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습관 - 글쓰기가 어려운 너에게
이시카와 유키 지음, 이현욱 옮김 / 뜨인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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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에 대한 애정이 글쓰기 기술보다 더 힘이 셉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인 그 후기에는 '이거 정말 좋아!' 라는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쓰면 그에 대한 애정이 글에 꽉 들어차서 읽는 사람에게도 전해집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 시대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을 소중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드러내 보세요.

100쪽

"작문", 이라는 단어를 듣고 떠오르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관심은 있지만 역량이 부족해 글쓰기를 망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쓰는 습관>은 글쓰기를 좋아했던 한 소녀가 블로그를 개설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프리랜서 기자가 되기까지 일군 방법을 공유한다. 그녀의 책은 다정한 친구가 손을 맞잡고 알려주듯 즐겁고 소탈하다. 어라, 이 정도면 나도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감이 올라온다.

저자 이시카와 유키가 <쓰는 습관>에서 강조하는 몇 가지 규칙들이 있다. 그것은 즐거움, 꾸준함, 솔직함이다. 그녀 역시 글쓰기를 통해 일상의 즐거움을 되찾고 싶었고, 이런저런 일들을 일단 꾸준히 기록했으며 마음을 담은 글쓰기를 통해 인생을 바꾸었다고 언급한다. 책 <쓰는 습관>이 매력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작가가 되기 위해 투지를 갖고 직진해라!" 가 아닌 "난 이렇게 하니까 너무 좋았는데 너도 할 수 있지 않을까?"가 통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귀여운 삽화와 타인(불특정 다수, 독자 모두)을 배려하는 그녀의 모습은 진심이었다.

우리가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이유는 다양하다. 글쓰기를 그만 두는 이유도 못지않게 다양하다. 나 같은 경우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제대로 시작해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누군가 비평을 한다고 가정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저릿하고 심장이 두근거리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을 솔직하게 적는 일, 아직까지는 부끄럽다. 그리고 마음을 적어내려가다보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이야기를 배설할 수도 있는데 독자에게 전달될 불편함, 그것을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랬을까, <쓰는 습관> 168쪽의 내용은 이런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듯 했다. 저자 이시카와 유키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상황과 누군가에게 상처받는 상황에 단호할 것을 제시한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세심하게 신경을 쓸 것을, 글쓰기로 특정 공간의 선순환을 도모할 것을 말이다.




매력적인 삽화, <쓰는 습관>은 귀여운 만화가 새 목차를 열어준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마음의 부담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일까. 그녀 또한 무거운 마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쓰는 습관>을 찾는 독자의 마음을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목차 하나 하나 넘어갈 때마다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을 들켰다고 느꼈음에도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정말이지 글쓰기를 오래 해온 친구가 꼭 붙어 앉아 다정하게 설명해주는 듯한 책이다. 삽화를 누가 그렸을지도 궁금하다.



글을 써서 누군가에게 보여줄 용기가 생겼다. 그런데 위기가 닥쳤다! 꾸준히 글은 쓰지만 독자들이 금방 흥미를 잃는 것 같다. 이유가 뭘까?

저자는 독백이 아니라 누군가 읽는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주제를 갖춰야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일상을 나열하며 글쓰기 자체에 흥미가 생겼다면 그때 부터는 일상에 의미를 담는 연습을 해야한다. 글에 사소한 일상의 작은 깨달음을 담아내는 연습이다. '아, 이 작가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이렇게 느꼈고 이런 점을 배웠구나'의 힘은 크다. 경험을 나열해 공유하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라는 사람이 느낀 특별한 감정과 소중한 교훈을 나누는 것은 누군가가 "나"의 글을 꾸준히 찾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쓰는 습관>, 결국 용기만 잔뜩 주고 글을 쓰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거야?


걱정 마시길. 후반부에는 구체적인 기술이 설명되어있다. 글쓰기를 습관화 하는 기술,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기술, 글쓰기가 즐거워지는 기술 등 저자 본인이 글을 쓰는 기간이 길어질 수록 느낀 순서대로 나열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글쓰기를 습관화 시킨 다음 권태로움을 극복하고, 글쓰기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마무리까지. 세심하고 다정하다.

사진으로 첨부하진 않았지만 마지막 페이지의 [오늘의 글쓰기 소재]가 가장 좋았다. 글쓰기는 하고 싶은데 어떤 글부터 써야할지 막막한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 라인이다. 글쓰기 강의, 브런치 작가 등 일반인의 작문 진입장벽이 낮아진 요즘, 나 또한 최근에 개설한 브런치 채널에서 이 가이드라인을 시도해보고자 하고 있다. 만일 플랫폼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된 "예비 작가"라면 이시카와 유키의 <쓰는 습관>으로 건강하고 따뜻한 작문 습관을 오래토록 곁에 둘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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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사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2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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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into that darkness peering, long I stood there, wondering, fearing, doubting, dreaming dreams no mortal ever dared to dream before.

