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은인입니다
홍순재 지음 / 씽크스마트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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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에 줄줄 풀어 놓은 지난 날이 마치 삼십여년 전쯤은 된 것처럼 풀어놓은 이 사람 홍순재씨로 말할 것 같으면 올해로 나이가 꼴랑, 에게, 고작, 서른 다섯이다. 우연찮게 뛰어든 부동산업에서 돈벼락을 맞아 차 안에 현금 1억을 갖고 다니기도 했지만 눈 깜짝할 사이 노숙자로 추락하였고, 가까스로 극복한 현재, 창업 교육가로 활동 중이란다. 

그의 성공 노하우는 무엇이었는지, 또 지금 어떻게 잘 살고 있는지 등등을 떠나서 우선 이 잘난 청년이 어떻게 노숙을 버텼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지난 해 모 경제지 선배 기자 하나가 특집 기사를 뽑기 위해 뛰어든 사흘간의 노숙자 체험담은 듣기만 해도 뼈가 삭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는데, 이런 노숙이 체험이 아닌 현실 그 자체였던 홍씨의 이야기는 조지 오웰의 수기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못지 않았다. (물론 오웰이 한 수 위긴 하지만서도)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텅 빈 속으로 아스팔트에 누워 있으면 뼛속이 에이는 것은 물론이고 뇌가 얼어붙는 느낌이 뭔지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신문지나 박스를 몇 겹 깔아봤자, 지구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것만 같은 그 놈의 냉기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보통 지옥이라면 지옥 불을 떠올리는데, 이런 경험을 해보면 냉기 공격도 불 못지않게 끔찍하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p.17
홍씨의 노숙은 대학 시절에 이미 체험한, 나름의 낭만과 호기를 적당히 부릴 줄 알면서 익히 경험했던 것이기에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연코 부러 노숙을 하는 사람은 절대 없다. 

시 동아리는 각별히 좋은 점이 또 하나 있었다. 동아리 방에서 노숙을 할 수 있따는 것이었다. 밤에는 늘 동아리 방에서 시를 썼기에 주변에선 나를 진정한 시인으로 알았지만, 사실은 잘 곳이 없어 동아리 방에서 노숙을 했을 뿐이다. p. 85
노숙으로 가장 망가진 것은 몸이 아니라 자아였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내가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대로 거리에서 죽을 것이라는 체념을 받아들인 것이다. p. 53
 
동거동락하던 개 하나를 잃어버리더라도 시 동아리 출신 답게 꿈에서의 그 암시가 예사롭지 않다. 

 어느 날, 꿈에서 이상하게 나를 자꾸만 깨우는 예쁜 여자가 나왔다. 털이 무지하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예쁜 여자였는데, 그녀가 슬프게 우는 것을 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난 나는 깜짝 놀랐다. 나를 반기던 패키가 보이지 않았다. (...) 노숙자의 개는 없어졌다면 사라있을 확률이 거의 없다. 노숙자들은 자기는 안 먹어도 개는 잘 먹인다. 유일하게 자기를 따르는 존재이자 동반자여서다. 고로 노숙자들의 개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고, 사람도 비교적 잘 따른다. 그러니 없어지면 거의 찾기가 힘든 것이다. p.59

책장을 덮고나니 소주 한 잔이 절실한 건 비단 나 뿐만이 아닐 터. 젊은 청년이 대단하네, 라고 치켜세워주기 보다는 힘들었지, 하며 궁디팡팡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고픈 마음이 드는 사람 또한 나 뿐만이 아닐 터. 그러니 오라버니, 한 잔 어떠합니까. (응?)

그리고 이 리뷰가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선정이 된다면, 그리고 어찌어찌하여 순재씨와 소주 한 잔을 할 기회를 얻게 된다면, 85쪽 6째 문단 첫 번째와 두 번째 줄에 걸쳐 언급되어 있는 이 문장이 참말인지 아닌지 직접 인증에 나설 참이다. 


'당시 나는 솔리드라는 남성 그룹 중 한 명과 헤어스타일이 비슷했고 랩도 잘했기에 종종 축제에 불려 나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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