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심리학 카페 - 흔들리는 삶의 중심을 되찾는 29가지 마음 수업
모드 르안 지음, 김미정 옮김 / 클랩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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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심리학 카페>는 외로운 유년 시절을 보내고, 사고로 남편을 잃으며 꽤 오랜 상실의 시간을 보냈던 저자가 자신처럼 힘든 시기를 보내는 이들에게 건네주는 따뜻한 통찰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48살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문득 게슈탈트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는데요. 그러고는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심리학 카페를 열었어요.



이 책은 심리학 카페를 다녀간 5만 명의 상담 내용을 토대로 일과 상처, 사랑, 인간관계, 인생을 관통하는 29가지 '마음 수업'으로 다듬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심리학 카페인가?


프로이트와 게슈탈트 심리이론을 공부한 저자가 심리 상담을 해온 지도 어느덧 18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유년기 및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불행으로 인생의 쓴맛이란 쓴맛은 다 맛보았고, 그 힘들던 때에 자기를 몰아세운 건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고 고백했어요.


나를 이해해 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세상은 살 만합니다.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줄 때,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고 충분히 사랑받고 행복할 자격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p.15 프롤로그



본인처럼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고, 아픈 줄도 모른 채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그쳐 왔을 사람들에게 저자는 진료실이 아닌, 편하게 대화가 오가는 카페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도록 해주고 싶었다고 해요.



모든 삶은 흐른다.


요즘은 사회와 타인을 향해 뾰족하게 날을 세우는 사람들이 많아 보여요. 속에 남아나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정을 내보내지 못해 안달인 것도 같고요.



저 같은 경우는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영 쉽지 않고, 섭섭한(?) 일을 당하고도 어버버..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현장에서 따졌어야 했을 적절한 말이 떠올라 억울하기도 하고 그래요.



누구는 실컷 쏟아내고 누구는 담아두는 게 익숙한, 극단적인 모습은 사실 양쪽 다 찜찜합니다. 심리학의 "지금 괜찮은가요?"라고 묻는 말에 저마다 깊이 생각할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상처와 마주하기


저자의 말에 따르면, 긴 시간 동안 우리를 괴롭힌 과거의 상처가 있다면 그저 덮어두고 잊으려 노력하기보다 상처를 꺼내어 똑바로 마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해요.



그런 과정 없이는 언제고 되살아나는 좀비처럼 현재의 나를 괴롭힐 거라고요. 상처받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어디 그게 가능한 일이겠어요.


나다니엘 브랜든은, ‘자존감은 천부적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 습득하고 터득해야 하는 기술’이라고 말했습니다.

p.107



그러니 더더욱 과거의 상처들이 더 이상 우리를 흔들지 못하도록 결국은 제때 떠나보내야 할 것 같아요. 과거의 상처들에 채이고 꺾이지 않도록, 동시에 자존감을 키우는 훈련도 중요하겠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인생의 중요한 각기 다른 영역들을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조언합니다. 각각의 요소를 잘게 나누고 관심사나 비중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그리면 됩니다.




각 영역의 크기보다 중요한 건 이들의 비중이 끊임없이 움직이되, 고정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역 간의 활동성이나 비중 등을 꾸준히 살피며 인생의 관심사를 점차 확장해 나가는 게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건 나 자신뿐


저자는 어차피 인생에 완벽한 선택이란 없으며 그런 이유로 선택을 미룰수록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도, 느낄 후도 없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파도에 매번 허물어지는 모래성을 계속해서 쌓으면서도 지치기는커녕 깔깔깔- 즐거워하는 아이들처럼, 유쾌한 내적 동기로 꽉 채워진 일을 하고, 그로 인해 움직이는 일상을 보내고 싶네요.



“지금 하는 일의 가치를 찾아보세요! 자기 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면 점점 일을 좋아하는 마음이 생길 거예요!”