-Edgar Allan Poe

어둠이 응시하고 있는 깊은 곳에, 나는 서 있었네. 방황하며, 두려워하며, 의심하며, 그리고 그 어떤 사람도 감히 두려워 꿈꾸지 못했던 꿈을 꾸며..

-에드거 알렌 포


어둠 속에서 길을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방랑자는 달빛 한 줄기를 등대 삼아 갈피를 잡는다. 그러나 짐승과 덫으로 가득한 이 곳 1790년대 프랑스,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둠 속의 사건>은 아군과 적군이 모호한 채 시작한다. 주인공 미쉬는 시뫼즈 가문의 충성스러운 복심이지만 자코뱅파로 가장해 지내는 인물이다. 반대로 마리옹은 시뫼즈 가문의 집사가문 출신이지만 말랭의 대변인으로 시뫼즈 가문의 대척점이 위치한 인물이다. 시뫼즈 가문과 공르드빌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음모는 몇 년 후 말랭의 실종 사건으로 폭풍우에 휩싸인다.

발자크의 <어둠 속의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 시간적 배경인 프랑스의 근대사를 간단히 짚고 가야한다. 1793년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사형 후 부르봉 왕가는 폐지되고 공화국이 집권한다. 이 후 혁명의 이름으로 형장의 이슬이 된 귀족들이 생기며 저명한 가문의 인물들은 망명하거나 재산을 몰수 당한 채 조용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나폴레옹 집권 후 공화국은 저물고 만다. <어둠 속의 사건>은 바로 이 시기를 다룬 작품이다.


"피고인들의 이름으로, 본인은 그 무엇도 지우지 못할 여러분의 치명적 오류를 사전에 용서하고자 합니다!" 하고 그가 외쳤다. "우리 모두는 어떤 알 수 없는 마키아벨리적 세력에 농락당한 것입니다. 마르트 미쉬는 가증스러운 음모의 희생양이며, 불행을 돌이킬 수 없게 될 때에야 사회는 그 사실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292쪽

최근 프랑스 부자들은 왜 부유하다는 것을 최대한 감추는지에 관한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농담삼아 한 이야기겠지만, 시민들은 더 가진 자를 끌어내리려는 혁명적 본능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어둠 속의 사건>에서는 그들의 혁명적 본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끌어내리지 못하면 함락당하는 절체절명의 순간들, 결국 가장 정의로운 자와 모두가 살리려 한 자들은 목숨을 잃고 만다. 살아남은 자들이라고 명예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도 아니다. 발자크의 작품은 아주 현실적이다. 그의 이야기는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당대의 정치 상황과 여타 여론을 담는다.

<어둠 속의 사건>은 1800년 상원 의원 클레망 드 리 납치 사건을 기원으로 집필된 작품이다. 실화와 픽션을 넘나드는 구성으로 한 편의 장편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어둠 속의 사건>을 읽기 전, 발자크의 작품자체를 "인간극"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묶어놓음이 의아했다. 발자크 자체가 문학의 한 분야가 된다니, 얼만큼 대단한 사람이길래? 라는 생각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자크 그는 진짜였다. 인물 묘사부터 미묘한 관계와 숨막히는 추격전을 영상처럼 집필했다. 긴장이 흐르는 다큐멘터리의 향이 스치는 문학 작품, 그 원조는 발자크가 아니었을까.

P.S 로랑스, 당신이 승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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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1
임레 케르테스 지음, 이상동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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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살자들, 삶을 훼손한 자들이 큰 소리로 스스로를 생명의 길로 선언하는 것을 질리도록 봐 왔다, 그런 일들은 지나치게 자주 반복되어 내 안에서 반항심을 다시 불러일으키지도 못할 지경이라고, 내가 말했다, 삶을 훼손하는 자들 때문에 삶을 혐오하게 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다, 그보다 더 처참한 일도 없다고, 아우슈비츠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났다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논증은 틀림없이 내 아내의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

127쪽


혹자는 신과의 거래, 즉 대가와 응답을 바라고 기도를 한단다. 그러나 마음의 위안, 자기 반성과 같은 독백도 기도가 아닐까 싶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가 그렇다. 화자는 삶의 가짓수를 두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부정하는 마음의 소리에 휩쓸리듯 쓸려간다. 그래서 그런지 숨 한번 쉬지 않고 쉴새없이 이어지는 독백, 의식의 흐름은 왠지 쫓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 화자는 무엇에 쫓기고, 어째서 끊임없이 "안 돼!"를 외치는 것일까? 이 소리없는 공명, 허공에 대는 외침은 더 이상의 불행을 막기 위한 화자의 최후의 수단이다.

