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미치광이 펭귄클래식 54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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녕하십니까.

펭귄반 독서모임 지기 삽하나입니다. 퇴근이 늦어 부랴부랴 집에 와서는 곧장 욕실로 직행하여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건지 찜질을 한 건진 잘 모르겠으나 여하튼 그 여파로 몸이 축 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콤푸타 앞에 앉아 후기를 기다리시는 여러분들을 위해 이렇게 글을 시작하는 저를 어여삐 봐주시기를 바라며 후기 시작합니다. 

(숨 안쉬고 읽은 사람 있으면 어디 손들어 봐요... )

 

리를 빛내주신 참가자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레몬숲님 2. asodie님 3. 지양님 4. 데미안님 5. 미메시스님 6. 둘리고고님 7. 엘루어님 8. hyem님 9. 삽하나(나임ㅋㅋ)

 

임 선정 도서는 로베르토 아를트7인의 미치광이.

 


본격 모임을 진행하기에 앞서 각자 알아서들 intro 가볍게 진행해주시는 아름다운 모습! 아, 저 정말 감동먹었지 뭡니까. 더욱이 다양한 시각으로 책을 요리조리 비춰볼 수 있었던 흥미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데는 각자 개성이 뚜렷하신 분들이 대부분으로 구성된 펭귄팀만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해, 그대들도 주인공들 못지 않게 대단히 미쳤다는 말. 아잉. 농이어요.)

 

1. 지금 누가 누굴더러 미쳤대?

 

현실에 대한 자학 냄새가 짙어 읽는 내내 괴로웠다는 누군가의 말에서부터 '정말 제대로 미친 것들이 아니냐'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내 저자 아를트의 서사방식과 그가 어디로부턴가 소환해온 캐릭터 하나하나가 독자들을 몰입시키는 매력이 상당하다고 말을 꺼내주신 asodie님에 대한 동조가 쪼르르 줄을 이으면서 '미친놈'과 '안 미친놈'의 경계 따위는 무너졌습니다. 결국 7인의 모습은 우리와 상당히 닮아있다는 의견의 우세가 확실했다죠.

레몬숲_ 현대인을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기둥서방과 창녀 아니겠어요. 악어와 악어새 같은, 서로 기생하고 있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잖아요. 제대로 날카롭게 비유하고 있는 거죠.

 

지양_ 사실 일수업자가 삥땅친다는 소재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지 않나요. 미쳤다고 하기엔 좀..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란 용어가 떠오르네요. 오에 겐자부로의 문학사상을 가리킨 이 말이 왠지 이들의 세상에도 적용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만큼 이 세상이 지독하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7인, 그들이 딛고 사는 현실 만큼이나.)

 

2. 방황하는 그대 마음 속 (이 죽일 놈의) 수학 공식.

 

그렇습니다. 7인은 미치지 않았답니다. '그러므로 너와 나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좁혀지는 가운데, 우리 펭귄팀 멤버들은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자는 과감한(?) 시도를 감행했습니다.

 

데미안_ 7인, 이들은 자기정당화를 하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어요. 자기정당화의 반복만이 살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삽하나_ 후후. 하이파이브합시다. 데미안님과 통했어요. 텍스트를 다시 한 번 들춰봅시다.

 

 "사람의 마음 속엔 우리도 모르는 어떤 수학 원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선이나 숫자의 조합을 지배하는 원리처럼 부정할 수 없는 엄청난 원리와 법칙 같은 것 말이에요." _ p.111: 13~

 

그리고선 저는 얼마 전 우연히 영어회화 스터디에서 접한 자기정당화의 공식을 들고 나와 화이트 보드에 삼각형을 그려가며 허접한 '1분 강의'를 했습니다. 스터디 할 땐 이거 뭐 어디 쓸모 있겠냐며 투덜댔는데 여기서 유용하게 써먹다니. 역시 사람은 뭐 하나라도 더 알아야…. 여하튼 이 공식에 따르면 '자기 정당화'는 다음의 A와 B가 불일치할 때, 즉 A와 B의 결과가 마이너스를 낳을 때 발생합니다.

 

         A(attitue/behavior/belief) ⓧ B(knowledge) = C(cognitive disonance)

         

좋은 예: 평소 데미안님을 별다른 이유없이 마음 속으로 지독히 싫어하던(-B) 삽하나. 그렇지만 매번 모임 때마다 마주치는 그를 냉랭하게 대하는 것은 모임 지기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싶어서 억지로 친밀감을 표시하거나 적당한 예의를 차리고 있다.(+A) 마음과 행동이 불일치 하므로 -C, 즉 '인식의 불일치(cognitive disonance)'를 낳은 것. 다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A ⓧ -B = -C

 

