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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고작 계절
김서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여름은 고작 계절’에는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 제니의 가족, 그리고 제니 또래의 한나, 셰리, 새라, 노라를 비롯한 여러 어른들이 등장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너무나 쉽게 언어적, 정서적 폭력을 행사하거나, 때로는 무심하고 때로는 한계선을 긋고 다정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진짜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것은 어른 보다 또래의 말과 행동이다.
특히 이민자로서 겪는 따돌림과 모욕은 아이들의 마음에 수치심과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럼에도 잘 지내고자 하는 기대와, 그 기대에 부응하려는 노력 속에서 아이들의 마음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병들어간다.
미국과 한국,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두려움. 같은 한국인 사이에서 겪는 상대적 박탈감. 이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심리적 갈등은 불안한 정서를 소설 전반에 퍼뜨리며, 결국 디아스포라가 안고 있는 깊은 트라우마를 보여준다.
주인공 제니는 백인 친구들과 같은 무리에 속하고 싶어 끊임없이 노력한다. 반면, 한나는 같은 한국인인 제니의 관심과 인정받고자 애쓴다.
두 사람의 이러한 관계에서 청소년기 또래 사이에 생기는 권력의 불균형이 어떻게 폭력으로 이어지고 집단에서 이탈된 아이를 괴롭히는 무기로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다 보면 독자는 어느 누구도 쉽게 응원할 수 없게 된다.
이 소설은 이민자의 삶이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정과 사랑, 혐오로 가득한 자기인식, 정체성, 가족의 의미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소설을 읽다가 어느 문장에서 불쑥 내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고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작품 속에서 한나는 이렇게 말한다.
“부스러기 얘기 알아?”
“그게 뭔데?”
“모든 일에는 부스러기가 있대.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일 때문에 꼭 다른 일들이 생긴대.
되게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에도 다 이유가 있고,
그게 또 다른 일에 영향을 미치는 거래.”
누군가의 슬픔과 희생이 ‘부스러기’를 일으킨다면, 이 소설에 담긴 작가의 경험과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떤 ‘부스러기’가 남길 바랐을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우리는 깨닫게 된다. 내 안에는 한나도, 제니도 있고, 새라와 노라, 테일러도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면 내 안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온다. 이 부스러기는 우리가 가진 미숙한 감정들이 서로를 어떻게 상처 입히고 또 어떻게 성장하게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소속 없이 외롭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품어야 할지, 그런 상처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어야 할지 되묻는다.
이 소설은 분명 독자의 삶과 생각의 방향에 영향을 주게될 것이다. 비록 ‘부스러기’같이 작은 영향일지라도.
상반기에 읽은 책 중 단연 최고였다.
흡입력도 뛰어나지만 좋은 문장들이 가득하고 생각할 거리와 상상할 여지가 많은 책이라 추천한다.
위즈덤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