"안 돼!" 절대로 나는 다른 한 인간의 아버지, 운명, 신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안 돼!" 어린 시절 내가 겪었던 일을 또 다르한 아이가 겪게 해서는 안 된다.

"안 돼!" 내 안에서 무엇인가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 어린시절을 그에게 - 너에게 - 나에게 겪게 해서는 안된다, (...)

130쪽

화자는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지만, "안 돼!"와 같은 강력한 부정어로써, 절대로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한다. 그렇게 아내를 떠나보낸 화자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맴도는 질문들을 놓지 못한다. 세상의 부조리와 훼손된 삶, 고통의 연속. 태어나는 것 조차 선택할 수 없었는데 삶의 방식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니, 말도 안되는 비극이다.

화자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모자라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경험들로 어떤 결핍이 생겨버린 것이 분명하다. 화자는 "나" 자신이 태어났기 때문에 수반된 고통이 모두 불수의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삶은 의지대로 고통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완벽히 깨달은 화자는 "안 돼!"를 반복한다. 그래서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제삼자가 받을, 운명처럼 다가온 고통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아주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화자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을 닮은, 맑은 눈망울의 아이를 보고 싶지 않은 것일까?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는 화자의 양가감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반본능이 자신의 본능으로 정착하기까지 극한의 고통을 겪었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는 임레 케르테스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화자는 저자 본인을 의미한다. 머릿 속으로 행복한 미래와 인간적인 삶에 대한 욕구가 떠오를 때면 외치는 "안 돼!"는 그가 겪은 비극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어구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희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더 이상의 고통을 멈춘다. 하지만 머릿속을 맴맴 맴도는 조건문, "만약에"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안 돼!"의 비극은 더욱 부각된다.

나는 알게 되고, 그리고 동시에 보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들이 얼마나 꼬불꼬불한, 얼마나 형형색색의 실로 얽혀 있는지를, 이 실들을 (그 당시엔 아직 미래의, 지금은 이미 과거의) 나의 아내, 오래전 나의 연인, 내 침대에 누워서는 자신의 비단결 같은 머리를 내 어깨 위에 기대어 쉬고 있는 내 연인의 허리와, 가슴과, 목 주변에 드리운다, 난 그녀를 엮어서는, 나 자신에게 묶어 둔다, 빙빙 회전하며, 어릿광대의 옷을 입은 두 명의 민첩한 서커스 공연자는 나중에 성미가 고약한 관객, 실패 앞에서 죽은 듯이 창백하게, 빈손으로 굽실거린다.

67쪽

화자의 양가감정을 가장 잘 드러낸 부분이라 느껴진 67쪽이다. 이미 원천 차단한 행복 중 하나인 그의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제외하면 전 아내와의 만남은 인간으로써 행복을 추구했던 유일한 순간이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전 아내는 화자 본인이 가장 바랐던 운명이었다. 그래서 유독 전 아내가 언급되는 장면에는 연속적인 조건문들이 등장한다. 만약 내 어린 시절이 조금 더 행복했더라면, 만약 그 카페에서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약 내가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만약 그녀가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두 명의 서커스 공연자는 화자와 전 아내, 성미가 고약한 관객은 화자 본인이 극복할 수 없었던 운명을 의미한다.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선율을 보여주지만 결국 운명 앞에 굴복하는 모습이다.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두 유대인의 사랑,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화자는 결국 저자 임레 케르테스처럼 반본능을 거스르지 못했을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흉터를 가슴에 품고 홀로코스트에서 겪었던 고통에 매몰된 채 "안 돼!"를 외치지 않았을까. 종종 떠오르는 조건문과 강한 부정어를 동시에 쥐고 있는 그의 고통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곳에서는 고통없는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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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바다로 간다면 - NASA의 과학자, 우주의 심해에서 외계 생명체를 찾다
케빈 피터 핸드 지음, 조은영 옮김 / 해나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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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물 밖으로 무사히 귀환한 우리는 광할한 대양의 푸르색 바탕 위에 미미한 주황색, 하얀색 점으로 출렁이며 앉았다. 잠깐이지만 감히 심연에서 딴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온 무시할 수 없는 점이다. 켈디시호가 우리를 건져내 대형 크레인에 싣고 갑판으로 올려주길 기다린다. 한 지점의 여행이 끝났다. 그러나 탐험하고 발견할 곳은 아직도 끝없이 많다.