제 마음을 엿 본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병에 걸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마와 싸우겠다는 태도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 P31

동정이 상대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는 것이라면, 공감은 상대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한 후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와 내가 도움을 줄 방법이 없는지 함께 고민하는 것입니다. - P65

무기력이 오래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에게 시간을 주세요. 무작정 바쁘게 살지 말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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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약이 되는 약 이야기 반갑다 과학 1
배현 지음, 신병근 그림 / 사계절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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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아이 키우기 전에는 해열제도 아세트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 성분이 있으며~ 이들 사이 교차복용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몰랐어요. 머리 아프고 열 날 때는 그저 해열제, 라고만 알고 있었죠.

병원에서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면요, 제게 처방된 약의 종류는 많은데 그 약들이 어떤 성분이고 혹 어떤 음식을 주의해야할지 등의 세부 정보는 알기기 쉽지 않았어요. 하루 3번 식후 30분, 보통 요정도민 알려주셨었죠. ㅎㅎ 아, 졸릴 수 있어요~! 😆


약사님 말씀은 마치 랩처럼 제 귀를 통과해서 그대로 나가버리기 일쑤에요. 집에 가서 다시 약국에 전화한 적도 많습니다. ㅋㅋ 요즘은 그나마 약 봉투에 약의 모양과 성분, 주의사항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표기해주어서 정말 좋아요.



<알면 약이 되는 약 이야기>는 어린이들이 알아야 할 약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필요한 것들만 뽑아 정리한 내용이에요. 책 소개를 처음 봤을 땐 제가 먼저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


이 책은 총 3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1부는 약에 대해 흔히 갖는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2부는 약의 생김새와 형태를, 3부는 주요 증상에 따라 복용하는 약에 대해 알려줍니다.



"약은 어떻게 몸속으로 퍼져 나가나요?"


약을 투여하는 방법은 먹거나 주사를 맞는 등 매우 다양한데, 대개는 입을 통해 약을 삼키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그림을 보면 소장에서 녹은 약은 간으로 이동해서 우리 몸에 흡수될 수 있는 형태로 바뀌고, 그러고는 심장으로 가 피를 타고 몸 전체로 퍼집니다. 그 후, 다시 간으로 돌아와 분해된 뒤 신장을 거쳐 오줌으로 빠져나간대요.



"먹다 남은 약을 쓰레기통에 버려도 될까요?"

어린이를 대상으로 쓴 글이라 그런지 머리에 쏙쏙 들어오네요. 그림도 많아서 약의 성분이나 쓰임새 등 복잡할 수 있는 내용도 잘 읽혀요. 그렇다고 얕은 수준의 내용만 있냐하면, 아니요~ 어른이 봐도 도움 받을 내용이 많습니다.



/



아무래도 영어 또는 한자어로 된 이름의 약이 많다보니 아이가 어렵게 느낄 수도 있는데, 글밥이 많지 않고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이 많아서 의외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가 먹은 약 혹은 발랐던 약이 있다면 어떤 것이었나 책의 내용과 비교해보고 부모님이 설명을 곁들여주신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약의 형태나 어떤 증상에 복용하는지, 유의사항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주셔서 참 유익했어요. <알면 약이 되는 약 이야기> 다 읽었으니.. 저는 이제 다음 단계의 책을 찾아봐야겠어요. 고전도 아이들 대상으로 나온 건 잘 읽히더라고요. ㅎㅎ 쉬운 것부터 공략~^^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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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믿는다 - 흔들리는 내 손을 잡아 줄 진짜 이야기
이지은 지음 / 허밍버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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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믿는다>는 결혼 후 남편과 함께 호주로 이민을 간 저자가 거기서 경험했던 일과 사랑, 보다 단단해진 자신을 찾은 이야기를 꾹꾹 눌러쓴 에세이예요.



나를 알아보는 게 이리 어려울까


저자는 결혼과 동시에 호주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먼저 건너가 삶의 터전을 닦고 있는 지인의 조언도 익히 들었고 일할 곳도 미리 소개받았지만, 막상 호주에서의 생활은 예상과 달리 흘러가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해요.



