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킹콩걸 - '못난' 여자들을 위한 페미니즘 이야기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민병숙 옮김 / 마고북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17살에 강간당하고 매춘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작가, 영화감독이 된 69년생 여자의 분노에 찬 남성 비판 에세이라고 할까. 페미니즘의 기저에서 볼 수 있는 주된 정서는 종종 증오다. 이 책도 그 경우에 해당하는데, 비르지니 데팡트의 목소리에서 들을 수 있는 증오는 강간을 당한 개인의 실제적 경험에 근거했기 때문에 훨씬 더 강렬하고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녀가 강간 당시 염색과 피어싱으로 몸을 단장하고, 히치하이킹을 해서 대마초를 피는 남자애들이 탄 차에 자발적으로 올라탄 이른바 날라리였으며, 그후 매춘과 남자 접대로 생을 낭비한 전력의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그녀가 일종의 원인 제공자로서 그녀의 증오의 대상이 된 남자들보다 훨씬 더 우월한 도덕적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여자는, 이처럼 순결하지 못한, 부정한, 양해를 구하고 지나친 표현을 쓰자면, 걸레 같은 여자는 너무도 무가치해서 강간이라는 말이 적당치 않은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 처해서든 그녀는 영원히 인간이고, 타락한 여자도 역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남자로서) 이 여인을 보는 내 시각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사실 남자로서 정숙하지 않은, 최소한 하디가 순수한 여인이라고 했던 테스만큼 순수하지 않은 여인은 동정하거나 공감하거나 존경하기가 힘들다. 이것은 역시 내가 아직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남성이기 때문일까? 여자들은 정말로 강간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그럴 만한 원인을 제공했으리라 추측하는 타인의 시선이 더 견디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사회는 많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강간이라는 주제 외에도 매춘이나 포르노그래피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이 책은 내게 이전까지 깊은 관심없었던 주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지만, 또한 저자의 공격성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튼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