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독서 - 그림으로 고전 읽기, 문학으로 인생 읽기
문소영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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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검색창에 이름에 이끌려 블로그에 종종 놀러 다니다가. 책이 나온다는 글을 보고 구입했다.
그림 보는 걸 좋아하고 책 읽는 걸 즐기는 내게 좋은 읽을거리가 생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책을 처음 들었을 때 상당히 묵직했다. 아무래도 그림이 들어가다 보니 종이 질과 감촉이 좋다. 덕분에 책 가격이 일반 책들보다 비싸긴 하다.
들어가는 글에 칼비노에 대한 글로 책은 그림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 성숙한 나이에 위대한 책을 처음 읽는 건, 더 어린 시절에 읽은 즐거움과는 다른 비상한 즐거움이다. 어린 나이는 독서에 특정한 풍미와 의식적인 중요성을 부여하는 반면에, 성숙한 나이에는 더 많은 디테일과 관점들과 의미들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전을 다시 읽는 것은 처음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발견의 여정이다."

나로 하여금 다시금 용기를 주었다. 그 많고 유명한 고전들.. 나는 과연 진실로 몇 권이나 읽었나?
이제라도 다시 읽으면 된다.라는 자기합리를 만들어 주었다.

고전 속의 이야기를 그림과 연결했다는 구성이 너무 좋았다.

 

책에 들어가니 장미의 그림과 이야기가 나왔다.

장미의 의미가 쾌락에서 종교적 순교로의 의미 변화는 내게 새로운 지식의 습득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례로 햄릿의 고전과 명화의 이야기가 나왔다. 특히. 오필리아의 그림이 그리 많이 그려졌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림에 대한 지식은 가끔 예술의 전당이나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 외에는 접하지 못했으니 너무 우물 안 개구리였단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오필리아의 그림을 감상했다. 물 위의 떠있는 오필리아. 뭔가 허무함이 보이는 표정이다. 왜 물 위에 떠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아니 왜 물 위에 떠 있는 그림을 그렸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궁금증과 호기심을 조금은 뒤로하고 새로운 그림을 보게 되었다.


[고도를 기다리며] 이 소설은 오래전 중간까지 읽다 포기 한 책이었다.

그런데 그 소설이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달을 응시하는 두 남자] 의 그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하니

소설이 다시금 사뭇 궁금해졌다.


​오늘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꺼내 머리맡에라도 둬야 할 것 같다.

사랑에 잠 못 이룰 때 의 챕터를 다 읽고 나서는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이야기와 그의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다.

p.125
베아트리체가 죽었을 때 단테는 이렇게 말했었다.
내 여인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후, 나는 살아서도 죽어 있는 삶이었다.
 

단테의 말에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그러나 이 챕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그림이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덮을 때까지 그 모습이 계속 남아 있는 그림이었다.

이 그림. 상당히 강렬했다.

무자비한 미녀 의 모습은 내가 꼭 한번 보고 싶은, 그리고 면화 프린팅이라도 사고 싶은 그림이다.

(진짜로 이 그림을 찾아봤다.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슬펐다.)


그림 속 여인은 고혹적이고 아름답다. 그리고 기사의 모습은 왠지 서글프다. 기사의 표정이 사랑의 그리움이 묻어있는 것 같다.

기사는 이 여인을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다. 

p.119
낙원을 한번 체험한 사람은 더 이상 무미건조하거나 남루한 현실을 견딜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낙원이 계속 머물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
그 환상이 사라질 때 인간은 끝없이 그리워하며 현실에서의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방황하며 시들어가는 것이다.
환상은 아름답지만 무자비하다. 우리를 매혹하지만 오래도록 함께 있어 주지 않고 아무것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책의 내용과 설명을 듣고 있자니 환상에 대한 이미지가 꼭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 환상. 조금 더 넓혀서 이상을 향해 나아가야만

그 언저리라도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이상향은 영원히 오지 않지만 그 이상향이 없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하루하루를 지낸단 말인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가고 이젠 어둠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와 그림들이 나온다. 내 예상은 고야의 그림들이 나올까 생각을 했다.