이민과 적응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익숙함이 배제된 낯선 타국의 생활에서 저자는 오히려 자신을 조금씩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어린 시절 때때로 쪼그라진 마음을 펴주었던 책이 낯선 호주 생활에서도 활력을 주었다는 저자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독서가 삶의 등뼈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저자의 표현에 웃음이 터졌어요. ㅎㅎ 그 말이 담고 있는 무게와 의미를 너무나 잘 알 것 같아서요.


저자가 한국에 있을 때의 졸업장과 경력은 호주에서 별다른 힘을 갖지 못했어요. 그럼에도 부지런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빼곡한 하루를 보냈지만 뭔가 빈 껍데기 같은 시간을 보낸다고 느껴졌나 봐요.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갑자기 생긴 시간에 자격증도 따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지냈지만 뭔가.. 나의 일을 갖는 것에서부터 점점 멀어지는듯했던 그런 느낌 아닐까요? 저뿐만 아니라 여느 엄마들처럼요. 저자는 이때,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 그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고, 책도 출간하고 그러셨죠.


일상의 중심을 잡는 연습




매일 우리가 해야 하는 사소한 선택들은 분명

크고 작은 용기로부터 비롯된다.

마치 발을 내딛고 걷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일지라도 그 선택의 용기로 어제와 다른

오늘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극적인 ‘운명’이 되기도 한다.


이 글을 보고 영업직으로 근무하던 시절이 새삼 떠올랐는데, 그때가 제겐 용기가 필요하던 때였어요. 기업 HRD 담당자에게 교육 제안 후 이러닝 컨텐츠를 제공하는 일을 했거든요. 매일 하던 일이었어도 고객과 만남을 갖기 전까지 자신감이 생겼다가도 또 없어지고, 마음이 널을 뛰었어요.



대개는 제 명함을 건네는 순간부터 ‘레드 썬~’ 상태에 들어갔던 것 같아요. ㅎㅎ 효과가 있으려나.. 손에 움켜쥐고 들어간 작은 용기는 기특하게도 결과에 좋은 영향을 준 적이 많았죠. 요즘도 그 작은 용기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



날씬한 몸매나 매끈한 근육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요즘 저는 살기 위해 운동을 합니다. 😆 이 오십견은 하루아침에 짠- 하고 나타난 게 아닌 것 같아요.



아이랑 마실 간 공원의 농구 골대에 슛을 하면서도 삐거덕, 설거지하면서도 삐거덕, 무거운 짐을 들고 가면서도 삐거덕, 수차례 신호를 주었는데 제가 별거 아닌 듯 지나쳐버린 거죠. 결국 어깨를 써야 할 중요한 시점에 어깨는 탈이 나고 계획한 일은 뒤로 밀리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체력, 진짜 중요해요! 나이가 있으니;; 앞으로 점점 더 그렇겠죠.

하루를 힘껏 만나다


날씨와 습도에 따라 커피 원두의 분쇄 정도나 추출 시간 등에도 변화를 줘야 한대요. 저자도 상황이나 순간의 감정 등에 따라 휘둘릴 때가 많았으나 점점 자기 자신의 중심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한 가지를 알게 된 거죠.



커피도 날씨에 따라 방법을 달리해 뽑아야 최고의 맛을 찾을 수 있다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어요. 지금의 자리에서 어느 쪽으로든 가지 못하고 멈춰있는 느낌이라면, 저자의 말처럼 ‘못 먹어도 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음으로 시도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젊을 땐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 같아서 솔직히 좀 짠한 생각도 들어요. ㅎㅎ ‘그거 아니야.. 그거 오래 못해. 너랑 안 맞아. 니가 너무 힘들 거야. 저쪽이 나아!’ 10년 후엔 지금의 저를 보며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요? 😆



어쨌거나.. 지금은 출발선에 서는 게 참 힘든 일이에요. 나이를 생각하면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잖아요 몇 번이고 주어질 기회란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체력이나 시간적으로도.



