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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내리는 트릉카 다방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임희선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10월
평점 :
재회란 인생에서 일어나는
가장 가까운 기적이다.
저녁이면 반찬거리를 사러 나온 사람들로 활기찬 도쿄 구도심의 상점가, 그 중간 어디쯤에 서면 마치 비밀스러운 골목길로 안내하는 듯한 치즈냥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고양이가 모습을 감춘 골목 안쪽 막다른 길에서 방갈로처럼 세모난 지붕이 뾰족 솟은, 차분한 느낌의 갈색 건물을 만나게 되죠. 바로 트릉카 다방이에요.
<기적을 내리는 트릉카 다방>은 이곳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세 편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트릉카 다방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중심인물도 되고 동시에 주변 인물도 되어서 그런가 각각의 이야기라기보다 묘한 연결감이 느껴지는 하나의 이야기 같았어요.
트릉카 다방에서는 일명 마스터라 불리는 다치바나 이사오와 그의 딸 시즈쿠 그리고 우연히 아르바이트생이 된 대학생 오쿠야마 슈이치가 함께 일하고 있어요.
트릉카 다방에 와서 대뜸 슈이치의 손을 잡고, 전생에 연인이었다며 믿기 힘든 이야기를 꺼낸 유키무라 치나츠.
어린 시절 가정불화와 부모님에게 입은 상처 때문에 슈이치는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이지도, 그렇다고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익숙지 않은 어른이 되었거든요. 그런 슈이치가 치나츠로 인해 서서히 마음의 빈 곳을 채워가는 모습이 따뜻했고 보기 좋았습니다.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을지 모를 상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을 맴돌 수밖에 없었던 치나츠의 진심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죠. 슈이치는 기억하지 못하는 그 오래전 기억이 치나츠에게 있어 삶의 유일한 즐거움이었을까 싶어 안타까웠어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실수를 하고 흑역사라며 오랜 시간 괴로워합니다. 부정적 기억과 말이 또 그렇게 잘 떠오르고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면서요? 하지만 찬찬히 돌이켜보면 그저 지나친 좋은 기억, 애틋한 추억이 분명 더 많을 거예요. 슈이치가 잊고 지냈던 것처럼요.
마음을 감싸고 있는 두터운 벽을 밀어내려면 슈이치와 치나츠처럼 언젠간 용기를 내야겠죠? 단, 가급적 시간을 오래 끌지 말 것! 우리의 기억처럼 희석되고 희미해지면 진심을 전하기 더욱 어려워질 테니까요.
두 번째 이야기는 성공만을 좇으며 진정한 사랑과 건강마저 잃은 중년 남성 누타마 히로와 트릉카 다방의 쾌활한 단골손님 혼죠 아야코의 먹먹한 사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마스터의 딸, 자칭 트릉카 다방 마스코트 시즈쿠가 상실의 터널을 빠져나와 다시금 밝고 건강한 아이로 거듭나는 코끝 찡한 이야기예요.
오래 봐온 시간만큼 나는 그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게, 우리는 죽을 때까지 타인을 잘 알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해하려 노력하는 거고 쉽게 단정짓지 않을 수 있는 거죠.
트릉카 다방의 등장인물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줘서 감동이었어요. 한때는 실수하고 후회도 했지만요.
마스터가 내려주는 것처럼 향긋하고 깊은 맛의 커피가 있고, 무심하면서도 배려 있는 슈이치 같은 알바생과 천방지축이지만 격의 없이 털털한 시즈쿠처럼 귀여운 마스코트가 있는 곳 없나요~? 저도 트릉카 다방이 시급합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그날 밤에 내린 눈처럼 그런 사소한 일들이 하나둘씩 내 안에 쌓이면서, 우리의 관계는 겨울 끝자락에 다가갈수록 서서히 변해갔다. - P69
누군가를 위해 내가 바뀌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지 몰랐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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