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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검열과 사랑 이야기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49
샤리아르 만다니푸르 지음, 김이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내일이면 개천절이군요. 징검다리 휴일이에요, 여러분. 단군 만세! 만세! 만세! 금요일 출근 생각에 다소 씁쓸하기도 하지만 개천절의 의미 따위 등지고서 하루 실컷 놀고도 정상 급여를 받는단 사실 하나에 만세 삼창이 절로 나오는 화요일 밤입니다. 그리고 지금 어쩐지 ‘페트로비치’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신다면 이번 모임 도서,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를 참 알차게 읽었다는 증거 아닌 증거이니 각자의 가슴을 뿌듯하게 한 번 쓸어내려 주셔요. 오, 거기 당신, 세상에, 짓궂어라. 그렇다고 내가 해드릴 순 없잖아요? 그렇지만 그대의 가슴이 태평양처럼 넓고 바위처럼 단단하다면 꽤 고려해 보겠어요.
나란 사람, 참 저질인 걸 숨기지도 못하고 지금까지 취소선 낭비가 좀 많은 것 같기도 한데, 제가 앞서 쓴 몇 문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이어지는 후기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 아니, '없'습니다. 그 귀한 말씀들 모두 고스란히 담지 못해 안타깝네요. 후기가 말씀 드린 날보다 많이 미뤄진 점 반성하고 있으니 좀 봐주세요. 이게 다 술과 남자 때문이에요.
※ 내 못난 손글씨와 기억에 근거하여 적기 시작합니다. 토론 내용이 말씀하신 분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의 달면 그대 옆구리의 제일 말랑한 살을 골라 꼬집어 버릴테니 알아서들 하세요. 호호호.
-모임명: 달의궁전 (cafe.naver.com/darlgung)
-1차 모임 도서: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 샤리아르 만다니푸르
-참가자: 레삭매냐, 찬란햇,기하, 헤르메스, 랑발, 두근두근, JH, 삽하나 + 깍두기 '시진' + 온라인 참여 ‘반짝’
# 이 책을 읽는 법은 따로 있다!
시진 : 남녀 사랑 이야기에 작가가 직접 나서서 말을 하고, 검열관까지 간섭하는 등 독특한 소설인 듯.
두근두근 : 나도 소설의 형식이 참 특이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중반쯤 읽다 보니 나머지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더라.
JH : 속도가 정말 안 나가더라.또 결말이 중요치 않은 소설이기도 하다. 끝까지 다 읽지 않아도 작가의 의도 등 쉽게 파악할수 있더라. 신선했다.
기하 : 누군가가 내게 이 책을 읽는 법에 대해 조언해주길래 그대로 실행에 옮겨 보았다. 세 번 나눠 읽으라는 것. 첫째, 굵은 글씨만. 둘째, 굵은 글씨와 취소선의 문장만. 셋째, 가는 글씨를 중점에 두며 처음부터 모두 합쳐서. 이렇게 읽으니 의미가 다층적으로 들어오더라. 또 초반엔 굵은 글씨, 가는 글씨 등으로 작가 나름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이것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굵은 글씨만 읽으면 내용이 이어지지가 않으니 참고할 것.
삽하나 : 짝짝짝. 굉장한 팁이다. 감사.
# 페트로비치의 어마어마한 상상력 = 이란, 혹은 우리의 현재 모습
헤르메스 : 이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이란의 감독과 여배우가 시상식에서 가볍게 뺨에 키스를 한 것만으로도 반이슬람적 행위로 비난을 받지 않나. 책에도 모사데크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오기도 하는데, 당시 정권 전후로 여성들의 히잡이 벗겨졌다 다시 쓰게 되는 변화가 있었다. 탈레반 등장 이후 여성 억압이 두드러진 아프가니스탄도 이들과 비슷하다.
시진 : 사실 우리나라도 문화적으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 사례가 여기 저기서 속출하고 있지 않나. 말 까딱 잘못 했다간 잡혀가기 일쑤.
레삭매냐 : 옛날에 ‘훈족이 온다’고 하면 어린아이가 울음을 그친다는 말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도 이런 꼴. 특히 자유는 있으나 자본이 이를 통제한다는 사실이 무섭게 다가왔다. 때문에 21세기는 자기 검열의 시대라는 생각. 어찌보면 이란보다 자유롭지 못하지 않나.
어렸을 때 매직으로 줄이 여기 저기 그어진 타임지를 구입한 추억도 떠오르기도 한다. 정치적 발언은 물론 사랑과 같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문장조차 검열의 대상이라니 안타깝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검열관 페트로비치의 상상력이 더 뛰어난 것이 아닌가. 평범한 문장도 페트로비치의 지나치게 과장된 상상력 탓에 검열에 걸려들고 만다. X라는 앞이 보이지 않는 영화 검열 감독관(p.156)이 ‘늑대와 함께 춤을’ 이란 영화를 두고 하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이를 통해 서방에 대한 피해 의식을 드러내지 않았나싶다. 또 이런 모습이 역설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미국 폭격에 대한 공포심과 해방감이 대립하고 있는 것. 실제 이들이 미국에서 쏜 위성을 감지하기 위해 미국에서 그 감지장치를 사들여 써먹고 있지 않나. 이 같은 역설이 흥미로웠다.