하지만 점점 드는 생각은.. 질러보고 싶어요. 정 뜻대로 안 된다면 실패에 관한 글이라도 써볼까 봐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은 좀 오글오글한데요, 저자가 그러더라고요. 요즘은 자기 나이에 0.8을 곱해서 나온 숫자가 진짜 나이래요. 저도 이 계산대로라면 30대에 안착합니다! 심리적으로 큰 위안이 되네요. ㅋㅋㅋ



이지은 작가님이 낯선 호주에서 자신을 더욱 잘 알게 되고 ‘못 먹어도 고!’ 정신으로 달려나갈 수 있었던 모습을 보면서, 이 엉덩이 무거운 중년의 여인도 조금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


서른이 넘어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지 못했고,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일에

서툴렀다는 걸 알았다.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행복하고, 삶에 무엇을

채우고 비워 가고 싶은지, 하루를 버티게 하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지, 익숙함 뒤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낯섦 앞에서는 선명히

드러났다. - P18

내가 허전해하던 삶의 무언가는 결국 ‘꿈’의

부재였다.

다시 꿈을 꺼내고 그 여정에 조금씩 다가갈

용기를 갖게 되면서, ‘오늘’은 할 일을 하나씩 쳐내는 하루가 아니라, ‘성의 있게 보내야 할

시간‘이 됐다. 그렇게 쌓여 가는 과정이 곧

결과라는 걸 인식하게 됐다. - P77

매일 우리가 해야 하는 사소한 선택들은 분명

크고 작은 용기로부터 비롯된다.

마치 발을 내딛고 걷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일지라도 그 선택의 용기로 어제와 다른

오늘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극적인 ‘운명’이 되기도 한다. - P92

내가 이루고 싶은 삶,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는 가장 밑바닥에 무엇보다 두껍고

든든한 체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 P99

내일은 모두에게 처음이고, 살아 본 적 없는

나이니까 우리는 죽을 때까지 나에 대해

알아 가고, 삶을 배워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생이 인생이라는 과목을 붙들고 사는

학생인데, 나이에 너무 기죽지 말자.

열여섯의 왓슨도, 일흔다섯의 모지스 할머니도 그들이 몇 살인지보다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을 쏟았을 뿐이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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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는 요일 (양장)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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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작가님 소설은 이번에 처음 읽게 되었는데, 와우!! 너무 재미있었어요. 배고프다며 밥 달라는 아이의 말에도 쉽게 책을 덮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라서 ㅎㅎ 김영탁 작가의 <곰탕> 이후로 다음 전개가 예측이 안되고 시간 순삭이었던 책은 오랜만이었어요.



소설은 지금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먼 미래 시점에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심각한 환경 파괴와 식량난 등 범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 개체 수를 유지하고자 인간 7부제를 시행하게 됩니다.



지난 5년간 보디메이트들과 신체를 공유하며 지내온 현울림은 생일을 하루 앞둔 화요일 밤, 신체를 넘겨받자마자 어두운 바닷속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억울한 죽음의 배후를 밝히기 위해 새로운 신체가 필요한 현울림은 무국적 브로커들을 찾아 친구들과 여울시로 떠났어요.


무국적 브로커로부터 간신히 다른 신체를 제공받고 죽음의 실마리를 찾아가던 현울림에게 충격적인 진실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돈으로 자유를 살 수 있는 세상

소설 속 사람들은 현실과 낙원이라 불리는 가상세계를 기반으로 요일별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어요. 화요일이 불타는 광기의 세상이라면 목요일은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의 아침처럼 차분한 세상이었죠. 요일마다 콘셉트와 깨어있는 인격이 다른 세상!