워낙 기기묘묘한 그림과 종말에 대한 그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야와 연결된 소설은 없었나 보다. 그래도 이 챕터에서 가장 좋았던 건 뭉크와 입센의 연결이었다.

뭉크의 그림은 마돈나와 흡혈귀를 제일 좋아한다. 나름 뭉크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입센의 초상화를 뭉크가 그렸다는 것과 소설[유령]의 한 장면을 뭉크가 그렸다는 것.

​입센의 소설 [유령]과 뭉크의 그림[아픈 아이]와 [유전]이 상당히 밀첩한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오스왈드를 자신화했다는 뭉크. 뭉크의 그림은 모두 아프고 우울하다. 그의 대표적 그림 [절규]와 [불안]을 을 보면서 생각한다.

그림 속 인물들은 뭉크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p.186
나는 두 친구와 함게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나는 우울함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변했다. 나는 멈춰 서서 난간에 몸을 기댔다. 극도로 피곤해져서, 불타는 구름이 피와 칼과 같은 형태로 짙은 푸른색의 피오르와 도시 위에 걸려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 친구들은 계속 걸었다. 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불안으로 몸을 떨며, 그 순간 거대한, 무한한 비명이 자연을 꿰뚫는 것을 느꼈다.


p.192

"우리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다 유령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만이 아니라 이미 죽어 없어진 생각들, 죽어 없어진 마음 같은 것들이 우리한테 붙어 다닌단 말이에요.


책은 이제 뒤로 넘어간다. 왜 그런지 뒤의 챕터들은 그다지 흥미가 덜했다. 책을 급하게 읽어서 였을까?

잃어버린 상상력을 찾아서 에서는 메리 셜리의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와 그림과 에드거 앨런 포의 이야기와 가면들 중의 엔소르의 그림이 괜찮았을 뿐이다. 그래도 작가의 말이 인상 깊어서 한번 봤다.


p.252

우리는 바로 바벨의 도서관에서 해독할 수 없는 책을 붙잡고 고민하는 인간과 같은 존재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것은 우리나라 고전과 연결된 명화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 즈음에 김시습의 금오신화 이야기가 나왔다. 오래전 금오신화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살아났다. 조선시대인데 귀신 이야기며 천상의 이야기가 즐비했던 작품이어서 '진짜 조선시대 소설 맞아?' 라고 놀랬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기선 취유부벽정기에 대한 이야기와 김홍도의 그림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너무 아쉬웠다. 유럽처럼 입센과 뭉크 처럼, 혹은 키츠와 카우퍼 처럼 멋진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오히려 중국의 그림[선녀승란도]가 제일 유사스러웠다고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그림과 문학을 그리 높게 평하질 않아서 였다고 밖에 설명이 되질 않았다.

그럼에도 허난설헌의 생각과 그녀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앙간비금도]의 설명은 그녀를 이해하기에 충분한 그림이었다.


p.319

그녀는 혼인을 통해 들어가게 된 우울하고 조잡한 상황에서 어린 시절 오라비들과 스승과 공유했던 탁 트인 신선 세계를 꿈꾸고 그에 대한 시를 썼다.

이런 신선시는 허난설헌 자신만의 위안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신선제는 일단 도를 닦아 선화하면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그러니 여성뿐만 아니라, 그녀의 스승 이달처럼 서얼 출신이라 뛰어난 재주를 못 펼치는 남성 등 모든 부당한 사회적 굴레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윙ㄴ이 될 이상 세계다. 그녀는 그 자유롭고 거침없는 세계를 독특한 회화적 묘사와 운율로 직접 본 것처럼 생생하게 구체화했다. 그래서 명나라 사신 주ㅈ번은 [난설헌집] 서문에서 그녀를 "이승에 귀양 온 선녀"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소설은 그렇게 각 챕터와 관련된 소설과 연결된 명화를 넣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 장인 박완서와 박수근의 그림들의 설명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가장 좋은 점은 구성이었다. 그리고 그 구성에 맞는 해설과 전문지식, 그리고 작가의 생각을 알기 쉽게 이해시켜 주고 있다.


p.203

인터넷 지식의 중우화를 막기 위해서는, 잘못된 정보나 의견이 득세할 때 '침묵하는 다수' 에서 벗어나 사실과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자기 자신도 중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다른 의견을 악으로 매도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명화와 그림을 눈으로 읽고 보는 것만으로도 이번 설 연휴는 풍요로웠다. 덕분에 미술관 나들이를 안 가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대와 함께 아쉬운 부분 역시 크게 다가왔다. 바로 한국을 포함한 동양화에 대한 내용이 조금은 부족해 보였다.

