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IVP 조직신학 시리즈
싱클레어 퍼거슨 지음, 김재성 옮김 / IVP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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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교회 일각에서는 성령을 말할 때 방언이나 신비한 체험, 뜨거운 감정적 경험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싱클레어 퍼거슨의 『성령』은 성령론의 중심을 다시 성경과 개혁주의 신학 위에 세우도록 돕는다. 성령은 내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어떤 능력이나 에너지가 아니라,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이시다. 결국 성령에 대한 이해의 중심은 ‘나의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 사역’으로 옮겨가야 한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성령의 사역을 구속사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점이다.

첫째, 성령 강림, 곧 오순절 사건은 반복되는 개인적 체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승천 이후 성령께서 교회 가운데 특별히 임하신 역사적·구속사적 사건이다. 오순절은 오늘날 모든 신자가 반복해서 경험해야 하는 별도의 영적 체험이라기보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연결되어 교회가 성령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 중요한 사건이다.

둘째, 사마리아와 가이사랴, 에베소에서 나타난 성령의 특별한 역사는 모든 신자가 회심 이후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또 하나의 성령 세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사마리아와 이방인, 그리고 새로운 지역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구속사적 사건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사도행전의 이러한 사건들을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이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해서 경험해야 하는 규범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확장하시며 교회를 세워 가시는 과정 속에서 이해하게 된다.

셋째, 구원의 순서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도 퍼거슨은 성령의 사역을 단순한 단계의 연속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중심에 둔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께 연합시키시고, 그 연합 안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구원의 각 요소를 기계적으로 A에서 B로 이어지는 과정처럼 이해하기보다, 모든 구원의 은혜가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바라보게 한다.

이러한 관점은 성령을 둘러싼 여러 논쟁을 바라보는 데에도 중요한 시각을 제공한다. 특히 일부 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에서 주장하는 ‘회심 이후 별도의 성령 세례’에 대한 이해를 성경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신자의 시선을 반복적인 특별 체험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객관적인 구속 사역으로 돌려놓는다.

이 점이 이 책이 내게 주는 가장 큰 유익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 얼마나 특별한 성령의 체험을 했는가’를 확인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퍼거슨은 오히려 성령께서 우리를 누구에게로 이끄시는지를 바라보게 한다. 성령의 사역은 결국 우리를 그리스도께 연합시키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앙의 중심도 달라진다. ‘나는 어떤 특별한 체험을 했는가?’라는 질문보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성령께서 나를 그리스도께 더욱 깊이 연합시키고 계신가?’라는 질문이 중요해진다. 구원은 우리의 체험이나 감정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누구에게나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필리오케(filioque)와 같은 삼위일체론적 논의나 구속사와 구원의 순서에 관한 내용은 신학적 배경이 없는 독자에게 다소 높은 진입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일반 성도들을 위한 쉬운 입문서라기보다는 목회자나 신학생, 성령론을 보다 깊이 공부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더욱 적합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 책이 오늘날 교회에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과 체험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작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께 연합시키시는 사역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성령께 “저에게 능력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특별한 체험이나 능력을 구하는 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께 더욱 깊이 연합시키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우리의 삶 가운데 실제적으로 적용하시도록 구해야 한다.

창세기의 혼돈 가운데 질서를 세우셨던 성령께서는 오늘도 죄로 인해 무너진 인간을 새롭게 하시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신다.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시다.

싱클레어 퍼거슨의 『성령』은 성령을 둘러싼 감정적·주관적 관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성령의 사역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복음의 중심으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 화려한 은사와 감정적인 경험에 집중하다가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께 붙들어 매시는 참된 사역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특별히 성령론을 둘러싼 혼란 속에서 목회의 중심을 다시 세우고 싶은 목회자와 신학생, 그리고 주관적인 감정이나 체험에 흔들리지 않고 복음 위에 더욱 단단히 서고 싶은 성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결국 성령의 사역을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더 특별한 체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께 연합시키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신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아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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