜에? 내가 미쳤던 거지! 미쳤던 거야!...
넌 썩 꺼져버려, 로고진, 하-하-하!"
로고진은 그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모자를 집어들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십분 뒤 공작은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 곁에앉아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며, 마치 어린아이한테 하듯이 두 손으로 그녀의 머리와 얼굴을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그녀가 옷으면 그도 웃고, 그녀가 울면 그도 따라 울먹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않고 묵묵히, 그녀의 발작적이고 환희에 들뜨고 두서없는 웅얼거림에열심히 귀를 기울였는데, 무슨 말인지 거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저제4부 457 - P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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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처럼 그녀 앞에 말없이 서 있던 공작은 갑자기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런 말을 들을 가치가 있는 사람은 여기에 아무도 없어요!" 아글라야가 폭풍처럼 퍼부어댔다. "여기 있는 사람은 죄다, 죄다, 당신의 새끼손가락만도 못하단 말예요, 당신의 지혜, 당신의 마음씨에 죄다 미치지 못한다고요! 당신은 누구보다 정직하고, 누구보다 고결하고, 누구보다 훌륭하고, 누구보다 선량하고 누구보다 현명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당신이 방금 떨어뜨린 손수건을 몸을 굽혀 주워들 자격조차 없어요...... 대체 무엇 때문에 당신은 자신을 비하하고, 누구보다 낮은 위치에 자신을 세우는 거죠? 어째서 당신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왜곡하는 거예요. 어째서 당신에겐 자부심이란 게 없냐고요?"
"맙소사, 재가 미친 거 아냐?" 리자베타 프로코피예브나는 손뼉을 탁쳤다.
"가난한 기사! 만세!" 콜랴가 열광해서 외쳤다.
"잠자코 계세요!.. 다들 어떻게 감히 나를 여기서, 어머니 집에서모욕하냐고요!" 아글라야는 느닷없이 리자베타 프로코피예브나에게대들었는데, 이미 그 무엇도 신경쓰지 않고 앞을 막는 건 전부 뛰어넘으려는 히스테리 상태에 빠져 있었다. "왜 다들, 다들 하나같이 나를 괴롭히냔 말예요! 공작, 왜 저 사람들은 이 사흘 내내 당신 때문에 나를귀찮게 하는 거죠? 나는 절대로 당신한테 시집 안 가요! 똑똑히 알아둬요, 절대 안 간다고요! 그걸 알란 말예요! 당신 같은 우스꽝스러운 사•람한테 과연 시집갈 수 있겠어요? 지금 거울이라도 한번 보시죠, 당신・어쩨서, 어째서 그 사람들은 내가 당신한이 어떤 꼴로 서 있는지! - P42

데 시집갈 거라며 나를 놀려대는 거죠? 당신은 분명 그 이유를 알겠죠!
당신도 그 사람들과 작당해서 음모를 꾸미고 있을 테니!"
"아무도 널 놀린 적 없어!" 아젤라이다가 깜짝 놀라서 중얼거렸다.
"그런 생각을 한 사람도 없고, 그런 말이 나온 적도 없어!" 알렉산드라 이바노브나가 소리쳤다.
"누가 얘를 놀렸지? 언제 애를 놀렸어? 누가 감히 얘한테 그런 소릴했느냐 말야? 아니면 얘가 헛소리라도 하는 거냐?" 리자베타 프로코피예브나는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모두를 향해 물었다.
"다들 그랬잖아요. 모두 하나같이 그랬잖아요, 이 사흘 내내 그랬잖아요! 나는 절대로 절대로 저 사람한테 시집가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외치더니 아글라야는 비통한 눈물을 쏟으며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저 사람은 아직 너한테 청혼을……………
"나는 당신께 청혼한 일이 없습니다. 아글라야 이바노브나." 공작의입에서 얼떨결에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뭐어?" 리자베타 프로코피예브나는 경악과 분노와 공포에 휩싸여한 음절 한 음절 띄엄띄엄 말했다. "뭐어요?"