중국의 그림이나 우리나라의 수묵화 도 나름 매력이 있다고 생각이 되었으나, 위에 이야기했듯이 그건 소재의 동양화와 고전을 잇는 그 연결고리가 너무 취약한 탓이라 생각한다. 또한 책에 나온 소설 속 인용 글이나 시구는 원문을 그대로 실어줬으면 하는 아쉬움 역시 슬며시 들려 있다. 물론 내가 직접 해석하기엔 힘들겠지만, 원문의 느낌을 알고 싶기도 했으니 말이다. 


마지막 챕터인 일상의 아름다움과 휴머니즘을 찾아서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그림을 넣음으로써 글을 마친다.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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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혁명과 문화영웅 세종 - 종묘제례악은 한국 아악이다
한흥섭 지음 / 소나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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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이란 말의 의미와 종묘제례악이라는 단어 조차 생소한 이들이 많다.

각종 검색을 해서  알고 있는 단편적인 지식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작가는 우리나라의 음악이 중국의 음악을 바탕으로 둔 중국의 아악의 한 갈래가 아닌

중국과 결이 다른 우리만의 음악이라고 단정지으고 그에 대해 증거와 근거, 자료를 제시한다.


그리고 각종 음악에 대한 엣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 함으로 읽는 재미 까지 느낄수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세종대왕을 모두 알고 있을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10%는 알고 있을까? 음악에 대해ㅅ서도 세종대왕은 조선시대의 그 어느 왕보다 많은 업적을 남겼다.

기틀만들 다진것이 아니라. 완성까지 시킨것이다. 물론. 세조때에 정착된 제도도 있지만 그것들은 

일부이고 조선시대 음악관련 제도나 곡등은 세종대왕때 거의 다 만들어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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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화군 - 불의 연인
정명섭 지음 / 네오픽션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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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이 불바다 되는 것을 말아랏!



그러기 위해선 다섯 갈래의 길을 막고 청룡을 연못에 놓아야 한다.

멸하군 은 오래전부터 화귀로 부터 인간을 지키는 존재로 산골에서 은둔하며 생활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될 때 새로운 시대를 열고픈 젊은 멸화군 길환은 오랜 기간 화귀와의 싸움을 끝내기 위해.

인간들의 세상에서 직접 부딪치려 한다. 원로들과 마을에서는 반대하지만 길환을 선두로 수많은 멸화군들이 길환을 따라 한양으로 오기에 이른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화귀와의 싸움이 시작될 찰나에 인간들은 멸화군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취하려 한다. 

이런 권력싸움에 화귀는 나약하고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마음을 홀려서 걷잡을 수 없을 만큼의 큰 재앙을 내리려 한다.

운명적 사랑과 인연의 끈으로 이어진 길환과 길우, 그리고 조선의 멸화군들의 이야기가 이제 시작하려 한다.


처음 소설의 제목을 접했을 때 신기했다. 조선의 소방관의 이야기.

거기에 조선의 소방관과 판타지가 섞인 소설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거기에 읽어내려가다 보면 스릴적 요소가 끝까지 이어집니다.
진짜로 요괴의 왕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길우와 하급 관리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음모의 배후가 너무 궁금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실제로 멸화군은 조선시대의 불을 끄는 기관이다. 여러 검색을 통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세종실록 때 처음 등장을 했고, 그때 금화군이라 불리는 불을 끄는 군인들이 생겨났으며 세조 시대 때 멸화군으로 더욱 확대 가 되었다고 합니다. 
소설 속의 이야기는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그리고 충녕대군 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을 접목시킴과 동시에 화귀와 인간의 대결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재미를 충족시켜주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실록에서도 그렇고 소설에서도 그렇고. 지금의 현실도 그렇지만 불 끄는 소방관에 대한 안쓰러움이 느껴졌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불을 끄고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데. 우리는 그런 감사함을 다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p.153
"다섯 개의 길을 막고 용이 제자리를 찾아서 한양의 화귀가 사라지면 돌아와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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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언덕 풍경 민음사 모던 클래식 61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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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츠코는 영국의 중년 여성이다.

