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울다
거수이핑 지음, 김남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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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의 정경이 마냥 평화롭지는 않다.

그들의 삶 역시 치열하고 분주하게 흘려보내고 있다.


그렇게 삶은 계속 된다.


소솔속에서는 그런 표현들이 한번씩은 꼭 나온다.


P.89

나귀는 편하구나. 사람이 나귀만도 못하지 뭐야. 날마다 맷돌만 돌리면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으로 시간가는 걸 알겠지.


P.167

잘 살아가야 하지만 결국은 늙는다. 늙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세월은 많은 것을 앗아 가지만 일상에서 얻어지는 것도 적지 않다. 이 백성들이 무엇 때문에 살아가겠나. 결국 생활을 잘 꾸리면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오늘 이 정도 살 수 있게 되었으니 만족할 노릇이다.



이 책에 수록된 네 편의 중편 소설들은 나름의 개연성들이 있다.

우선 소설 속 주인공을 여자로 설정해 놓았다.

보통 향토소설은 남성 캐릭터가 나와야 이야기의 에피소드가 크고 스케일이 뚜렷해진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나약하지만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들의 이야기이고, 모두 3인칭 시점으로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형식이다. 또한 소설의 말미에 가서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의 실마리가 풀리면서 삶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첫 번째 소설 '산이울다' 에 나오는 벙어리 아내의 이야기는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아내는 자신의 자식들과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얼마 전 차이니스 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선정되어서 보았던 영화의 원작이었다.


두 번째 소설 ' 하늘아래 ' 는  한마을을 벗어나지 않고 한 평생을 살아온 한 여자의 일대기이다.

욕심부리지 말고 순리대로 살아가려는 향촌의 모습. 그 순리를 어긋나면 롼친처럼 불행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느끼는 것이 있다. '그들 역시 삶을 지내왔다.' 라는 것이다. 남편의 죽음에서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낀 건 롼친의 삶의 굴곡을 내가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 번째 소설 ' 째찍돌림 ' 역시 한 여자의 일생이다. 어릴 적 누명에 의해 반역자 가족이 되어 그녀의 가족들은 노예가 되거나 죽임을 당하였다. 왕인란 역시 어느 부자의 몸종으로 들어간다. 외모와 몸매가 이뻐서 주인의 성 노리기가 되지지만 안방마님에 의해 학대를 받는다. 이때 이 집에 석탄을 들여놓는 마우에게 청을 넣어 마우의 첩으로 도망 나오게 된다. 그러다 몇 년 후 마우가 이상한 죽음을 맞는다. 왕인란은 다시 옆 마을로 재가에 들어간다. 너무나 착한 신랑을 만났지만 이 역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왕인란은 삶에 의지를 잃지만 마우 때부터 자신을 도와준 마우의 종인 테헤이의 도움으로 삶을 계속 이어간다. 온 같 역경을 겪고 박복한 삶을 한탄하여 마지막엔 체념한 듯 지내지만 그녀 역시 나머지 삶을 이어 간다는 것이다.

 

네 번째 소설인 ' 시간을 넘어 ' 는 한 여자의 가난에 지친 한 여자가 손보다는 몸을 놀려서 돈을 버는 것에 익숙해진 한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애지중지하던 딸이 실종 사건이 되어 그 일말의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렇듯. 소설들은 온 같 사건 사고가 번잡한 도시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골의 모습을 한 그곳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멀리서 보는 평화로운 일상과 단조로운 삶이 아니라 그녀들 역시 삶이 지니는 그 무게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녀들은 단 한순간도 삶에 가벼운 적이 없었다. 삶에 대한 열정과 미래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그 마을에서

계속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시대적 배경이 허구가 아닌 전쟁 후와 문화대혁명의 시대를 거치고 있다는 것이다. 변해가는 국가 그 안의 작은 마을들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인간관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속속히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가 생각이 났다.