그녀는 자기 귀를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공작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나는 다만 아글라야 이바노브나에게 분명히 밝혀두고 싶었고...... 삼가 해명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럴 생각은.. 아글라야 이바노브나에게 청혼할 영광을 얻을 의도는 전혀 없었을뿐더러・・・・・・ 앞으로 언젠가 같은 생각조차 전혀 없었다고 말입니다...... 이 - P43

은 대답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무슨소리를 입속으로 우물거린 모양인데, 그러자 장교는 그를 아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예브게니 파블로비치에게 시선을 돌렸다. 순간, 장교는 자기 친구가 왜 공작에게 자기를소개할 생각을 했는지 퍼뜩 알아채고는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짓더니,
다시 아글라야에게 말을 건넸다. 이때 아글라야가 얼굴을 확 붉힌 것을알아챈 사람은 예브게니 파블로비치뿐이었다.
공작은 다른 사람들이 아글라야와 얘기를 나누면서 그녀의 환심을사려 애쓰고 있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고 자기가 그녀 옆에 앉아있다는 사실마저 때로는 거의 잊다시피 했다. 이따금 그는 어디론가 훌훌 떠나서 여기서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는데, 그저 혼자서 상념에 잠길 수 있고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이라면, 음울하고 황량한 곳이라도 마음에 들 것 같았다. 아니면 하다못해 자기 집 테라스에라도 가 있었으면, 다만 거기에 아무도, 레베제프도 그의 아이들도 찾아오지 말았으면 싶었다. 거기서 자기 소파에몸을 던지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하루 낮이 가고 밤이 가고 다음날 낮이 다 지나갈 때까지 마냥 그렇게 누워 있고만 싶었다. 순간순간산들이, 그 산속에 있는 친숙한 어느 한곳이 꿈결처럼 생각나기도 했는데, 그가 언제나 즐겨 떠올리고, 아직 거기서 살고 있을 때 즐겨 올라갔던 장소였다. 그곳에서 발아래로 내려다보곤 했던 마을, 아득히 내려다보이던, 하얀 실줄기처럼 어렴풋이 빛나던 폭포, 흰 구름, 버려진 옛성채. 오, 지금 그곳에 가서 한 가지만을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오! 평생토록 그것만을 천년을 두고 그것만을 생각해도 족하만! 그리고 이곳 사람들이 자기를 완전히 잊는다 해도 상관없다. 그래 - P49

가를 불현듯 깨달았다. 거기엔 공포를 표현할 어휘가 빠져 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공포였다! 그는 지금 바로 이 순간에 그 공포를 완전히 느꼈다. 그는 이제 나름의 독특한 이유에서 믿고 있었고, 완전히 확신하고 있었다. 이 여자는 미쳐버린 것이다. 만약 어떤 여자를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하거나 그런 사랑의 가능성을 예감하는 자가 갑자기 그 여자가 사슬에 묶여 철창 속에 갇힌 채 감시인의 몽둥이 아래 위협당하는 모습을 목격한다면 어떨까 그런 느낌이야말로 지금 공작이 느끼는 바와 어느 정도 비슷할 것이다.
"왜 그러세요?" 아글라야가 공작을 돌아보면서 천진스럽게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빠르게 속삭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순간 이상하리만큼번쩍이는 그녀의 새까만 두 눈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지어 보이려 했으나, 순식간에 그녀를 까맣게 잊은 듯 갑자기 다시 눈을 오른쪽으로 돌려 또다시 자신의 가공할 환영을 쫓기 시작했다.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는 이 순간 아가씨들이 앉아 있는 의자 바로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예브게니 파블로비치는 알렉산드라 이바노브나에게 뭔가 분명 아주우습고 재미난 얘기를 빠른 소리로 신이 나서 계속하는 중이었다. 공작은 아글라야가 갑자기 반쯤 속삭이는 소리로 "아니, 저 여자가......" 하고 말한 것을 기억했다.
이것은 불분명하고 입 밖으로 내다 만 말이었다. 아글라야는 곧바로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으나,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니는 딱히 아무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는 양지나가다가 문득 그들 쪽으로 몸을 홱 돌렸는데, 마치 그제야 예브게니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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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모두 미치광이 짓을 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하지만 공작 그에게는 이 여자를 정욕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거의 생각도 할 수 없는일인데다, 거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일로까지 여겨졌다. 아무렴, 그럴 리가 있나! 그렇지 않아, 로고진은 자기 자신을 중상하고 있는 거다.
