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 배의 용감한 선장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05
유리 슐레비츠 지음, 최순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나는 유리 슐레비츠의 작품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비오는 날>이나 <새벽>과 같은 수채화를 보는 듯한 잔잔한 그림책은 내 취향이 아니다. 그림책의 영역에서 맘껏 누릴 수 있는 환상적이고 기발한 이야기들을 선호하는 나는 그림에 대한 설명문 같은 글과 글에 대한 묘사 이상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그림, 이런 잔잔함에는 감동받지 않는다. 아서 랜섬의 글에 그림을 그렸던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하늘을 나는 배>는 제외하고 글과 그림 작업을 모두 한 <보물>, <비밀의 방>, <내가 만난 꿈의 지도>에서도 내가 찾는 기발한 상상력을 발견하지 못했다. 교훈적이고 철학적인 메세지를 자꾸 심어주려는 의도가 참 불편했다.  음...뭐 랄까...일러스트는 뛰어나지만 이야기보따리가 빈약하다고 해야 할까? 중국의 한시나 동양 사상에 기대거나 자신의 어릴 적 경험담을 제외하고 그의 이야기보따리 안에 뭐가 더 들어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이쯤에서 비범한 상상력과 평범한 상상력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이건 아무래도 <마지막 휴양지>의 리뷰를 끝낸 후유증인 것 같다.^^)

유리 슐레비츠의 최근작 <나는 작은 배의 용감한 선장> 속의 배를 타고 상상의 세계로 항해를 떠나는 소년의 모습에서 단박에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1963년작 <괴물들이 사는 나라>와 2009년작 <나는 작은 배의 용감한 선장>. 두 작가 모두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하는 칼데콧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작가들이다. 세계가 인정한 자질을 두고 내가 재평가를 하려 든다는 건 건방진 일이지만 호불호는 분명히 존재한다. 평소 별로 선호하지 않은 그림책 작가의 책을 고른 건 순전히 아이의 선택이었다. 선원 호루라기와 바다로 떠나는 항해에 마음이 끌렸던 아이는 두말 않고 이 책을 카트로 옮겼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순진하지 않으니 또 이렇게 슬슬 비틀기 시작한다.

맥스호를 타고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항해를 떠나는 우리의 귀염둥이 악동 맥스의 이야기와 자연스레 비교하게 된다.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테다 협박하며 엄마에 의해 방에 갇히게 되면서 항해를 시작하는 맥스와 다르게 이 책의 소년은 엄마의 도시락 환송까지 받으며 항해를 시작한다는 출발이 좀 다르다. 맥스의 항해는 괴물들마저도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악동짓으로 괴물나라를 평정한 맥스 스스로가 만류하는 괴물들을 뿌리치고 귀가를 결정했지만 이 소년은 상상의 세계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으려는 순간 알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황급히 발을 빼게 된 경우다. 악동 맥스에 비하면 아주 순진한 아이의 모습이다. 이 책 또한 두려움에 당당하게 맞서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끝을 맺고 있지만 그림 하나 없는 깨끗한 여백에 ‘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어.’ 달랑 한 줄만 덩그러니 남은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끝부분이 전하는 감동이 더 진하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비범한 상상력의 결과물이고 <나는 작은 배의 용감한 선장>은 평범한 상상력의 결과물이라 말하고 싶다. 46년의 시공간을 지나는 동안에도 위대한 상상력은 세련됨에서 촌스러움으로 갈아타지 않는다.

맥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글을 이곳에 잔뜩 남긴 이유는 맥스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에 남겨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유리 슐레비츠를 엄청 씹었다. 내가 그림책을 몇 년째 읽으며 눈만 높아진 게 분명하다. 아..뭔가 살짝 부족하다,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 장점이 많은 작가다. 그러니 칼데콧 상이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를 선택했을 것이다. 절대 못났다는 게 아니라 너무나 위대한 작가의 작품이 연상되는 작품에 도전했다는 게 유리 슐레비츠의 실수라고 생각한 것이니 (유리 슐레비츠가 이곳에 들어와 이 글을 볼 리는 없고..^^)유리 슐레비츠의 팬이 혹시 이 글을 보거든 이런 시각도 있겠거니 넘어가 주길 바란다. 아무래도 어제 결혼식의 먹어볼 것 없었던 호텔 스테이크가 너무 질겼던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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