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 할머니의 비밀 꼬맹이 마음 42
우에가키 아유코 글.그림, 서하나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김애란의 단편에서 읽었던, 파랑의 종류만도 수백 가지가 넘는다는 글이 순간 떠올랐다. 인디고블루, 프러시안블루, 코발트블루, 네이비블루, 아쿠아마린, 스카이블루... 장맛비로 불어난 물에 스티로폼 판때기를 타고 떠내려가면서 까무룩 잠결에 본 쾌청한 하늘빛을 뭐라 명명해야 할까, 그 파랑에 완벽하게 부합되는 이름이 뭘까 고민하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 그림책 『스미레 할머니의 비밀』에 등장하는 파랑에 뭔가 완벽하게 들어맞는 완벽한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졌다. 스미레 할머니가 정성스레 만들고 있는 손녀의 원피스, 할머니의 치마, 할머니 블라우스의 꽃무늬, 달개비 풀, 거리를 지나는 자전거, 밤풍경에 등장하는 파랑이 어쩜 이리 고울 수가 있는지 자꾸만 파랑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책을 먼저 읽은 일곱 살 아이에게 무슨 책이더냐고 물으니 “스미레 할머니가 동물 친구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줬는데 나중에 할머니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동물친구들이 힘을 모아 도와줬다는 내용이에요.”하며 쉽게 내용을 요약해서 알려줄 정도로 이야기 구조는 갈등도 반전도 없이 쉽고 잔잔한 편이다. 잔잔하고 단순하고 고운 이야기인데 이 파랑의 매력 때문에 나에게 특별한 그림책이 되었다. 글로 설명하자니 답답하고 보여주자니 여러 환경에 따라 맛이 차이가 나는 사진으로는 뭔가 부족한 이 매력적인 파랑..







바느질 솜씨가 좋은 스미레 할머니는 나이가 들자 바늘에 실을 끼우기가 힘들어졌다. 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겨우 바느질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손녀의 원피스를 마무리 해야 하는 날 얄궂게 비가 내려서 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없었다. 한숨 쉬는 할머니 앞에 개구리가 나타나자 할머니는 실을 끼워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엄마 개구리는 연못에 있는 아기 개구리의 수련 잎 침대가 찢어져 고쳐달라는 부탁을 한다. 아기 개구리 침대를 고쳐주고 나니 엉겅퀴 가시에 걸려 날개가 찢어진 나비가 부탁을 하고, 직박구리는 부서진 둥지를고쳐 달라고 한다. 솜씨 좋은 할머니는 멋진 솜씨로 부탁을 다 들어주는데 일을 마치고 나니 이번에는 스미레 할머니에게 큰일이 생겼다. 손녀의 원피스를 완성할 실이 다 떨어져 버린 것이다. 자기들 때문에 실이 동난 걸 미안해하던 친구들은 숲속 거미에게 부탁해 특별한 실을 얻어온다. 빗방울을 머금은 거미줄로 수를 놓은 손녀의 원피스가 얼마나 고왔을까 상상해보라. 작은 동물들의 어려움도 지나치지 못하는 할머니의 고운 마음과 감사할 줄 아는 마음들이 보태져 만들어진 원피스라 더욱 특별하다.

 

엄마가 되고부터는 내가 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이러저러한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 중 아이가 젖을 뗀 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은 잠자리에서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주기다.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아이가 괜찮은 반응을 보이면 다음날은 밤이 될 때까지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뒷얘기들을 이어붙일 수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결국에는 한계에 부딪쳐 서둘러 이야기를 끝내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동화를 쓰기 시작해서 멋진 그림책을 남긴 버지니아 리 버튼이나 딸에게 자장가 대신 들려준 이야기가 「말괄량이 삐삐」, 칭얼대는 손자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에밀은 사고뭉치」라는 책으로 남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같은 재능 있는 동화작가들을 부러워한다. 나는 나중에 손자가 생기면 지금 내 아이처럼 이야기를 좋아하는 녀석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할머니가 될 때까지 이야기 내공을 더 쌓아서 그때쯤이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할머니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샘솟는 멋진 할머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스미레 할머니의 비밀』을 읽고 나니 손녀에게 이쁜 원피스 만들어 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은 바람 하나가 더 추가됐다. 그럼 바느질도 배워야 하나... 근사한 할머니가 되기도 참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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