그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여자이다. 전쟁은 남자의 전유물로 비추어지지만 전쟁의 소용돌이 안에서 고통을 겪는 것은 남자가 아닌 여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된 르포 형식의 소설이었다. 인터뷰를 하는 여자들의 말에서 그녀들만의 삶에 대한 치열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번에 읽은 '산이울다' 역시 그에 못지않은 치열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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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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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소설 괜찮다.

빛의 호위

어느날 취재차 사직작가 권은 을 만났다. 그런데 그녀는 학창시절 같은 반 친구였던 것이었따.
그녀와 이야기 하면서도 그녀에게는 관심이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돈다.
그녀는 헬게 한센의 다큐로 인해 자신의 블로그에 알마 마이어에 편지를 쓴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반장이었을 나에게도 한편의 편지를 쓴 것이다.
평생 작곡가를 꿈꾸었지만 한곡도 발표하지 못한 장. 그리고 그런 장의 보살핌으로 지낸 알마. 그리고 그들의 아들 노먼

소설은 애뜻하게 감정을 충분히 절제 시키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들 역시 드러나는 감정선을 최대로 억눌렀다. 그들의 삶이 그러했다라고 보여진다.

권은은 어린시절 그리 좋은 환경의 아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반장이 준 그 카메라로 세상을 찍는 그 순간 빛의호위를 받으며 세상으로 나올수 있었던 이다.
나는 권은에게 아버지의 후지필름 카메라를 선물한다. 권은은 블로그에 편지를 쓴다.
네가 준 카메라가 날 이미 살린적이 있다는걸 너는 기억할 필요강있어.
이야기의 전개순서가 매끄럽다.
 

p32
셔터를 누를 때 카메라 안에서 휙 지나가는 빛이 있거든, 그런 게 있어? 어디에서 온 빛인데? 내가 관심을 드러내자 권은은 그때까지 내가 한번도 본 적 없는, 한껏 신이 난 얼굴로 날 바라봤다.

빛 무더기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일제히 퍼져나와 피사체를 감싸주는 그 짧은 순간에 대해서라면, 사진을 찍을 때마다 다른 세계를 잠시 다녀오는 것 같은 그 황홀함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권은이 내가 알고 있는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악기상점의 쇼윈도우에 반사되는 햇빛이 오직 그녀만을 비추고 있었다.



사물과의 작별


76
고모는 학교 수업에도 거의 나가지 않고 집 안에만 틀어박힌 채 자신어 삶에서 스무살의 봄과 여름을 도려내었다.
85
나는 휴대전화 조명에 의지하여 쇼핑백을 빈 상자에 담아 밀봉한 뒤 작성한 유실물 접수 서류와 함께 빈 선반에 두었다.41327 . 새 유실물의 일련번호였다. 그것은 시간단위로 환산할 수 없는, 상자 속 사물들에 선고된 기다림의 형량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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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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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PIN001 시리즈 첫 소설로 편혜영의 시작이다.


책을 받아보고 짜증이 났다.

책의 페이지는 226페이지 하지만 책의 폭이 너무 좁고 빈 공백이 넓다.

한줄을 읽고 다음 줄로 넘어가는 순간이 빨라서 일까? 읽는 눈의 피로감으로 인해 짜증이 또 났다.

그리고 책값은 13000원.

아.. 현대 문학 안되겠다. 독자를 호구로 아는지. 이따위로 책을 편찬하다니. 소설보다 출판사가 아주 못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p.140

[마테복음]8 장에 이런 구절이 있어.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서 계속 곱씹었어. 예수는 인자하고 자비롭다면서 죽은 사람한테 왜 이러나. 사람이 죽었는데 이렇게 야박해도 되나...... 이해할 수 없었지. 한참 새기니까 조금 알 것도 같더라고.

"영혼이 죽은 자는 내게 필요 없다, 불신자는 불신자에게 가고 믿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나를 따르는 건 믿는 자로 충분하다는 뜻이려나."