그녀는 최근 첫째 딸 게이코의 자살을 겪었다. 그러던 중 

그녀의 둘째 딸 니키가 어머니에게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니키가 옴으로서 에츠코는 과거의 기억들이 하나하나씩 떠오른다.


오래전 게이코를 임신했을 때 만났던 이웃 사츠코. 그리고 그녀의 딸 마리코.

그 몇 주간의 흐릿한 기억을 더듬는 에츠코.

그리고 관계에 대한 사유가 흘러간다.

아버지와의 관계, 남편 지로와의 관계, 사츠코와의 관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츠코는 지금의 이 시대는 자신이 계속 살아가기보다 차라리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인물로 나온다.

그리고 그녀의 딸인 마리코. 전쟁의 한복판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물에 넣어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고. 알 수 없는 불안과 망상에 시달린다. 아마 그 시대 일본의 모습을 표현하지 않았나 한다. 결국 그 트라우마는 극복하지 못한 채 소설은 끝이 난다.. 계속 그 짐을 안고 살아간다는 작가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사츠코가 새끼 고양이를 죽일 때 고양이 집 통째로 물에 넣고 익사 시킨다. 이 모습을 보는 마리코.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겪는 모습에서 읽는 내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 소설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진 후의 도시 재건 과정을 묵묵히 보여주고 있다.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지고 그곳에서의 삶의 변화를 슬픔의 관조 없이 묵묵히 그래내고 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각 인물들로 인해 표현하고 있다.

슬프거나 좌절된 도시를 표현한 게 아니라. 감정선을 제외한 묵묵히 보여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예로 -철쭉은 제가 좋아하는 꽃이에요.-  전쟁의 한복판이지만 시대적 불안감을 극소화 시키고 있다.

또한 시대 대립, 혹은 세대 대립의 묘사도 분명하게 그어놓고 있다..

오가타상 은 시게오의 글을 보고 그와 대화를 하려고 하는 모습과 결국 시게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그러하다.

시게오는 학창시절 아들 지로의 친구이며 자신이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애써준 제자이다.

그런 시게오가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비난하는 글을 쓴 것이다. 그것들의 대립이

새로운 새대와 기존의 관습이 부딪치는 장면으로 보인다면 국숫집을 하는 후지와라 상과 사치코의 독백은 전후 새대의 

생각의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후지와라상은 국수집을 하고 있다. 그녀는 전쟁 전에는 지체 높고 학식 있는 집안사람으로 추정된다. 그녀의 삶도 변화되었다.

변화된 삶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후지와라상에 대해 에츠코와 사치코는 각기 정반대의 모습으로 묘사한다.

더 잃을 것도 없는 삶의 모습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희망적인 모습으로 보이니 말이다.

그리고 니키의 삶은 결혼을 왜 하냐 하면서 반문하는 당돌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으로 비치지만, 사치코는 이미 중년의 나이에 삶에 대한 회한만이 남아 있는 모습으로 비친다.

그렇게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물, 변화를 바라는 인물, 변화를 받아들이지만 나의 사상과 관습은 그대로이길 바라는 인물들의 대립으로

소설은 세태소설의 형식을 띄지만 각 캐릭터만의 개성이 뚜렷하여 큰 사건이 없어도 읽기는 썩 괜찮은 소설이다. 


이 소설을 좋게 표현하자면 수채화를 뿌린듯한 소설이란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모든 사건들이 물 흐르듯 덤덤하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조금 다른 것이다.

자신이 5살 때 영국으로 이민을 간 것을 노벨문학상 인터뷰에 언급했는데, 그때

자신 역시 핵폭탄의 그림자에 묻혀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역사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면 그 이전에 왜 핵폭탄을 맞았는지에 대한 언급을 먼저 했어야 하지 않았나 한다.