그는 고뇌할 수도 있고, 연민을 느낄 줄도 아는 커다란 가슴을 지닌 사람이다. 그가 모든 진실을 알게 되고, 이 상처투성이의 반미치광이 여자가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가를 확실히 알게 되면 그때는 전에 그녀때문에 받았던 모든 고통을 과연 용서해주지 않겠는가? 그녀의 하인이되고, 형제가 되고, 친구가 되고, 길잡이가 돼주지 않겠는가? 연민은고진 자신을 깨우쳐주고 가르쳐줄 것이다. 연민이야말로 모든 인류의가장 중요하고, 어쩌면 유일한 생존법칙이니까. 오, 그는 로고진 앞에•얼마나 용서받지 못할 죄를, 얼마나 비열한 죄를 지었는가! 아니시아인의 영혼이 어둠 속‘이 아니라, 그 자신의 영혼이 어둠 속이다. 그래서 아까 그처럼 끔찍한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냐.  -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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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를 버려둔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쪽 구석으로 물러나더니,
삐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서서 띄엄띄엄 끊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 당신은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게 될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가냐는 완전히 파멸한 사람처럼 서 있었다. 콜라는공작에게 달려가 그를 포옹하고 입을 맞추었다. 뒤이어 로고진, 바랴,
프치츠인, 니나 알렉산드로브나, 심지어 노인 아르달리온 알렉산드로비치까지 모두 앞다투어 몰려왔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공작은 여전히 그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띠고 사방을 향해 중얼거렸다.
"암 후회하고말고!" 로고진이 외쳤다. "부끄러워하게 될 거야, 간카,
이런………… 양(그에게는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같은 사람을 모욕하다니! 공작, 나는 자네가 아주 좋아, 저치들은 그냥 내버려둬, 침이나뱉어주고, 나하고 함께 가세! 이 로고진이 자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알게 될 걸세!"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 역시 가냐의 행동과 공작의 대답에 무척 충격을 받았다. 조금 전까지의 가장된 웃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느 때처럼 창백하고 사색적인 얼굴은 지금 새로운 감정으로 동요하고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 조소의 빛을 얼굴에 그냥 남겨두려고 애쓰는 것 같아 보였다.
"맞아, 저 사람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 그녀는 아까 품었던 의문이 문득 다시 떠올라 갑자기 진지한 어조로 되었다.
"그래 당신은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당신은 정말 지금 보여주신그런 사람인가요? 아니,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갑자기 공작이 진제1부 211 - P210

가나를 버려둔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쪽 구석으로 물러나더니,
벽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서서 띄엄띄엄 끊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 당신은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게 될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가냐는 완전히 파멸한 사람처럼 서 있었다. 콜라는공작에게 달려가 그를 포옹하고 입을 맞추었다. 뒤이어 로고진, 바라프치츠인, 니나 알렉산드로브나, 심지어 노인 아르달리온 알렉산드로비치까지 모두 앞다투어 몰려왔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공작은 여전히 그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띠고 사방을 향해 중얼거렸다.
"암, 후회하고말고!" 로고진이 외쳤다. "부끄러워하게 될 거야, 간카이런…………… 양(그에게는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같은 사람을 모욕하다니! 공작, 나는 자네가 아주 좋아, 저치들은 그냥 내버려둬, 침이나뱉어주고, 나하고 함께 가세! 이 로고진이 자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알게 될 걸세!"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 역시 가냐의 행동과 공작의 대답에 무척 충격을 받았다. 조금 전까지의 가장된 웃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느 때처럼 창백하고 사색적인 얼굴은 지금 새로운 감정으로 동요하고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 조소의 빛을 얼굴에 그냥 남겨두려고 애쓰는 것 같아 보였다.
"맞아, 저 사람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 그녀는 아까 품었던 의문이 문득 다시 떠올라 갑자기 진지한 어조로 되뇌었다.
"그래 당신은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당신은 정말 지금 보여주신그런 사람인가요? 아니,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갑자기 공작이 진제1부 211 - P211

"나는 생각 없어요, 페르드이셴코, 그리고 제발 그렇게 흥분해서 나서지 말아요." 그녀가 쌀쌀맞게 쏘아붙였다.
"아아! 그 사람이 특별보호하에 있다면, 나도 조금 부드러워져야겠군요......"
그러나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니는 그 말엔 귀도 기울이지 않고 일이서서 직접 공작을 맞으러 나갔다.