그 엿새 동안 김달이 정말 낙원에 존재하는 건 아니다. 뇌 데이터, 혼, 영혼, 정신, 그걸 뭐라고 부르든 김달의 실체는 데이터 센터에 보관된 김달의 뇌 안에 들어 있고, 그것이 서버를 통해 낙원에 접속할 뿐이다.

p. 54




신체를 여럿이서 공용으로 사용한다는 신박한 설정이 놀랍고, 신체가 없는 이들이 존재하는 방법이 유리단지 안에 든 뇌의 형태라니 충격이었어요. 데이터 센터라는 곳에 뇌가 담긴 유리단지가 쭈욱 놓여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



현울림의 부모님과 김달의 엄마는 이 데이터 센터의 화재로 뇌가 소실되어 사망했고 그 때문에 이 아이들은 보육원에서 자랐어요.



환경 부담금을 낼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17세가 되는 해 자신의 신체를 포기하고 보디메이트를 통해 일주일 중 단 하루만 오프라인 즉, 현실 세계에서 살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공용 신체를 제공받아 울림은 ‘수인’이 되었고, 운 좋게 보육원 친구와도 같은 수요일에 만날 수 있었어요. 친구인 김달과 젤리는 가족과도 같은 존재로 울림이 신체를 얻기 위해 여울시에 갈 때나 울림을 죽게 만든 범인을 찾는 고된 여정에도 함께해 줘요. 정말 찐친이죠..



생명 경시 사회


난 너도 유기견이라고 생각했거든.

너도 집이 없어서 보육원에서 지냈고, 때가 되면 안락사당하는 유기 동물처럼 열일곱 살이 되면 신체가 폐기되잖아.

p. 163



소설 속에서도 돈과 권력을 등에 업은 사람들은 야비하기 짝이 없어요. 울림은 보육원에 있다가 엄마가 살아계셨을 때 이모처럼 친하게 지냈던 엄마 친구 집으로 들어가거든요. 그녀의 딸인 강지나는 울림이 자기 처지에 맞지 않게 당당하고 굽신거리지 않자 점차 불만을 키워갔던 인물이에요.



강지나는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신체를 잃게 되면서 현울림에 대한 원망이 깊은 상황이었는데, 공교롭게도 현울림이 강지나와 보디메이트로 엮이는 일은 잔혹한 사건의 발단이 됩니다.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기이하게 얽혀있는 이 세상에서 생명의 가치는 최상위가 아닌 중간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 것 같아요. 국가는 누군가의 것이었을 신체를 마치 자산처럼 거두어 관리하고요. 저명한 연구소는 무연고 아이들을 불법으로 데려다가 마치 도구처럼 뇌를 연구하고 안락사시키기도 했어요. 강이룬은 그런 연구대상이었던 시기, 기억과 직결되는 치명적인 발병 가능성을 전해 듣고 갑자기 사라진 아이예요. 현울림이 마음을 준 사람이기도 하고요.



대환장 가상공간에서의 진실


근데... 진실이 항상 좋은 걸까?

유이레가 바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면, 과연 유이레가 그 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p. 295



직접 낳은 딸은 방치하고, 가상 세계에서 보다 완벽한 딸을 만들어 애지중지 만족해하는 부모가 있어요. 자신의 아이가 범죄를 저지르자 책임을 지도록 가르치는 대신 멀쩡한 다른 아이의 몸과 바꿔치기 하는 부모도 존재합니다.



더욱이 가상공간에서는 토성의 고리 위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도 있고 돈만 있으면 원하는 신체, 저택 같은 집을 꾸며놓고 지낼 수도 있어요. 이곳에서 진실이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최소한의 인간성 그리고 사랑


생명과 진실을 도외시하는 사람들이 대세인 사회일지라도 분명 자신들이 믿는 진실을 따르고자 노력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런 세상에서 인간은 도대체 어떤 지경까지 이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먼 미래의 일이라지만 솔직히 소름끼쳐요.



