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품절


1.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우리의 역사를 ‘우리의 이야기’로 읽어내고 있을까. 특히 그것이, 한 세기 전 작은 땅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더더욱. 한국 독립의 상징으로 호랑이를 소환하며 시작하는 이 장편소설은 단순한 민족 서사를 넘어선다. <작은 땅의 야수들>은 고통스러운 시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수많은 인간들의 얽히고설킨 운명을 따라가며,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묻는다. 이토록 장대한 이야기에서 작고 단단한 울림을 얻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2. 소설은 1917년 눈 덮인 산속에서 한 사냥꾼이 일본군 장교를 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짧고 날카로운 프롤로그는, 이후 50년에 걸친 인물들의 서사를 여는 상징적인 문이 된다. 정체성도 신분도 욕망도 다른 이들이 우연처럼 얽히고 엇갈리며, 조선의 격동과 함께 흘러간다. 등장인물은 정호, 옥희, 한철, 야마다 같은 허구의 이름이지만, 그 안에서 뛰는 심장은 분명히 우리 모두의 것이었다. 독립운동, 기생의 삶, 깡패와 고학생, 일본 장교와 해녀까지. 이야기는 한국 근현대사의 진폭을 거칠게, 그러나 따뜻하게 품는다.


3.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시대의 희생양'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던 인간들이었다. 삶의 단면은 단지 역사 교과서에 등장할 소재가 아니라, 누군가의 고백처럼 진하게 다가왔다. 사랑을 갈구하고, 현실에 타협하며, 선택 앞에서 망설이고, 그럼에도 끝끝내 살아낸 사람들. 특히 기생 옥희는 많은 여성 독자들에게 오래도록 남을 인물이라 확신한다. 누구의 도구가 아닌, 자기 욕망을 스스로 부여잡고 끝까지 사랑하고, 살아내는 사람. “사람들은 돈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이라는 구절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4.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는 설명으론 이 책을 소개하기 부족하다. 작가는 한국계 미국인의 시선으로, 기억과 거리감을 적절히 안고 조국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빚어냈다.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쳤음에도 문장은 유려하고 감정은 뚜렷하다. 독립운동의 열정이나 전쟁의 비극이 강요 없이 스며들고, 독자의 감정은 ‘기억’보다 ‘공감’에 가깝게 움직인다. 그렇게 이 책은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이야기로 남는다.


​5. 삶이 무엇인가를 자주 묻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다. 한국 현대사에 대해 단순한 사건 중심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로 이해하고 싶은 이들, 그리고 ‘진짜 문학’의 힘이 무엇인지 느끼고 싶은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오랫동안 남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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