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휙, 바람이 쏴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5
케티 벤트 그림, 에벌린 하슬러 글, 유혜자 옮김 / 비룡소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권선징악은 그림책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는 주제일 것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주제이지만 다양한 구성과 획기적인 반전을 제시하는 이야기들에 익숙해 있는 어른 독자에게는 참 식상한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효과적이기는 하다. 이 책  <바람이 휙, 바람이 쏴>는 스위스 판 ‘흥부와 놀부’나 ‘혹부리 영감’이라고 생각하면 그 내용과 주제를 아주 쉽게 유추해낼 수 있을 것이다.

깊은 산 계곡에 살고 있는 레오와 메오 곱추 형제의 이야기다. 형 레오는 친절하고 가축들과 식물들을 잘 보살펴 주는 착한 성품이었고 동생 메오는 거칠고 걸핏하면 가축들을 때리기 일쑤였다. 눈이 오기 전에 산 너머 오두막집의 지붕을 수리하기 위해 동생 메오가 갈 차례였지만 험한 산길이 싫다는 동생 대신 할 수 없이 형 레오가 길을 떠난다. 개미나 두꺼비 같은 미물이라도 그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버섯 하나 나뭇가지 하나라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은 레오는 조심조심 가시나무 길과 계곡을 지나 숲에서 밤을 보내게 된다. 레오가 잠든 후 숲의 요정들이 레오 곁으로 몰려든다. 숲의 요정은 버섯 요정, 곡식 요정, 가축 요정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레오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자고 제안한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뜬 레오는 몸이 가벼워졌음을 느낀다. (이 대목에서는 다들 바로 등의 혹이 없어진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오두막에 도착해서 지붕을 열심히 고치고 산을 내려와 집에 도착한 형 레오는 자신을 보고 놀라는 동생을 보고나서야 등에 있던 혹이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다. 형에게 좋은 일이 생겼음을 부러워한 동생 메오도 그 다음날 오두막을 향해 똑같은 길을 따라 집을 나선다. 그 여정에서 괴팍하고 거친 성격의 메오가 어떻게 처신했을 지는 짐작할 것이다. 그리고 숲의 요정들의 특별한 선물이 무엇일 지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 : 오픈키드>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의 이 그림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림이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재미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 익숙한 플롯이라 살짝 식상할 뿐이다. 흑백과 칼라가 교차하는 이 그림, 우선 섬세하고 치밀한 펜화가 눈에 들어온다. 아아...그리고 이 그림책 속에서의 숲이 살아있다. 숲속 동물들은 물론이고 나무며 풀이며 꽃이며 계곡의 바위며 심지어 눈보라와 쏟아지는 비까지도 살아있다. 이 묘한 느낌에 취해 반복해서 읽으며 이유를 더듬어 보니 그림 속에는 살아있는 눈이 있다. 이 그림 작가 눈에 집착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눈 코 입을 갖춘 얼굴을 이곳저곳에 그려 넣은 숲 속 장면들 뿐 만아니라 풀숲에도 숲의 전경에서도 계곡의 원경에도 하늘에도 눈보라 속에도 어느 장면을 펼쳐보아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숲속의 어둠을 통해서 기괴하게 꼬인 나뭇가지에 앉은 까마귀를 통해서 창공을 나는 독수리의 눈을 통해서 내게 말을 걸어온다. 동물을 사랑하는 레오 곁에 몰려든 염소들의 사랑스런 눈빛에서부터 한없는 無에 가까울 정도로 공허한 눈빛들까지 그렇게 나를 보고 있다. 그렇게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레오와 메오 형제가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자연의 일부처럼 숨은그림찾기처럼 숨겨진 이 그림을 통해서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고 자연의 신비함 앞에서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아이와 함께 유익한 이야기를 나누고 메오의 예를 들어 약간의 협박용 카드도 저장해두고 그림 속에서 신비한 모습들을 하나하나 새롭게 발견해 가면서 정말 재미있는 책읽기 시간이었다. 리뷰를 쓰면서 다시 한 번 내게 말을 건네는 숲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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