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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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요즘 같은 시대에 ‘진짜’라는 단어는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누구나 진심을 말하지만, 무엇이 진심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세상. 그래서일까. ‘혼모노’라는 제목 앞에서 나는 멈칫했다. 일본어 ‘本物’, 즉 ‘진짜’를 뜻하는 이 단어는, 긍정에서 조롱으로, 다시 성찰로 의미가 확장되어 왔다. 성해나의 두 번째 소설집 <혼모노>는 바로 이 모호하고도 날 선 경계를 향해 걸어 들어간다. 진짜란 무엇인가, 가짜란 과연 그것과 구분 가능한가. 이 책은 일곱 편의 단편을 통해 사회와 개인, 세대와 정체성의 틈 사이를 예리하게 비춘다.


2. 성해나는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면서도 결국 인간의 욕망, 상처, 고통을 드러낸다. 무당 ‘문수’의 이야기를 그린 표제작 <혼모노>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신을 섬겨온 문수가 어느 날 ‘신애기’라는 젊은 무당에게 신을 빼앗기며 시작된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단순한 세대 충돌이 아니다. 문수는 자신이 ‘진짜’라고 믿었던 자리에 균열이 생겼을 때, 오히려 가짜로서의 자유를 느낀다. 그 순간 그는 진짜가 무엇인지 묻는 것을 멈춘다. 이처럼 작가는 진짜와 가짜의 이분법 자체를 문제 삼는다.


3.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팬덤이라는 집단적 열광 속에서 윤리와 도덕, 그리고 ‘찐팬’이라는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호랑이를 만지는 체험은 죄의식을 수반한 쾌감의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화자는 자신이 외면했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스무드>에서는 외국인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의 이중성과 편견, <구의 집>에서는 건축을 매개로 한 권력과 기억의 문제, <잉태기>에서는 원정 출산을 둘러싼 가족 간의 긴장을 통해, 각기 다른 장르의 껍질 속에서 현실의 본질을 끄집어낸다. 이처럼 <혼모노>는 형식과 소재는 달라도 끝내 닿는 지점은 동일하다. 그 중심에는 늘 ‘진짜’의 얼굴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다.


4.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역시 <혼모노>였다. ‘박수’라는 생소한 세계를 낯설지만 생생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문장력은 놀라웠다. 신을 향한 믿음이 깨진 자리에서,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자각이 시작되는 장면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또한, <우호적 감정>에서 딤섬을 삼키지 못한 채 머금고 있는 장면은, 이 책이 다루는 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뜨겁고, 삼키기 어려운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읽는 내내 불편했고, 그래서 더 진실하게 느껴졌다.


5. <혼모노>는 가짜를 넘어서 ‘진짜’라는 이름을 붙이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위험하고도 복잡한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그 경계의 모서리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그 안에서 ‘진실하게 존재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너무 쉽게 던지는 ‘진짜’, ‘찐’, ‘본물’이라는 단어에 쉼표를 찍게 만든다.


6.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면, 그건 단순히 좋은 문장을 읽고 싶은 사람만이 아니다. 진짜와 가짜 사이의 모호한 지점에서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고 싶은 사람, 혹은 도덕과 감정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은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무엇이 진짜인가를 묻는 대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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