결과가 마이너스(-C), 즉 인식의 불일치로 인해 맘이 내내 편치 못하다. 바야흐로 '자기 정당화'가 요구되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로 만들기 위해서는 A를 마이너스로 고치거나 B를 플러스로 만들거나 둘 중의 하나. 그래서 삽하나는 데미안님의 장점을 보기로 했다. 차분하고 조근조근한 어조는 마리아의 그것과 맞닿아 있으며 까맣고 짙은 눈동자는 진정 진실을 울리네. 게다가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저 해박한 지식의 바다여. 아아. 내가 데미안님을 그동안 오해했던 거였어. 그리하여 삽하나는 진심으로 데미안님을 동경(+B)하게 되었고

 

+A  + B = +C      

 

가 되었답니다. 데미안님. 사랑해요♡ 잇힝. (그리고 설명 끄읕.)

 

저희 펭귄팀 멤버들은 각자의 상황을 끼워맞춰 보며 저마다의 신세를 한탄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답니다.

여러분들의 공식은 어떠신가요. 술술 풀리십니까?

참고로 저는 수학이라면 질색입니다.

 

3. 별 일 없이 산다.

 

수학공식 때문인지 뭔지 몰라도 전원 모두 슬슬 골머리를 앓기 시작합니다. 1900년대 아르헨티나와 지금의 우리는 너무도 흡사하고, 여전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우울하다며 서로 앓는 소리를 내뱉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정말 원하는 건 지긋지긋한 어두운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난 '평범한 삶'이 아니냐는 말이 삽하나 입으로부터 툭. 하고 나왔습니다. 근데 이거 정말 어렵잖습니까. 평범하게 사는 것. 공감 하시나요?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 일 없이 산다.'에 많은 젊은 대중들이 열광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 아닐까요.




4. 구리장미와 돈. 혹은 돈과 구리장미.


 

돈돈돈. 그 놈의 돈. 별 탈없이 평범하게 살고 싶어도 돈 때문에 결국 부딪치고 험난해지는 게 에르도사인의 우울한 삶 아닐까요. 소설 첫 장부터 시작되는 돈 이야기에 대부분 질려있었지만 그래도 이야길 꺼내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heym_ 에르도사인은 그렇게 많은 돈을 빼돌리고도 정작 한 일이라곤 생각없이 저지른 황당한 짓거리 뿐이죠. 새 양복, 새 구두를 사입어서 사치를 실컷 부릴만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은 의문입니다.

 

데미안_ 395쪽을 펴주시겠어요. 부자를 질시하면서 동경하는 에르도사인의 모습이 보이네요.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현실을 투영한 겁니다. 에르도사인이 돈을 훔치고서 정작 필요한 생필품에 돈을 쓰지 않은 건 객기라고 밖에 설명이 안되네요.

 

레몬숲_ 그러게 말이에요. 현대사회에서 돈은 신과 거의 다름없는 존재 아니겠어요.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신의 존재성을 생각해 본다면….)

 

둘리고고_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각기 캐릭터에게 있는 것 같아요. 애정에 목말라있다는 말이죠. 그러다보니 돈에 집착하는 게 아닐까요.

 

삽하나_ 그럼 돈과 비교해봤을 때 구리장미는 어떤가요. 그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듭니다. 돈이나 거기에 더럽게 따라붙는 지독히도 구차한 비극적 요소는 구리장미라는 꿈을 이루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장애물이 아닐까요. 우리도 그렇게 살잖아요.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면서요. 하고 싶은 거 제껴두고 돈을 우선적으로 좇기도 하고….

 

레몬숲_ 그러고보니 엘사가 떠난 건 돈이 아니라 '권태' 때문인 것 같아요. 권태….

 

삽하나_ 권태란 건 정말 위험한 놈인 것 같습니다. 에르도사인이 구리장미에 집착하는 이유도 권태를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드네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돈? 구리장미? 혹시 구리장미와 돈 모두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어느 것을 먼저 좇으시겠어요. 구리장미가 먼저입니까. 돈이 먼저입니까. 이에 관해 고인이 되신 최고은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며 잠시 자리가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5. 기타

 

데미안_ 중남미 소설의 특징이 확실히 도드라지긴 합니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하더군요. 황석영이 요새 쓰고 있다는 소설이 이런 형식이라는데 궁금하네요.

 

엘루어_ 세기말적인 어휘들이 많이 눈에 띄었어요. 이를 통해 부를 많이 가진 사람이 커질수록 세계 평화는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생각에 이르렀구요.

 

지양_“누가 이 자를 가엾이 여겨 자비를 줄까?”란 말이 잊혀지지가 않에요.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미메시스_ 그냥 이 책이 코메디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엔 남미판 '죄와 벌'인가 했는데 결국 마지막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가 되어 버렸잖아요. 읽고 토론해야 한다는 현실 자체가 암울합니다.

 

둘리고고_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7개의 인형이 나오는 인형극을 지켜보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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