이번 편혜영의 새로운 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 은 서울의 종합 병원에서 퇴사를 당한 후 지방의 한 선도 병원을 재 취업을 하면서 겪는 에피소드이다.

이 소설.. 일반 의학 소설과 사회문제를 찝어 내는 소설의 중간쯤에 위치한듯하다.

더욱이 한 개인의 사회적 윤리와 암묵적 타협과 드러나지 않는 폐쇄적 제도에 대한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난 편혜영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녀만의 소설을 읽을 때의 그 느낌이 좋았다. 아니 좋았다가 아니라 그 개성이 좋았다.

일상의 작은 균열이 걷잡을 수 없이 나를 붕괴시키는 구성과 주변의 표현력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일상은 작은 사건이 점차 커져서 걷잡을 수 없는 일로 진행된다.  편혜영의 요즘 소설의 주제다. 무주는 도시의 큰 종합병원에서 내부 비리로 인해 과장을 대신해 자신이 책임지고 지방의 이인시의 이제 막 종합병원이 된 곳으로 오게 된다.  이곳에서 이석의 도움을 받으며 잘 적응 해가던 때에 사무장의 혁신관리 위원회에 들어가게 된다.  업무를 보는 도중 이석의 비리를 발견하게 된다.  조금 관심만 있게 보았다면 알아차릴법한 비리들. 무주는 갈등을 하다가 이제 태어날 아이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되려는 의지이었을까?  사내 익명게시판에 이석의 비리를 글을 올리게 된다.  기껏해야 감봉과 정직을 거칠 줄 알았는데 다음날 이석은 해직되었다. 그리고 익명인 줄 알았던 게시판 글이 자신의 고발을 다 알아버린 것이다.  또한 이석의 아들의 죽음도 듣게 되었다. 이석의 아들의 병원비로 인해 주택까지 팔았던 이석.
병원의 과장은 이제 노골적으로 무주를 비난한다.

무주의 행동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하지만 공동체 생활의 일환으로는 그의 행동은 타인의 경계의 대상이 된다.
무주는 계속 자기합리화로 자신의 행위는 정당화한다.


이제 병원의 일은 무주 개인의 일을 벗어난다. 병원의 실질적 주체인 사무장과 원장과의 대립. 그리고 병원 리베이트 문제

환자를 돈으로 보는 천민자본주의의 모습까지 드러내기 시작한다.


병원을 떠났던 이석의 재 등장으로 소설은 다시금 스릴러적 접근을 시도한다.


이인시의 도시 풍경은 편혜영이 자주 사용하던 단어들과 풍경이 나온다.


p116

아내에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무주도 무서웠다.

작동을 멈춘 거대한 공장, 싸구려 술로 몸을 망치는 사람들, 방치된 폐업한 가게, 건물 입구를 걸어 잠근 입주자 없는 공동 주택, 피부병을 앓고 배회하는 개들, 날이 따뜻해도 뼈처럼 단단하게 얼어 있는 땅 같은 것아, 뒹구는 돌에도 절망이 묻어나고 공터를 가로지르는 바람 소리가 사람들의 한숨 소리나 낮은 울음처럼 들렸다.


p200

전봇대나 벽면은 틈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임대'라 적힌 광고지가 빽빽하게 붙어 있었다. 폐업한 점포들 자물쇠를 흉하게 둘러 아예 폐쇄해버린 주택단지를 지나는 동안 목줄도 없이 배회하는 개들과 어둠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고양이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그런 삭막한 도시 풍경과 무주와 아내의 관계 역시 삭막하다.

아내는 늘 남편이 자신에게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무주 역시 아내에게 무엇이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내 역시 무주에게 말하는 대신 침묵했다.


p114

아내의 표정이 갈수록 굳어가는 걸 무주는 매번 모른 척했다. 아내가 무슨 말인가 하려는 기색을 보이면 두려웠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라는 것에 서운해하지 말고 축하한다는 말을 먼저 해야 했다. 생각과 달리 잘 됐다거나 무슨 일을 하게 된 거냐고 다정하게 물어볼 수 없었다. 무주는 입을 다물고 아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내가 얼마나 치쳐 보이는지 마음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게 다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관계가 소원해진 아내와의 관계는 이전의 단편 소설선에서 많이 등장한다.

