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인가, 쇼인가! 규장 A. W. 토저 마이티 시리즈 1
A. W. 토저 지음, 이용복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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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예배하러 온 것인가.

아니면 예배라는 이름의 무언가를 보기 위해 온 것인가.


A.W. 토저의 ‘예배인가, 쇼인가’는 이 서늘하고도 불편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오늘날 예배의 형식은 점점 다양해지고, 찬양과 설교는 더욱 세련되어지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화려한 장치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예배가 사람의 만족을 위한 하나의 '프로그램'이나 '쇼'가 되어버린다면, 우리는 과연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는 강단이 쇼의 무대로 변해가는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예배의 본질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그가 말하는 인간의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예배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역이나 다른 어떤 것보다 예배가 먼저다. 무언가를 하나님을 위해 행하기에 앞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깊이 알고 그분을 전인격적으로 경외하며 사랑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참된 예배는 감정을 고양시키는 시간이 아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바르게 알고, 영혼의 눈으로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 앎과 경외가 삶의 순종으로 이어지는 것이 예배다. 예배당에서는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일상의 삶에서는 그분을 외면한다면, 가인의 제사처럼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놓인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한 반쪽짜리 예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고독과 침묵의 시간을 강조한다. 세상의 소리를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것, 그곳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그가 말하는 참된 예배의 중요한 모습이다.

이러한 참된 예배의 요건을 제시한 뒤, 토저는 오늘날 교회가 예배에 세상의 엔터테인먼트(연예·오락) 방식을 무분별하게 끌어들이는 현실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가 진정으로 문제 삼는 것은 새로운 음악 장르나 기술의 도입 자체가 아니다. 핵심은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에게서 사람에게로 옮겨가는 것이다.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계산된 멘트를 던지는 MC와 같은 인도자, 감정을 자극하는 찬양, 대중의 입맛에 맞춘 설교, 재미와 흥미를 더하기 위한 각종 장치가 예배의 본질을 대신하기 시작한다면,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사람의 만족을 쫓는 '허영의 시장(Vanity Fair)'으로 전락하고 만다.

특히 토저는 십자가의 고난과 자기부정을 가르치기보다 세상의 성공과 스릴을 약속하는 타협된 메시지를 경계한다. 유명 인사의 명성과 대중의 인기에 기대어 기독교를 홍보하려는 태도 역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님보다 사람의 반응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하는 순간, 예배는 쉽게 인간 중심의 쇼비즈니스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당시의 교회를 향해,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를 향해 이렇게 묻는다.

 

기독교는 허영의 종교가 되고 말았는가!”

 

여기서 말하는 '허영의 종교'는 외적인 화려함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사람의 관심을 얻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보다 인간의 반응을 앞세우는 모든 신앙적 행태를 의미한다. 결국, 이 책이 겨누는 것은 특정한 예배의 '형식'이 아니라 예배의 '방향'인 셈이다. 예배를 하면서도 우리가 궁극적으로 누구를 기쁘게 하고, 누구를 만족시키려 하는지를 매섭게 묻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을 때, 저자인 A.W. 토저가 중세 기독교 신비주의 영성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주의 깊게 분별할 필요가 있다. 그의 신학적 배경이나 표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마저 외면할 수는 없다. 저자의 성향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세속의 엔터테인먼트로 전락해가는 예배의 현실을 향한 그의 통찰은 오늘날 교회가 뼈아프게 직면하고 고찰해야 할 분명한 화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별의 연장선상에서, 그의 날 선 비판을 오늘날의 모든 교회에 문자 그대로 적용해 정죄할 필요도 없다. 새로운 음악이나 영상, 다양한 예배 형식을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곧바로 세속적인 ‘쇼’라고 규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형식 자체가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목적이다. 그 형식이 하나님을 더욱 온전히 바라보게 하는가, 아니면 사람의 관심과 만족을 예배의 중심으로 가져오는가를 치열하게 분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예배인가, 쇼인가'는 쓰인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고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예배를 '잘 기획하고' 있는가, 아니면 정말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가. 예배를 준비하고, 진행하고, 평가하는 일에 익숙해지는 동안 정작 예배의 유일한 대상이신 하나님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새롭고 트렌디한 예배를 기획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익숙해진 우리의 예배를 향해 본질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반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인위적인 자극보다 성령의 역사를 구하며, 재미와 인기를 좇기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높이는 것. 잃어버린 예배의 회복은 결국 이 지점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나는 지금 예배하고 있는가, 아니면 예배를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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