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하는 말들 - 황석희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좋아하는 남성 작가들을 떠올려 보면, 결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영하, 이동진, 황석희 작가가 그렇다. 이들의 직업은 서로 다르지만, 이들이 쓴 글에서는 공통적인 정서가 흐른다. 황석희 작가의 ‘오역하는 말들’은 그 정서의 정수가 가장 돋보이는 책이었다.

어휘력이 부족해서인지 정확한 표현은 떠오르지 않지만, 굳이 말하자면 ‘상실되어 가는 인류애를 연민으로 끌어올리려는 마음’이랄까. 그런 감정이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람들 간의 갈등, 일에 대한 불안과 서글픔, 노력과 성공, 그리고 참담한 순간들까지. 사회인으로서 공감할 만한 내용이 많았고, 가족이나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흔히 벌어지는 오해와 어긋남을 솔직하게 풀어낸 그의 글에서는 잔잔한 위로를 받았다.

그는 번역가라는 직업을 ‘누군가의 말이나 글을 옮기며,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버릴 것과 취할 것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의역과 오역, 정역 사이를 오가며 직업적 윤리를 지켜내려 애쓰는 모습에서는, 그가 이 일을 얼마나 애정 어린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가 절절히 느껴졌다.
물론 직업이니 힘든 날이 더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작가의 이야기는, 하루하루 푸념을 늘어놓으며 겨우 버텨가며 일하는 나에게 “이렇게 일할 수도 있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나는 황석희 작가가 앞으로도 이런 글을 계속 써주었으면 좋겠다. 이전에 읽은 ‘번역: 황석희’ 책도 좋았지만, 이번 책이 훨씬 더 깊이 마음에 남았던 이유는 그의 직업적 특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동시에, 사람들의 삶과 일상 속에서 충분히 공감하고 생각을 나눌 만한 이야기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매번 ‘좋게 오역’할 수는 없겠지만, 때로는 지는 것처럼 보여도 상처를 덜 받기 위해, 그리고 사람을 점점 더 멀리하게 되어 혼자를 선택하려는 나 자신을 위해, 조금은 유연하게 ‘오역하며’ 넘어가는 태도도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은 고작 계절
김서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름은 고작 계절’에는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 제니의 가족, 그리고 제니 또래의 한나, 셰리, 새라, 노라를 비롯한 여러 어른들이 등장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너무나 쉽게 언어적, 정서적 폭력을 행사하거나, 때로는 무심하고 때로는 한계선을 긋고 다정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진짜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것은 어른 보다 또래의 말과 행동이다.
특히 이민자로서 겪는 따돌림과 모욕은 아이들의 마음에 수치심과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럼에도 잘 지내고자 하는 기대와, 그 기대에 부응하려는 노력 속에서 아이들의 마음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병들어간다.

미국과 한국,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두려움. 같은 한국인 사이에서 겪는 상대적 박탈감. 이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심리적 갈등은 불안한 정서를 소설 전반에 퍼뜨리며, 결국 디아스포라가 안고 있는 깊은 트라우마를 보여준다.

주인공 제니는 백인 친구들과 같은 무리에 속하고 싶어 끊임없이 노력한다. 반면, 한나는 같은 한국인인 제니의 관심과 인정받고자 애쓴다.
두 사람의 이러한 관계에서 청소년기 또래 사이에 생기는 권력의 불균형이 어떻게 폭력으로 이어지고 집단에서 이탈된 아이를 괴롭히는 무기로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다 보면 독자는 어느 누구도 쉽게 응원할 수 없게 된다.

이 소설은 이민자의 삶이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정과 사랑, 혐오로 가득한 자기인식, 정체성, 가족의 의미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소설을 읽다가 어느 문장에서 불쑥 내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고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작품 속에서 한나는 이렇게 말한다.

“부스러기 얘기 알아?”
“그게 뭔데?”
“모든 일에는 부스러기가 있대.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일 때문에 꼭 다른 일들이 생긴대.
되게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에도 다 이유가 있고,
그게 또 다른 일에 영향을 미치는 거래.”