소설 속의 표면적 관계는 아내의 유산과 이인시로 이주하면서 겪는 감정들이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이지 실질적으로는 무주의 행동과 그의 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 관계와 무주가 지내고 있는 이인시의 묘사는 무주의 현 상황과 묘하게 맞물려 있기도 하다.

그런데 슬럼화가 되어가는 이인시의 특이하게 고급 아파트 산책하는 장면에서 무주는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p214

시간을 끌대가 아내가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내가 잠시 기다려줬다. 무주는 아내에게 여전히 날 사랑하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원하지 않는 대답을 들을까 봐 겁이 났다. 무주는 아내의 손이라도 되는 듯 휴대전화를 움켜쥐었다.

아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스스로를 비난해야 할 때 언제나 다른 사람을 비난해요. 지금도 그래요. 사과를 하고 사정을 설명해야 하는데 되레 비아냥거리죠. 좀 더 솔직해지면 좋겠어요."


무주는 전화를 끊고 다시 걷는다.

그리고 권에게서 전화를 받고 그간의 사정을 전해 듣는다.

사무장과 이석의 횡령. 그리고 자신과 권이 한패라는 오해를 듣고 있다고 말이다.

이석은 어째서 무주에게 상황을 알려주었을까?


이 이상한 기분은 뭔가 하고 한참을 생각했다.


이 소설의 결말은 분명 희망적이다. 어찌 되었든 사무장을 비롯하여 이석은 다시는 병원엘 오지 못할 것이다. 이미 고발을 당했고 법적인 조치를 취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 병원은 다시 운영이 될 것이다. 병원 직원들은 새로운 사람이 와서 다시 병원이 정상화가 될 것이라 믿고 있다. 이런 희망은 너무 구차하다. 기다리는 희망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이인시는 이제 더 이상 자생적인 도시가 아닌데 말이다.

아내와 통화에서 아내는 무주에게 이야기한다. 좀 더 솔직해지면 좋겠다고 한다. 무주는 그 말을 듣고 아내와 관계가 좋아 질 것 같은

느낌은 들지만 그 기분에 뭔가 빠진 듯한 기운이 들었다.


이제는 편혜영의 소설들은 사회문제를 특유의 문체로 접근을 한다. 초창기 소설에 비하면 많이 유순해지는 느낌이 들고 부드러워진듯하지만 그 내용만은 무섭다. 아직은 좋아할 소설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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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민정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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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수상집.

요즘의 세대들의 소설가들의 이야기이다.

아무래도 나와 같은 세대이기 때문일까? 소설 속 감정선이 나와 많이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의 소설집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그해 나타나는 소설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어서 종종 읽는다.

하지만 이번 젊은작가수상집은 그런 트렌트를 보는 것보다 나와 같은 세대의 소설가들은 어떤 소설을 쓰는지에 대함을 알 수

있었다.

가만한 나날과 그들만의 이해관계, 그리고 인간적인 말 이 내겐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각 소설마다  

전부 사회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 사회문제는 보편적인 사회문제와 우리 세대가 느낄 수 있는 문제를 이야기한다.

덕분에 좋은 시간을 가질수 있어서 의미 있는 독서였다.



 

가만한 나날


작은 마케팅 화사에 출근하게 된 oo 는 블로그를 하나 개설하고 가짜 블로거 행세를 하며 제품 광고를 하게 된다.

이 일이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 자신이 후기를 쓴 글을 보고 한 여자에게서 쪽지가 오게 된다.