22쪽


우주는 광할하다. 현재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는 930억 광년으로, 1광년(빛이 1년동안 진행하는 거리)이 9조 4600억km 정도 된다고 한다. 관측 9조 4600억km가 930억 만큼의 크기라니, 거리감이 와닿지 않는다. 놀랍게도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가 이 정도다. 관측하지 못한 우주의 거리까지 합산하면 더욱 말도 안되는 수치의 크기로 집계될 것이다. 지은이 케빈 피터 핸드는 행성과학자이며, 우연한 기회로 잠수정 심해 탐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잠시 어둡고 영험한 경험을 하게 된 그는 지구의 심해에서 다른 행성의 심해로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우주 어딘가에 바다(물)이 존재한다면, 그 곳에는 생명체가 있을 수 있음을 가정한다.

물은 생명의 탄생과 유지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 중 하나이다. 생명체가 "거주 가능한 곳"에서 생명체가 "거주 중인 곳"으로 넘어가는 단계는 매우 중요하다. 물과 열, 수소와 이산화탄소의 반응은 생명을 이어가는 최소한의 동력을 제공한다. 가스와 얼음으로 뒤덮힌 행성에서 우주 생명체의 존재는 이론적으로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체를 구성하는 화학물을 합성하기 위한 필수 요소는 무엇이며, 각자 어떤 역할을 할까?



기존 생명체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

13장 생명의 주기율표

1. 적합한 용매

모든 생명체는 액체를 필요로 한다. 액체는 분자가 돌아다니기 힘든 고체와 분자가 과도하게 돌아다녀 물질간 반응이 일어나지 못하는 기체의 사이의 적정 수준을 유지한다. 물질간 반응 뿐만 아니라 물 분자간 결합도 뛰어나다. 또한 목성을 감싸고 있는 액체 수소 안에서도 탄소 화학이 이어날 수 있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생명체를 다루는 유용한 원소인 탄소의 존재는 큰 의의를 지닌다.

2. 최고의 건축자재

물질간 결합이 일어나면 세포 구조에 필요한 필수 원소가 필요하다. 유기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노폐물을 처리하는 틀이 있어야한다. 화학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구조적인 요소 간 상호작용이 이루어져야한다.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환경은 생명체라는 구조물을 생성시키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가 될 것이다.

3. 건축가와 현장 감독

생명이 만들어진 다음, 그 다양성을 가늠할 요소는 정보를 저장하고 검색하는 분자 기계다. DNA 패턴 정보를 이해한다면 생명의 근원과 진화의 과정을 분석해 다른 행성의 생명의 존재 가능성을 연구할 수 있다.

4. 벽돌과 회반죽

아미노산, 핵산, 당, 지방산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사용하는 기본 벽돌이다. 회반죽은 이 작은 분자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결합이다. 원소와 원소의 결합이 이루어지는 환경, 정보와 노하우까지 갖춰졌다면 생명을 구성하는 단위체계를 구축할 차례다. 연구진들은 지구 생명체의 단위 체제와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아도 아미노산과 당을 가감하면서 생명체의 분류 체계를 확장할 것이다.

5. 생물학의 배터리

생명체는 각 세포에 전원을 공급할 화학 배터리가 필요하다. 생명체를 유지하는 에너지 공급이 필수불가결하다. 압력이 높은 바다세계에서는 안정성이 높은 인산염이 가장 믿음직한 에너지원으로 추정된다. 다른 대안이 존재할 수도 있으나 현재로써는 인산염이 우주 생명의 에너지 공급원 중 가장 유력한 후보이다.


<우주의 바다로 간다면>은 철저한 과학 서적이다. 분자 구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다양한 가설의 증명과 도출된 결과를 제공한다. 원제 Alien Oceans로 직관적으로 책의 내용을 추측할 수 있었다. 과학 배경지식, 특히나 우주 과학에 대해서는 낭만이 앞선 독자는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듯 하다. <우주의 바다로 간다면>이라는 제목을 읽고 판타지적인 요소를 기대했던 터라 읽는 동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저자 케빈 피터 핸드는 우주의 생명체 존재 여부를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과학에 문외한인 독자가 최대한 알기 쉽도록 풀어서 설명한다. 심해에서 우주 존재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우주 과학, 외계 생명체 SF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우주의 바다로 간다면 : Alien Oceans>를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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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이웃 - 허지웅 산문집
허지웅 지음 / 김영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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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분인 허지웅 작가님의 신작<최소한의 이웃>이 나왔다. 대학 시절 <버티는 삶에 관하여>를 읽고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 경험이 있다. 최선을 다해 살자는 말은 조금은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무기력한 일상과 무리하는 일상 단 두 가짓수 뿐이었던 일상이었다. 그래서 <버티는 삶에 관하여>를 읽고 생각을 덜어내는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웃

명사

1. 가까이 있거나 나란히 이어서 경계가 접하여 있는 것.

