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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1. 희생이고 나발이고
이별, 마지막 이별의 비참함 속에서도 가장 큰 위안이 되어 준 것은 그것이 신중한 결정이며, 그의 행복을 우선시한 자기 희생이라는 믿음이었다.
자기
희생이라니.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따로 없다. 이를테면 전쟁통에 서로 적국의 두 남녀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시달리다
이러쿵 저러쿵 끝에 둘 중 하나가 기여코 죽음을 감안, 살아남은 이의 행복을 바라며 굳빠이를 날리는 시추에이션에 견주기란 앤의
처지는 너어무 약소하다는 것. 하물며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수지간인 두 가문의 비극적 조합을 떠올려 옆에 두고 보자니 좌우 고갯짓만
격해진다. (로렌스 신부 앞에서 이처럼 자기 희생을 나불대다 당장 무릎 꿇고 신께 용서를 구하라며 등짝 스매싱을 당할 앤의
모습을 굳이 그려보고 삐죽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는 이 녀자도 함께 용서하소서)
십
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그 분처럼 종교적인 헌신과 희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으나, 사람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서 자기 희생을
갖다 붙이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심지어 아슬아슬하고 위험해보이기까지 한다. 헤겔도 헌신적 사랑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지 않나. 함부로 자기 희생 운운했다가는 되려 '여성의 소외'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이렇게 한 팔 걷어 주신다.
헤겔은 청년기에 종교에 대해 탐구하면서 헌신적
사랑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초월적 절대자에게 헌신하는 인간의 태도는 '동등성'을 쉽게 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초월적인 것을 상정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외적 권위를 상정하고 외적 권위에 기초하는 규범들을
절대화함으로써, 인간의 자발성과 내면적 자유를 훼손하게 되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므로 '헌신적 사랑은 미덕'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능력과 동등성을 사장시키고 여성을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사랑의 철학(이정은)' 중에서>
' 청승맞던 지난 날 '로 간결히 압축해 두었으면 이렇게까지 몰아세우지 않았을텐데…. 그녀가 8년이라는 시간을 겪으면서 ' 신중을 기하기 위해 걱정만 앞세우는 건 인간의 노력에 대한 모독이며 신의 섭리에 대한 불신이 아닌가 ' 하고 신중과 걱정의 성격을 구별할 줄 알게 된 점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용하다는 점쟁이에게 ' 생각하는 시간을 줄여라 '는 충고를 받은 적이 있다. 앤의 꼬라지를 보자마자 엉뚱하게도 요 선녀보살이 떠올랐다. 시집은 가급적 늦게 가라 일러두며 ' 국회의원감을 만나 굉장한 뒷바라지를 하게 된다 '고 윙크짓을 해보였더랬지. 그 날이 오면 내 주변에 ' 레이디 러셀 '들은 어떤 반응을 하게 될까. 난 또 어떤 설득에 휘말리게 될까...
하고 엉뚱한 상상을 하는 새벽 12시 40분이란(하아)….
2. 사랑할 땐 꼴리는대로
현재의 저를 의심하지 말아야 했어요. 사정이 달라졌고, 제 나이도 어리지 않은 걸요. 설사 한때 남의 설득에 따랐던 것이 잘못이었다
해도 모험이 아니라 안전을 권하는 설득에 따랐다는 점을 기억해주세요. 전 그분 뜻에 따르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경우엔 그 어떤 의무감도 끼어들 여지가 없지요. 제게 애정이 없는 남자와 결혼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온갖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고, 또 모든 의무를 저버리는 일일 거에요. <324쪽, 설득, 제인 오스틴, 문학동네>
그렇다. 이 언니의 사정은 달라졌다. 그치만 '
그 남자의 사정 '도 달라졌다는 사실은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그 남자의 사정은 꽤 눈부시게 변모, 8년 전 첫사랑의
심장을 백번 천번 흔들어 놓는것도 모자라, 결혼 시장 내 우수한 성적으로 고평가되었고, 아래와 같이 월터 경의 뭐뭐같은 취미
생활에 즐거운 활력소로 작용하기에 이르렀다.
월터 경은 이 결혼을 진실로 기뻐할 만큼 앤에게 애정이 있지도 않았고, 이 결혼으로 그의 허영심이 채워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가 둘의 결합을 탐탁지 않아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웬트워스 대령을 보면 볼수록, 그리고 밝은 대낮에 여러 번 찬찬히
살펴볼수록, 그의 뛰어난 외모라면 앤의 우월한 지위에 견준다 해도 부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듣기에 그럴싸한 그의
이름도 마음에 들었으므로, 마침내 월터 경은 작위 명부에 이 혼사를 적어 넣기 위해 흔쾌히 펜을 들 수 있게 되었다.
<330쪽, 설득, 제인 오스틴, 문학동네>
둘의 성공적인 재결합에 (얼떨결에) 박수를
보내다 문득, 이 모든 이야기가 제인 오스틴이 제시한 '설득'이라는 현실적인 키워드에는 저언혀 관련없이, 그 정반대의
'로맨스'라는 판타지물로 꽁꽁 포장되어 잡혀 들어오네. 웬트워스의 ' 꼴리는 ' 편지 한 통이 아니었다면 영영 뭍히고 말았을 그
여자, 앤의 사정은 이렇게 물에 물타듯 술에 술타듯 신데렐라 스토리로 세탁된 것이다. 이런 류의 마무리엔 신물이 날 법도 하건만
전혀 그렇지도 못한 것이 실상 우리의 가슴은 해피 엔딩에 ' 꼴리기 ' 때문이 아닐까.
저자 제인 오스틴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할 땐 결코 설득 당하지 마라. 사랑을 할 땐 너님 꼴리는 대로. HAPPILY EVER AFTER .
이하 동영상은 이 시대의 앤을 위함.
언니들을 위해 바치는 은꼴키쓰. 은.근.히. 꼴.리.는. 키.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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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네이버 카페 독서공동체 <달의 궁전>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