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독서 - 그림으로 고전 읽기, 문학으로 인생 읽기
문소영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쩌다 검색창에 이름에 이끌려 블로그에 종종 놀러 다니다가. 책이 나온다는 글을 보고 구입했다.
그림 보는 걸 좋아하고 책 읽는 걸 즐기는 내게 좋은 읽을거리가 생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책을 처음 들었을 때 상당히 묵직했다. 아무래도 그림이 들어가다 보니 종이 질과 감촉이 좋다. 덕분에 책 가격이 일반 책들보다 비싸긴 하다.
들어가는 글에 칼비노에 대한 글로 책은 그림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 성숙한 나이에 위대한 책을 처음 읽는 건, 더 어린 시절에 읽은 즐거움과는 다른 비상한 즐거움이다. 어린 나이는 독서에 특정한 풍미와 의식적인 중요성을 부여하는 반면에, 성숙한 나이에는 더 많은 디테일과 관점들과 의미들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전을 다시 읽는 것은 처음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발견의 여정이다."

나로 하여금 다시금 용기를 주었다. 그 많고 유명한 고전들.. 나는 과연 진실로 몇 권이나 읽었나?
이제라도 다시 읽으면 된다.라는 자기합리를 만들어 주었다.

고전 속의 이야기를 그림과 연결했다는 구성이 너무 좋았다.

 

책에 들어가니 장미의 그림과 이야기가 나왔다.

장미의 의미가 쾌락에서 종교적 순교로의 의미 변화는 내게 새로운 지식의 습득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례로 햄릿의 고전과 명화의 이야기가 나왔다. 특히. 오필리아의 그림이 그리 많이 그려졌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림에 대한 지식은 가끔 예술의 전당이나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 외에는 접하지 못했으니 너무 우물 안 개구리였단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오필리아의 그림을 감상했다. 물 위의 떠있는 오필리아. 뭔가 허무함이 보이는 표정이다. 왜 물 위에 떠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아니 왜 물 위에 떠 있는 그림을 그렸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궁금증과 호기심을 조금은 뒤로하고 새로운 그림을 보게 되었다.


[고도를 기다리며] 이 소설은 오래전 중간까지 읽다 포기 한 책이었다.

그런데 그 소설이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달을 응시하는 두 남자] 의 그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하니

소설이 다시금 사뭇 궁금해졌다.


​오늘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꺼내 머리맡에라도 둬야 할 것 같다.

사랑에 잠 못 이룰 때 의 챕터를 다 읽고 나서는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이야기와 그의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다.

p.125
베아트리체가 죽었을 때 단테는 이렇게 말했었다.
내 여인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후, 나는 살아서도 죽어 있는 삶이었다.
 

단테의 말에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그러나 이 챕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그림이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덮을 때까지 그 모습이 계속 남아 있는 그림이었다.

이 그림. 상당히 강렬했다.

무자비한 미녀 의 모습은 내가 꼭 한번 보고 싶은, 그리고 면화 프린팅이라도 사고 싶은 그림이다.

(진짜로 이 그림을 찾아봤다.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슬펐다.)


그림 속 여인은 고혹적이고 아름답다. 그리고 기사의 모습은 왠지 서글프다. 기사의 표정이 사랑의 그리움이 묻어있는 것 같다.

기사는 이 여인을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다. 

p.119
낙원을 한번 체험한 사람은 더 이상 무미건조하거나 남루한 현실을 견딜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낙원이 계속 머물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
그 환상이 사라질 때 인간은 끝없이 그리워하며 현실에서의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방황하며 시들어가는 것이다.
환상은 아름답지만 무자비하다. 우리를 매혹하지만 오래도록 함께 있어 주지 않고 아무것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책의 내용과 설명을 듣고 있자니 환상에 대한 이미지가 꼭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 환상. 조금 더 넓혀서 이상을 향해 나아가야만

그 언저리라도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이상향은 영원히 오지 않지만 그 이상향이 없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하루하루를 지낸단 말인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가고 이젠 어둠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와 그림들이 나온다. 내 예상은 고야의 그림들이 나올까 생각을 했다.

워낙 기기묘묘한 그림과 종말에 대한 그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야와 연결된 소설은 없었나 보다. 그래도 이 챕터에서 가장 좋았던 건 뭉크와 입센의 연결이었다.

뭉크의 그림은 마돈나와 흡혈귀를 제일 좋아한다. 나름 뭉크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입센의 초상화를 뭉크가 그렸다는 것과 소설[유령]의 한 장면을 뭉크가 그렸다는 것.

​입센의 소설 [유령]과 뭉크의 그림[아픈 아이]와 [유전]이 상당히 밀첩한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오스왈드를 자신화했다는 뭉크. 뭉크의 그림은 모두 아프고 우울하다. 그의 대표적 그림 [절규]와 [불안]을 을 보면서 생각한다.