헤르메스 : 검열하니 이 이야기가 떠오르더라. 두 명의 스님이 순례를 하고 있던 도중 강가에서 매혹적인 여인을 만나게 된다. 스님 A는 여인이 딱한 나머지 과감히 여인을 업고 강을 건넌다. 이를 두고 스님 B는 걷는 내내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자 뒤를 돌아보며 스님 A 왈, “난 이미 그 여인을 강을 건넘과 동시에 떠나 보냈는데 넌 왜 아직도 품고 있느냐?” 라고. 검열이란 이 같은 것이 아닐까.
삽하나 : (여인과 스님이 엮이지 않는다며 속으로 실망한다.)
#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의 정체성은?
레삭매냐 : 숨그네를 쓴 헤르타 뮐러는 루마니아인이지만 책은 독일 문학으로 분류된다.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의 경우 미국에서 이란의 언어로 쓴 책. 그렇다면 어떤 나라 문학으로 보아야 할까?
헤르메스 : 미국에서 썼으니 서양 사람들을 두고 썼을지도. 20년정도 기다려야 이란 문학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웃음). 읽는 내내 프랑소와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이란 영화가 떠올랐다. 이 영화에서는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는 이 영화와 비슷하게 ‘이란에서 소설이 이렇게 쓰여진다’ 라고 보여주고 있는 것.
랑발 : 단순하게 난 이란 문학이라는 생각.
# 기타 아랍 문학에 대하여
레삭매냐 : 덕분에 제 3세계 문학권에 관심이 많이 가기 시작했다.
헤르메스 : 이 책의 스타일이 이란 등 아랍의 전형적인 스타일인가?
기하 : 아니다. 이 책은 그들의 일반적인 기승전결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아랍 문학은 대체로 마지막을 틀어버리고, 열어두는 것이 특징. 천일야화처럼 말이다.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는 전통적인 스타일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또 민족의 특성을 드러내는데 지역 이름이 많이 언급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걸 참고하면 좋을 듯.
우리나라엔 한국외대에 번역본이 많다. 남산 도서관에 가면 아랍문학이 책장 두 칸 정도만 차지하고있을 뿐. 또 예전에 이슬람 사원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었는데, 이들은 하나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더라. 덕분에 번역된 책도 하나 받기도 하고.
레삭매냐 : <석류나무 그늘 아래> 라는 아랍권 작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스페인 사람들이 아랍책을 불사 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야만적’이라고 하며 마치 성벽이 불타는 것처럼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헤르메스 : 이 책에서도 불태워진 작품 등 구하기 어려운 개인의 기록이 많다고 하지 않았나.
기하 : 그냥 ‘더워서’ 인지도?
모두 : 하하호호.
# 기타 등등 목소리들
기하 : 표지가 인상적. 민음사에서 펭귄판본 표지를 그대로 따왔던데. 표지에 실린 글도 실제 영문판내용.
레삭매냐 : 작가의 블랙유머가 눈에 들어오더라. 미국사람들은 꼭 필요한 것만 발명한다고 하면서 '바이아그라'를 언급한다. 불능이라고 비꼬는 것.
레삭매냐 : 지명이 수시로 언급되는데, 낯설어서인지 잘 와 닿지 않았다.
헤르메스 : 왜 있지 않나, 우리나라에도. 테헤란로.
모두 : 푸헤헷. (정말 푸헤헷- 하며 다들 멍청히 웃었다.)랑발 : 번역이 정말 좋았다는 생각. 우리말로 풀어낸 듯 자연스럽게 읽혔다. 또 굵게 표시된 까만 글씨를 보니 박민규의 소설이 떠올랐다.
시진 : 마틴 에이미스의 <머니>도 떠오르더라. 이 책에서도 작가가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
삽하나 :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 술집에 앉아서 주인공과 이야기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헤르메스 : 이 작품이 자칫 오리엔탈리즘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란 문학의 성격이 모두 ‘이렇다’ 라고 보여질 수도. 나쁜 면만 지나치게 부각될 수도 있고.
찬란햇 : 사실 종교 자체로만 봤을 때 여성 억압이 이렇게 심할 수가 없다. 단지 지배자들이 통치라는 수단으로 남과 여를 갈라놓은 것. 또 이슬람 교도여성 중 종교적 신념에 차도르를 쓰는 이도 있는데, 이것이 통치라는 도구적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은 차도르를 쓰지 않기도 한다고 들었다. 재스민 혁명을 생각해보면 작가적 허구가 과장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근래 들어 서양 문화도 많이 노출된 상태인데, 이 작가의 말처럼 ‘지금도 정말 이럴까’ 하는 마음에 갸우뚱한다.
랑발 : 미국에서 주목을 받은 책으로 알고 있다. 이란문학이 세계화 될 수 있다는 좋은 기회라고 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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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풀이에서.
# 코다리탕 집에서-1
삽하나 : 레삭매냐님의 'Viagra' 발언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국내에선 /비아그라/로 통하는데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바이아그라/ 로 발음하시더라.
레삭매냐 : 왜 그런 걸 굳이 기억하고 ㅠ ㅠ
# 코다리탕 집에서-2
삽하나 : 벽화가 특이하네요. 사진 찍을까?
찬란햇 : 저도 찍어볼래요.
이모님 : 그거… 사람 죽었어.
찬란햇, 삽하나 : ?!??!?!?!??!?
(알고 보니 그림 그린 분께서 돌아가셨다는 말 ㅠ ㅠ)
# 해물 칼국수 집에서
모두 : 후루룩. 후루룩. 후루루루루룩.
(정말 맛있었어요! >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