2. 가까이 있거나 접하여 있는 집. 또는, 거기에 사는 사람.

옥스포드 사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옛날에는 다 아는 거 같았는데 갈수록 뭘 아는 게 없어. 해답은 없고 질문만 많아지니 조용히 책이나 읽어야 겠습니다.

190쪽

<최소한의 이웃> 중 마음에 오래 머무른 몇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1부 애정 [두 사람의 삶 만큼 넓어지는 일] 중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학생들이 처벌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현한 편이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을 인내하는 방법은, 어쩌면 그렇게 감싸 안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을 살면 살 수록 모르는 일 투성이인듯 하다. 상호간 애정을 담뿍 주는 일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강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하는 세상의 단편은 너무나 잔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웃]의 사전적 의미는 거리적 감각일 뿐이다. 사전 상 가까이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만 평소 이웃과 붙어 있는 단어와 문장들을 생각해보면, 이웃+사촌, 이웃+나라,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 대부분이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우리는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주변에는 다양한 이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알면 알수록 요지경인 이 세상에 누군가의 "최소한의 이웃"이 된다는 일은 적어도 거리 상 가까이 있는 개체에게 상처는 주지 말자는 의미가 아닐까.


-

그릇에 담아내는 시간도 아까워 봉지에 들어 있는 그대로 두고 젓가락으로 헤집다가 한입 가득 베어 물면, 친구와 싸운 일도 고백할까 말까 망설이던 얼굴도 별 이유도 없이 화를 내는 상사 목소리도 함께 삼켜 꿀꺽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나는 뭐 내가 대단해서 잘 견딘 줄 알았지. 떡볶이가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246쪽

한 때 떡볶이가 들어간 제목이 들어간 책이 유행했다. 무겁지 않은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던 책이지만 어째선지 나는 거부감이 밀려왔다.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떡볶이를 생각하고 힘을 낸다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5부 성찰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고단함]의 글을 읽고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나는 뭐 내가 대단해서 잘 견딘 줄 알았지.", 단촐한 이 문장은 어느 하루 동안 경종이 되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죽음은 항상 가까이에 있고 삶을 포기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나를 버틸 수 있게 하는 것들은 크고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음었다. 이렇듯 사소하고 소중한 그것들을 잊곤 한다. 그 작은 것들은 삶의 벼랑에서 어찌어찌 버틸 수 있는 특별한 존재들임을 잊지 말아야지. 이젠 관둘 수 없는 삶이다. 지치면 쉬면서 붙들어야 할 이 삶, 작은 이웃들에게 미리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근래 읽은 <최소한의 이웃>은 주변에 이웃을 많이 두지 않는 나로서는 관심이 가는 제목이었다. <최소한의 이웃> 서평단을 신청하기 위한 양식 중 "당신이 생각하는 이웃은 어떤 존재인가요?" 비슷한 질문이 있었다. 즉각적인 생각을 담았고 보통 이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억을 더듬어 남겨본다.

[ 누군가와 너무 가까운 이웃으로 지내는 일을 버거워합니다. 그래서 이웃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다만 어떤 이웃이 되는 게 좋은 이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더 묻지 않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가까운 누군가가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면 아, 거짓말을 할 만한 이유가 있구나 하고 더 이상 묻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면 아, 고해를 할만한 더 어려운 사정이 있었겠구나 하는 겁니다. 누군가의 이웃이 된다면 너무 많은 것을 알지 않는, 알아도 한쪽 눈을 가린 채 응답하는 이웃이 되고 싶습니다. ]

<최소한의 이웃>은 우리 주변의 이웃에 대한 단상 모음집이다. 그 이웃은 사람일수도, 매체일수도, 장소일수도, 음식일수도 있다. 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던 개체들과 문득 생각나는 따뜻했거나 혹은 서늘한 기억들이다. 함께 사는 일, 그것은 누구에게나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지웅 작가님은 바란다. 타인에게 바라는 이웃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기를, 서로에게 분노와 불신을 거두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최소한의 이웃이 될 수 있기를, 무례하지 않게 조금은 안온한 눈길을 보낼 수 있기를.


🎁

본 책 허지웅 작가님의 <최소한의 이웃>은 김영사 서평 이벤트 당첨으로 수령했습니다.

행복한 독서를 선물해주신 김영사 담당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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