자신은 뽀송이를 쓴 후로 아이가 아프다는 내용이다. 더불어 나는 어떤지 묻는 글이었다.

oo는 혼란스러웠다. 나에게 해코지 하려는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 여자는 내가 자주 쓴다고 하니 나의

안부를 묻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우리의 일상에 익명성이 얼마나 존재하는 것일까? 그 익명성으로 인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소설이었다.


한밤의 손님들


한 식당에 엄마와 자매가 앉아있다.

이들의 대화는 차갑고 거칠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둘러싸여 서로에게 편리성만을 강조하는 듯한 대화가 이어진다.

엄마를 오리라 칭하고 동생을 돼지라 칭한다. 주인공은 불륜을 정당화하는 주장을 펼치고 엄마는 그런 딸이 못마땅하다.

더욱이 사위가 언제 돈을 줄지에 더 관심을 가진다. 동생은 사사건건 엄마에게 언니의 흉을 본다. 화자는 이러한 모든 상황이 익숙

한 듯하다.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가족이 더 이상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에 의한 존재로 변화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더욱이 주인공의 불륜에 대한 생각은 결혼은 더 이상 사랑의 전유물이 아니며 결혼 역시 서로의 필요성에 결여시킨다는 씁쓸한 생각 든다.


화랑을 배회하는 양 떼와 그 포식자들


미술계의 부조리가 세상에 드러나자 주인공 자신도 몰락하게 된다.

미술과 돈의 관계 그리고 사람들의 허영심과 그 허영심을 채워주는 브로커들의 이야기이다.

소설 후반에 가면 한편의 공포소설을 읽는 듯했다.

주인공은 미술계의 브로커다. 적당한 작가를 찾아서 그 작가를 소개해주고. 가격을 올려놓고 중간에 그 수수료를 받으며 지내는

사람이다. 그러나 법을 어기는 사람은 아니다. 그저 예술의 허영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일을 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아주 많다.


세실, 주희


세실,주희
 
화자인 주희는 어느 날 포르노 사이트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은 오래전 j를 믿고  미국에 갔을 때의 낯선 남자들 틈에 섞여 있는 모습이다.
이로부터 주희는 삶에 작은 균열이 일어난다.  여기서 재미난 것은 일본인 아르바이트생인 세실의 존재다.  그녀는 유노윤호의 팬으로써 한국에 온 것이다.
세실은 전쟁영웅의 자손이다.  그리고 위안부 시위의 거리를 지갈 때 주희는 그저 침묵하는 행동이다. 자신의 미국 생활과 j의

그러다 미술계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주인공도 함께 몰락해갔다. 마지막으로 미국으로 가서 자신의 일들을 돌아보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한 노신사. 그는 한 장의 명함을 주며 그곳에 가보길 권한다.

'회랑을 배회하는 양 떼와 그 포식자들'

주인공은 처음엔 무시했지만 그래도 하는 마음에 그곳에 가보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미술과 공포가 결합된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는 새롭게 태어난다.



그들의 이해관계


이 부부는 심하지 않은 말다툼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아내 해주가 공기 좋은 곳으로 잠시 다녀오겠다고 했을 때 그는 내심 기쁜 마음으로 잘 다녀오라고 한다. 이때 아내가 탄 버스가 큰 사고를 당해 죽음을 통보받는다.

그는 그간의 아내와의 설전과 아내에게 모질게 대한 행동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그러다 어느 인터넷 기사에 아내가 죽은 날 버스 경로를 바꿔서 참사를 당하지 않게 한 버스 기사가 경로를 바꾼 이유로 해고를 당한

기사가 나왔다.

그는 분노를 느꼈다. 그 기적은 누구를 위한 기적이란 말인가?

그는 그 버스 기사를 찾아가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소설  내겐 남다른 의미로 들어왔다. 그가 지금은 없는 아내에 대한 후회의 독백이 가슴 아프다.

