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울다
거수이핑 지음, 김남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향촌의 정경이 마냥 평화롭지는 않다.

그들의 삶 역시 치열하고 분주하게 흘려보내고 있다.


그렇게 삶은 계속 된다.


소솔속에서는 그런 표현들이 한번씩은 꼭 나온다.


P.89

나귀는 편하구나. 사람이 나귀만도 못하지 뭐야. 날마다 맷돌만 돌리면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으로 시간가는 걸 알겠지.


P.167

잘 살아가야 하지만 결국은 늙는다. 늙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세월은 많은 것을 앗아 가지만 일상에서 얻어지는 것도 적지 않다. 이 백성들이 무엇 때문에 살아가겠나. 결국 생활을 잘 꾸리면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오늘 이 정도 살 수 있게 되었으니 만족할 노릇이다.



이 책에 수록된 네 편의 중편 소설들은 나름의 개연성들이 있다.

우선 소설 속 주인공을 여자로 설정해 놓았다.

보통 향토소설은 남성 캐릭터가 나와야 이야기의 에피소드가 크고 스케일이 뚜렷해진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나약하지만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들의 이야기이고, 모두 3인칭 시점으로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형식이다. 또한 소설의 말미에 가서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의 실마리가 풀리면서 삶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첫 번째 소설 '산이울다' 에 나오는 벙어리 아내의 이야기는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아내는 자신의 자식들과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얼마 전 차이니스 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선정되어서 보았던 영화의 원작이었다.


두 번째 소설 ' 하늘아래 ' 는  한마을을 벗어나지 않고 한 평생을 살아온 한 여자의 일대기이다.

욕심부리지 말고 순리대로 살아가려는 향촌의 모습. 그 순리를 어긋나면 롼친처럼 불행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느끼는 것이 있다. '그들 역시 삶을 지내왔다.' 라는 것이다. 남편의 죽음에서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낀 건 롼친의 삶의 굴곡을 내가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 번째 소설 ' 째찍돌림 ' 역시 한 여자의 일생이다. 어릴 적 누명에 의해 반역자 가족이 되어 그녀의 가족들은 노예가 되거나 죽임을 당하였다. 왕인란 역시 어느 부자의 몸종으로 들어간다. 외모와 몸매가 이뻐서 주인의 성 노리기가 되지지만 안방마님에 의해 학대를 받는다. 이때 이 집에 석탄을 들여놓는 마우에게 청을 넣어 마우의 첩으로 도망 나오게 된다. 그러다 몇 년 후 마우가 이상한 죽음을 맞는다. 왕인란은 다시 옆 마을로 재가에 들어간다. 너무나 착한 신랑을 만났지만 이 역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왕인란은 삶에 의지를 잃지만 마우 때부터 자신을 도와준 마우의 종인 테헤이의 도움으로 삶을 계속 이어간다. 온 같 역경을 겪고 박복한 삶을 한탄하여 마지막엔 체념한 듯 지내지만 그녀 역시 나머지 삶을 이어 간다는 것이다.

 

네 번째 소설인 ' 시간을 넘어 ' 는 한 여자의 가난에 지친 한 여자가 손보다는 몸을 놀려서 돈을 버는 것에 익숙해진 한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애지중지하던 딸이 실종 사건이 되어 그 일말의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렇듯. 소설들은 온 같 사건 사고가 번잡한 도시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골의 모습을 한 그곳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멀리서 보는 평화로운 일상과 단조로운 삶이 아니라 그녀들 역시 삶이 지니는 그 무게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녀들은 단 한순간도 삶에 가벼운 적이 없었다. 삶에 대한 열정과 미래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그 마을에서

계속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시대적 배경이 허구가 아닌 전쟁 후와 문화대혁명의 시대를 거치고 있다는 것이다. 변해가는 국가 그 안의 작은 마을들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인간관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속속히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가 생각이 났다.

그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여자이다. 전쟁은 남자의 전유물로 비추어지지만 전쟁의 소용돌이 안에서 고통을 겪는 것은 남자가 아닌 여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된 르포 형식의 소설이었다. 인터뷰를 하는 여자들의 말에서 그녀들만의 삶에 대한 치열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번에 읽은 '산이울다' 역시 그에 못지않은 치열함이 느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