울림은 이룬이 피식 웃는 소리를 희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이룬은 울림을 꽉 안았고, 멈추지 않는 떨림은 서로에게 말하고 있었다.

몸은 빼앗기고 기억을 잃어도, 너와 나는 틀림없이 서로를 알아보고 어김없이 서로를 사랑하게 될 거야.

p. 430


자신의 몸을 잃어 사망처리 되고 속절 없이 떠돌던 현울림이 강이룬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여울시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현울림에게 여울시는 가상공간인 낙원보다 현실 속 진짜 낙원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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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최은미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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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족은 2020년 3월,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거든요. 점심식사를 끝내고 돌아온 포장이사 인부들이 집 안으로 한창 짐을 나르고 있을 때 아파트 관리사무소 안내방송이 들려왔어요.



“210동 3-4라인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관계자와 소독을 진행할 예정이니 주민 여러분은 외출을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



<마주>를 읽으면서 와닿았던 건 코로나19로 호되게 흔들린 우리들의 일상이었어요. 당시에는 미처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을 <마주>의 나리와 수미, 만조 아줌마를 통해 아.. 3년 여의 시간을 이렇게 보냈구나, 아득하게 멀어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요. 😭




<마주>는 팬데믹이라는 얼개 안에서, 가까운 이웃으로 지내던 엄마 나리와 수미의 내면과 관계에 집중합니다. 그녀들의 성장하는 딸, 만조 아줌마라는 인물은 나리와 수미에게 부풀어지고 터지고 아무는 과정을 제공해주는 것 같아요.




코로나 초기에 양성으로 확진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 정보는 물론 어디에 가서 몇 시간 동안 무얼했는지 등의 동선을 ‘공식적’으로 공유당했잖아요.



주변의 사람들은 너무나 당당하게, 그 상태로 ‘싸돌아 다닌’ 이들을 비난했어요. 때론 저도 그들 중 하나였고요.



그때 당시에는 확진자수 추이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늘 불안감에 휩싸여 살았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저 헛웃음이 납니다. 제때 치료받지 못한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요.



<마주>에서도 코로나로 인해 상처받고 의심하고 어긋나는 일상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어요.


서하의 줌 사건으로 나리는 서하와 수미를 떼어놓은 장본인이 되었고, 그 때문에 수미는 나리에게 적대감을 갖습니다. 나리 역시 평소 서하를 자신의 소유물 대하듯 했던 수미를 경멸했죠.



그때 코로나로 인한 단절은 이 둘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멀리 떨어뜨려놓았다가, 나리가 찾은 만조 아줌마의 사과밭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것 같았어요.



만조 아줌마를 도와 사과밭에서 함께 일하는 시간동안 둘은 한 톨 남김 없이 미워했고,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다가, 아픔에 공감하면서 화해의 물꼬를 트는 듯 보였어요. 물론 기본적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가 없어진 건 아니었지만요.



딸을 가진 두 엄마의 이야기여서, 아이의 속을 들여다봐주고 넓은 품을 내어주는 어른의 이야기여서 몰입이 잘 되었고 감동적이었어요.



딴산이라 불리던 마을 속 외딴 곳 만조 아줌마 외 결핵 보균자들이 지내던 그곳까지 코로나가 비집고 들어갔을 때, 한없이 약자였던 그들의 모습이 3년 전 우리 사회의 모습과 실감나게 겹쳐지더라고요.



그들을 대신해 사회에 의문을 제기하고 올바른 방향의 대응책을 제안했던, 이제는 훌쩍 커버린 서하의 모습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강인함과 당당함이 느껴졌어요.


진로잔에 향초를 주문했던 의문의 여성 김*하님의 정체도, 멋진 버스기사님의 모습으로 따뜻하게 나리를 맞아준 수미의 모습도 감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어요. ^^



소설을 읽는 내내 비탈진 사과밭을 오르내리면서, 향긋한 사과향을 마음껏 상상했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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