그러나 이 소설은 버스 사고 잃은 아내에 대한 추억에 대한 휴머니즘으로 끝나지 않는다. 버스 사고로 인한 인과 관계와 사회에 대한 부조리를 읊조리고 있다.



인간적인 말


각자의 말로 서로에게 상처 입히는 부부가 소통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으로 서로 멀어지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부부의 언어의 문제를 넘어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한다.

죽음에 대한 각자의 생각 그리고 그 죽음이 올바른지에 대한 숙연함이 이 들 부부에게 남다른 감정선을 제공했다.


"우리는 말이 너무 많아 문제였고 그것은 둘 중 하나가 입을 닫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말이란 모든 문제의 원인임과 동시에 해법이었고 우리 관계에 있어 시작과 끝이었고 사실상 모든 것이었고 그것이 사라진다면 그녀와 나 둘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의미를 상실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우리라는 공동체의  의의를 잃는 방식으로 공존하느냐, 우리의 구성 요소를 유지하면서 이 공동체가 회복 불가능한 형태로 부서져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었던 셈이다."


"그런 그들에게 이모가 자신에게 남긴 유산과 이모가 스위스로 죽을 때까지 산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그들에게 작은 변화가 온다.
더 인간적인 말.  이 소설역시 인상 깊다.  말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모가 들어가고 늙은 여자 의사가 들어간다."

"논리적 강박관념.  논리적인 것과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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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 현기영 중단편전집 1
현기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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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5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건 명백한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은 삼십 년 동안 여태 단 한 번도 고발되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가 그건 엄두도 안 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군 지휘관이나 경찰 간부가 아직도 권력 주변에 머문 채 떨어져 나가지 않았으리라고 섬사람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들고 나왔다 간 빨갱이로 몰릴 것이 두려웠다.


이 중편쯤 되는 소설은 제주 학살의 사건을 세상에 고발한 소설이라 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37살에 써서 발표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설로 인해 고문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딱 내 나이다. 나는 무얼 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순이삼촌은

(고향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흔히 삼촌이라 불린다.)

큰 옴팡밭에서의 삼만 명의 도민이 총살 당할 때 홀로 살아남은 사람이다.

제주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처음에 그 사건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아... 내가 근대 한국소설을 기피하는 이유가 나왔다.. 우라나라가 근대시대로 넘어갈때 나타나는 아픔들.

그런 아픔들을 알아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대략 사건은 이렇다.

5.10 선거 때 부락 출신 몇몇 공산주의 골수분자의 선동에 부화뇌동하여 선거를 보이콧한 사건이 화근이 된 것이다.

정부에서는 공비 소탕작전의 일환으로 견벽청야 작전의 일부를 진행한다. 육지에서 군인이 대거 내려온 것이다.

선거를 보이콧한 김진배는 산으로 도망가고 아내는 부락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이때부터 군경은 마을 남자들은 밤낮으로 산으로 가지 않은 자들은 공비라 칭하고 마구 죽이게 된다.

남자들은 늘 군경을 피해 다니기 일쑤였다.

그러나 실제로 산으로 도망간 사람들은 군경을 피해 도망간 마을 남자들이고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군경은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불러다가 학교 운동장에 몰아넣는다. 그리고 직계가족이 군,경,공무원인 사람들을 분리 해내고

그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모두 공비라 믿고 총살에 이르게까지 한다.


살아남은 남자들은 조용히 숨어지내다가  6.25 가 터지는 바람에 모두 해병대에 지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귀신 잡는 해병. 햐.. 참. 나도 그 겉멋에 지원했지만,

제주도 남자들은 그때야말로 빨갱이 누명을 벗을 수 있는 더없는 기회였을 것이다.

그들은 그대로 있다간 다시 빨갱이로 몰려 개죽음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섬 출신 청년 삼만 명을 주축으로 이루게 된 해병대 3기들. 그들에게 용맹이란 과연 무엇일까? 빨갱이란 누명을 뒤집어쓰고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이들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래도 내가 빨갱이냐?" 하면서 용맹을 떨치는 모습을.