누군가의 슬픔과 희생이 ‘부스러기’를 일으킨다면, 이 소설에 담긴 작가의 경험과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떤 ‘부스러기’가 남길 바랐을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우리는 깨닫게 된다. 내 안에는 한나도, 제니도 있고, 새라와 노라, 테일러도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면 내 안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온다. 이 부스러기는 우리가 가진 미숙한 감정들이 서로를 어떻게 상처 입히고 또 어떻게 성장하게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소속 없이 외롭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품어야 할지, 그런 상처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어야 할지 되묻는다.
이 소설은 분명 독자의 삶과 생각의 방향에 영향을 주게될 것이다. 비록 ‘부스러기’같이 작은 영향일지라도.

상반기에 읽은 책 중 단연 최고였다.
흡입력도 뛰어나지만 좋은 문장들이 가득하고 생각할 거리와 상상할 여지가 많은 책이라 추천한다.

위즈덤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리골드 마음 식물원 (아틀리에 컬렉션) 메리골드 시리즈
윤정은 지음 / 북로망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책은 나와선 안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서 지금 기분은 어때요? - 불안장애를 겪은 심리치료사의 상담 일지
조슈아 플레처 지음, 정지인 옮김 / 김영사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래서 지금 기분이 어때요 - 조슈아 플레처 >

‘그래서 지금 기분은 어때요‘는 불안으로 인해 다양한 심리 문제를 겪는 내담자가 심리치료사와 상담을 나누는 과정을 담은 심리학 교양서다. 이 책은 내담자와의 생생한 상담 장면 사이사이에 정신 질환에 대한 정보들을 자연스럽게 엮어낸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심리치료사의 내면 목소리가 상담 중간중간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상담 장면이 마치 독자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또한 심리치료사를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내담자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인간으로 그리며 정신과나 상담센터의 문턱을 낮추려는 저자의 의도를 곳곳에 드러낸다.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점은, 로저스식의 무조건적인 공감을 넘어 쉽게 풀어낸 심리학적 이론을 통해 인지적인 이해를 돕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심리치료사의 내면 목소리를 통해 다양한 심리 문제를 단편적이 아닌, 다면적이고 종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내담자의 발언에 대해 치료사의 내면의 분석가가 해석을 덧붙이거나, ‘공감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해 심리치료사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은 맥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독자가 실제 치료 과정을 관찰하는 듯한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저자는 또한 전문가마다 사용하는 심리치료 양식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람들은 대개 치료의 세계에 넓은 선택 범위와 다양한 치료 양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모른다.” (60p)
“가슴 아픈 사실은 한 가지 치료법이 효과가 없을 때 내담자가 그걸 자기 잘못이라고, 혹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63p)

이는 치료가 자신에게 맞지 않아 수차례 심리치료사를 바꿔야 했던 내담자, 혹은 심리치료 자체를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처럼 다가왔다. 저자는 치료사와 내담자 간 정보 격차에서 비롯되는 권력 우위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심리상담센터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설득을 수 페이지에 걸쳐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자기돌봄’ 또한 ‘나’라는 주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돌봄은 해야만 하는 어떤 일이 되면 효과가 줄어든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보다는 매사에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불안한 집착의 족쇄를 풀어주는 일이어야 한다.” (232p)

자기돌봄과 관련해 자기계발서에 흔히 등장하는 명상, 요가, 감사일기, 디지털 디톡스, 칭찬일기, 감정기록 등 다양한 방법들. 우리는 이런 방식들이 ‘좋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내게도 반드시 좋은 것이라 믿고, 맞지 않는 방법을 억지로 욱여넣는 실수를 종종 한다. 나 역시도 그간 무수히 실패해 온 ’타인 맞춤 힐링 프로그램’을 되돌아보며, 그런 무리한 자기치유 시도를 경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심리학 용어들을 쉽게 설명해주어 심리학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교양 인문서로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동시에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타인의 삶을 조망하며 그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해결 방식을 모색할 수 있도록, 치료사의 언어로 부드럽게 길을 제시해주는 실용서로도 큰 도움이 된다.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은 아름답다고
오사다 히로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는 시를 통해 자연을 예찬하며,
평범하고 흔한 것들의 소중함을 표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