그림 속 인물들은 뭉크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p.186
나는 두 친구와 함게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나는 우울함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변했다. 나는 멈춰 서서 난간에 몸을 기댔다. 극도로 피곤해져서, 불타는 구름이 피와 칼과 같은 형태로 짙은 푸른색의 피오르와 도시 위에 걸려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 친구들은 계속 걸었다. 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불안으로 몸을 떨며, 그 순간 거대한, 무한한 비명이 자연을 꿰뚫는 것을 느꼈다.


p.192

"우리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다 유령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만이 아니라 이미 죽어 없어진 생각들, 죽어 없어진 마음 같은 것들이 우리한테 붙어 다닌단 말이에요.


책은 이제 뒤로 넘어간다. 왜 그런지 뒤의 챕터들은 그다지 흥미가 덜했다. 책을 급하게 읽어서 였을까?

잃어버린 상상력을 찾아서 에서는 메리 셜리의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와 그림과 에드거 앨런 포의 이야기와 가면들 중의 엔소르의 그림이 괜찮았을 뿐이다. 그래도 작가의 말이 인상 깊어서 한번 봤다.


p.252

우리는 바로 바벨의 도서관에서 해독할 수 없는 책을 붙잡고 고민하는 인간과 같은 존재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것은 우리나라 고전과 연결된 명화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 즈음에 김시습의 금오신화 이야기가 나왔다. 오래전 금오신화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살아났다. 조선시대인데 귀신 이야기며 천상의 이야기가 즐비했던 작품이어서 '진짜 조선시대 소설 맞아?' 라고 놀랬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기선 취유부벽정기에 대한 이야기와 김홍도의 그림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너무 아쉬웠다. 유럽처럼 입센과 뭉크 처럼, 혹은 키츠와 카우퍼 처럼 멋진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오히려 중국의 그림[선녀승란도]가 제일 유사스러웠다고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그림과 문학을 그리 높게 평하질 않아서 였다고 밖에 설명이 되질 않았다.

그럼에도 허난설헌의 생각과 그녀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앙간비금도]의 설명은 그녀를 이해하기에 충분한 그림이었다.


p.319

그녀는 혼인을 통해 들어가게 된 우울하고 조잡한 상황에서 어린 시절 오라비들과 스승과 공유했던 탁 트인 신선 세계를 꿈꾸고 그에 대한 시를 썼다.

이런 신선시는 허난설헌 자신만의 위안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신선제는 일단 도를 닦아 선화하면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그러니 여성뿐만 아니라, 그녀의 스승 이달처럼 서얼 출신이라 뛰어난 재주를 못 펼치는 남성 등 모든 부당한 사회적 굴레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윙ㄴ이 될 이상 세계다. 그녀는 그 자유롭고 거침없는 세계를 독특한 회화적 묘사와 운율로 직접 본 것처럼 생생하게 구체화했다. 그래서 명나라 사신 주ㅈ번은 [난설헌집] 서문에서 그녀를 "이승에 귀양 온 선녀"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소설은 그렇게 각 챕터와 관련된 소설과 연결된 명화를 넣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 장인 박완서와 박수근의 그림들의 설명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가장 좋은 점은 구성이었다. 그리고 그 구성에 맞는 해설과 전문지식, 그리고 작가의 생각을 알기 쉽게 이해시켜 주고 있다.


p.203

인터넷 지식의 중우화를 막기 위해서는, 잘못된 정보나 의견이 득세할 때 '침묵하는 다수' 에서 벗어나 사실과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자기 자신도 중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다른 의견을 악으로 매도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명화와 그림을 눈으로 읽고 보는 것만으로도 이번 설 연휴는 풍요로웠다. 덕분에 미술관 나들이를 안 가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대와 함께 아쉬운 부분 역시 크게 다가왔다. 바로 한국을 포함한 동양화에 대한 내용이 조금은 부족해 보였다.

중국의 그림이나 우리나라의 수묵화 도 나름 매력이 있다고 생각이 되었으나, 위에 이야기했듯이 그건 소재의 동양화와 고전을 잇는 그 연결고리가 너무 취약한 탓이라 생각한다. 또한 책에 나온 소설 속 인용 글이나 시구는 원문을 그대로 실어줬으면 하는 아쉬움 역시 슬며시 들려 있다. 물론 내가 직접 해석하기엔 힘들겠지만, 원문의 느낌을 알고 싶기도 했으니 말이다. 


마지막 챕터인 일상의 아름다움과 휴머니즘을 찾아서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그림을 넣음으로써 글을 마친다.



p.2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