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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언덕 풍경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61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에츠코는 영국의 중년 여성이다.
그녀는 최근 첫째 딸 게이코의 자살을 겪었다. 그러던 중
그녀의 둘째 딸 니키가 어머니에게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니키가 옴으로서 에츠코는 과거의 기억들이 하나하나씩 떠오른다.
오래전 게이코를 임신했을 때 만났던 이웃 사츠코. 그리고 그녀의 딸 마리코.
그 몇 주간의 흐릿한 기억을 더듬는 에츠코.
그리고 관계에 대한 사유가 흘러간다.
아버지와의 관계, 남편 지로와의 관계, 사츠코와의 관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츠코는 지금의 이 시대는 자신이 계속 살아가기보다 차라리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인물로 나온다.
그리고 그녀의 딸인 마리코. 전쟁의 한복판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물에 넣어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고. 알 수 없는 불안과 망상에 시달린다. 아마 그 시대 일본의 모습을 표현하지 않았나 한다. 결국 그 트라우마는 극복하지 못한 채 소설은 끝이 난다.. 계속 그 짐을 안고 살아간다는 작가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사츠코가 새끼 고양이를 죽일 때 고양이 집 통째로 물에 넣고 익사 시킨다. 이 모습을 보는 마리코.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겪는 모습에서 읽는 내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 소설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진 후의 도시 재건 과정을 묵묵히 보여주고 있다.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지고 그곳에서의 삶의 변화를 슬픔의 관조 없이 묵묵히 그래내고 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각 인물들로 인해 표현하고 있다.
슬프거나 좌절된 도시를 표현한 게 아니라. 감정선을 제외한 묵묵히 보여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예로 -철쭉은 제가 좋아하는 꽃이에요.- 전쟁의 한복판이지만 시대적 불안감을 극소화 시키고 있다.
또한 시대 대립, 혹은 세대 대립의 묘사도 분명하게 그어놓고 있다..
오가타상 은 시게오의 글을 보고 그와 대화를 하려고 하는 모습과 결국 시게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그러하다.
시게오는 학창시절 아들 지로의 친구이며 자신이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애써준 제자이다.
그런 시게오가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비난하는 글을 쓴 것이다. 그것들의 대립이
새로운 새대와 기존의 관습이 부딪치는 장면으로 보인다면 국숫집을 하는 후지와라 상과 사치코의 독백은 전후 새대의
생각의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후지와라상은 국수집을 하고 있다. 그녀는 전쟁 전에는 지체 높고 학식 있는 집안사람으로 추정된다. 그녀의 삶도 변화되었다.
변화된 삶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후지와라상에 대해 에츠코와 사치코는 각기 정반대의 모습으로 묘사한다.
더 잃을 것도 없는 삶의 모습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희망적인 모습으로 보이니 말이다.
그리고 니키의 삶은 결혼을 왜 하냐 하면서 반문하는 당돌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으로 비치지만, 사치코는 이미 중년의 나이에 삶에 대한 회한만이 남아 있는 모습으로 비친다.
그렇게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물, 변화를 바라는 인물, 변화를 받아들이지만 나의 사상과 관습은 그대로이길 바라는 인물들의 대립으로
소설은 세태소설의 형식을 띄지만 각 캐릭터만의 개성이 뚜렷하여 큰 사건이 없어도 읽기는 썩 괜찮은 소설이다.
이 소설을 좋게 표현하자면 수채화를 뿌린듯한 소설이란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모든 사건들이 물 흐르듯 덤덤하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조금 다른 것이다.
자신이 5살 때 영국으로 이민을 간 것을 노벨문학상 인터뷰에 언급했는데, 그때
자신 역시 핵폭탄의 그림자에 묻혀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역사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면 그 이전에 왜 핵폭탄을 맞았는지에 대한 언급을 먼저 했어야 하지 않았나 한다.
자신들이 피해자인 양 생각하는 것은 나로선 좀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