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25
마틴 에이미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빗줄기는 가늘었고 공기는 자동차 배기 가스처럼 불쾌했으며 하늘은 아예 없었다. 정말 하늘이 없었다. 런던의 여름은 호흡기가 좋지 않은 노인 같다. 자세히 들어 보면 지쳐 흐느끼는 소리가 그 숨소리에 섞여 들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스럽지 않은 런던. 심지어 그 이름에서조차 심한 스트레스가 느껴진다.
가
끔 길을 걸어가다 날씨와 싸움을 할 때가 있다. 나는 날씨의 신들을 상대로 달려든다. 발로 차고 주먹을 날리며 한바탕 뒹군다.
사람들이 쳐다보며 웃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맥주 통처럼 퉁퉁한 몸으로 가라테 킥을 날리고, 하늘을 향해 박치기를 해
댄다. 그 와중에 소리도 많이 지른다.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가끔은 정말로 날씨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날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 1, p.149>
|
날
씨를 받아들이지 못해 허공에 투실한 몸을 들이받는 정신나간 이 남성은 '존 셀프'라는 런던의 잘 나가는 CF 감독입니다. 우연히
비행기에서 만난 헐리우드 영화 제작자 '필딩 구드니'의 제안으로 첫 장편영화를 제작하게 된 그는 런던과 뉴욕을 오가는 삶을 살게
되지요. 하지만 독자는 그가 영화 제작을 위해 무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돈이나 펑펑 써 제끼며 술, 여자, 마약,
(망할) 패스트푸드에만 탐닉할 뿐입니다. (아, 난 정말 패스트푸드가 끔찍하게 싫어요)
쾌락에 미친 요런 술주정뱅이. 라고 쓰고 보니 왠지 거울에 삿대질을 하는 기분이라 영 머쓱하구만요.
아. 한국의 여름은 어떤가요. 저기 첫 문단에 런던을 한국으로 치환해보니 꽤 그럴듯한 기분이 드는 건 저 뿐인가요. 이런 날씨에 술을 마시면 절대 취할 리가 없지요. (주당들만 통한다는 그것...!)
| 술
을 마시면 기분이 좋게 취할 줄 알았는데 대신 멍해지기만 했다. 정말이었다. 나는 그런 상태를 벗어나 보겠다는 안쓰러운 희망으로
계속 술을 주문했고, 결국 이렇게 많이 마시고 말았다. 더 이상한 점은 어젯밤에 룸서비스를 잔뜩 시켜 먹으며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고 잤는데도 아침에는 몸 상태가 너무너무 좋았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종류의 시차를 겪는 걸까. 아니면 내 몸 전체가 최후의
반란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 <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 1, p.213> |
하물며 글이 눈에 들어올리가….
| 독
서에는 시간이 많이 든다. 여러분은 그 점을 발견 못 하셨나? 예를 들어 21쪽에서 30쪽까지 읽으려면 진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우선 23쪽을 지나야 하고 다음에는 25쪽, 27쪽, 그리고 29쪽을 지나야하고, 중간중간에 짝수 페이지도 지나야 한다. 그래야
30쪽이 나온다. 그 다음에는 31쪽, 33쪽…… 끝없이 이어진다. 다행스럽게도 동물농장은 그렇게 긴 소설이 아니지만 소설은
보통…… 소설은 다 길다. 그렇지 않은가? 내 말은 소설은 하나같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 2, p.44> |
<
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노트>는 한 마디로 '존 셀프의 멘붕 일기' 라고 보셔도 될 것 같네요. 꽤 저속하고 더러운 표현들이
거침없이 쓰여있지만요. <팩토텀>의 작가, '찰스 부코스키'를 좋아하신다면 (찰스에 비하면 약과) 그다지 거슬리진
않을 거에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멘붕'인 분들이라면 꼬옥 읽어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