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최은미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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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족은 2020년 3월,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거든요. 점심식사를 끝내고 돌아온 포장이사 인부들이 집 안으로 한창 짐을 나르고 있을 때 아파트 관리사무소 안내방송이 들려왔어요.



“210동 3-4라인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관계자와 소독을 진행할 예정이니 주민 여러분은 외출을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



<마주>를 읽으면서 와닿았던 건 코로나19로 호되게 흔들린 우리들의 일상이었어요. 당시에는 미처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을 <마주>의 나리와 수미, 만조 아줌마를 통해 아.. 3년 여의 시간을 이렇게 보냈구나, 아득하게 멀어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요. 😭




<마주>는 팬데믹이라는 얼개 안에서, 가까운 이웃으로 지내던 엄마 나리와 수미의 내면과 관계에 집중합니다. 그녀들의 성장하는 딸, 만조 아줌마라는 인물은 나리와 수미에게 부풀어지고 터지고 아무는 과정을 제공해주는 것 같아요.




코로나 초기에 양성으로 확진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 정보는 물론 어디에 가서 몇 시간 동안 무얼했는지 등의 동선을 ‘공식적’으로 공유당했잖아요.



주변의 사람들은 너무나 당당하게, 그 상태로 ‘싸돌아 다닌’ 이들을 비난했어요. 때론 저도 그들 중 하나였고요.



그때 당시에는 확진자수 추이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늘 불안감에 휩싸여 살았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저 헛웃음이 납니다. 제때 치료받지 못한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요.



<마주>에서도 코로나로 인해 상처받고 의심하고 어긋나는 일상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어요.


서하의 줌 사건으로 나리는 서하와 수미를 떼어놓은 장본인이 되었고, 그 때문에 수미는 나리에게 적대감을 갖습니다. 나리 역시 평소 서하를 자신의 소유물 대하듯 했던 수미를 경멸했죠.



그때 코로나로 인한 단절은 이 둘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멀리 떨어뜨려놓았다가, 나리가 찾은 만조 아줌마의 사과밭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것 같았어요.



만조 아줌마를 도와 사과밭에서 함께 일하는 시간동안 둘은 한 톨 남김 없이 미워했고,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다가, 아픔에 공감하면서 화해의 물꼬를 트는 듯 보였어요. 물론 기본적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가 없어진 건 아니었지만요.



딸을 가진 두 엄마의 이야기여서, 아이의 속을 들여다봐주고 넓은 품을 내어주는 어른의 이야기여서 몰입이 잘 되었고 감동적이었어요.



딴산이라 불리던 마을 속 외딴 곳 만조 아줌마 외 결핵 보균자들이 지내던 그곳까지 코로나가 비집고 들어갔을 때, 한없이 약자였던 그들의 모습이 3년 전 우리 사회의 모습과 실감나게 겹쳐지더라고요.



그들을 대신해 사회에 의문을 제기하고 올바른 방향의 대응책을 제안했던, 이제는 훌쩍 커버린 서하의 모습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강인함과 당당함이 느껴졌어요.


진로잔에 향초를 주문했던 의문의 여성 김*하님의 정체도, 멋진 버스기사님의 모습으로 따뜻하게 나리를 맞아준 수미의 모습도 감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어요. ^^



소설을 읽는 내내 비탈진 사과밭을 오르내리면서, 향긋한 사과향을 마음껏 상상했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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