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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사론
리차드 개핀 지음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1999년 9월
평점 :
오늘날 기독교계, 특히 현대 은사주의 운동의 폭발적인 확산 속에서 '성령의 역사'는 종종 개인의 신비로운 체험이나 기적적인 현상과 동의어로 여겨진다. 방언을 하지 못하면 성령을 덜 받은 것인지, 혹은 오늘날에도 예언이나 기적적인 신유가 지속적으로 주어지는지에 대한 첨예한 논쟁은 많은 신자들에게 혼란을 안겨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간된 지 20년도 더 된 리차드 개핀의 『성령은사론(Perspectives on Pentecost)』 번역본은, 주관적 체험이 진리의 척도가 되어버린 현대 교회에 여전히 묵직한 경종을 울린다. 이 책은 "우리의 영적 체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분별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화두를 던지며, 모든 현상을 철저히 성경의 객관적 권위 아래 굴복시켜야 한다는 개혁주의 성령론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책의 핵심 논지는 성령의 사역을 개인의 '구원의 서정(ordo salutis)' 차원이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된 '구속역사(historia salutis)'의 거시적 관점에서 재정립하는 데 있다. 저자는 오순절 성령 강림이 중생한 신자가 이후에 개별적으로 추구해야 할 '제2의 축복'이 아니라, 구속사의 획기적이고 단회적인 성취임을 치밀하게 논증한다.
가장 치열한 논리가 전개되는 부분은 방언과 예언의 본질, 그리고 그 지속성에 대한 분석이다. 개핀은 에베소서 2장 20절을 근거로, 신약의 사도와 예언자들이 교회의 '기초'를 놓는 단회적이고 창설적인 직분이었음을 밝힌다. 방언과 예언은 이 기초를 세우기 위해 주어졌던 오류 없는 '계시적 말씀 은사'였으며, 따라서 신약 정경의 완성과 사도 시대의 종결과 함께 그 구속사적 목적을 다하고 영구히 중지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확고한 결론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탁월성은 '계시 의존 사색'이라는 탄탄한 신학적 방법론에 있다. 저자는 성도들의 영적 경험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성경의 완전성 아래 편입시킴으로써 신자들을 '특수 은사 소유에 대한 강박과 우월의식'으로부터 해방시킨다. 고린도전서 12-14장에 대한 깊이 있는 주해를 통해, 일상의 모든 봉사와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이미 본질적으로 은사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 점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기적적 은사가 없더라도, 완성된 성경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 성령의 조명하심이 얼마나 완전하고 충족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다만, 이 책의 엄격한 은사중지론은 오늘날의 예언을 '오류 가능한 영적 통찰(Fallible prophecy)'로 재정의하여 수용하려는 온건한 지속론자들에게는 다소 경직된 잣대로 비칠 한계도 지닌다. 현대 교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영적 감동이나 섭리적 인도하심을 '이중계시관'이라는 엄격한 프레임으로 강하게 차단함으로써, 성령의 역동성을 교리적 틀 안에 너무 좁게 가두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에 직면할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식의 주관적 직통 계시가 남발되는 작금의 현실을 고려할 때, 정경의 최종성을 목숨 걸고 사수하려는 저자의 단호한 논리는 오늘날 더욱 절실하고 강력한 방파제 역할을 한다.
결론적으로 리차드 개핀의 『성령은사론』은 오순절 사건과 성령의 은사를 성경적, 구속사적 관점에서 가장 정밀하게 해부한 명저다. 이 책은 불확실하고 파편적인 특수 체험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는 대신, 완성된 66권의 객관적 말씀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도록 이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있는 평신도나, 파도처럼 흔들리는 감정주의를 넘어 뼈대 있는 개혁주의 성령론을 정립하고자 하는 신학생과 목회자들에게 주저 없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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