"죄송해요." 그녀가 갑자기 공작 앞에 나타나며 말했다. "아까는 너무•경황이 없어서 당신을 초대하는 걸 깜박 잊고 말았어요. 그리고 지금이렇게 당신의 결단성을 칭송하고 아울러 감사드릴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정말 기뻐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공작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자기를찾아온 까닭을 조금이라도 알아내려고 애썼다.
공작은 아마 그녀의 상냥한 말에 뭐라고 대답을 하려 했겠지만, 너무 눈이 부시고 정신이 아찔해서 한마디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는 그것을 알아채고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이날 저녁 그녀는 완벽한 몸단장 덕분에 더욱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손님들에게로 안내했다. 응접실 입구 바로 앞에서 공작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몹시 흥분하여 황급히 속삭였다.
"당신에게 있는 것은 모두가 완벽합니다.……… 여위고 창백한 것까지・・・・・・ 당신을 달리 상상하고 싶지 않으리만큼..... 나는 당신에게 너무도 오고 싶어서. 나는・・・・・・ 용서하십시오......"
"용서를 구하실 건 없어요."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시면 기이함과 독특함이 다 사라져버리잖아요. 하지만 당신252 - P252

이 기이한 사람이라는 말은 사실인가보군요. 그러니까 당신은 나를 완벽하다 여기신단 말이죠, 네?"
"네."
"당신이 알아맞히기 명수이긴 하지만, 이번엔 잘못 보셨어요. 오늘안으로 그걸 알게 해드리죠......"
그녀는 공작을 손님들에게 소개했지만, 그들 중 절반 이상은 이미공작을 알고 있었다. 토츠키는 즉시 상냥하게 뭐라고 말을 건넸다. 다들 어느 정도 활기를 띠는 듯했고, 다들 한꺼번에 웃으며 떠들기 시작했다.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는 공작을 자기 옆에 앉혔다.
"하지만 공작이 나타난 게 대체 뭐가 놀랍나요?" 페르드이셴코가 누구보다 커다란 소리로 외쳤다. "이 일은 아주 분명해요. 이 일 자체가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습니까!"
"이 일은 너무나 명백하고 너무나 자명합니다." 여태껏 잠자코 있던가냐가 갑자기 말을 받았다. "나는 오늘, 공작이 아까 이반 표도로비치의 책상 위에 있던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의 사진을 처음으로 본 그순간부터 거의 쉼없이 공작을 관찰해왔습니다. 지금도 아주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데, 이미 그때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고 이자리에서 그것을 완전히 확신하게 됐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공작이 자기 입으로 내게 고백한 일입니다."
가나는 굉장히 심각한 얼굴을 하고 이렇게 말했는데, 시종일관 농담같은 구석은 조금도 없이 오히려 침울한 어조로 말했기 때문에 약간이상한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나는 당신한테 고백한 적이 없습니다." 공작은 얼굴이 빨개져서 대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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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를 버려둔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쪽 구석으로 물러나더니,
벽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서서 띄엄띄엄 끊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 당신은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게 될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가나는 완전히 파멸한 사람처럼 서 있었다. 콜라는공작에게 달려가 그를 포옹하고 입을 맞추었다. 뒤이어 로고진, 바라프치츠인, 니나 알렉산드로브나, 심지어 노인 아르달리온 알렉산드로비치까지 모두 앞다투어 몰려왔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공작은 여전히 그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띠고 사방을 향해 중얼거렸다.
"암, 후회하고말고!" 로고진이 외쳤다. "부끄러워하게 될 거야, 간카,
이런 양(그에게는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같은 사람을 모욕하다니! 공작, 나는 자네가 아주 좋아, 저치들은 그냥 내버려둬, 침이나뱉어주고, 나하고 함께 가세! 이 로고진이 자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알게 될 걸세!"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 역시 가나의 행동과 공작의 대답에 무척 충격을 받았다. 조금 전까지의 가장된 웃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느 때처럼 창백하고 사색적인 얼굴은 지금 새로운 감정으로 동요하고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 조소의 빛을 얼굴에 그냥 남겨두려고 애쓰는 것 같아 보였다.
"맞아, 저 사람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 그녀는 아까 품었던 의문이 문득 다시 떠올라 갑자기 진지한 어조로 되뇌었다.
"그래 당신은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당신은 정말 지금 보여주신그런 사람인가요? 아니,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갑자기 공작이 진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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