자신들이 피해자인 양 생각하는 것은 나로선 좀 불편했다.



P237

넌 네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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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언덕 풍경 민음사 모던 클래식 61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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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츠코는 영국의 중년 여성이다.

그녀는 최근 첫째 딸 게이코의 자살을 겪었다. 그러던 중 

그녀의 둘째 딸 니키가 어머니에게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니키가 옴으로서 에츠코는 과거의 기억들이 하나하나씩 떠오른다.


오래전 게이코를 임신했을 때 만났던 이웃 사츠코. 그리고 그녀의 딸 마리코.

그 몇 주간의 흐릿한 기억을 더듬는 에츠코.

그리고 관계에 대한 사유가 흘러간다.

아버지와의 관계, 남편 지로와의 관계, 사츠코와의 관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츠코는 지금의 이 시대는 자신이 계속 살아가기보다 차라리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인물로 나온다.

그리고 그녀의 딸인 마리코. 전쟁의 한복판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물에 넣어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고. 알 수 없는 불안과 망상에 시달린다. 아마 그 시대 일본의 모습을 표현하지 않았나 한다. 결국 그 트라우마는 극복하지 못한 채 소설은 끝이 난다.. 계속 그 짐을 안고 살아간다는 작가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사츠코가 새끼 고양이를 죽일 때 고양이 집 통째로 물에 넣고 익사 시킨다. 이 모습을 보는 마리코.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겪는 모습에서 읽는 내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 소설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진 후의 도시 재건 과정을 묵묵히 보여주고 있다.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지고 그곳에서의 삶의 변화를 슬픔의 관조 없이 묵묵히 그래내고 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각 인물들로 인해 표현하고 있다.

슬프거나 좌절된 도시를 표현한 게 아니라. 감정선을 제외한 묵묵히 보여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예로 -철쭉은 제가 좋아하는 꽃이에요.-  전쟁의 한복판이지만 시대적 불안감을 극소화 시키고 있다.

또한 시대 대립, 혹은 세대 대립의 묘사도 분명하게 그어놓고 있다..

오가타상 은 시게오의 글을 보고 그와 대화를 하려고 하는 모습과 결국 시게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그러하다.

시게오는 학창시절 아들 지로의 친구이며 자신이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애써준 제자이다.

그런 시게오가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비난하는 글을 쓴 것이다. 그것들의 대립이

새로운 새대와 기존의 관습이 부딪치는 장면으로 보인다면 국숫집을 하는 후지와라 상과 사치코의 독백은 전후 새대의 

생각의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후지와라상은 국수집을 하고 있다. 그녀는 전쟁 전에는 지체 높고 학식 있는 집안사람으로 추정된다. 그녀의 삶도 변화되었다.

변화된 삶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후지와라상에 대해 에츠코와 사치코는 각기 정반대의 모습으로 묘사한다.

더 잃을 것도 없는 삶의 모습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희망적인 모습으로 보이니 말이다.

그리고 니키의 삶은 결혼을 왜 하냐 하면서 반문하는 당돌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으로 비치지만, 사치코는 이미 중년의 나이에 삶에 대한 회한만이 남아 있는 모습으로 비친다.

그렇게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물, 변화를 바라는 인물, 변화를 받아들이지만 나의 사상과 관습은 그대로이길 바라는 인물들의 대립으로

소설은 세태소설의 형식을 띄지만 각 캐릭터만의 개성이 뚜렷하여 큰 사건이 없어도 읽기는 썩 괜찮은 소설이다. 


이 소설을 좋게 표현하자면 수채화를 뿌린듯한 소설이란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모든 사건들이 물 흐르듯 덤덤하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조금 다른 것이다.

자신이 5살 때 영국으로 이민을 간 것을 노벨문학상 인터뷰에 언급했는데, 그때

자신 역시 핵폭탄의 그림자에 묻혀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역사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면 그 이전에 왜 핵폭탄을 맞았는지에 대한 언급을 먼저 했어야 하지 않았나 한다.

자신들이 피해자인 양 생각하는 것은 나로선 좀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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