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고 싶었던 개구리 열린어린이 그림책 21
기 빌루 지음, 이상희 옮김 / 열린어린이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다를 마주하고 펄쩍 뛰어오른 개구리와 수면 위로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환한 보름달과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바다가 보고 싶었던 개구리』는 언뜻 봐선 사진인지 그림인지 모를 표지 그림에 먼저 마음을 빼앗겨 읽게 된 그림책이다. 연못이나 습지에 있어야 할 개구리가 바다를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으니 ‘정저지와(井底之蛙)’와 자연스레 연결되면서 내용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결정적인 그림이 아니던가. 하지만 단지 그것이 전부라면 이 그림책을 붙잡고 지금부터 늘어놓을 수다는 하릴없이 시간만 낭비하는 불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표지만으로 유추한 내용대로 흘러가다 딱 멈췄더라면 일러스트만 독특한 책으로 딱 그만큼의 매력으로 끝났을 텐데 작가는 마지막 경쾌한 반전으로 매력을 무한발산 한다.


뒷다리로 스물여덟 번 발길질을 하면 연못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헤엄쳐 갈 수 있는 작은 연못에 사는 개구리 앨리스는 짐작대로 바다를 동경하는 용감한 개구리다. 연못가 부들 숲에서 놀다가 포르르 날아가 사라져 버리는 잠자리들이나 연못 위 하늘을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 봄이 오면 사라져 버리는 이유가 궁금했던 앨리스는 갈매기에게 연못 밖 세상에 대해 묻는다. 특히 몇 번이나 발길질을 해야 끝에 가닿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이 넓다는 바다는 앨리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앨리스는 바다를 보러 가기로 결심한다. 강을 따라 바다에 이르는 길에 오른 앨리스에게 물이 움직이며 흐르는 강도 놀라움의 대상이다. 수련 잎을 뗏목 삼아 급류로 뛰어드는 것도 한껏 용기를 낸 행동이다. 강에서 만난 노인은 앨리스의 모험심은 칭찬했지만 바다가 개구리에게 호락호락 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위험에 빠졌을 때 도움이 될 거라면서 작은 유리병을 건네는 노인을 뒤로 하고 앨리스는 낯선 도시를 지나 바다로 향한다. 드디어 도착한 바다, 발길질 스물여덟 번이면 정복할 수 있었던 연못에 살던 앨리스에게 집어삼킬 듯 달려드는 엄청나게 거대한 파도는 공포였을 것이다. 유리병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파도에 휩쓸리는 위험을 모면하고 연못이 그리워 울던 앨리스에게 물위에 비친 달이 도움의 손길을 보낸다. 어느새 연못으로 돌아온 앨리스는 기쁨에 겨워 밤새도록 달빛 속에서 헤엄친다.


역시 내 집이 최고야, 집 떠나면 고생이야 하면서 연못으로의 복귀에 안도했더라면 밋밋한 이야기였을 텐데 연못으로 돌아온 뒤 몇 달이 지난 여름날 앨리스가 연못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멋진 엔딩으로 폼나게 큰 웃음 날려주면서 말이다. 강에서 만난 낚시하는 노인과 유리병, 달그림자처럼 초현실적 존재들이 요정 할머니나 수호천사처럼 앨리스를 응원한다. 건조하고 생경한 느낌을 주는 그림은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작품을 보는 듯도 하다. <보름달의 전설(미하엘 엔데 글)>의 그림 작업을 한 비네테 슈뢰더를 떠올리게도 한다. 특히 도시의 악어가게를 찾아 떠나는 나일강 악어를 그린 <악어야, 악어야>의 비슷한 플롯과 비슷한 구도의 그림 컷도 겹쳐 떠오른다.

 <<연못을 떠난 앨리스의 첫번째 바다 >>

<<연못으로 다신 돌아오지 않은 앨리스의 바다>>


그림책을 읽다보면 그 안에 의도적이든 아니든 작가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공공연하게 드러내놓았거나 이야기 뒤편에 꼭꼭 숨겨뒀던 비밀을 발견하는 것 또한 내가 그림책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바다가 보고 싶었던 개구리>는 낯선 세상에 첫발을 내디디는 사람,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공포 더불어 용기를 주는 그림책이다. 연잎을 돌돌 말아 두루마리처럼 만들어 옆구리에 꼭 끼고 있는 앨리스의 모습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작가인 기 빌루의 이야기를 들춰보면 앨리스에 작가 자신이 투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의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기 빌루는 바다가 보고 싶었던 개구리 앨리스처럼 큰 바다인 뉴욕의 광고계로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동료의 조언으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분야를 바꾸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서 드디어 뉴욕으로 향한다.(연잎 돌돌 말아 옆구리에 끼고 있는 앨리스의 모습이 보인다.^^) 막상 떠날 날이 다가오자 두려움과 공포가 압박해 왔다. 기 빌루는 빠른 비행기 대신 느린 배를 택해 일주일 만에 뉴욕에 도착했다. 자신의 미래를 결정지을 두려움과 공포의 순간을 늦추려는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간다. 다행히 기 빌루의 포트폴리오는 아트 디렉터의 마음에 들었고 그렇게 해서 뉴욕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순조롭게 안착했다는 얘기다. 어떤가, 앨리스는 곧 기 빌루 자신이 아니런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도전과 애써 짜낸 용기가 두려움과 좌절의 벽에 부딪칠 수도 있다. 하지만 좌절의 경험들이 쌓여 새로운 도전의 에너지가 되는 법이다. 실패는 성공을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말은 두려움과 좌절을 이겨내고 도전해서 성공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다. 학교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아이가 언젠가 앨리스처럼 멋진 파도타기에 성공하게 될 날을 기대하면서 앨리스의 연잎 보드 위에 내 아이를 살포시 올려놔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