그건 시대의 아픔을 전쟁으로 표출했던 것이다.


이런 사건이 실제 일어난 것이다.




이런 사건이 30년 동안 신문 한 토막 나오질 않았다.

와.


우린 이런 시대를 거쳐 온 것이다.

우리 주변엔 순이삼촌이 많을 것이다. 순이삼촌은 그 공포의 시간 속에서 세상에 알리기 두려워 지금도 가만히 떨고 있을 것이다.




해룡이야기.

p.163

중호는 사무치는 자괴감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피해자일 뿐인 어머니에 대한 이 가당찮은 반감은, 실은 마땅히 가해자한테로 향해야 할 분노가 차단된 데서 생긴 엉뚱한 부작용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응당 가해자의멱살을 붙잡고 떳떳이 분노를 터뜨려야 하는데,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빨갱이로 몰릴까봐 두려운 것이다. 피해자인 섬사람들은 삼만이 죽은 그 엄청난 비극을 이렇게 천재지변으로 치부해버린다.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것, 자신이 박복해서, 아무래도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당했거니 하고 체념해버린다. 허울 좋은 이념 때문에 폭동을 일으켜 살인, 방화를 일삼던 장본인들의 죽음이야 자업자득이라 하겠지만, 어째서 양민의 숱한 죽음들마저 자업자득이란 말인가. 그것을 자기 박복한 탓으로, 전생에 무슨 죄가 있는 탓으로 돌리다니.

 어머니의 자격지심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당신 탓으로로만 여겼다. 천재지변과 같이 막강한 가해자들, 그들에게 분노나 증오를 품는다는 것은 마치 천둥벼락에 적개심을 품는 것과 다를바 없이 허망한 노릇이었다. 고향 섬 해변을 수시로 침범하여 섬 여자를 약탈, 겁간, 살인을 자행하던 왜구들이 전설 속에서는 해룡으로 묘사된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가 아니었으락?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인 해룡. 해룡에게 먹히는 사람들은 다 팔자소관일 뿐, 해룡에 대한 적개심은 털끝만큼도 없다. 오직 덜덜 떨리게 두려울 따름이다. 피 묻은 흰 저고리와 시푸른 군복이 문득 머리에 떠오를 때마다 숨이 가빠지는 것은, 그러니까 분노도 증오도 아닌 바로 겁이었다.


이번 단편도. 제주의 한 사건을 겪은 중년의 이야기 이다. 자신들을 해룡에 재물을 바치는 마을 사람들로 비유하고 있다.

중호는 본적을 서울로 옮기고 서울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학창시절 동창들을 만나면서 다시금 오래전 그 소각사건을 떠올린다. 옴팡밭의 기억. 자신의 기억에 숨어버린 중호는 이제서야 자신을 찾으려한다. 아내에게 당당히 말하고 어머니에게 더이상 미안해 하지 않기 위해선 우선 본적을 제주도로 다시 옮기는 것부터 한다.


이제 더이상 겁내지 말자. 불같이 노여워하고 무섭게 증오해야 한다는 다짐이 인상적이었다.


가슴속에 묵혀둔 피해의식을 떳떳한 증오로바꾸기 위해서, 그러나 증오가 보복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용서하기 위해서, '용서하지만 잊지 않기 위해서'. 집 나가신 날을 기일로 제사 올리는 아버지의 억울한 혼백, 항상 자학의 채찍질에 시달리는 어머니의 자격지심, 나의 육지 콤플렉스를 위하여. 그 육지 콤플렉스라는 것은, 삼십년 전 그 세거리길에서 어린 나의 뇌리에다 화인으로 뿌지직 태워놓은 상흔이었다.


이 소설 이제야 읽어서 세상에 참으로 부끄러웠다.


 

작가에 깊은 존경을 느끼며 잘 것이다.



오늘 밤엔

'지상의 숟가락 하나' 를 꺼내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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